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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상범
제34조
문답내용 제 34 조 세례의 성례

The Sacrament of Baptism


우리는 율법의 완성이 되신(롬10:4)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흘리신 피로 말미암아, 죄를 보상하거나 만족케 하기 위하여 드리고 드려왔었던 다른 모든 피 흘림을 끝나게 하셨음을 믿고 고백합니다. 그리하여 그 분은 피로써 행하던 할례를 폐하시고, 그 대신에 세례의 성례를 제정하셨습니다. 우리는 세례에 의해서 하나님의 교회 안에 받아들여졌고, 다른 모든 사람들과 거짓 종교들로부터 구별되었으며,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하게 되어 그분의 표지와 표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세례는 하나님께서 영원히 우리의 하나님과 은혜로우신 아버지가 되실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증거하는 역할을 합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이 일반 물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명령하셨습니다(마28:19). 이 세례에 의해서 하나님께서는 물이 우리 몸에 부어질 때 우리 몸에서 더러운 것이 씻기어지는 것처럼, 또 물이 세례 받는 사람에게 뿌려질 때 그 사람의 몸에 보이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피가 성령님에 의해서 내적으로 우리 영혼에 동일한 일을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상징해 주십니다. 이것으로 그리스도의 피가 죄로부터 우리 영혼을 씻어 주고 정결하게 해 주며 우리를 진노의 자식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중생하게 합니다. 이런 일은 그런 물로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의 보배로운 피를 뿌림으로 되는 것이고, 그것은 우리의 홍해이고 우리가 바로의 압제 곧 마귀를 피하여 영적인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통과해야만 하는 홍해입니다.


이렇게 그들의 편에서 보면 목사들이 우리에게 성례 즉 보이는 것을 주는 것이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성례에 의해서 상징되는 것 즉 보이지 않는 선물들과 은혜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분은 우리 영혼의 모든 부정(不淨)과 불의를 씻으시고 제거하시고 깨끗하게 하시고 우리 마음을 새롭게 하여 모든 위로로 가득하게 하시고, 당신의 아버지 같은 선하심에 대한 참된 확신을 우리에게 주시며, 새로운 본성으로 우리를 옷 입히시고, 이 모든 일로 옛 본성을 벗어버리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열망하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오직 한 번만 세례를 받아야 함을 믿습니다. 세례는 결코 반복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두 번 태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세례는 물이 우리 위에 주어지고 우리가 그 물을 받을 때에만 유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전 생애에 걸쳐서 유익을 주는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오직 한번 받는 단번의 세례로 만족하지 않으며 신자의 어린 자녀들에게 세례를 베푸는 것을 비난하는 재세례파의 잘못을 배격합니다. 우리는 동일한 약속에 근거하여 이스라엘에서 유아들이 할례를 받았던 것처럼, 신자의 자녀들이 세례를 받아야 하고 언약의 표로 인쳐져야 한다는 것을 믿습니다. 정말로 그리스도께서는 어른들의 죄를 씻기 위하여 피 흘리신 것만큼 신자의 자녀들의 죄를 씻기 위해서도 피 흘리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이가 태어난 직후에 어린 양을 드리라고 율법에서 명령하신 것처럼, 신자의 자녀들도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하여 행하신 것에 대한 표와 성례를 받아야만 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의 성례입니다. 세례가 우리 자녀들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의 할례와 동일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바울은 세례를 그리스도의 할례라고 불렀습니다(골2:11).
강설날짜 2015-08-30

벨기에 신앙고백서 제 34조


세례의 성례


제 34 조 세례의 성례

The Sacrament of Baptism


우리는 율법의 완성이 되신(롬10:4)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흘리신 피로 말미암아, 죄를 보상하거나 만족케 하기 위하여 드리고 드려왔었던 다른 모든 피 흘림을 끝나게 하셨음을 믿고 고백합니다. 그리하여 그 분은 피로써 행하던 할례를 폐하시고, 그 대신에 세례의 성례를 제정하셨습니다. 우리는 세례에 의해서 하나님의 교회 안에 받아들여졌고, 다른 모든 사람들과 거짓 종교들로부터 구별되었으며,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하게 되어 그분의 표지와 표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세례는 하나님께서 영원히 우리의 하나님과 은혜로우신 아버지가 되실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증거하는 역할을 합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이 일반 물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명령하셨습니다(마28:19). 이 세례에 의해서 하나님께서는 물이 우리 몸에 부어질 때 우리 몸에서 더러운 것이 씻기어지는 것처럼, 또 물이 세례 받는 사람에게 뿌려질 때 그 사람의 몸에 보이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피가 성령님에 의해서 내적으로 우리 영혼에 동일한 일을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상징해 주십니다. 이것으로 그리스도의 피가 죄로부터 우리 영혼을 씻어 주고 정결하게 해 주며 우리를 진노의 자식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중생하게 합니다. 이런 일은 그런 물로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의 보배로운 피를 뿌림으로 되는 것이고, 그것은 우리의 홍해이고 우리가 바로의 압제 곧 마귀를 피하여 영적인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통과해야만 하는 홍해입니다.


