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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신앙고백서
2015.09.24 12:54

벨기에 신앙고백서(벨직 신앙고백서) 제33조 - 성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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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상범
제33조
문답내용 제 33 조 성례

The Sacraments


우리는 우리의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무감각함(insensitivity)과 연약함을 잊지 않으시어 성례를 제정하시고, 이것으로 우리를 향한 당신의 약속을 우리에게 인치시고(seal), 당신의 선하신 뜻과 은혜를 보증하셨음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자라게 하시고 유지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복음의 말씀에 이것을 더하셔서 당신께서 말씀으로 우리에게 선언하신 것과 내적으로 우리 마음속에 행하시는 것을 우리의 외적 감각에 더욱 잘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베풀어 주신 구원을 우리에게 확증해 주십니다. 성례들은 내면적이고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보이는 표와 인(visible signs and seals)으로,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방편으로 성령님의 능력을 통하여 우리 안에서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표는 헛되거나 무의미하여 우리를 속이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성례들의 실재(truth)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떠나서 이 성례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성례의 수를 우리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제정해 주신 두 가지, 즉 세례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찬의 성례로 만족합니다.
강설날짜 2015-08-23

벨기에 신앙고백서 제33조


성례


제 33 조 성례

The Sacraments


우리는 우리의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무감각함(insensitivity)과 연약함을 잊지 않으시어 성례를 제정하시고, 이것으로 우리를 향한 당신의 약속을 우리에게 인치시고(seal), 당신의 선하신 뜻과 은혜를 보증하셨음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자라게 하시고 유지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복음의 말씀에 이것을 더하셔서 당신께서 말씀으로 우리에게 선언하신 것과 내적으로 우리 마음속에 행하시는 것을 우리의 외적 감각에 더욱 잘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베풀어 주신 구원을 우리에게 확증해 주십니다. 성례들은 내면적이고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보이는 표와 인(visible signs and seals)으로,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방편으로 성령님의 능력을 통하여 우리 안에서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표는 헛되거나 무의미하여 우리를 속이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성례들의 실재(truth)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떠나서 이 성례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성례의 수를 우리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제정해 주신 두 가지, 즉 세례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찬의 성례로 만족합니다.


오늘부터 성례에 대해서 배워보겠습니다. 성례에 대한 벨기에 신앙고백서의 고백 중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외적 감각’과 ‘표와 인’이라는 단어입니다. 성례는 결국 표와 인의 목적으로 무언가를 외적 감각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그러면 성례는 무엇을 외적 감각으로 나타낸 것입니까? 4번째 줄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복음의 말씀에 이것을 더하셔서 당신께서 말씀으로 우리에게 선언하신 것과 내적으로 우리 마음속에 행하시는 것을 우리의 외적 감각에 더욱 잘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베풀어 주신 구원을 우리에게 확증해 주십니다. 성례들은 내면적이고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보이는 표와 인(visible signs and seals)으로,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방편으로 성령님의 능력을 통하여 우리 안에서 역사하십니다.


여기서 복음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선언하신 것이란 바로 은혜언약을 말합니다. 즉 은혜언약이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구속하심으로써 우리를 지옥형벌에서 구원하여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시며, 영원히 우리의 하나님이 되어주셔서 우리와 함께 하여주시고, 우리로 장차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게 하신다는 하나님의 영원불변하는 약속입니다.


이 약속은 하나님의 말씀에 이미 선포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번 하신 약속은 반드시 성취하시는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에 기초하여 우리의 구원을 확신하며,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들을 굳게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그 말씀을 믿은 우리 안에 성령님께서 양자의 영으로 내주하셔서 그 약속이 우리의 것이 되었음을 지속적으로 증거 하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구원을 확신하고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굳게 함에 있어서 이것으로 충분할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런데 충분하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성경의 증거가 불충분해서, 또는 성령님의 증거가 충분히 믿을만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말씀의 증거나 성령의 증거는 그 자체로 충분히 신뢰할 만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연약함과 무감각함으로 인해서 말씀만으로는 잘 믿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성례를 추가적으로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무감각함(insensitivity)과 연약함을 잊지 않으시어 성례를 제정하시고...


