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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상범
제6,7조
문답내용 제 6 조 정경과 외경의 차이점

우리는 외경들(the apocryphal) 즉, 에스드라3, 4서와 토비트, 유딧서,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 에스더서의 부록, 아사랴의 기도, 불구덩이 속의 세 소년 찬미서, 수산나, 벨과 용, 므낫세의 기도, 마카베오상하를 이 거룩한 책들과 구별합니다. 교회는 이 외경들이 정경과 일치하는 한에서만 읽을 수 있고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외경들은 믿음이나 기독교에 대한 어떤 요점들을 확증하는 증거를 삼는데 있어서 어떠한 능력이나 권위를 갖지 못할 뿐 아니라, 더욱이 거룩한 책들의 권위를 실추시키는데 사용될 수 없습니다.

제 7 조 성경의 충족성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뜻을 충분히 담고 있으며, 또 인간이 구원받기 위해 믿어야 할 모든 것을 충분히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예배의 전체 방식이 성경 안에 충분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사도라 할지라도 지금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과 다르게 가르치는 것은 불법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바대로,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불법입니다(갈1:8).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무엇을 더하거나 빼는 것이 금지되어 있으므로 인해서(신12:32), 성경의 교리는 모든 면에서 가장 완전하고 완벽한 것임이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제아무리 거룩한 사람의 기록이라 할지라도, 인간이 쓴 모든 저작에 대하여 신성한 말씀과 동등한 가치를 가진 것으로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관습(custom)이나, 다수의 견해(the great multitude)나, 고전(antiquity)이나, 연륜과 전승(succession)이나, 회의들(councils)이나, 법령 혹은 규칙(decrees or statutes) 등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진리와 동등한 가치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진리는 무엇보다도 우선하며, 모든 사람들은 다 스스로 속이는 자이고 입김보다 가볍기 때문입니다(시62:9).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 요한이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요일4:1)라고 하고, 또한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요이1:10)고 우리에게 가르쳐 준 바대로, 이 절대무오한 규범에 어긋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우리의 온 마음을 다하여 배격해야 합니다.
강설날짜 2015-02-01

벨기에 신앙고백서 제6,7조


성경의 충족성


제 6 조  정경과 외경의 차이점


우리는 외경들(the apocryphal) 즉, 에스드라3, 4서와 토비트, 유딧서,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 에스더서의 부록, 아사랴의 기도, 불구덩이 속의 세 소년 찬미서, 수산나, 벨과 용, 므낫세의 기도, 마카베오상하를 이 거룩한 책들과 구별합니다. 교회는 이 외경들이 정경과 일치하는 한에서만 읽을 수 있고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외경들은 믿음이나 기독교에 대한 어떤 요점들을 확증하는 증거를 삼는데 있어서 어떠한 능력이나 권위를 갖지 못할 뿐 아니라, 더욱이 거룩한 책들의 권위를 실추시키는데 사용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난주에 성경만이 하나님의 무오한 말씀으로서 우리의 신앙을 규정하고 확증하는데 있어서 유일한 규칙이요 규범이라고 배웠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는 성경과 관련하여 두 가지 사실을 반드시 고백해야 하는데, 하나는 성경의 무오성이고, 다른 하나는 ‘성경만이’라고 하는 성경의 충족성을 고백해야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배울 벨기에 신앙고백서 6조와 7조는 바로 이 성경의 충족성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조항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성경의 충족성을 고백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특히 귀도 더브레 당시 로마가톨릭은 이 성경의 충족성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성경 외에 다른 여러 가지 것들을 신앙의 규범으로 추가시켰습니다. 그래서 로마가톨릭에 대한 반대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그 시대에 귀도 더브레는 목숨 걸고 이 성경의 충족성을 주장하면서 로마가톨릭의 성경관을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것입니다.


먼저 6조에서 귀도 더브레는 로마가톨릭이 성경에 외경을 추가한 것에 대해 비판합니다. 로마가톨릭은 지금까지도 성경과 더불어 외경을 제2의 정경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그래서 그들이 사용하는 공동번역본 성경을 보면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사이에 우리가 듣도 보도 못한 15개의 책들이 수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귀도 더브레는 그 목록을 일일이 언급합니다.


“우리는 외경들(the apocryphal) 즉, 에스드라3, 4서와 토비트, 유딧서,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 에스더서의 부록, 아사랴의 기도, 불구덩이 속의 세 소년 찬미서, 수산나, 벨과 용, 므낫세의 기도, 마카베오상하를 이 거룩한 책들과 구별합니다.”


