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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상범
제29조
문답내용 제 29 조 참 교회와 거짓 교회의 표지

The Marks of the True and the False Church


우리는 오늘날 세상에 있는 모든 분파들이 스스로 교회라는 이름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에, 어떤 교회가 참 교회인가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진지하고도 그리고 매우 신중하게 분별해야 함을 믿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선한 자들과 섞여 있어서 외형적으로는 교회 안에 있지만 사실은 교회에 속해 있지 않는 위선자들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참 교회의 몸체(body)와 연합은 자칭 교회라 부르는 모든 이단(sects)들로부터 반드시 구별되어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참 교회는 다음의 표지들에 의해서 알 수 있습니다. 참 교회는 순수한 복음설교를 선포합니다. 참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대로 성례의 순수한 집행을 계속해서 유지합니다. 참 교회는 죄를 교정하고 징벌하는 교회의 권징을 실행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참 교회는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스스로를 다스리며 거기에 반대되는 모든 것을 배격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교회의 유일한 머리로 생각합니다. 이러한 표지로서 참 교회는 분명하게 알려지기에, 그 누구도 이 교회로부터 분리할 권리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이 교회에 속한 자들은 그리스도인의 표지들에 의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하신 구주로 믿고 죄를 멀리하고 의를 추구하며, 좌로나 우로 치우침 없이 참되신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자신들의 육체와 그 행위를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비록 그들에게 큰 연약함이 남아 있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전 생애동안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그 연약함에 대항하여 싸웁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고난과 죽음과 순종에 호소하고, 그분 안에서 그분을 믿는 믿음을 통하여 죄 사함을 얻습니다.

거짓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교회 자체와 교회의 규례들에 더 많은 권위를 부여합니다. 거짓 교회는 그리스도의 멍에에 자신을 복종시키려 하지 않습니다. 거짓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말씀에서 명령하신 대로 성례를 시행하지 않고, 자기들에게 좋게 생각되는 대로 그 성례들에서 더하기도 하고 빼기도 합니다. 거짓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보다는 사람들에게 더 의존합니다. 거짓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거룩하게 사는 사람들과 거짓 교회의 죄와 탐욕과 우상숭배를 꾸짖는 사람들을 핍박합니다. 이 두 교회들은 쉽게 알 수 있어서 서로 구별됩니다.
강설날짜 2015-07-19

벨기에신앙고백서 제29조


참 교회와 거짓 교회의 표지


제 29 조 참 교회와 거짓 교회의 표지

The Marks of the True and the False Church


우리는 오늘날 세상에 있는 모든 분파들이 스스로 교회라는 이름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에, 어떤 교회가 참 교회인가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진지하고도 그리고 매우 신중하게 분별해야 함을 믿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선한 자들과 섞여 있어서 외형적으로는 교회 안에 있지만 사실은 교회에 속해 있지 않는 위선자들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참 교회의 몸체(body)와 연합은 자칭 교회라 부르는 모든 이단(sects)들로부터 반드시 구별되어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참 교회는 다음의 표지들에 의해서 알 수 있습니다. 참 교회는 순수한 복음설교를 선포합니다. 참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대로 성례의 순수한 집행을 계속해서 유지합니다. 참 교회는 죄를 교정하고 징벌하는 교회의 권징을 실행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참 교회는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스스로를 다스리며 거기에 반대되는 모든 것을 배격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교회의 유일한 머리로 생각합니다. 이러한 표지로서 참 교회는 분명하게 알려지기에, 그 누구도 이 교회로부터 분리할 권리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이 교회에 속한 자들은 그리스도인의 표지들에 의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하신 구주로 믿고 죄를 멀리하고 의를 추구하며, 좌로나 우로 치우침 없이 참되신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자신들의 육체와 그 행위를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비록 그들에게 큰 연약함이 남아 있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전 생애동안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그 연약함에 대항하여 싸웁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고난과 죽음과 순종에 호소하고, 그분 안에서 그분을 믿는 믿음을 통하여 죄 사함을 얻습니다.

거짓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교회 자체와 교회의 규례들에 더 많은 권위를 부여합니다. 거짓 교회는 그리스도의 멍에에 자신을 복종시키려 하지 않습니다. 거짓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말씀에서 명령하신 대로 성례를 시행하지 않고, 자기들에게 좋게 생각되는 대로 그 성례들에서 더하기도 하고 빼기도 합니다. 거짓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보다는 사람들에게 더 의존합니다. 거짓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거룩하게 사는 사람들과 거짓 교회의 죄와 탐욕과 우상숭배를 꾸짖는 사람들을 핍박합니다. 이 두 교회들은 쉽게 알 수 있어서 서로 구별됩니다.