그래서 하나님은 자주 자기 백성들에게 언약하실 때 말씀으로만 약속하시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표징들을 함께 허락하셔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그분의 약속을 굳게 믿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아담에게 선악과 금령을 명하시고 순종하면 생명을 지속할 것이라고 약속하실 때도, 말로만 약속하시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생명나무를 주셔서 아담으로 하여금 그 언약을 더욱 확신하게끔 하셨던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 때에도 하나님은 다시는 홍수로 멸하지 않겠다고 약속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무지개를 보여주심으로써 노아로 하여금 이 약속을 더욱 굳게 믿게 하셨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말씀만으로 약속하셨다면, 물론 말씀하실 당시에는 그럴 줄로 믿겠지만, 그러나 인간이 연약하기 때문에, 아마도 노아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홍수로 벌하실 것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말았을 것입니다. 인간이 그렇게 의심과 불신에 빠지기가 쉽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러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러주시고 약속해주셨는데도, 그는 자주 불신앙과 의심에 빠졌던 것을 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런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약속을 굳게 믿도록 하시기 위해서 그 약속의 표와 인으로 할례를 행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연약함에 대해서 칼빈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례에 의해서 하나님께서는 우선은 우리의 무지와 우둔함에, 다음에는 우리의 연약함에 대비하신다. 그러나 정확하게 말한다면 성례는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확인하기 위해서 필요하다기보다는 그 말씀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확립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 우리의 믿음은 연약해서, 각종 수단을 사용하여 사방으로 괴어 주고 받쳐 주지 않으면 떨리고 흔들리며 비틀거리다가 결국은 무너지고 만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새 언약을 우리와 맺으시면서 말씀으로만 약속하시고, 또 성령님을 통해서 내적으로만 은혜를 받아 믿도록 하신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표징을 또한 허락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오감으로 생생하게 복음을 체험하여 더욱 확신가운데 서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례를 참여할 때, 우리는 두 가지를 생각하면서 참여해야 합니다. 첫 번째는 우리가 무감각하고 연약한 자라는 것입니다. 무감각이란 잘 느끼지 못하는 둔함을 의미합니다. 주님이 베푸신 은혜에 대한 생생한 느낌, 내가 그 피로 의롭다 함을 받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확신, 그리고 주님께서 지금도 함께 계시며, 장차 재림하여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주실 것이라는 그 소망... 이런 것들은 신자라면 마땅히 늘 충만하게 감각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들인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 은혜를 강하게 느끼면서 은혜 충만 성령 충만할 때도 있지만, 그러나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영적 침체와 무감각과 의심과 혼란 속에서 살아갈 때가 오히려 더 많습니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성숙한 성도라 할지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남아있는 죄악된 본성이... 그리고 우리가 날마다 짓는 마음과 말과 행동의 죄들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방해하고, 우리의 영적생명을 소멸시키고, 믿음의 불에 찬물을 끼얹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죄로 인해서 둔해진 마음, 의심과 혼란 속에 있는 우리의 마음에 믿음과 회개를 일으키시기 위해 하나님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시는 것입니다. 평소에 말씀으로 끊임없이 일깨워주시고 회개할 마음을 주시고, 또 성령님께서 때때로 은혜를 주셔서 내적으로 믿음과 확신을 갖게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심히 둔하고 연약해서 말씀을 들어도 잘 믿지 못하니깐 하나님께서는 더욱 굳세게 우리를 세우시기 위해 아예 눈에 보이는 표징으로 확증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례에 참여하면서 이 성례가 바로 우리의 영적 둔함과 연약함 때문에 주어졌다는 것을 깊이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는 성례에 참여하면서 하나님께서 이런 우리의 연약함과 둔함을 물리치지 않으시고 도리어 배려해주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벨기에 신앙고백서를 원문으로 보면 첫 문장이 이렇습니다.


