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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서 공부(14)

by 손재호 posted Sep 0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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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제3장 7항
강설날짜 2019-09-08

# 2019년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서 공부(14)

 

■ 제3장.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7)

 

��� 제7항 : 하나님께서는 피조물들 위에 행사하시는 그의 주권적인 능력의 영광을 위하여 그가 기뻐하시는 대로 긍휼을 베풀기도 하시고 거두시기도 하는 바 택함 받은 자 이외의 나머지 인류에게는 그 자신의 뜻을 측량할 수 없는 계획에 따라서 그들의 죄를 인하여 그들을 버려두시고 그리고 그들이 치욕과 진노를 당하도록 작정하시기를 기뻐하셨으니 이는 그의 영광스런 공의를 찬미케 하려 하심이다.

 

<해설>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서 제3장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 제7항에서는 유기의 작정에 관한 고백입니다. 유기는 ‘내버려두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버려두심으로 수욕과 진노를 당하도록 그렇게 예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정한 수의 사람들을 구원하시기로 예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일부 사람들을 구원하시기로 예정하셨다는 것은 나머지는 유기하셨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6-8절을 보면 “경에 기록하였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유기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 보면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둔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지만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부딪히는 돌, 거치는 반석이 된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바로 유기된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된 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라고 합니다. 곧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원 받은 자와 유기된 자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하셨기 때문에 구원 받기로 선택된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에 이르고, 유기된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함으로 멸망에 이르는 것입니다. 유기는 선택의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선택이 있으면 필연적으로 유기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은 유기하기로 작정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께서 유기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서 제3장 7항의 고백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피조물들 위에 행사하시는 그의 주권적인 능력의 영광을 위하여 그가 기뻐하시는 대로 긍휼을 베풀기도 하시고 거두시기도 하는 바 택함 받은 자 이외의 나머지 인류에게는 그 자신의 뜻을 측량할 수 없는 계획에 따라서 그들의 죄를 인하여 그들을 버려두시고 그리고 그들이 치욕과 진노를 당하도록 작정하시기를 기뻐하셨으니 이는 그의 영광스런 공의를 찬미케 하려 하심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고백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유기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따라 되어진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의 주권적인 능력의 영광을 위하여 그가 기뻐하시는 대로”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유기하기로 작정하신 것은 하나님의 기뻐하신 뜻에 따라 되어진 일입니다. 결코 그들의 죄 때문이 아닙니다. 만약 그들이 자신의 죄 때문에 유기되었다고 한다면 모든 사람이 유기되어야 마땅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3:23절에 보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선택된 자나 유기된 자나 다 자신들의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선하시고 기뻐하신 뜻을 따라 되어진 일입니다. 로마서 9:14-24절을 보면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로라 하셨으니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뇨.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뇨 하리니.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 하리요.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 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라고 묻습니다.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긴다”고 하십니다.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바로의 예를 들어서 하나님께서는 “강퍅케 할 자를 강퍅케 하시고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렇게 하였다고 해서 “네가 감히 뉘기에 하나님을 힐문하겠느냐”고 합니다. 그러면서 토기장이 비유를 들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선택과 유기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신 뜻에 의한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하나님의 유기에 대해서 오해합니다. 하나님이 잘못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의 유기 때문에 사람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형벌을 받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책임이 아니라 하나님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해입니다. 하나님의 책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유기 때문에 그들이 무서운 형벌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죄 때문에 무서운 형벌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유기는 앞에서도 봤듯이 ‘내버려두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의 상태를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자신들의 죄 때문에 멸망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기했다고 해서 하나님이 불의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잘못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범죄한 모든 인류를 내버려두셨다고 해도 하나님은 온전히 정의로우신 분이십니다. 따라서 그 가운데 일부를 선택하여 생명을 주시기로 작정하시고 나머지는 내버려두신다고 해도 하나님은 선택받지 못한 곧 유기된 자들에게 조금도 불의를 행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진노와 수치를 당하도록 유기하신 것은 하나님의 잘못이 아니라 그들의 죄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부당하게 대하신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유기하신 이유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오늘 제7항의 고백 마지막 부분을 보면 “이는 그의 영광스런 공의를 찬미케 하려 하심이다”고 했습니다. 이 고백에 보면 하나님께서 유기하신 것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공의를 찬미케 하려 하심이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들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목적이 ‘자신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유기를 작정하시고 그로인해 무서운 심판을 받게 하신 목적 역시 ‘자신의 영광’을 위함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작정에는 그 대상으로서 선택과 그 반대가 되는 유기의 예정이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은혜로 어떤 사람들을 선택하여 구원을 받도록 부르기로 예정하신 것과 같이 또한 하나님께서 영원하며 불변하는 가장 자유로운 목적에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공의와 자유와 권능을 나타내 보이시기 위하여 죄 가운데 남겨진 자들을 진노와 수치를 당하도록 정하셨습니다. 이처럼 은혜를 베풀지 않는 유기의 목적은 ‘하나님의 기쁘신 뜻과 그의 주권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함이며, 또한 그의 영광스러운 공의를 찬미하도록 하는데 있음’을 분명히 고백합니다(유 1:4; 롬 9:18, 22; 벧전 2:8; 계 13:8). 그러므로 우리는 선택의 은혜를 생각할 때에 감사하게 됩니다.

 

또한 우리가 유기의 교리를 대할 때에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됩니다. 우리가 선택을 받은 것도, 내버려두심을 당한 것도 다 우리의 공로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신 뜻을 따라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유기의 교리를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선택의 은혜를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신 뜻을 따라 당신의 백성으로 선택하여 주신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영원토록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사는 자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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