교회는 구속받은 자들의 모임이며,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기 때문에 참된 신자라면 누구든지 하나님이 설치하신 교회에 가입하여 그 교회와 연합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따라 나오는 질문이 어떤 교회가 하나님이 설치하신 교회냐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수많은 교회와 종파가 있지만, 다 하나님이 설치하신 교회가 아니라 사단 마귀가 설치한 교회들도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참 교회와 거짓교회의 표지를 잘 배워서 그 표지를 따라 교회를 분별하는 것은 모든 신자에게 대단히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면 그 표지를 살펴보기에 앞서서 먼저 주의해야 할 점을 생각해보겠습니다.


그것은 바로 ‘참된 교회’라는 용어에 대한 오해입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당신은 참으로 참된 교회에 출석하고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대부분 대답하는 것을 망설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참된 교회’라고 할 때 생각하는 이미지가 교회다움을 잘 나타내는 성숙한 교회를 떠올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참 교회’라는 말을 잘못 오해한 것입니다. 즉 참된 교회를 ‘완전한 교회’ 또는 ‘정말 교회다운 교회’라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은 오해입니다. 오히려 참 교회는 완전한 교회를 부인합니다.


성찬에 참여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 있는 것입니다. 성찬은 오직 참된 신자만 참여할 수 있는데, “당신은 참된 신자입니까?” 물어보면 자기 모습을 볼 때 “나는 참 신자입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 쉽지가 않은 것입니다. 그것이 이미 ‘참 신자’를 죄가 없고 부족함과 연약함이 없는 완전한 신자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찬에 참된 신자만 참여할 수 있다고 했을 때, 그 의미는 죄가 없는 완벽한 자가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내가 죄가 하나도 없기 때문에 성찬에 참여한다”는 생각을 가지고서 참여한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결코 참여해서는 안 될 교만한 자입니다. 우리가 성찬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죄가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거꾸로 자기 죄가 ‘많다는 것을 알아야만’ 성찬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아주 연약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또 우리로 확신하도록 하기 위해서 성찬을 제정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참된 신자’라는 말은 ‘완전한 신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죄인인 것을 알고 참되게 예수를 믿고 의지하는 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참된 교회’라는 개념도 마찬가지입니다. ‘참된 교회’란 완전한 교회를 말하는 것도 아니고 아주 성숙한 교회를 의미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 교회가 참된 교회인데, 우리교회가 완전합니까? 개혁파 교회는 다 성숙합니까? 우리 교회 역시 개혁파라고 하지만 수많은 오류와 결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땅에 완전한 교회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참된 교회는 반드시 존재하는데, 그 참된 교회란 거짓교회와는 달리 하나님께서 설립하셔서 하나님께서 교회라고 인정해주시는 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설명하면 이런 것입니다. 만일 만원 짜리 지폐가 있는데 어떤 지폐는 너덜너덜하고 어떤 지폐는 새 지폐 일 때, 그 값어치가 서로 다릅니까? 만원이면 그 상태가 어떠하든 그냥 만원입니다. 단지 참 만원을 말하는 것은 “위조지폐”와 대조할 때만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참 교회”라는 것은 “더 나은 교회”라든지, “더 완전한 교회”라는 뜻이 아니라, 그냥 교회를 말하는 것인데, 다만 거짓교회와 관련해서 이야기할 때 “우리교회가 참 교회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당신은 참 신자입니까?”, “당신은 참 교회입니까?”라고 질문을 받으면 당연하게! “네! 저는 참으로 신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교회는 참 교회입니다.” 이렇게 대답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결코 잘난 척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더 ‘뛰어난’ 신자라든가, 우리 교회가 ‘더 완전한’ 교회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냥 “보편교회에 속해 있는 교회다.” 그렇게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 주의해야 할 것이 있는데... 벨기에 신앙고백서 첫 번째 문장을 보시면...


