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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상범
제8조
문답내용 제 8 조 하나님은 본질상 한분이시나, 세 위격으로 구별되신다
God is One in Essence, yet Distinguished in Three Persons

우리는 이 진리와 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오직 한 분 하나님을 믿으니, 그분은 하나의 단일 본질(one single essence)을 가지신 세 위격(three persons)이시며, 그 삼위의 교환할 수 없는 특질(incommunicable properties)에 의해 성부(the Father), 성자(the Son), 성령(the Holy Spirit)은 실제로(really), 참으로(truly), 영원히(eternally) 구별(distinct)되십니다. 성부는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의 원인(cause)이시며, 기원(orgin)이시며, 시작(beginning)이십니다. 성자는 말씀(the Word)이시고, 성부의 지혜이시며 형상이십니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오는(proceeds from) 영원한 능력(power)과 권능(might)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 구별에 의하여 셋으로 나누이지(divided) 않으시는데, 왜냐하면 성경이 우리에게 성부, 성자, 성령이 각각 그 인격을 가진 존재로서, 각자의 구별된 특성으로(distinguished by Their properties) 구별되어짐에도 불구하고 이 세 위격이 오직 한 분 하나님임을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부는 성자가 아니시며, 성자는 성부가 아니시며, 마찬가지로 성령도 성부가 아니시고 성자가 아니심이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구별된 세 위격들은 나누이지 않고, 섞이지 않습니다(not divided, nor intermixed). 왜냐하면 성부는 우리의 살과 피를 취하지 않으셨고 성령도 그러하시나, 오직 성자만이 취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부는 그의 아들 없이, 또는 그의 성령 없이 계신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셋은 본질상 동일한 한 분(in one and the same essence)이시며 영원히 동등(equal)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진리와 능력과 선과 자비에 있어서 삼위는 한 분이시기 때문에 첫 째 되는 분도, 또 나중 되는 분도 없습니다.
강설날짜 2015-02-08

창원한결교회 벨기에 신앙고백서 제8조 강설


삼위일체


삼위일체 교리는 신학적 잡동사니가 아닌 신앙의 본질입니다. 우리는 삼위일체로만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구원도 삼위일체적입니다. 성부는 우리의 구원을 작정하시고 모든 구속사를 경영하여 이루시고, 성자는 성육신하셔서 구속을 완성하시며, 성령은 그 구속을 적용하십니다. 그러니깐 삼위일체를 모르면 구원이 없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의 일상생활의 모든 영역이 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합니다. 하나님께서 홀로 하나로만 계신 것이 아니라, 삼위로 계셔서 서로 사랑가운데 연합하여 계신 것처럼,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도 하나의 피조물만 만드신 것이 아니라 수많은 피조물이 있게 하셔서 서로 조화가운데 연합하게 하셨고, 또 사람도 그렇게 한사람만 지으신 것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그들로부터 많은 후손들이 나오게 하셔서 거대한 하나의 공동체, 곧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수많은 관계 속에서 서로 조화롭게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그것이 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삼위일체 교리는 신학교에서 목사만 배우면 되는 교리가 아니라, 모든 참된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고백의 정수이고, 더 나아가 그 삼위일체 하나님을 아는 것이 우리의 존재목적이요 삶의 전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삼위일체 교리를 기쁘게 배울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때 반드시 나타나는 현상은 바로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서 더 깊이 알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하나 알아갈 때마다 말할 수 없는 기쁨과 행복감을 느낍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삼위일체 교리를 하나하나 배워가고 깨달아 가는 것이 그렇게 감격스럽고 기쁘고 즐거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비와 영광스러움 앞에 엎드려 경배하고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여서 열정적으로 기쁨으로 삼위일체의 신비에 대해서 배워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삼위일체 교리에 대해서 8-11조까지 4개의 조항을 다룹니다. 8조는 삼위일체 교리에 대해서, 9조는 그러한 삼위일체 교리의 성경적 근거에 대해서 다루고, 10조와 11조는 각각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과 성령님의 하나님 되심을 다룹니다. 오늘은 삼위일체 교리의 전반적 의미를 다루고 있는 8조에 대해서 배워보겠습니다.


