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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상범
제32조
문답내용 제 32 조 교회의 질서와 권징

The Order and Discipline of the Church


우리는 교회를 치리하는 자들이 몸된 교회를 유지하기 위하여 어떤 질서를 세우는 것이 유익하고 좋다 할지라도, 그들은 우리의 유일한 주인이신 그리스도께서 명령하신 것에서 벗어나지 않는지를 항상 살펴야 함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도입되어 어떤 방식으로든 양심을 억압하고 강요하는 인간적인 모든 고안물들이나 규범들을 배격합니다. 우리는 조화와 일치를 보존하고 증진시키며,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모든 것을 지키게 하는 적법한 것만을 받아들입니다. 이 목적을 위하여 권징과 출교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시행되어야만 합니다.
강설날짜 2015-08-16

벨기에 신앙고백서 제32조


교회의 질서와 권징


제 32 조 교회의 질서와 권징

The Order and Discipline of the Church


우리는 교회를 치리하는 자들이 몸된 교회를 유지하기 위하여 어떤 질서를 세우는 것이 유익하고 좋다 할지라도, 그들은 우리의 유일한 주인이신 그리스도께서 명령하신 것에서 벗어나지 않는지를 항상 살펴야 함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도입되어 어떤 방식으로든 양심을 억압하고 강요하는 인간적인 모든 고안물들이나 규범들을 배격합니다. 우리는 조화와 일치를 보존하고 증진시키며,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모든 것을 지키게 하는 적법한 것만을 받아들입니다. 이 목적을 위하여 권징과 출교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시행되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질서와 화평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고전 14:33)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고전 14:40)


따라서 교회의 일치와 조화를 위해서, 그리고 모든 교회 성도들이 자기 마음대로 행하거나 욕심대로 행하거나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도록 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교회에 정치가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교회의 정치를 통해 질서가 세워지게 하심으로써 몸 된 교회를 잘 세워 나아가도록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질서를 위해 정치가 있고, 정치는 곧 직분자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직분자를 통한 정치가 잘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일이 잘 이루어져야 합니다. 첫 번째는 직분자들이 말씀의 가르침을 따라 정치해야 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에 대항하거나 순종치 아니하는 사람들을 벌함으로써 교회의 기강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교회의 질서를 말하면서 바로 이 두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직분자는 독재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교회를 치리하는 자들이 몸된 교회를 유지하기 위하여 어떤 질서를 세우는 것이 유익하고 좋다 할지라도, 그들은 우리의 유일한 주인이신 그리스도께서 명령하신 것에서 벗어나지 않는지를 항상 살펴야 함을 믿습니다.


여기서 ‘교회를 치리하는 자들’은 장로들, 특히 목회자를 말하는 것이고, 어떤 질서를 세운다는 말은 목회자들이 교회에 어떤 법령, 교회질서, 규칙을 만든다는 말입니다. 즉 교회는 그냥 아무렇게나 모였다가 같이 어울렸다가 흩어지는 동아리 모임이 아니라, 교회에는 엄연히 어떤 규례나 법도가 있고, 규칙이나 질서가 세워져 있어서 그것을 따라서 움직이는 공동체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교회에는 공적인 예배 시간이 정해져 있고, 또 예배 순서를 어떻게 할 것인지, 성찬은 1년에 몇 번 할 것인지, 또 어떻게 세례성찬을 행할 것인지, 예배 방식은 어떻게 할 것인지, 그리고 성도들이 경건의 의무를 어떻게 지키도록 도와줄 것인지, 또 초신자 교육이나 제자양성이나 제자훈련은 어떤 커리큘럼으로 할 것인지, 교회의 각종 모임이나 활동을 어떻게 할 것인지, 또 직분에 대한 여러 가지 규례나 법도들이 있고, 교회 재정이나 운영에 대한 룰들이 있고... 등등 다양한 규례와 법도들이 있어서 그 규정을 따라서 교회가 움직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규례와 법도를 누가 정하고 세웁니까? 물론 교회 전체가 의논해서 정하고 세울 때도 있지만, 결국에는 목회자가 이런 규례들과 법도들을 정하고 세우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규례와 법도와 질서를 세워서 다스리고 목양하는 것이 바로 목회자의 주된 임무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할 때 목회자는 무엇을 주의해야 합니까? 자기가 혹시 성경을 벗어나서 어떤 규례나 법도와 질서를 세우고 있지는 않는지 심사숙고하고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목회자도 전적 부패한 인간이기에 얼마든지 오류에 빠져서 실수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목회자는 교회를 다스리고 질서를 세우는 데 있어서 잘못 할 수도 있다는 겸손의 자세를 가져야 하고, 그래서 늘 말씀에 붙들려서 자신의 목회전반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점검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목회자는 독재자가 되어버리기가 십상입니다.