이렇게 그들의 편에서 보면 목사들이 우리에게 성례 즉 보이는 것을 주는 것이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성례에 의해서 상징되는 것 즉 보이지 않는 선물들과 은혜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분은 우리 영혼의 모든 부정(不淨)과 불의를 씻으시고 제거하시고 깨끗하게 하시고 우리 마음을 새롭게 하여 모든 위로로 가득하게 하시고, 당신의 아버지 같은 선하심에 대한 참된 확신을 우리에게 주시며, 새로운 본성으로 우리를 옷 입히시고, 이 모든 일로 옛 본성을 벗어버리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열망하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오직 한 번만 세례를 받아야 함을 믿습니다. 세례는 결코 반복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두 번 태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세례는 물이 우리 위에 주어지고 우리가 그 물을 받을 때에만 유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전 생애에 걸쳐서 유익을 주는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오직 한번 받는 단번의 세례로 만족하지 않으며 신자의 어린 자녀들에게 세례를 베푸는 것을 비난하는 재세례파의 잘못을 배격합니다. 우리는 동일한 약속에 근거하여 이스라엘에서 유아들이 할례를 받았던 것처럼, 신자의 자녀들이 세례를 받아야 하고 언약의 표로 인쳐져야 한다는 것을 믿습니다. 정말로 그리스도께서는 어른들의 죄를 씻기 위하여 피 흘리신 것만큼 신자의 자녀들의 죄를 씻기 위해서도 피 흘리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이가 태어난 직후에 어린 양을 드리라고 율법에서 명령하신 것처럼, 신자의 자녀들도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하여 행하신 것에 대한 표와 성례를 받아야만 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의 성례입니다. 세례가 우리 자녀들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의 할례와 동일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바울은 세례를 그리스도의 할례라고 불렀습니다(골2:11).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세례를 이야기하면서 먼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성취하셨다는 것을 언급합니다.


우리는 율법의 완성이 되신(롬10:4)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흘리신 피로 말미암아, 죄를 보상하거나 만족케 하기 위하여 드리고 드려왔었던 다른 모든 피 흘림을 끝나게 하셨음을 믿고 고백합니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성취하심으로써 성례에 중대한 변화가 있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피 흘림을 끝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대부분의 의식에는 피 흘림이 있습니다. 유월절 의식이나 여러 가지 제사 의식들, 그리고 할례도 피의 의식입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항상 이 피 흘림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모세를 부르시고 위대한 출애굽의 역사를 이루시기 전에 먼저 길의 숙소에서 모세를 죽이려고 하심으로써 모세의 아들로 하여금 할례를 행하도록 하셨는데, 이를 통해서 출애굽의 구원은 피 흘림의 할례에서부터 시작됨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출애굽의 역사도 유월절 어린양의 피 흘림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을 때도 피 흘림의 의식을 통해서 이루어졌고, 광야 2세대들이 여호수아의 인도로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에도 길갈에서 먼저 피의 할례를 행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구약은 끊임없이 피 흘림을 통해 구원이 이루어진다라고 하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계시합니다.


그런데 신약에서는 피 흘리는 의식이 하나도 없습니다. 다만 성찬에서 피 색깔 나는 포도주를 마실 뿐, 피가 전혀 사용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벨기에 신앙고백서의 고백처럼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성취하셨기 때문입니다. 즉 구약의 모든 피 흘림은 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사건을 예표하는 것인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단번의 십자가 제사로 모든 구약을 성취하셨기 때문에 더 이상의 피 흘림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모든 피 흘림의 의식을 끝내시고 완성하셨습니다.


따라서 구약의 할례도 피 흘림의 의식이기 때문에 그 할례 역시 폐지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분은 피로써 행하던 할례를 폐하시고, 그 대신에 세례의 성례를 제정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백성 됨의 표와 인으로서 할례를 대신하여 무슨 성례를 제정해주셨습니까?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골 2:11-12)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다고 말하면서 그것이 곧 세례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구절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할례를 폐지하시고 그 대신 세례를 제정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참으로 세례는 할례의 성취입니다. 할례는 난지 팔일 만에 하나님 백성 됨의 표로 성기의 겉 표피를 잘라내는 의식입니다. 그렇게 표피를 자를 때 피가 나죠. 할례는 피 흘림을 통해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리고 깨끗한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구약에서부터 벌써 할례 의식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할례가 본질이라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신 10:16; 신 30:6). 그러나 이 마음의 할례는 새 언약의 약속으로 주어졌고(겔 36:25-27), 신약에 와서야 성취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방금 읽은 골로새서 말씀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오심으로써 우리가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함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하는 것... 이를 통해서 우리의 육적 몸을 잘라버리고 새 생명으로 살게 되는 것이 마음의 할례인 것입니다(골로새서에서는 ‘손으로 하지 아니한 그리스도의 할례’라고 표현됨).