제 8 조  하나님은 본질상 한분이시나, 세 위격으로 구별되신다
God is One in Essence, yet Distinguished in Three Persons


우리는 이 진리와 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오직 한 분 하나님을 믿으니, 그분은 하나의 단일 본질(one single essence)을 가지신 세 위격(three persons)이시며, 그 삼위의 교환할 수 없는 특질(incommunicable properties)에 의해 성부(the Father), 성자(the Son), 성령(the Holy Spirit)은 실제로(really), 참으로(truly), 영원히(eternally) 구별(distinct)되십니다. 성부는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의 원인(cause)이시며, 기원(orgin)이시며, 시작(beginning)이십니다. 성자는 말씀(the Word)이시고, 성부의 지혜이시며 형상이십니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오는(proceeds from) 영원한 능력(power)과 권능(might)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 구별에 의하여 셋으로 나누이지(divided) 않으시는데, 왜냐하면 성경이 우리에게 성부, 성자, 성령이 각각 그 인격을 가진 존재로서, 각자의 구별된 특성으로(distinguished by Their properties) 구별되어짐에도 불구하고 이 세 위격이 오직 한 분 하나님임을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부는 성자가 아니시며, 성자는 성부가 아니시며, 마찬가지로 성령도 성부가 아니시고 성자가 아니심이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구별된 세 위격들은 나누이지 않고, 섞이지 않습니다(not divided, nor intermixed). 왜냐하면 성부는 우리의 살과 피를 취하지 않으셨고 성령도 그러하시나, 오직 성자만이 취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부는 그의 아들 없이, 또는 그의 성령 없이 계신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셋은 본질상 동일한 한 분(in one and the same essence)이시며 영원히 동등(equal)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진리와 능력과 선과 자비에 있어서 삼위는 한 분이시기 때문에 첫 째 되는 분도, 또 나중 되는 분도 없습니다.


먼저 첫 번째 문장을 보시면 “우리는 이 진리와 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라고 말합니다. 즉 삼위일체 교리는 머리 좋은 누군가가 자기 마음대로 개발한 것이거나 또는 상상해 낸 것이 아니라, 성경의 가르침을 따른 교리라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보시면...


우리는 이 진리와 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오직 한 분 하나님을 믿으니, 그분은 하나의 단일 본질(one single essence)을 가지신 세 위격(three persons)이시며, ...


말이 어려운데 쉽게 말해 한 분 하나님이신데, 그 계시는 방식이 삼위로 계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의 본질(one essence)’이라는 표현과 ‘삼위(three persons)’라는 표현이 우리에게 굉장히 낯선 표현입니다. 성경에 나오지 않는 표현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용어를 쓰는 것은 삼위하나님을 설명함에 있어서 이보다 더 좋은 용어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용어들은 성경의 가르침에 철저히 기초하고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은 한분 하나님이십니다. 절대로 세분이 아니십니다. 존재의 수를 말할 때 하나님 복수가 아니라, 단수이십니다. 이것이 ‘하나의 단일한 본체(one single essence)’라는 표현의 의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생각할 때, 마치 각기 다른 여러 부분들이 합쳐져서 하나의 합성물을 이루듯이, 하나님을 그렇게 이해하면 안 됩니다. 그 존재와 본체에 있어서 결코 부분들로 나누어질 수 없는 한분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 10:30) 삼위 하나님은 하나이시지, 결코 셋이 아닙니다.


그러나 또한 성경이 성부 하나님과 더불어 예수님도 하나님이시고, 성령님도 하나님이심을 증거하므로 하나님은 한분이시지만 세 무엇으로 계신다는 것인데, “그 무엇이 뭐냐?” 라고 했을 때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그 질문에 침묵하지 않기 위해서 “three person”이라는 표현을 했습니다. ‘person’은 ‘인격’입니다. 우리말 ‘인격’은 기본적으로 “사람의 됨됨이, 사람의 품격”을 뜻하지만, 때때로 “지정의를 가진 존재” 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세 인격이시다” 할 때는 바로 후자의 의미로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즉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각기 지정의가 있으신 인격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말에는 ‘인격’이랑 같은 뜻으로서 ‘위격(位格 자리 위-인격 격)’이라는 용어도 있습니다. 그래서 “세 위격이시면서 일체”라는 뜻에서 ‘삼위일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벨기에 신앙고백서의 내용을 보시면...


그 삼위의 교환할 수 없는 특질(incommunicable properties)에 의해 성부(the Father), 성자(the Son), 성령(the Holy Spirit)은 실제로(really), 참으로(truly), 영원히(eternally) 구별(distinct)되십니다.