로마가톨릭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르치는 신학 내용, 자신들이 세운 교회의 질서와 전통, 그리고 자신들이 규정한 예배방식들... 이런 것들이 무조건 옳다는 오류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성경적으로 조목조목 따지고 비판하면, 그러한 성경적인 해석들 앞에서 잘못을 시인하고 고치는 것이 아니라, 반대하는 사람들을 무조건 이단으로 몰아서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거짓 목자들의 특징입니다. 거짓 목자들은 소경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오류를 볼 수 있는 눈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끝까지 하나님을 바르게 섬긴다는 확신 가운데 자신들을 비판하는 참된 교회를 핍박하는 것입니다. 로마가톨릭, 초대교회를 핍박한 유대인들, 예수를 죽인 바리새인들이 다 그러했습니다.


이것이 독재자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리스도가 다스리는 나라가 아니라 목회자 본인이 하나님이 되어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그리스도가 다스리는 나라의 영적 지도자는 자신의 전적부패함을 알기에 자신이 정신 차리지 않으면 잘못 목회 할 수도 있다는 겸손의 자세를 늘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늘 말씀 앞에서 자신의 목회를 돌아보고 점검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고, 또 누군가가 성경적으로 자신의 목회의 오류를 드러내면 재빨리 그 가르침을 수납하여 자기를 고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른 정치입니다.


그런데 벨기에 신앙고백서의 표현이 재미있습니다.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몸된 교회를 유지하기 위하여 어떤 질서를 세우는 것이 유익하고 좋다 할지라도”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즉 예나 지금이나 많은 목회자들이 빠지는 함정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러 이렇게 하면 교회가 잘 유지되고, 또 성도들이 은혜를 받고, 유익이 되고 좋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몸된 교회를 잘 유지하고 또 성도들의 유익을 위하고자 하는 마음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이렇게 하면...”에 있습니다. 목회자가 “이렇게 하면” 있게 될 효과에만 눈멀어서 “이렇게 하는” 것이 성경적인지 아닌지 판단하지 못한다면... 이미 함정에 빠진 것입니다.


로마가톨릭을 보십시오. 그들은 항상 “이렇게 하면 은혜가 되겠다.... 이렇게 하면 유익이 되겠다...”라는 생각으로 여러 가지 규례와 법도를 만들지만, 결과적으로는 비성경적인 것들이 아주 많은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과거에) 성경을 금서로 만든 것도 사사로이 해석하는 이단을 막기 위해서 그렇게 규례를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성상이나 성화를 교회에 도입한 것도 신도들의 신앙교육을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고 또 그들의 묵상을 돕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예배 가운데 성모 마리아와 성자들에게 호소하도록 한 것도 신도들의 위로와 확신을 위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들은 이 외에도 수많은 교회법들과 규례들을 교회에 유익을 주고자 하는 자기들 나름대로의 선한 의도를 가지고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그 모든 규례들이 성도들의 신앙을 해치고 우상숭배를 조장하는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면서 그러한 잘못된 오류를 성경적으로 지적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곧바로 이단으로 간주하여 핍박하고 처형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순종을 강요하고 양심의 자유를 억압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도입되어 어떤 방식으로든 양심을 억압하고 강요하는 인간적인 모든 고안물들이나 규범들을 배격합니다. 우리는 오직 조화와 일치를 보존하고 증진시키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모든 것을 지키는 데에 적합한 것만을 받아들입니다.


그러므로 더브레는 로마가톨릭의 교회정치가 그리스도의 정치가 아닌 적그리스도의 정치임을 고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규정하는 예배방식과 예배 규례들에 대해서도 목숨 걸고 배격한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 정치에 대한 바른 인식입니다. 목회자는 그 당시 교회들의 전통이나 관습들과 규례들을 무조건 받아들여서 자신의 교회에 적용할 것이 아니라, 성경에 부합되지 않는 것들은 철저하게 배격하고 성경에 부합한 것만 받아들여서 자신의 교회에 적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정치를 논할 때 목회자 한 사람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직분자들은, 특히 목회자는 정신을 차리고 항상 말씀에 붙들려 있어야 하고, 성령으로 충만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목회자가 때때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비성경적인 방식으로 교회를 다스려나갈 때에 교회는 속수무책으로 끌려 다니기만 할 것이 아니라, 그러한 상황을 대비하여 목회자의 독재를 막기 위해 마련된 여러 가지 교회의 장치들을 활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일단 장로들이 목회자의 가르침과 정치를 판단하고 성도들도 판단해서, 장로와 성도들이 목회자의 독재에 재제를 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결국 그들은 목회자들로부터 배우며 자랐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목회자의 오류를 발견하기가 쉽지가 않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회와 총회가 있습니다. 목회자가 정치를 잘못할 때, 그리고 장로들도 성도들도 모르고 목회자의 정치를 따라갈 때는, 노회가 나서서 그 목회자를 지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회와 총회라고 하는 정치질서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날 독립교회 형식으로 노회 없이 목회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매우 위험한 것입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교회의 질서가 바르게 세워지기 위해서는 목회자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정치를 잘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질서를 위해서 첫 번째로 중요한 사실입니다. 두 번째로, 교회의 질서가 바로 잡히기 위해서는 권징이 바르게 시행되어야 합니다.


