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711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설교자 최상범
제27조
문답내용 제 27 조 보편적 기독교회
The Catholic Christian Church

우리는 하나의 보편적(catholic), 혹은 우주적인(universal) 교회를 믿고 고백합니다. 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을 받고, 성령님으로 거룩하게 되며 인침을 받아,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하게 구원받을 것을 바라는 참된 그리스도인 신자들의 거룩한 회중이며 모임입니다.
이 교회는 세상의 시작부터 있어 왔으며, 세상의 끝 날까지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백성 없이는 계실 수 없는 영원한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비록 잠시 동안 사람의 눈에 아주 미미하게 보이고 거의 사라진 것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이 거룩한 교회는 온 세상의 박해에 대항하여 하나님에 의해 보존될 것입니다. 그래서, 아합의 폭정 동안에도 주께서는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고 절하지 아니한 칠천 명을 자신을 위해 남겨 두셨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거룩한 교회는 어떤 특정 장소나 혹은 어떤 인물들에게 국한되거나 제한되지 않고, 온 세상에 걸쳐 퍼져 있고 흩어져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믿음의 능력에 의해서 한 분이시고 동일하신 성령님 안에서 마음과 뜻으로 연결되고 연합되어 있습니다.
강설날짜 2015-07-05

벨기에 신앙고백서 제27조


보편적 기독교회


제 27 조  보편적 기독교회
The Catholic Christian Church


우리는 하나의 보편적(catholic), 혹은 우주적인(universal) 교회를 믿고 고백합니다. 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을 받고, 성령님으로 거룩하게 되며 인침을 받아,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하게 구원받을 것을 바라는 참된 그리스도인 신자들의 거룩한 회중이며 모임입니다.
이 교회는 세상의 시작부터 있어 왔으며, 세상의 끝 날까지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백성 없이는 계실 수 없는 영원한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비록 잠시 동안 사람의 눈에 아주 미미하게 보이고 거의 사라진 것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이 거룩한 교회는 온 세상의 박해에 대항하여 하나님에 의해 보존될 것입니다. 그래서, 아합의 폭정 동안에도 주께서는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고 절하지 아니한 칠천 명을 자신을 위해 남겨 두셨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거룩한 교회는 어떤 특정 장소나 혹은 어떤 인물들에게 국한되거나 제한되지 않고, 온 세상에 걸쳐 퍼져 있고 흩어져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믿음의 능력에 의해서 한 분이시고 동일하신 성령님 안에서 마음과 뜻으로 연결되고 연합되어 있습니다.


지난주까지 우리는 벨기에 신앙고백서를 통해서 구원론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오늘부터는 몇 주 동안 교회론을 배울 것입니다. 구원론 다음에 교회론을 다루는 것은 매우 적절한 것인데, 왜냐하면 구원과 교회가 뗄 레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구원의 본질이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는데 있는데, 그렇게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와 연합하게 되면, 그 결과로 모든 성도가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몸 된 교회의 각 지체들이 각기 은사를 가지고서 몸 된 교회를 섬김으로써 이 교회가 온전하게 세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온전하게 세워지는 과정을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구원의 완성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의 단회적 사건이 아니라 생명이 태어나서 자라나 완성되는 과정입니다. 구원은 천로역정에서처럼 골고다 언덕에서 죄의 짐을 벗으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제 복음으로 무장해서 시험과 유혹에 맞서 싸우면서 끝까지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우리가 믿음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리스도께 계속해서 붙어있어야 하고,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힘을 공급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그 은혜와 힘을 우리에게 어떻게 공급해 주십니까? 교회 형제자매의 은사와 직분을 통로로 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의 완성에 있어서 우리가 교회에 소속되어 은혜의 수단 아래 있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구원론은 교회론과 뗄 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칼빈의 『기독교 강요』, 윌리엄 에임즈 『신앙의 정수』, 벌코프의 『조직신학』, 헤르만 바빙크의 『개혁교의학』 등 거의 대부분의 조직신학 책들이 구원론 다음에 교회론을 다루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을 이야기할 때 개인구원만 말하지 말고, 교회로서의 구원도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너무 개인구원만 강조하는 경향이 있어서 우리가 교회로서의 구원을 특별히 강조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몇 주간의 벨기에 신앙고백서 강설을 통해서 이 교회로서의 구원에 대해서 잘 배워서 바른 구원론, 교회론을 정립해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교회란 무엇입니까? 두 번째 문장부터 보겠습니다.


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을 받고, 성령님으로 거룩하게 되며 인침을 받아,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하게 구원받을 것을 바라는 참된 그리스도인 신자들의 거룩한 회중이며 모임입니다.