이 삼위가 서로 구별되신다는 것입니다. 이 고백은 구별을 무시하는 양태론을 정죄합니다. 교회사를 보면 “하나님은 한분이신데, 그 하나님께서 구약에서는 성부 하나님으로, 신약에서는 성자 하나님으로 나타나셨고, 나중에는 성령하나님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셨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마치 동일한 H2O가 얼음, 물, 수증기로 각기 양태를 달리 하여 나타나는 것처럼, 또는 동일한 사람이 교회에서는 목사라고 불리고, 집에서는 아버지라 불리고, 부모님에게는 아들로 불리는 것처럼, 그렇게 동일하신 하나님이 양태를 달리해서 이 세상에 나타나셨다는 것입니다. 삼위의 구별을 없앤 양태론 이단입니다.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그러한 오류에 반대하면서 성부, 성자, 성령의 구별되심을 아주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냥 구별된다 하지 않고 일부러 세 가지 부사를 더 언급했습니다. 삼위가 “실제로”, “참으로”, “영원히” 구별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실제로는 그렇지 않는데, 우리에게 계시하실 때는 마치 세 위격이 구별되신 것처럼 그렇게 자기를 꾸며서 계시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허상이나 거짓이 아니라 참으로! 실제로!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영원히!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즉 어느 때는 그냥 일위일체 하나님으로 계시다가 어느 순간 필요에 의해서 삼위일체로 변화되셨다가... 또 다시 일위일체로 돌아가시고...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변함없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오늘날 소위 진보적인 신학자들이 이것을 부정하는데, 우리가 그런 견해를 전적으로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삼위 하나님이 구별되신다고 했으니, (구별은 다른 점이 있다는 것이니까) 삼위 하나님께는 각기 자신만의 독특한 특성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그 삼위의 교환할 수 없는 특질(incommunicable properties)”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즉 성자, 성령에게는 없지만 성부에게만 있는 성부만의 독특한 특질이 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자에게만 있는 성자만의 독특한 특성, 성령에게만 있는 성령하나님만의 고유한 속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각각 무엇입니까? 먼저 성부 하나님만의 독특한 특성은 바로 성자와 성령의 원인과 기원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즉 성부께서 성자를 낳으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보내십니다. 이것은 존재론적인 원인과 기원과 시작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리우스처럼 성부께서 성자를 낳기 전에는 성자가 존재하지 않았다거나, 성부께서 성령을 보내시기 전에 성령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말하면 안 됩니다. 성부가 성자를 낳는다는 표현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성부가 성자를 낳는 사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이 없는 영원 상태에서 성부와 성자의 영원하고 불변하는 관계를 표현한 것입니다. 즉 영원히 성자를 낳으시는 것이 성부가 성자와 성령과의 관계에서 가지시는 독특한 특성인 것입니다. 이러한 독특한 특성에 기초해서 특별히 작정과 창조 사역이 성부 하나님의 사역으로 돌려집니다.


성부는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의 원인(cause)이시며, 기원(orgin)이시며, 시작(beginning)이십니다.


성부에게 돌려지고 있는 이 내용 곧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의 원인이시며, 기원이시며, 시작이십니다.”라는 내용은 사실 성자 하나님께도 돌려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4)그러므로 우상의 제물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분 밖에 없는 줄 아노라(5)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칭하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6)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고전 8:4-6)


즉 이러한 내용은 성삼위 하나님 모두에게 돌려질 수 있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창조뿐만 아니라 모든 구속의 사역과 섭리의 역사가 다 성삼위 하나님의 공동사역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부께서 성자와 성령의 기원이 되신다는 그 독특하신 특성에 기초해서 특별히 만물의 창조를 성부 하나님의 사역으로, 대표격으로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전유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벨기에 신앙고백서처럼 성부 하나님께서 특별히 모든 만유의 기원과 시작이 되심을 고백합니다.


한편 성자는 성부로부터 영원히 출생하시는 독특한 특성을 가지십니다. 그래서 거룩한 아들 곧 성자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성자에게는 이름에 있어서도 성부나 성령과는 다른 독특한 이름이 돌려집니다. 바로 ‘로고스’라는 이름입니다.


성자는 말씀(the Word)이시고, 성부의 지혜이시며 형상이십니다.