우리는 오늘날 세상에 있는 모든 분파들이 스스로 교회라는 이름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에, 어떤 교회가 참 교회인가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진지하고도 그리고 매우 신중하게 분별해야 함을 믿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선한 자들과 섞여 있어서 외형적으로는 교회 안에 있지만 사실은 교회에 속해 있지 않는 위선자들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참 교회의 몸체(body)와 연합은 자칭 교회라 부르는 모든 이단(sects)들로부터 반드시 구별되어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참된 교회라도 그 안에는 참된 신자들과 위선자들이 섞여있다고 고백합니다. 즉 한 교회만 보더라도 그 안에는 알곡과 더불어 사단 마귀가 심어놓은 가라지가 함께 있는 것입니다. 한 교회 안에 진짜 교회와 가짜 교회가 섞여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교회 안 있는 알곡과 가라지를 분별하는 데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가르침을 따른 것입니다. 주님은 교회 안에 있는 가라지를 추수 때까지 그대로 두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가라지를 뽑다가 알곡까지 뽑히는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가 알곡인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가라지인 경우가 있고, 또 반대로 가라지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알곡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 교회 안에서 누가 진짜교회고 가짜교회인지 판단해서 분리하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땅에 있는 수많은 조직교회들 가운데서 무엇이 참 교회이고 거짓교회냐 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철두철미하게 분별하여야 합니다. 이 경우는 앞의 경우처럼 추수 때까지 묻어둘 문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단 마귀가 설치한 교회에는 구원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알곡 가운데 가라지들이 함께 섞여 있는 것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문제 삼지 않으시지만 삯군목자들이 양을 치는 것에 대해서는 굉장히 심각하게 생각하십니다.


“(1)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 가지 아니하고 다른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2)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라(3)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4)자기 양을 다 내어 놓은 후에 앞서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 오되(5)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 (8)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9)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10)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5,8-10)


이렇게 주님은 삯군목자의 가르침과 지도 아래 있게 되면 결국 망하게 된다고 분명히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양떼는 교회에서 세우신 종들을 통해 선포되는 음성이 주님의 음성인지 아닌지를 잘 분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참된 양떼라면 예수님의 음성을 알고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분별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삯군목자가 부르면 예수님의 양떼는 얼른 알아차리고 그로부터 도망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만일 주님의 참된 양떼라면 우리는 그 교회의 목사의 설교만 들어봐도 이 설교가 주님의 음성인지, 아니면 삯군목자의 음성인지 단번에 알 수 있는 것이고, 따라서 이 교회가 참된 교회인지 아닌지를 아주 쉽게 알아차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교회가 참된 교회냐 거짓교회냐 하는 것은 바로 그 교회 가운데 주님의 음성이 들려져서 그 음성을 듣고 양떼들이 주님께로 인도되고 있느냐 아니면 그렇지 않느냐로 판가름 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음성이란 곧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참된 교회는 성경 66권을 자신들의 신앙과 행위를 규정할 유일하고 절대적이며 무오한 주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그 교회 가운데 그 말씀의 본의가 선포되고 또 그 말씀에 의해 다스림을 받는 공동체가 바로 참된 교회인 것입니다.


벨기에 신앙고백서를 보면...


참 교회는 다음의 표지들에 의해서 알 수 있습니다. 참 교회는 순수한 복음설교를 선포합니다. 참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대로 성례의 순수한 집행을 계속해서 유지합니다. 참 교회는 죄를 교정하고 징벌하는 교회의 권징을 실행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참 교회는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스스로를 다스리며 거기에 반대되는 모든 것을 배격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교회의 유일한 머리로 생각합니다.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교회의 표지로서 세 가지, 곧 순수한 복음의 선포, 성례의 순수한 집행, 권징의 시행.... 을 말하지만, 그 다음 문장에서는 앞의 3가지를 요약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다스림을 받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만을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철저하게 성경계시에 의존하여 사색하고 성경의 뜻을 좇아가는 공동체는 반드시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서 순수한 복음 설교를 선포할 것이고, 또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대로 성례를 순수하게 집행할 것이며, 또 권징을 신실하게 시행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유일한 머리로 인정하여 그 머리를 붙드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로마가톨릭은 사단마귀가 설치한 거짓교회임에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그들도 물론 성경을 중요시하지만, 그러나 그들은 성경에 인간의 책인 외경을 덧붙여버렸고, 교회의 전통을 성경과 동급으로 보며, 또 교황의 해석만이 올바른 해석을 할 수 있다고 하여 성경의 권위보다 교황의 권위를 더 높였으며, 무엇보다도 사사로이 성경을 해석하면 안 된다고 하면서 아무나 성경을 읽고 배우지 못하도록 성경을 금서로 만들어 버렸던 것입니다. 이것만 봐도 로마가톨릭이 적그리스도 단체요 거짓교회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잘못된 성경관으로부터 온갖 오류와 이단사상과 미신들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렇기 때문에 종교개혁이란 무엇입니까? 이러한 잘못된 성경관을 뜯어 고쳐서 성경을 원래 있어야 할 그 위치에 올려놓는 것이 종교개혁인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은 ‘오직 성경’을 외치면서 교회로 하여금 철저하게 성경의 다스림 아래 있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어찌하든지 성경을 번역하여 성도들에게 보급하고자 노력했고, 또 성경의 본의를 힘써 성도들에게 가르쳤던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의 다스림을 받는 교회의 구체적인 표지가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앞서 언급한 3가지 내용인 것입니다. 순수한 복음의 선포, 성례의 순수한 집행, 권징의 시행.