교회란 짧게 말해서 참된 그리스도인 신자들의 모임입니다. 그러면 참된 그리스도인 신자는 어떤 자를 말합니까? 여기에 여러 가지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데, 오늘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세 가지 수식어를 붙였습니다. 그것은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 씻음을 받은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신칭의의 은혜를 말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성령님으로 거룩하게 되며 인침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것은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마음의 변화를 받고 삶이 변화되어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성화를 말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침은 우리로 하여금 구원의 확신 가운데 믿음의 길을 걸어가도록 하시는 성령님의 사역을 말합니다. 셋째로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완성을 소망합니다. 이것은 예수 믿고 거듭나서 새 생명으로 태어난 것이 시작임을 알고, 구원의 완성을 목표로 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가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재림을 통해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의 극치를 소망하면서 이 땅에서 믿음으로 순례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참되게 믿고 의지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리고 마음의 변화를 받아 거룩한 삶을 사는 삶이 없으면... 그리하여 구원의 완성을 소망하면서 넓고 편한 길을 버리고 좁고 협착한 길, 그리스도께서 가신 그 고난의 길을 끝까지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 지고 걸어가지 않는다면, 나의 믿음은 (우리가 앞서 배웠듯이) 사실 가짜인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지금 교회에 와서 말씀 듣고 예배드려도 사실상 교회 밖의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잘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이 교회에 대한 우리의 신앙고백이 무엇입니까? 첫 번째 문장을 보시면...


우리는 하나의 보편적(catholic), 혹은 우주적인(universal) 교회를 믿고 고백합니다.


교회의 속성에는 일반적으로 3가지가 있습니다. 통일성, 보편성, 거룩성이 그것입니다(4가지로 본다면 사도성까지 말함).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바로 이 세 가지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거룩성은 두 번째 문장에서 고백됨).


먼저 교회는 하나의 교회입니다. 윌리엄에임즈는 신앙의 정수에서 “교회는 하나의 고유한 종(species)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세상에는 다양한 종의 생명체가 살아갑니다. 인간도 있고, 사자도 있고, 코끼리도 있고, 고양이도, 개도 있습니다. 동물 말고도 수많은 곤충들, 식물들 등 다양한 종의 생명체들이 거대한 생태계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어떻습니까? 이런 교회도 있고 저런 교회도 있고, 지구에 교회도 있고, 또 알 수 없는 우주 어디엔가 지구와 같은 행성이 있어서 거기도 교회가 있고... 아니면 또 다른 차원의 우주에 또 다른 교회가 있고...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교회는 오직 하나의 교회밖에 없습니다. 물론 오늘날 이 땅에 다양한 교회의 종파가 존재합니다. 그러나 겉으로는 그렇게 보일지라도 그리스도 앞에서 영적으로... 교회는 단 하나의 교회만 있는 것입니다.

성경이 이것을 분명히 증거합니다. 우선 성경에 나타난 교회와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대한 여러 가지 비유들이 이러한 사실을 가르쳐줍니다.


그리스도는 신랑, 교회는 신부
그리스도는 예루살렘의 왕, 교회는 그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
그리스도는 나무, 교회는 가지
그리스도는 주인, 교회는 그 주인이 거하시는 집
그리스도는 목자, 교회는 그의 양들
그리스도는 머리, 교회는 그의 몸
그리스도는 건물의 모퉁이 돌(또는 반석), 교회는 그 모퉁이 돌에 붙어있는 벽돌


이 모든 비유의 공통점은 모두 하나의 교회를 말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인데, 신부가 둘이나 셋이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인데, 머리는 하나인데 몸이 두 개나 세 개가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구절들도 교회가 하나라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엡 4:3-6)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 12:12-13)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요 10:14,16)


이런 구절들이 바로 교회가 하나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단 하나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교회는 보편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보편성은 통일성에 따라 나오는 결론입니다.


위의 말씀처럼 목자 되신 예수님께서 어떤 사람을 부르셔서 자기 우리에 들어오게 하셨다면, 교회는 그가 유대인이든지 이방인이든지, 종이든지 자유자이든지, 빈부귀천, 남녀노소, 인종이나 피부색과 상관없이 무조건 동일한 형제자매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에는 어떠한 차별도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공간에 대해서도 차별이 없습니다. 아프리카에 살든지, 아시아에 살든지, 유럽에 살든지, 또는 죽어서 그 영혼이 하늘 낙원에 있든지 상관없이 다 동일한 하나님의 성도인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을 초월하여 보편적입니다. 어떤 사람은 신약에 비로소 교회가 처음 생겼고, 구약은 참 교회가 아니기 때문에 신약의 성도들이 구약의 성도들보다 우월하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전적으로 오해인 것입니다. 벨기에 신앙고백서를 보면...