이 목적을 위하여 권징과 출교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시행되어야만 합니다.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권징과 출교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시행되어야 한다고 말할 뿐, 그 어떤 구체적인 설명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점에 대해서 성경이 어떻게 가르치는지 살펴보아야만 합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마 16:19)


베드로가 예수님이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을 때, 예수님은 베드로를 칭찬하시면서 베드로에게 천국열쇠를 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로마가톨릭의 해석처럼 베드로를 천국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는 제1대 교황으로 세우신 사건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교회의 대표로서, 그리고 교회의 목회자로서 이 천국열쇠를 받았습니다. 따라서 이 천국열쇠는 온 교회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에서 배운 것처럼 천국열쇠는 거룩한 복음전파와 권징, 두 가지를 의미합니다. 거룩한 복음 전파는 목회자와 장로들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목회자가 주로 전도하고 전도 집회를 통해 복음을 선포하지만, 일반 성도들도 전도하고 복음을 전합니다. 그것이 천국열쇠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복음을 믿었을 때, 그 사람을 교육시키고 또 믿음을 점검한 후에 세례를 주기로 결정하는 사람은 바로 목회자(당회)인 것입니다.


권징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회자와 당회만 권징하는 것이 아닙니다. 형제가 잘못행할 때는 제일먼저 옆에 있는 형제가 권징을 하는 것입니다. 권징이란 무조건 벌준다는 개념이라기보다는 권면하고 책망하는 것도 권징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옆에 형제가 제일 먼저 권징함으로써 천국열쇠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그가 회개하지 않으면 두 세 사람을 증참하여 권징하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교회에 말합니다. 곧 당회가 나서게 됩니다. 그래도 듣지 않으면, 당회가 이 사람을 출교하기로 결정합니다. 출교란 “당신은 이제 그리스도의 나라 바깥에 있는 사람이오.”하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땅에서 잠그면 하늘에서도 천국 문이 잠깁니다. 이것이 천국열쇠입니다. 그래서 천국열쇠란 기본적으로 온 성도에게 있지만, 결정적이고 최종적인 실행은 당회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복음전파의 의무와 권징의 의무를 당회에게만 떠맡겨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히려 모든 성도에게 천국열쇠가 있다는 분명한 의식을 가지고서 열심히 전도하고, 또 옆에 있는 형제가 죄 가운데 있을 때는 사랑으로 따끔하게 권징해야 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권징을 통해서 교회의 질서가 바르게 세워지고, 조화와 일치가 이루어지며,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5장에 보면 이러한 내용이 잘 나옵니다. 고린도전서 5장에 보면 사도바울이 계모와 근친상간의 죄를 범한 형제에 대해서 출교할 것을 명합니다.


거기에 보면 출교의 목적이 여러 가지가 언급되는데, 첫째로 그 형제를 사단에게 미리 내어주어 징계를 받게 함으로서 나중에 회개하고 돌아오게 하기 위함입니다. 권징의 목적은 벌주고 정죄하는데 있지 않고, 그 사람을 고치고 회개하도록 돕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둘째로 사도바울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진다고 말하면서 출교를 명합니다. 즉 죄는 암과 비교될 수 있습니다. 제거되지 않고 남은 암 덩어리가 몸 전체에 퍼져서 몸 전체를 죽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다 연결되어 있고, 그래서 알게 모르게 서로가 서로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치면서 신앙생활하는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신실한 형제가 주님을 사랑하고, 형제자매를 사랑하고, 교회에서 직장에서 신앙의 모범과 희생과 헌신의 본을 보이고, 또 교회 형제자매들을 섬기면서 주와 복음을 위해 헌신하면... 그런 성숙한 성도의 모습을 통해 다른 성도들이 도전을 받고 회개하게 되는 역사가 있게 됩니다. 반대로 악을 행하는 자가(특히 음란죄를 범한 자) 교회에 남아있게 되면 그 사람으로 인한 악영향이 교회 전체에 미쳐서 교회 전체가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거룩성을 보존하기 위해서 범죄한 형제를 출교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성도들은 그 범죄한 형제가 출교되는 것을 봄으로써 교회에 두신 천국열쇠의 권위를 피부에 와 닿게 알게 되고, 교회에 두신 질서와 권위를 두려워하며 존중하게 됩니다. 그리고 음란죄에 빠지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를 알게 되어 자기를 돌아보고 회개하는 역사가 있게 됩니다. 그리하여 교회 전체의 기강이 바로 잡히고 질서가 세워짐으로써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순종하게 되는 일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네 번째로 권징의 목적은 세상으로부터 조롱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사도바울은 범죄한 형제의 음행죄가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죄라고 하면서 쫓아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만일 이런 음행이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데도 교회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세상으로부터 조롱을 당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교회는 범죄한 형제를 가만히 두는 것이 아니라 근실히 징계하며 권징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교회에 두신 질서가 어떠하며, 또 어떻게 해야 교회의 질서를 바르게 세울 수 있는지를 배웠습니다.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로 목회자가 어떤 질서를 세울 때,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지 아닌지를 심사숙고해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로 권징을 통해서 교회의 질서를 바르게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두신 이러한 권위와 질서를 두려워하고 존중하여서, 우리 교회가 질서 가운데, 서로 조화와 일치를 이루면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서, 주님의 몸된 교회로 잘 세워져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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