We believe that our good God, mindful(마음에 두다, 염두에 두다) of our crudeness and weakness,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첫 문장에서 하나님이 선하시고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신 분이시라고 강조하여 고백합니다. 즉 성례를 우리에게 주셨다는 사실이 하나님이 얼마나 선하시고 자비로우시고 은혜로우신 분이시며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신가 하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마치 부모가 자식의 연약함과 단점을 무시하거나 무조건 나무라는 것이 아니라, 때때로 그 연약함을 품고 감당해주는 것처럼 그렇게 하나님은 우리가 연약하고 둔하다는 것을 아시고, 그런 우리의 연약함과 둔함을 배려하셔서 성례를 제정하여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례에 참여하면서 우리에게 성례를 주신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긍휼히 여기시며 얼마나 사랑하시는 분이신가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성례가 어떤 점에서 우리의 믿음을 육성하고 확신을 주는지 살펴봅시다. 벨기에 신앙고백서 내용을 보시면...


우리는 우리의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무감각함(insensitivity)과 연약함을 잊지 않으시어 성례를 제정하시고, 이것으로 우리를 향한 당신의 약속을 우리에게 인치시고(seal), 당신의 선하신 뜻과 은혜를 보증하셨음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례를 통해 약속을 인침으로써 확증해주십니다. 이것이 성례의 ‘인’의 기능입니다. 그런데 뒤에 보면 ‘표’에 대한 기능도 있다고 나옵니다. 이 ‘표’와 ‘인’의 기능은 좀 있다가 살펴보기로 하구요, 일단 그 다음 문장을 보시면...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자라게 하시고 유지해 주십니다.


성례를 통한 은혜가 믿음의 육성입니다. 주의해서 볼 것은 믿음을 생기게 하신다는 말이 없습니다. 오직 이미 있는 믿음을 자라게 하고 유지하는 은혜만 있습니다. 다시 말해 사람이 성례에 참여함으로써 없던 믿음이 생기는 일은 없습니다. 믿음이 처음 생기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음에서 말미암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전 1:17)


그래서 복음을 처음 믿는데 있어서는 말씀이 절대적입니다. 그런데 일단 말씀을 듣고 깨달아서 믿음이 생기게 되면, 그 이후에는 말씀과 더불어서 성례도 이미 있는 믿음을 강화시키는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례가 어떻게 표와 인으로서 믿음을 육성시킵니까?


하나님께서 복음의 말씀에 이것을 더하셔서 당신께서 말씀으로 우리에게 선언하신 것과 내적으로 우리 마음속에 행하시는 것을 우리의 외적 감각에 더욱 잘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베풀어 주신 구원을 우리에게 확증해 주십니다.


여기서 ‘표’란 눈에 보이지 않는 은혜언약을 눈에 보이게끔 나타냄으로써 우리로 더욱 생생하게 복음을 깨달아 알게 하는 기능을 말합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수업을 들을 때 그냥 이론만 배우는 것보다 실제 그림이나 영상들을 보거나(시청각교육), 또는 직접 실습이나 실험을 하거나 체험학습을 하면 그 내용을 더 생생하게 잘 알게 되는 것처럼, 성례도 그런 ‘표’의 기능이 있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설교말씀을 통해 복음을 듣고 배우지만, 눈에 보이는 성례를 통해 더욱 분명하고 생생하게 복음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례를 보이는 말씀이라고 부르는 것도 바로 이런 점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성례는 ‘인’의 기능이 있습니다. 즉 성례는 단지 복음을 잘 보여주고 설명해주어 깨닫게 하는 역할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도장 찍어 확증해주시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예전에 타블로가 학력위조 논란이 되었을 때, 타블로는 졸업증서와 성적표를 공개했고 그 졸업증서와 성적표가 진짜라는 것을 학교가 인정함으로써 모든 논쟁이 종식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도가 의심과 낙담에 빠져서 자신의 구원을 의심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성례를 통해서 “너는 내 백성이다, 내가 십자가의 피로 너의 모든 죄를 씻었고, 또 내가 너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 살이 찢기고 피를 흘렸다.” 하고 눈에 보이게 도장을 쾅 찍어 주심으로써 우리의 모든 혼란과 의심을 종식시키시고 믿음과 확신가운데 서게 하시는 것입니다.