여기 ‘외경’이라는 말은 ‘아포크리파(apocrypha)’라는 단어인데 그 뜻은 “비밀한, 의심스러운”이라는 뜻입니다. 즉 그 출처나 권위가 의심스럽다고 해서 외경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구약성경 39권은 모두 그 당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던 선지자들이 친히 히브리어로 기록한 글들인 반면, 외경 15권은 모두 말라기 선지자이후부터 예수님 오시기전까지의 중간기 시대 때 몇몇 유대인들에 의해서 헬라어로 쓰인 글들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외경들을 읽어보면 단숨에 이 책들이 성경의 영감된 책들과는 다른 ‘영’을 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성령님의 증거가 없고, 성경의 자증도 없습니다. 세 가지 점에서 그러한데, 첫 번째는 성경전체의 언약적 구속사관점과는 반대되는 유대인들의 정서가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외경은 공통적으로 구원을 얻기 위해 선행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세 번째로 외경에는 역사적인 허구들이나 터무니없는 상상들이 많이 섞여 있습니다. 그래서 중간기 시대의 유대인들조차도 이 외경들을 즐겨 읽기는 했지만, 그러나 결코 이 외경을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지금까지도 구약 39권만을 자신들의 토라로 인정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알렉산더 대제와 그 뒤를 이은 프톨레미가 전 세계를 헬라화하기 위해 각 나라들의 모든 중요한 책들을 헬라어로 번역하고자 하였고, 그 명령을 따라 유대인들도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하기 위해 서기관 70명을 모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번역된 구약성경이 바로 ‘70인역’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 ‘70인역’을 번역하면서 구약만 번역한 것이 아니라, 그 당시 널리 읽혀지던 헬라어로 된 외경도 함께 엮어놓으면 좋겠다 생각해서 구약성경 뒷부분에 이 외경을 첨가해놓았던 것입니다. 물론 그들도 이 외경을 정경으로 인정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AD 400년경에 제롬이 헬라어로 된 70인역을 라틴어 성경으로 번역하면서, 곧 벌게이트 역(불가타 역)을 만들면서 70인역의 전통을 따라 외경도 같이 번역해서 수록해 놓았던 것입니다. 물론 이 불가타 역을 번역한 제롬 역시 외경의 정경성을 부정했습니다. 그러나 로마교회가 모든 정치와 종교에서 파워를 갖게 되면서, 그리고 로마의 언어인 라틴어가 신성시 되면서, 미사도 라틴어로만 하게 되어지고, 라틴어 성경인 벌게이트 역도 신성시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이 벌게이트 역이 헬라어 원본보다도 더욱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까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이 외경도 자연스럽게 하나의 정경으로 교회 안에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시대든지 참되게 거듭나 성령을 받은 성도들은 언제나 이 외경을 정경으로 받기를 거부하였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외경을 무조건 읽어서는 안 되는 금지목록의 책으로 여겼던 것은 아닙니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외경에 대해서 읽으면 여러 가지 교훈과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좋은 책이라고 말했고, 귀도 더브레도 일부 유익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 외경들이 정경과 일치하는 한에서만 읽을 수 있고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즉 외경이라 할지라도 성경과 일치하는 면에서만 읽고 받아들이면 어느 정도 교훈과 유익을 얻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문헌들은 말라기서부터 예수님 탄생 전까지의 중간기 이스라엘 상황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역사적 자료이기 때문에 학자들은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어떻게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까?


“그러나 외경들은 믿음이나 기독교에 대한 어떤 요점들을 확증하는 증거를 삼는데 있어서 어떠한 능력이나 권위를 갖지 못할 뿐 아니라, 더욱이 거룩한 책들의 권위를 실추시키는데 사용될 수 없습니다.”


즉 이 책들을 하나의 참고서적 정도로만 생각해야지 정경으로 받아들여서 우리의 신앙과 교리를 규정하는 근거나 기초로 삼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로마가톨릭은 이 책들을 정경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신앙과 교리를 규정하고 확증하는데 이 외경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 일례로 연옥교리가 바로 이 외경에서 비롯된 교리입니다. 그래서 성경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다른 무언가를 덧붙였을 때 바로 거기서부터 온갖 오류가 교회 안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귀도 더브레는 외경을 정경으로 인정하는 것은 성경 전체의 권위를 실추시키고 진리를 오염시키는 행위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로마가톨릭의 잘못된 성경관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귀도 더브레는 제7조에서 로마가톨릭의 또 다른 잘못된 성경관을 비판합니다.