이 교회는 세상의 시작부터 있어 왔으며, 세상의 끝 날까지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백성 없이는 계실 수 없는 영원한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교회가 없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처음 창조의 때에 아담부부만 있을 때도 그것이 교회인 것입니다. 교회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들의 모임을 말하는데, 아담부부도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그와 연합한 것입니다. 물론 우리처럼 분명하게 예수님을 알지는 못했지만, 희미하게나마 장차 오실 메시아를 바라보면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역사의 한 시대를 산 인물이고, 대속의 죽음도 역사의 한 시점에 일어난 사건이지만, 그 대속의 공로의 은혜는 과거, 현재, 미래라고 하는 시간의 흐름을 초월하여 전 세대에 미치는 것입니다. 구약의 모든 성도들은 바로 이 오실 메시아를 바라보고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우리와 동일한 성도인 것입니다.


그리고 벨기에 신앙고백서의 증거처럼, 예수님은 신약의 왕만 되시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분은 알파와 오메가로서 시작에서부터 끝까지 왕이 되시는 것입니다. 백성 없는 왕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므로 시작부터 끝까지 그분은 왕이시기 때문에 그의 백성이 시작부터 끝까지 항상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대를 초월하여 교회는 보편적입니다.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이러한 시공간을 초월한 보편성을 일컬어 “우주적인 교회”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가 이렇게 보편적이라고 하는 사실이 처음부터 확연하게 드러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구약시대 때는 보편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수많은 민족 가운데서 오직 가나안 땅에 있는 유대민족을 자기 백성으로 삼아 구약의 교회가 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은 보편적인 교회인데, 이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일단 한 민족을 택하셔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뜻을 처음부터 구약의 성도들에게 알려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고(창 22:18), 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출 19:5-6). 그리고 출애굽 할 때부터 벌써 유대인들만 출애굽 한 것이 아니라 그들과 더불어 이방 잡종이 다 함께 출애굽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고, 또 구약 곳곳에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서 구속사에 귀하게 쓰임 받는 인물들이 많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말씀들도 결국 천하만민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가 가라사대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오히려 경한 일이라 내가 또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사 49:6)


그래서 이 약속대로 예수님이 오셔서 유대인과 이방인이라고 하는 모든 차별과 막힌 담을 허무시고 둘이 하나가 되게 하셔서 하나의 교회를 세우신 것입니다(엡 2:13-19). 그런데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그것을 모르고 스스로 선민사상을 가지고서 이러한 교회의 보편성을 반대하며 나섰던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조차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어느 날 이방인 고넬료 집에서 복음을 전했을 때, 그 고넬료와 그 집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하시는 것을 보고서 깜짝 놀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줌을 금하리요” 하고 세례를 주었죠. 나중에 베드로가 예루살렘 교회에 돌아왔을 때, 베드로가 이방인들에게 세례를 주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분개했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앞서 했던 말을 반복하며 변론하였습니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여 그들을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셨는데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을 막겠느냐?” 그리스도께서 부르시고 그에게 성령을 주셨다면, 교회는 무조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든지 상관없이 교회의 동등한 지체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의 보편성입니다. 절대 차별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 10:12-13)


이러한 보편성을 우리가 잘 생각해서 교회 안에서 이러한 보편성이 잘 나타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벨기에 신앙고백서 그 다음 문장을 보시면...


교회는 비록 잠시 동안 사람의 눈에 아주 미미하게 보이고 거의 사라진 것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이 거룩한 교회는 온 세상의 박해에 대항하여 하나님에 의해 보존될 것입니다. 그래서, 아합의 폭정 동안에도 주께서는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고 절하지 아니한 칠천 명을 자신을 위해 남겨 두셨던 것입니다.