첫째, 성경의 다스림을 받고 성경을 좇아가는 참된 교회는 반드시 순수한 복음을 선포하게 되는 것입니다. 순수한 복음이 무엇입니까? 복음의 본질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 없이 그 의미 그대로를 전하는 것을 말합니다. 복음의 본질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삼위일체 교리이고, 둘째는 그리스도의 신인성 교리이고, 셋째는 구원론입니다. 특별히 더브레 당시에 순수한 복음이라고 했을 때는 이 세 번째인 구원론에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순수한 복음이란 오직 예수, 오직 은혜, 오직 십자가의 복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로마가톨릭은 오직 예수를 전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도 필요하고, 마리아도 필요하고 성자들도 필요하고, 교황도 필요하고, 사제도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기 위해서 그들이 성경을 얼마나 자기들 마음대로 가감하고 또 억지로 풀어 해석했는지 보십시오. 예를 들어서 중보자 마리아를 숭배하기 위해서 그들은 마리아를 죄 없는 인간으로 만들고, 예수님과 똑같이 부활 승천한 것으로 주장합니다. 또 사제주의와 교황주의를 주장하기 위해 성경의 내용을 자기들 마음대로 억지로 해석합니다. 그래서 로마가톨릭은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만을 유일한 머리로 인정하고 붙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다른 중보자를 자꾸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로마가톨릭은 오직 은혜의 복음도 부정합니다. 은혜와 더불어서 그 은혜에 인간이 잘 협력해야 최종적으로 구원받는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순수한 복음을 전하지 않고 말씀을 혼잡케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성경말씀이 있으면 그 말씀의 본의만 전하면 될 텐데 왜 이렇게 말씀을 혼잡하게 하고 어그러진 말을 합니까? 결국 자기를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28)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29)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30)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행 20:28-30)


사도바울이 감독의 자격을 성도들에게 잘 가르치고, 각 교회의 성도들이 그렇게 신경 써서 뽑는다고 뽑았는데도, 그 가운데 삯군목자가 있었습니다. 삯군목자는 두 가지 특징이 있는데, 첫째는 양들의 복지보다도 자신의 복지에 관심이 많다는 것이고, 둘째는 하나님의 순수한 복음보다도 자신의 명예와 영광을 더 중시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삯군목자는 결국 부패한 본성을 가진 사람들이 좋아하고 선호할만한 말들을 하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어그러진 말을 하고, 또 사람들은 그 말이 좋다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말세가 되면 다 귀가 간지러워서 자기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는 것입니다. 로마가톨릭이 왜 성경을 왜곡하여 말씀을 혼잡케 합니까? 결국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고, 또 양떼들을 통해 자신들의 배와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말을 많이 하는 것입니다. 결국 행위구원론도 사람들의 마음에 맞기 때문에 그것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죄악된 본성이 자기 의를 사랑하는 것이고, 따라서 자기 의를 높이 드러내는 종교를 사람들이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목회자 한 사람이 삯군목자인가 참된 목자인가 하는 것과, 그리고 그 목회자를 가르치고 지도하는 교단의 신학이 바른가 그른가 하는 것이 그 교회가 참된 교회냐 아니냐를 결정하는데 결정적인 변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에도 자기를 위해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구원에 있어서 인간의 행위를 조건으로 말하거나 인간의 행위를 높이는 사상을 가르치는 교회, 그리고 그 가르침대로 온 교회가 따라가는 교회, 그 교회가 바로 거짓교회인 것입니다.