“저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저희로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롬 4:11)


그래서 성례를 통해서 신자는 은혜를 받아 믿음이 육성되고 확신가운데 서게 됩니다. 그런데 이때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성례들은 내면적이고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보이는 표와 인(visible signs and seals)으로,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방편으로 성령님의 능력을 통하여 우리 안에서 역사하십니다.


여기 보면 우리가 성례를 참여하면 무조건 은혜를 받아 믿음이 육성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것을 방편으로 사용하셔야지만 우리의 믿음이 육성된다는 것입니다. 즉 은혜의 수단은 우리의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수단입니다. 은혜의 수단(말씀과 기도와 성례)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획득하기 위해 우리가 사용하는 우리의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실 때 하나님 자신이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수단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쏟아부어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얼마만큼 은혜주시기를 원하시느냐 하면 하나님은 자기 독생자를 우리에게 생명의 양식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요 1:16). 그런데 그렇게 은혜를 주실 때 말씀과 기도와 성례를 수단으로 사용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말씀과 기도와 성례에 힘써야 합니다. 결코 말씀과 기도와 성례를 하나님의 은혜를 획득하기 위한 나의 도구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것을 은혜받기 위한 조건이나 공로로 내세우는 순간 그것은 은혜의 수단이 아니라 율법주의가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성례에 참여할 때, 성례를 참여하면 무조건 은혜를 받는다는 생각으로 참여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성례를 은혜의 방도로 사용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참여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바르게 성례에 참여하면, 그 성례 가운데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함께하셔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영적임재설’에 대한 고백입니다. 성례는 로마가톨릭의 주장처럼 참여하면 무조건 기계적으로 은혜를 주는 마술이 아닙니다. 또 반대로 쯔빙글리의 주장처럼 단순한 상징이나 의식도 아닙니다. 성례는 믿음으로 참여하면, 믿음으로 물을 세례자의 머리에 뿌릴 때, 믿음으로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실 때, 성령님께서 참으로 임재하셔서 그 표징들이 상징하는 내적은혜를 실제로! 우리 마음에 인쳐주시는 것입니다. 물을 머리위에 뿌릴 때, 세례자는 자신이 그리스도의 피로 죄를 씻음 받았음을 확신하는 믿음이 샘솟게 되어 감사와 감격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이고, 떡과 포도주를 먹을 때 그 표징이 상징하는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우리 안에 들어오시기 때문에 우리가 말할 수 없는 감격을 느끼며 회개의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례는 무의미하거나 헛된 의식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표는 헛되거나 무의미하여 우리를 속이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성례들의 실재(truth)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떠나서 이 성례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성례들의 실재가 된다는 말은 영적임재설을 조금 다르게 표현한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영적으로 임재하시는 일이 없으면, 암만 성례를 행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밖에 있는 로마가톨릭의 성례를 간접적으로 비판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성례의 수를 우리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제정해 주신 두 가지, 즉 세례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찬의 성례로 만족합니다.


마지막으로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로마가톨릭의 7성례에 대해서 비판합니다. 로마가톨릭은 세례와 성찬(성체성사)과 더불어서 견진, 고해, 혼인, 병자(종부), 서품성례를 추가하였습니다. 그것은 성경에 없는 것으로 자기들 마음대로 정한 것입니다. 명백한 불법입니다. 성례는 결코 사람이 임의로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주님께서 친히 제정하시고 명하신 것만이 성례로 인정받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마 28:19)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고전 11:25)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서 친히 제정하시고 명하신 세례와 성찬만을 신약의 성례로 인정하고 지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례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성례는 은혜언약의 표와 인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영적 둔함과 연약함을 배려하사 우리의 믿음을 육성시키시기 위해서 주님께서 친히 제정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성례를 바르게 알고, 믿음으로 참여하여서 충만한 은혜를 받는 복된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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