그러므로 성자는 성부께서 낳으신 아들이실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의 입에서부터 발화된 말씀이기도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성자하나님은 성부의 지혜이십니다. 이것은 잠언 말씀과 고린도전서 말씀에 기초한 고백입니다(잠 8:22-31; 고전 1:24). 사실 성삼위 하나님이 동일하게 완전히 무한히 지혜로우십니다. 그러나 특별히 하나님의 지혜가 성자의 창조 사역이나 구속사역 통해서 눈에 보이게 드러났기 때문에 성자 하나님을 성부의 지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혜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권능과 영광과 모든 속성들을 이 땅에 눈에 보이게 드러내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시고, 그 본체의 형상이십니다. 형상이라는 말 자체가 예수님의 성육신을 전제합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셔서 참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자신의 전 존재와 사역을 통해 하나님을 온전히 나타내신 분이십니다. 이것이 바로 성자 하나님의 독특한 특질이죠. 그래서 인성은 오직 성자에게만 있습니다. 성부와 성령에게는 인성이 없으십니다. 그런 면에서 구별되십니다.


그리고 성령 하나님의 독특한 특성에 대해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오는(proceed from) 영원한 능력(power)과 권능(might)이십니다.


성령님의 독특한 특성은 바로 성부로부터 나오시고, 또 성자로부터 나오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숨을 내쉬니 그것이 성령님이신 것입니다(요 20:22). 그리고 사도행전 2장 33절에서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부터 성령을 받아서 자신들에게 부어주셨다고 말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님의 독특한 특성입니다. 그리고 또한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성령님께서 성부와 성자의 영원한 능력과 권능이 되신다고 고백합니다. 즉 성부와 성자 하나님의 뜻과 의지를 실제로 이 세상에 권능과 능력으로 집행하시고 역사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신 것입니다.


그러면 구별을 강조해서 이야기했으니 이제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하나이심을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구별만 강조하게 되면, 결국 삼신론으로 빠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 구별에 의하여 셋으로 나누이지(divided) 않으시는데, 왜냐하면 성경이 우리에게 성부, 성자, 성령이 각각 그 인격을 가진 존재로서, 각자의 구별된 특성으로(distinguished by Their properties) 구별되어짐에도 불구하고 이 세 위격이 오직 한 분 하나님임을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부는 성자가 아니시며, 성자는 성부가 아니시며, 마찬가지로 성령도 성부가 아니시고 성자가 아니심이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구별된 세 위격들은 나누이지 않고, 섞이지 않습니다(not divided, nor intermixed). 왜냐하면 성부는 우리의 살과 피를 취하지 않으셨고 성령도 그러하시나, 오직 성자만이 취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고백의 내용에서 계속적으로 반복되는 내용은 “삼위가 구별되시나 한 분 하나님이시다”(one single essence,단일본질) 라는 것입니다. 즉 구별을 너무 생각한 나머지 하나님을 세부분으로 이루어진 합성물식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삼위로 나누고 구분하고 분리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또 반대로 한분이심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삼위가 구별 없이 혼합되었다고 생각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구별되시면서 한분이신 하나님을 우리가 고백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계속해서 보시면...


성부는 그의 아들 없이, 또는 그의 성령 없이 계신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셋은 본질상 동일한 한 분(in one and the same essence)이시며 영원히 동등(equal)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진리와 능력과 선과 자비에 있어서 삼위는 한 분이시기 때문에 첫 째 되는 분도, 또 나중 되는 분도 없습니다.


이 내용 곧 “성삼위 하나님이 그 권능과 영광과 모든 신적 속성에 있어서 동등하시다”는 내용을 우리가 동일본질(the same essence)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본체 또는 본질과 관련하여 두 가지를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는 단일본질이고 다른 하나는 동일본질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 10:30)라고 말씀하실 때도 바로 이 두 가지를 모두 의도하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한분이심을 증거 하실 뿐만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 성부와 동등하신 분이심을 증거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 바리새인들이 “참람하다.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고 하는구나.”라고 하며 돌로 치려고 했던 것입니다(요 10:33). 즉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의 의도를 정확하게 간파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그 권능과 영광과 모든 신적 속성에 있어서 동등하신 하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삼위일체 교리를 딱 세 가지 내용으로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단일본질이고, 두 번째는 구별된 세 인격이며, 세 번째는 그 삼위가 동일본질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삼위일체 교리는 논리적으로 이성적으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수학과 과학의 법칙에 의하면 구별된 세 인격이 계시면 세 하나님이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이십니다. 삼위일체는 수학과 과학과 논리의 법칙을 초월합니다. 그래서 삼위일체는 우리의 이성으로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삼위일체를 머리로 이해되게끔 설명하려고 하거나 또는 주장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이단적인 설명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구별되신 세 인격이시면서 한분 하나님이실 수 있습니까? 그것은 수학과 과학의 논리로 풀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조화와 연합이라는 관계로만 풀어질 수 있는 내용입니다. 구별되신 세 위격이 서로간의 온전한 사랑 가운데 하나로 연합하여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연합에 대해서 어거스틴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물체들의 경우에는 하나는 셋을 합한 것보다 작으며, 둘을 합하면 하나보다 많다. 그러나 최고의 삼위일체의 경우에는 한 분이 세 분을 합한 것 만하며, 두 분을 합해도 한 분보다 더하지 않다. 그리고 그 분들은 각각 자체가 무한하시다. 그래서 한 분 한 분이 다른 한 분 안에 계시며, 모든 분 안에 계시며, 모든 분이 모든 분 안에 계시며, 모든 분이 한 분 안에 계시다.”(어거스틴, 삼위일체론, 김종흡 역, 205-6)