물론 오늘날 장로교 간판 달고서 “오직 믿음으로 은혜로 구원 받는다”는 것을 부정하는 교회는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행위구원론보다 더 나쁜 거짓 복음이 오늘날 한국교회에 유행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예수님 잘 믿고 십일조 잘하고 열심히 헌신봉사하면 이 땅에서 사업 잘되고 건강하고 자식 잘되고 또 죽어서도 천국 간다”라고 하는 가르침입니다. 이것은 “예수도 믿고 율법도 지켜야 구원받는다”는 행위구원론보다 더 부패하고 더 나쁜 것입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행위구원론의 본질이라고 여겨지는 인간의 공로사상이 동일하게 들어가 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거기에는 아주 세속적인 기복신앙까지 곁들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목사가 그런 가르침으로 성도들을 가르치고, 또 성도들이 그 가르침을 따라간다면, 그 교회는 암만 장로교 간판을 달고 있어도 참 교회라고 보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장로교 간판을 달았다고 해서 무조건 참 교회로 볼 것이 아니라, 그 교회의 가르침으로 잘 분별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순수한 복음이 선포되는 교회만 참된 교회입니다.


두 번째로 참 교회는 성례의 순수한 집행을 유지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용어는 “순수한”, “유지”입니다. 단순히 성례를 행하면 참된 교회가 아니라, 순수하게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성례를 집행하고 그러한 성례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교회만이 참된 교회입니다. 로마가톨릭도 성례를 집행하지만,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성례를 몇 가지 더 추가해서 집행합니다. 로마가톨릭의 기본 입장은 성경에서 금하지 않은 것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그렇게 해석하면 안 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성경이 하라고 한 것만 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신 것은 사실상 금하신 것으로 봐야 합니다. 따라서 성경에서 세례와 성찬만을 명하기 때문에 참 교회는 세례와 성찬 외에 그 어떤 성례를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로마가톨릭은 성찬이나 세례 그 자체에 대한 이해도 굉장히 비성경적입니다. 떡 자체가 주님의 몸이고, 포도주 자체가 주님의 피라고 해서 그 앞에 절하는 것은 거룩한 성찬예식을 우상숭배로 만들어버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로마가톨릭은 참 교회가 아닙니다.


세 번째로 참 교회는 권징을 시행합니다. 권징은 사실 앞서 언급한 순수한 복음과 성례와 관련되어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순수한 복음을 선포하고 그 말씀대로 다스림을 받기 위해서 말씀을 대적하는 자들을 책망하고 벌을 주는 것이 권징입니다. 그리고 회개치 아니하는 위선자들이 성례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권징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표지로서 참 교회는 분명하게 알려지기에, 그 누구도 이 교회로부터 분리할 권리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참된 성도에게는 표지라고 하는 분명한 도구가 있기 때문에 이 교회가 참 교회인지 아닌지 분별하는 것이 매우 쉽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무조건 참 교회에 소속되어 그 교회에 붙어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를 보시면...


이 교회에 속한 자들은 그리스도인의 표지들에 의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하신 구주로 믿고 죄를 멀리하고 의를 추구하며, 좌로나 우로 치우침 없이 참되신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자신들의 육체와 그 행위를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비록 그들에게 큰 연약함이 남아 있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전 생애동안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그 연약함에 대항하여 싸웁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고난과 죽음과 순종에 호소하고, 그분 안에서 그분을 믿는 믿음을 통하여 죄 사함을 얻습니다.


갑자기 이 이야기를 왜 할까요? 아마도 참된 교회를 이야기하면서, 그 참된 교회에 속한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묘사하고자 한 것 같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참된 그리스도인의 표지는 남을 대하여 적용하면 안 되고, 자기 자신을 향해서 적용해야 합니다. 암만 참 교회에 소속되어 있어도, 벨기에 신앙고백서가 언급한 참된 신앙의 표지의 모습들이 없다면, 그는 참 신자가 아닙니다.


거짓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교회 자체와 교회의 규례들에 더 많은 권위를 부여합니다. 거짓 교회는 그리스도의 멍에에 자신을 복종시키려 하지 않습니다. 거짓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말씀에서 명령하신 대로 성례를 시행하지 않고, 자기들에게 좋게 생각되는 대로 그 성례들에서 더하기도 하고 빼기도 합니다. 거짓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보다는 사람들에게 더 의존합니다. 거짓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거룩하게 사는 사람들과 거짓 교회의 죄와 탐욕과 우상숭배를 꾸짖는 사람들을 핍박합니다. 이 두 교회들은 쉽게 알 수 있어서 서로 구별됩니다.