이 고백은 결국 눈에 보이는 교회와 눈에 보이지 않는 교회의 구분을 말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교회를 유형교회(가시적 교회), 눈에 보이지 않는 교회를 무형교회(불가시적 교회)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눈으로 볼 때는 정말 거의 씨가 말라서 아합 시대의 엘리야처럼 “저 혼자밖에 없습니다”라고 말하게 되는 그런 상황이 있을 수가 있지만, 그러나 엘리야 시대뿐만 아니라 어느 시대든지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는 눈에 보이지 않는 7000명의 남은 자가 항상 있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이 7000명을 다 만나서 알고 있습니까? 모르죠. 만일 7000명이 남아있는 것을 눈으로 봤다면 “나 혼자밖에 없습니다”고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야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러나 실존하는 7000명의 남은 자가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바울은 자기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동족들이 구원받기를 바랐지만, 그러나 유대인들은 하나같이 바울을 반대하고 도리어 바울을 핍박했습니다. 그러했을 때, 바울이 낙심하고 절망했습니까? 아니죠.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저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송사하되 주여 저희가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저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뇨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롬 11:1-5)


바울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 앞에서 남은 자가 있음을 믿었던 것입니다. 더브레 당시에도 로마가톨릭이 교회를 핍박하고 진멸할 때에, 특히 우리가 서론에서 배웠던 것처럼 네덜란드에 있는 수천 수만명의 그리스도인들을 잡아다가 무차별적으로 처형시키던 그 시대에 거의 씨가 말라가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더브레는 하나님이 여전히 교회를 붙들고 계신다는 사실을 굳게 믿었던 것입니다. 눈으로 볼 때는 신앙의 불빛이 다 꺼진 듯이 보여도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위해 남은 자를 두셨고, 또 그 교회를 반드시 안전하게 지키시고 보호하신다는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두고두고 온 역사를 통해서 고난 속에 있는... 어쩌면 홀로 있다고 여겨지는 그런 현실 속에 있는 교회들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상황이 물론 핍박이 없고 또 눈으로 볼 때 그 수가 많은 것처럼 보여도 사실상 결코 신앙생활하기 좋은 환경이 아닌 것입니다. 유혹이 강력하게 역사해서... 비록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지만, 거룩성을 상실하고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상실한 모습이 보편화되어 있는 이 시대인 것입니다. 이런 시대에 과연 참되게 주님을 믿고 사랑하며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참된 성도가 과연 몇이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의 고백이 무엇입니까? 눈으로 볼 때는 없는 것처럼 보여도, 주님은 여전히 남은 자를 두시고, 지금도 자신의 교회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든든하게 세워가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거룩한 교회는 어떤 특정 장소나 혹은 어떤 인물들에게 국한되거나 제한되지 않고, 온 세상에 걸쳐 퍼져 있고 흩어져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믿음의 능력에 의해서 한 분이시고 동일하신 성령님 안에서 마음과 뜻으로 연결되고 연합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옆에 있는 교회에 누가 다니고 있는 모릅니다. 창원 땅의 수많은 교회들, 그리고 한국땅의 수많은 교회들, 그리고 저 멀리 북한의 수용소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성도들, 이슬람권에서 순교를 각오하면서 신앙생활하는 성도들... 우리는 본적도 없고 알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인 무형교회입니다.