제 7 조  성경의 충족성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뜻을 충분히 담고 있으며, 또 인간이 구원받기 위해 믿어야 할 모든 것을 충분히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예배의 전체 방식이 성경 안에 충분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사도라 할지라도 지금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과 다르게 가르치는 것은 불법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바대로,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불법입니다(갈1:8).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무엇을 더하거나 빼는 것이 금지되어 있으므로 인해서(신12:32), 성경의 교리는 모든 면에서 가장 완전하고 완벽한 것임이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제아무리 거룩한 사람의 기록이라 할지라도, 인간이 쓴 모든 저작에 대하여 신성한 말씀과 동등한 가치를 가진 것으로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관습(custom)이나, 다수의 견해(the great multitude)나, 고전(antiquity)이나, 연륜과 전승(succession)이나, 회의들(councils)이나, 법령 혹은 규칙(decrees or statutes) 등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진리와 동등한 가치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진리는 무엇보다도 우선하며, 모든 사람들은 다 스스로 속이는 자이고 입김보다 가볍기 때문입니다(시62:9).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 요한이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요일4:1)라고 하고, 또한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요이1:10)고 우리에게 가르쳐 준 바대로, 이 절대무오한 규범에 어긋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우리의 온 마음을 다하여 배격해야 합니다.


먼저 첫 번째 문장에서 귀도 더브레는 앞서 언급된 성경의 충족성을 다시금 언급합니다.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뜻을 충분히 담고 있으며, 또 인간이 구원받기 위해 믿어야 할 모든 것을 충분히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성경은 결코 이 세상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모든 지식과 정보를 다 가르쳐주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앞에 제한하는 내용을 잘 봐야 합니다. “인간이 구원받기 위해 믿어야 할” 모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가 대학 입시에서 어떤 대학에 원서를 넣어야할지, 결혼할 때 누구와 결혼해야 할지, 이사를 하려고 하는데 언제 어디로 이사를 해야 할지, 어떤 진로와 직업을 선택해야 할지에 대해서 성경은 일절 침묵합니다. 그런 것들은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고자 하는 동기만 있으면, 성령님께서 각자에게 소원을 주시는 대로 선택하고 결정하면 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성경이 그렇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지에 대해서, 곧 우리의 구원과 신앙에 대하여 충분하고 충족하리만큼 우리에게 가르쳐준다는 것입니다.


“(15)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16)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17)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 3:15-17)


이 구절에서 성경은 두 가지를 가르쳐주는데, 곧 구원에 이르는 지혜와 모든 선한 삶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줍니다. 그런데 이 구절에서 계속 반복되는 단어가 ‘모든’, ‘온전케’라는 단어입니다. 곧 성경의 충족성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이 17절 끝에 나오는 ‘온전케’는 같은 구절 앞에 나오는 ‘온전케’와 전혀 다른 단어입니다. ‘엑살티조’라는 단어인데, “완전히 갖추다. 자격과 조건을 철저히 마련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현대어 성경은 이 구절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 “이 책으로 하나님의 사람들은 온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을 하기 위한 완전한 자격을 갖추게 됩니다.”(딤후 3:17)


즉 성경이 모든 선한 일을 하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구원에 이르는 지혜나 모든 선한 삶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성경 말고 다른 곳에서 찾아 헤맬 필요도 없고, 또 성경 말고 다른 곳에서 찾으려고 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다음 문장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예배의 전체 방식이 성경 안에 충분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실 이 문장은 문맥상 없어도 되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뜬금없이 예배를 언급하는 이유는 예배가 우리의 구원과 신앙에 있어서 핵심적으로 중요한 주제이기 때문이며, 또한 로마가톨릭이 성경의 가르침을 무시하고 성경 바깥에서 얻은 여러 가지 지식들에 근거해서 자기들 마음대로 예배를 드리는 그런 오류가 심각했기 때문에 일부러 이 사실을 언급하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죠. 많은 교회에서 기존의 예배방식은 너무 딱딱하고 재미없고 경직되어 있다고 하면서 형식과 절차는 간소화하고 유흥적인 요소를 대거 투입해서 경배와 찬양예배로 드리거나 불신자를 위한 열린예배로 예배드리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이 예배에 대하여 충분하리만치 가르쳐주고 있다는 성경의 충족성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예배방식은 철저하게 성경의 가르침에 기초해야 합니다. 그 다음 문장을 보시죠.