이 어거스틴의 말은 다음의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30)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38)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신대”(요 10:30,38)


예수님은 성부와 자신의 하나 되심을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표현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하나 됨의 신비를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느냐 하면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과 연합하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10)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11)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요 14:10-11)


빌립은 예수님께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과 자신의 하나 됨을 믿지 아니한 빌립의 불신앙을 책망하시면서 자신을 바르게 믿을 것을 주문하셨습니다. 그리고 20절에서 그날이 이르면 이 삼위 하나님의 연합의 신비를 알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 14:20)


여기서 그 날은 성령님이 오시는 날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오시면 제자들이 주님과 참으로 연합하게 될 것이고, 제자들은 주님과의 연합 체험을 통해 비로소 예수님께서 아버지 안에 계심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즉 예수 믿고 성령 받아 주님과 연합할 때 비로소 성삼위 하나님의 연합의 신비를 깨달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삼위일체는 도무지 사람의 머리로는 알 수 없는 거야...”라고 하면서 그저 알 수 없는 신비의 내용으로만 남겨두는 사람은 성령 받지 아니한 사람입니다. 무조건 신비가 아니라 우리가 능히 깨달아 알 수 있는 신비인 것입니다. 즉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 안에 거하면 삼위일체 신비를 깨달아 아는 것입니다.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느낌으로는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삼위일체의 신비에 대한 깨달음은 우리가 성화되면 성화될수록 그리고 주님과의 사귐과 연합이 더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더 깊이 깨달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삼위일체 교리를 배우면서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참되게 믿고 주님과 연합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고, 또 한 번 예수 믿고 한번 주님과 연합했다고 다 된 것이 아니라, 날마다 주님 안에 거하는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님과 참으로 연합했습니까?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고 날마다 주님과의 사귐 속에서 그것을 느끼십니까? 만일 그것을 전혀 못 느낀다면, 거의 못 느끼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신앙이 아예 없는 사람이거나, 또는 영적으로 아주 위태로운 상황에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너희는 내 안에 거하라. 그래야만 너희가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않으면 말라비틀어져서 결국 버림받아 불사름을 당한다. 너희는 나한테 꼭 붙어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생존이 주님께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 없으면 죽는 줄로 알고, 주님 꼭 붙잡고 주님께 붙어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과 연합하여 삼위일체 하나님을 아는 지식 안에서 자라가야만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주님 안에 거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까?


“(9)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10)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요 15:9-10)


그것은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삶입니다. 주님이 베푸신 사랑을 늘 깨달아 아는 것이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삶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참으로 깨달아 알면 우리 인격은 반드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으로 반응합니다. 그리고 사랑은 행동적입니다. 아버지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죠. 그리고 그 계명은 결국 새 계명인 형제사랑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면서 죄를 죽이고 성화될 때, 무엇보다도 형제를 사랑하게 될 때,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비의 연합을 아주 선명하게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21)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22)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되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21-22)


우리가운데 주님을 사랑하는 경건한 신앙도 없고, 형제의 허물을 용서하고 용납하고 섬기는 사랑도 없는데, 우리가 어떻게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고 안다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도요한은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사망 가운데 거하는 자요, 하나님을 모르는 자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말씀 앞에서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고 회개해야 합니다. 먼저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깊이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진실 되게 믿고 주님과 깊이 연합해야 합니다. 그리고 날마다 죄에 대하여는 점점 죽고 의에 대하여는 사는 삶이 있어져야 합니다. 특히 주님의 은혜를 힘입어서 형제를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성화의 삶을 살아갈 때만이 우리는 주님과의 깊은 연합과 사귐 속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비를 깨달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삼위일체 하나님의 연합의 찬란한 영광과 신비로움 앞에서 완전히 압도되어 그 앞에 무릎을 꿇으며 경배와 찬양을 올려드리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우리가운데 충만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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