우리가 무형교회를 말하는 이유는 교회란 본질적으로 영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것은 눈으로 식별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했다는 것이 눈에 보입니까? 누가 연합했고, 누가 그냥 명목상의 신자인지 우리가 알 수 있습니까? 성령께서 사랑의 끈으로 전 세계에 흩어진 성도들을 하나로 묶으신 것이 눈에 보입니까?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무형교회가 하나님 앞에서 분명하게 있는 것이고, 또 그 무형교회를 지금도 든든하게 붙잡고 세워가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 무형교회를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눈에 보이는 이 한결교회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무형교회가 외적으로 나타난 교회인 것입니다. 사람이 영적인 존재이지만, 그러나 영혼만 있지 않고 몸이 있어서 그 영혼의 활동을 눈에 보이게 나타내는 것처럼 무형교회는 반드시 유형교회로 나타나고 표현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눈에 보이는 한결교회가 있어서 함께 모여서 말씀을 듣고 성례를 행하고,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실질적으로 힘써 지킴으로써 무형교회를 가시적으로 나타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의 주의해야 할 것은 무형교회와 유형교회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둘 사이에는 항상 불일치의 긴장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무형교회는 하나이지만, 유형교회는 하나가 아니죠. 지역마다 각기 다른 교단과 종파의 교회가 수백 수천 개씩 있습니다. 그리고 유형교회는 때때로 문을 닫기도 하고 새로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무형교회는 언제나 영원히 보존됩니다. 그리고 그 구성원에 있어서도 무형교회와 유형교회는 일치하지 않습니다. 유형교회 안에 소속되지 않았지만 무형교회 안에 있는 성도가 있을 수가 있고, 또 반대로 유형교회 안에 소속되어 출석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그리스도와 연합하지 않은 성도가 많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불일치의 긴장감 속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일은 바로 무형교회의 참된 본질을 이 유형교회를 통해 잘 표현해내도록 하는 일인 것입니다. 만일 교회 안에 회심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으면 그들에게 말씀을 잘 가르쳐서 회심의 은혜가 임하도록 돕고, 또 성령께서 우리를 영적으로 하나로 묶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서 우리 교회 안에서부터 실질적인 사랑의 나눔을 통해 그것을 나타내야만 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그러한 사랑은 우리 교회 안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직접적으로 교제 나누고 있는 다른 유형교회들에게까지 확장되어야 하고, 또 우리와 직접적인 교제가 없는 교회들이라 할지라도... 예를 들면 창원 주변의 수많은 교회들... 그리고 이 땅의 모든 한국교회들... 그리고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모든 유형적 교회들에 대해서 (비록 교단과 종파가 다르고 지역적으로도 떨어져 있어도) 항상 마음속으로는 우리가 다 주의 몸 된 지체요 성령으로 하나로 연합해 있다는 의식을 가지고서 위하여 기도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실질적인 도움을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무형교회를 잘 생각하는 사람은 결단코 다른 교회는 망해도 자기 교회만 부흥하면 된다고 하는 개교회주의로 나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기도를 해도 자기 교회를 위해서만 기도하고 오직 관심이 자기 교회에 있어서, 자기 교회의 부흥과 성장만을 위해 헌신한다면 그 사람은 엄밀하게 말해서 하나의 보편적 교회를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아무리 헌신하고 기도해도 그것이 주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우상숭배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벨기에 신앙고백서를 통해서 하나의 보편적 교회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우리의 관심과 시선을 한결교회에만 국한시키지 말고, 스케일을 키워서 하나님의 관점에서 하나된 그 무형교회를 깊이 생각해서, 참으로 전 세계 교회를 가슴에 품고 위해서 기도하며, 이 땅의 주의 몸된 교회를 위해 힘써 헌신하고 섬기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설교자 조회 수
153 벨기에 신앙고백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벨직신앙고백서) 제9조,제10조,제11조 강설 - 삼위일체(2) file 제9-11조 최상범 1325
152 벨기에 신앙고백서 벨기에 신앙고백서 (벨직 신앙고백서) 강설 제8조- 삼위일체 file 제8조 최상범 653
151 벨기에 신앙고백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벨직 신앙고백서) 강설 제6조, 제7조 - 성경의 충족성 file 제6,7조 최상범 724
150 벨기에 신앙고백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벨직 신앙고백서) 제3조, 제4조 강설 - 정경 file 제4,5조 최상범 679
149 벨기에 신앙고백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벨직신앙고백서) 제37조 - 최후 심판 file 제37조 최상범 545
148 벨기에 신앙고백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벨직신앙고백서) 제37조 - 최후 심판(2) file 제37조 최상범 712
147 벨기에 신앙고백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벨직신앙고백서) 제36조 - 시민 정부 file 제36조 최상범 695
146 벨기에 신앙고백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벨직신앙고백서) 제35조 - 주의 만찬의 성례(1) file 제35조 최상범 520
145 벨기에 신앙고백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벨직신앙고백서) 제35조 - 주의 만찬의 성례(2) file 제35조 최상범 555
144 벨기에 신앙고백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벨직 신앙고백서) 제34조 - 세례의 성례 file 제34조 최상범 634
143 벨기에 신앙고백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벨직 신앙고백서) 제33조 - 성례 file 제33조 최상범 595
142 벨기에 신앙고백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벨직 신앙고백서) 제32조 - 교회의 질서와 권징 file 제32조 최상범 680
141 벨기에 신앙고백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벨직 신앙고백서) 제31조 - 교회의 직분자들 file 제31조 최상범 710
140 벨기에 신앙고백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벨직 신앙고백서) 제30조 - 교회의 정치 file 제30조 최상범 652
139 벨기에 신앙고백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벨직 신앙고백서) 제2조, 제3조 강설 - 특별계시와 성경 file 제2조 최상범 834
138 벨기에 신앙고백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벨직 신앙고백서) 제29조 - 참 교회와 거짓 교회의 표지 file 제29조 최상범 836
137 벨기에 신앙고백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벨직 신앙고백서) 제28조 해설 - 교회에 가입해야 할 모든 사람의 의무 file 제28조 최상범 637
» 벨기에 신앙고백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벨직 신앙고백서) 제27조 - 보편적 교회 file 제27조 최상범 711
135 벨기에 신앙고백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벨직 신앙고백서) 제26조 - 그리스도의 중보 file 제26조 최상범 583
134 벨기에 신앙고백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벨직 신앙고백서) 제25조 - 그리스도, 율법의 완성 file 제25조 최상범 731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Next
/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