“그러므로 비록 사도라 할지라도 지금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과 다르게 가르치는 것은 불법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바대로,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불법입니다(갈1:8).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무엇을 더하거나 빼는 것이 금지되어 있으므로 인해서(신12:32), 성경의 교리(teaching)는 모든 면에서 가장 완전하고 완벽한 것임이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가르치는 바는 모든 면에서 무오하고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성경과 다른 복음을 전하거나, 또는 성경을 가감하는 것은 다 불법입니다. 그런데 여기 언급된 두 가지 내용 “다른 복음을 전한다.”는 것과 “성경을 가감한다.”는 것은 사실 같은 것입니다. 다른 복음은 항상 성경의 가감을 통해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성경가감은 그것이 교회에 미칠 치명적이고 파괴적인 영향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아주 강력하게 금지하시고 경고하셨습니다.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계 22:18-19)


이 구절은 요한이 자신의 묵시록 기록을 끝내면서 한 말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성령님께서 성경 66권의 계시를 끝내시면서 하신 경고의 말씀입니다. 즉 성경 66권 전체의 내용 가운데 일점일획도 가감하지 말 것을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교회사를 보면 항상 성경의 충족성을 부인하고 성경을 가감하려는 경향들이 늘 나타났던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성경가감에는 다섯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① 실질적인 성경내용 가감
첫 번째는 성경에서 어떤 내용이나 부분을 실제로 찢어서 빼버리고 그와 더불어 자기 마음대로 새로운 계시를 추가하는 경우입니다. 사도 바울 당시에 유대주의자들이 바로 그런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성경에서 사도바울의 서신이나 가르침을 찢어서 빼버려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는 선지자라고 말하면서 예수도 믿고 율법도 지켜야 구원받는다고 하는 새로운 계시를 가르쳤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가감에 대해 사도바울은 불법이라고 비판하면서 천사라 할지라도 그런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던 것이죠.


“(7)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8)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9)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7-9)


② 체험이 말씀을 압도
그리고 성경가감의 또 다른 형태로서 성경을 직접적으로는 부인하지 않으나, 은연중에 성경을 터부시하면서 신비주의적인 체험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복음진리를 터득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들은 성경보다는 금욕과 수행을 통해서 그리고 성령님에 의한 내면의 조명을 통해 진리에 이르게 되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입니다. 이것은 신앙의 근거와 기초를 성경이 아닌 체험에다 두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을 가감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신비주의자들이나 직통계시자들, 신사도운동이나 은사주의자들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귀도 더브레 당시에도 이런 경향이 있었는데 바로 재세례파입니다. 이들은 성경을 “죽은 문자”(dead letter)라 하여 보다 덜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고 오히려 신자들 각자에게 임하는 성령의 “내적 조명(inner light)”과 직통계시에 보다 본질적인 권위를 두었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종교개혁자들은 재세례파에 대해서 강력하게 비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성경을 깊이 배우는 데는 별로 관심이 없고, 경배와 찬양만 열심히 하고, 뭔가 하나님을 직관적으로 체험하는 데만 몰두하는 모든 신앙의 형태들을 본다면, 그것이 곧 성경 가감이라는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③ 성경과 교회의 전통을 동등하게 여김
그리고 세 번째로 로마가톨릭처럼 성경의 권위도 인정하고 강조하면서 그와 더불어서 교황이나 교회의 전통도 똑같이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것도 성경을 가감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교회의 전통과 성경이 동일한 권위를 갖는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교회가 성경보다 먼저 있었고, 성경이라는 것도 교회가 하나님께 말씀을 받아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교회와 성경이 동일한 권위를 갖는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전승했다고 여겨지는 오래된 교회의 전통이나 관습, 교황의 선언, 교회회의를 통한 결정사항들이 다 성경과 동일한 권위를 가지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가 성자로 인정한 사람들의 저작도 신성하게 여겨지는 것이죠. 그래서 그런 것들을 통해서 성경에는 없는 가르침과 예배방식과 오류들이 난무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제아무리 거룩한 사람의 기록이라 할지라도, 인간이 쓴 모든 저작에 대하여 신성한 말씀과 동등한 가치를 가진 것으로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관습(custom)이나, 다수의 견해(the great multitude)나, 고전(antiquity)이나, 연륜과 전승(succession)이나, 회의들(councils)이나, 법령 혹은 규칙(decrees or statutes) 등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진리와 동등한 가치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진리는 무엇보다도 우선하며, 모든 사람들은 다 스스로 속이는 자이고 입김보다 가볍기 때문입니다(시 62:9).”