거짓교회의 특징은 하나님의 말씀보다도 자기들의 교리와 전통을 더 중요시한다는 것입니다. 거짓교회의 대표적인 예가 열왕기상 12장에 나옵니다. 여로보암은 명절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내려가서 예배드리게 되면, 그들의 마음이 유다로 기울어져서 자기를 배반하고 자기를 죽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내려가지 못하도록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만들고 자기 마음대로 제사장을 세워서 그들로 거기서 예배를 드리게 했습니다. 즉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말씀보다도 자신의 명예와 목숨을 더 중요시 했습니다. 그리하여 성경에 반하는 새로운 교리와 전통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거짓교회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거짓교회의 두 번째 특징은 자기를 비판하는 자들을 핍박한다는 것입니다. 여로보암은 자신의 죄를 지적하고 책망하는 선지자들을 다 잡아 죽였습니다.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가운데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 역시 거짓교회로부터 핍박과 박해를 받았습니다.


“(9)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계 2:9)

“(9)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계 3:9)


아이러니하게도 참된 교회를 핍박한 사람들은 다른 이교도들이나 로마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구약을 믿고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유대인들이 참 교회를 핍박한 것입니다. 더브레 당시에도 참 교회를 핍박하던 무리들은 예수님 안 믿는 이교도들이나 세상 권력자들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고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 로마가톨릭이었습니다. 이렇게 참 교회는 항상 거짓교회로부터 핍박과 박해를 받습니다.


그러므로 결론적으로 더브레는 오늘 벨기에 신앙고백서 29조를 통해서 아주 통렬하게 로마가톨릭을 대놓고 거짓교회라고 비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는 수많은 교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교회를 다 보편교회로 인정할 것이 아니라, 분별해야 합니다. 모든 성도는 마땅히 자신이 소속한 교회가 참된 교회인지 아닌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그리고 거짓교회로 판단되어질 때는 그 교회를 떠나서 참된 교회로 와야만 하는 것입니다.


물론 실제 상황에서는 취해야 하는 행동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예수 믿고 복 받는다는 식으로 설교하는 목사가 있는 교회의 경우, 그 교회에 있는 주님의 양떼들은 그 교회를 떠나서 다른 교회로 옮겨야 합니까? 꼭 그렇지 않습니다. 그 교회가 어느 교단에 속해 있느냐에 따라서 취해야 행동이 다른데, 우선 그 교단이 장로교가 아니고, 성결교나 오순절, 감리교 쪽이면, 참된 성도는 그 교회에서 나와서 참된 교회로 찾아와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장로교일 경우는 두 가지 선택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일단 표면적일지라도 그 교회는 웨스트민스터 신조를 믿는 바로 고백하므로, 교회로 하여금 그러한 웨스트민스터 신조의 가르침으로 자꾸 나아가도록 목회자를 돕고 성도들을 자꾸 섬겨가는 일을 해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바르지 못하다고 해서 무조건 나올 것이 아니라, 의식이 있는 성도로서 그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도울 의무가 참된 신자에게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 선택은 자신의 영적 상황이 도무지 그것을 섬길만한 여력이 없거나 상황적으로 그 교회의 그릇된 흐름을 도무지 고쳐나갈 수 없다고 판단될 경우, 그 교회를 떠나 바르게 가르치는 교회로 오는 것 역시 참된 신자가 취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선택입니다. 어떤 길을 선택하든 성령님의 뜻을 따라 해야 하는 것이고, 중요한 것은 장로교에 소속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른 가르침에서 벗어난 교회들에 대해서 우리는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그러한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고, 그 교회들이 바른 말씀의 가르침으로 돌아오도록 모든 방안들을 강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참된 교회와 거짓된 교회를 어떻게 분별할 수 있는지 배웠습니다. 우리교회는 참된 교회이다. 우리가 이 참된 교회에 소속되어 있는 것에 감사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혹시 이사를 간다든지 다른 지역으로 가게 될 때는 항상 이런 인식을 가지고서 참된 교회를 잘 분별하여 참된 교회에 가입하여 연합하고자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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