물론 로마가톨릭의 주장처럼 교회에도 주님이 주신 권세와 권위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교회가 성경말씀에 토대를 두고 있을 때만 해당되는 내용입니다. 교회가 말씀에 기초하지 않을 때, 그 교회는 죄인들의 집단일 뿐 아무것도 아닙니다. 신앙서적과 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성경말씀에 근거하고 기초할 때만이 의미 있고 유익한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아무 쓸모없는 책들이 되는 것입니다.


④ 성경을 잘못 해석함
그리고 네 번째로 로마가톨릭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심각한 문제로 여겨지는 것인데, 바로 성경을 잘못 해석함으로써 성경을 가감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로마가톨릭은 교황의 권위를 성경과 동일시하면서 교황만이 성경을 바르게 해석할 수 있고, 또 교황의 해석이 곧 진리라고 하는 이상한 주장함으로써 은밀하고 교묘하게 진리를 왜곡시키고 다른 복음을 전하였던 것입니다. 즉 교황이 성경자체를 가감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해석할 때 교묘하게 어떤 내용은 빼버리고 어떤 내용은 부각시킴으로써 복음을 변질시키는 것입니다. 오직 은혜의 복음에서 ‘오직’을 은근슬쩍 빼버리고, 율법을 슬그머니 집어넣어서 행위구원론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황이 마리아는 하나님을 낳은 어머니이기 때문에 무죄해야 한다고 선언하면, 교회는 무조건 그 사실을 믿는 바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로마가톨릭만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한국교회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성경을 어떻게 가감합니까? 기복신앙이라고 하는 다른 복음으로 성경을 가감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복 받고, 예수 믿고 건강해지고, 예수 믿고 부자 되고, 십일조 잘하면 세상 성공하고, 교회 열심히 봉사하고 헌신하고 전도 열심히 하면 자식들이 복 받고 하는 내용들이 다 성경의 가감을 통해 만들어진 다른 복음입니다. 성경은 자기가 행복해지려고 하는 모든 정욕을 다 버리고 도리어 모든 형편을 자족하고 감사하면서 복음과 함께 고난 받아야 한다고 가르치는데, 그러한 성경의 가르침은 쏙 빼버리고 세상 성공하는 방법, 경영학, 심리학, 세상철학, 건강상식 이런 것들을 더해서 다른 복음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⑤ 성경을 읽고 배우지 않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흔한 형태의 성경가감은 바로 성경에 대해 무관심하고 성경을 안 읽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다보면 “성경에 이런 구절도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성경에 이런 내용이 있는 줄도 모르고 이때까지 살아왔던 것입니다. 이것은 의도하지 않았는데 성경의 어떤 부분을 빼놓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얼마나 성경에 대해서 무지한지 모릅니다. 읽지 않아서도 모르고, 읽고 나서도 무슨 말인지 몰라서 모르고, 읽고 알았는데 까먹어서 모릅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 마음과 생각에는 성경에는 없는 잘못된 해석과 생각과 오류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에 무언가를 더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형태의 성경가감은 우리가 의도적인 악함으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전적부패한 우리가 은혜로 구원받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있게 되는 일인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무지에 대해서 한탄하고 내 생각과 마음과 가치관이 성경과 온전히 합치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애통하면서, 날마다 성경말씀을 사랑하고 열심히 읽고 배워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 안에서 자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구절만 읽는 것이 아니라 어찌하든지 성경의 한구절도 빠트리지 않겠다는 자세로 세심하게 열심히 읽고 배우고, 또 성경을 읽다가 성경과 충돌하는 생각이 나에게 있음을 깨닫게 되었을 때는 망설임 없이 내 생각을 꺾고 주님의 말씀 앞에 엎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 일을 우리가 죽을 때까지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벨기에 신앙고백서 마지막 문장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 요한이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요일4:1)라고 하고, 또한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요이1:10)고 우리에게 가르쳐 준 바대로, 이 절대무오한 규범에 어긋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우리의 온 마음을 다하여 배격해야 합니다.


이 고백이 굉장히 과격한 주장일 수 있으나, 이것이 참된 성도의 자세입니다. 성경을 어떠한 형태로든 가감하려는 모든 행태는 교회와 우리의 구원을 파괴하려고 하는 적그리스도에 의한, 그리고 거짓 영에 의한 공격임을 알고, 우리가 이런 경향들에 대해서 온 마음을 다해 경계하고 배격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성경의 충족성에 우리의 구원이 달려있는 줄 우리로 알게 하셔서, 우리로 귀도 더브레와 같이 이 성경의 충족성에 목숨을 걸게 하여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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