그러므로 세례와 할례는 그 본질적인 의미에 있어서 하등의 차이가 없으며, 세례는 할례가 예표했던 모든 것들의 궁극적인 성취인 것입니다. 따라서 신약백성들은 할례가 폐하여졌고 세례만이 하나님 백성 됨의 표로 주어졌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우리가 행하는 포경수술에는 그 어떠한 영적인 의미도 없습니다.


벨기에 신앙고백서를 계속해서 보시면...


우리는 세례에 의해서 하나님의 교회 안에 받아들여졌고, 다른 모든 사람들과 거짓 종교들로부터 구별되었으며,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하게 되어 그분의 표지와 표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세례는 하나님께서 영원히 우리의 하나님과 은혜로우신 아버지가 되실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증거하는 역할을 합니다.


구약의 성도들이 할례를 받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되고 이스라엘 총회에 받아들여지며, 할례를 통해 이방인과 구별되고,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백성이라는 표지와 표식을 그 몸에 가짐으로써, 날마다 그것을 보면서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확립하고,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확신하면서 살았던 것처럼, 신약의 백성들도 세례를 통해서 그 동일한 의미와 효과들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벨기에 신앙고백서를 계속해서 보시면...


바로 이런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이 일반 물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명령하셨습니다(마28:19). 이 세례에 의해서 하나님께서는 물이 우리 몸에 부어질 때 우리 몸에서 더러운 것이 씻기어지는 것처럼, 또 물이 세례 받는 사람에게 뿌려질 때 그 사람의 몸에 보이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피가 성령님에 의해서 내적으로 우리 영혼에 동일한 일을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상징해 주십니다. 이것으로 그리스도의 피가 죄로부터 우리 영혼을 씻어 주고 정결하게 해 주며 우리를 진노의 자식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중생하게 합니다.


여기서 고백되는 것처럼 세례는 죄 씻음을 의미합니다.


“(16)이제는 왜 주저하느뇨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행 22:16)


그래서 우리가 세례를 받을 때, 물이 우리 몸에 부어짐으로써 우리 몸이 깨끗하게 되는 것이 환상이 아니라 실제상황인 것처럼, 그렇게 성령께서 실제로! 우리 영혼의 죄와 더러움을 완전히 씻어주셨음을 친히 인쳐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로마가톨릭은 물세례 그 자체가 죄 씻음의 효과를 가져다준다고 주장합니다. 그렇게 주장할 만한 근거구절들이 많이 있습니다. 실제로 성경은 여러 구절에서 마치 세례 받음으로 죄 씻음 받고 구원받는 것처럼 말합니다. 이것은 성례의 표징이 성례가 상징하는 내적 은혜와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런데 로마가톨릭은 그것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서 의식세례가 곧 영혼을 씻어주는 효과를 가져다준다고 주장합니다.


더브레는 이러한 그들의 견해에 반대하면서 “물이 부어질 때, ... 그리스도의 피가 성령님에 의해서 내적으로 우리 영혼에 동일한 일을 합니다.”라고 고백하지 않고, “동일한 일을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상징해 주십니다.”라고 고백합니다(표현에 주의). 즉 물세례는 성령세례를 상징할 뿐이지, 그 자체가 성령세례인 것은 아닌 것입니다. 세례 받는 순간 성령세례 받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성령세례 받은 자가 의식세례를 통해 자신이 받은 성령세례가 참이라는 것을 인침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브레는 성령세례가 본질적인 것이라고 말하면서 성령세례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것으로 그리스도의 피가 죄로부터 우리 영혼을 씻어 주고 정결하게 해 주며 우리를 진노의 자식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중생하게 합니다.


여기서의 ‘이것’은 ‘성령세례’를 말합니다. 더브레는 성령세례란 죄 씻음이며 또한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세례를 중생과 관련하여 이해하는 것이 세례에 대한 정확한 이해입니다. 곧 성경은 세례의 죄 씻음에 대해서 단순히 죄 사함을 받는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본성의 더러움도 씻음 받았음을 함께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본성의 변화는 그리스도와 함께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으로 사는 중생과 동일한 것입니다. 성령세례 받은 사람은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5)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딛 3:5)


그래서 벨기에 신앙고백서 세 번째 문단에서 이 부분을 자세히 다룹니다.


이렇게 그들의 편에서 보면 목사들이 우리에게 성례 즉 보이는 것을 주는 것이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성례에 의해서 상징되는 것 즉 보이지 않는 선물들과 은혜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분은 우리 영혼의 모든 부정(不淨)과 불의를 씻으시고 제거하시고 깨끗하게 하시고 우리 마음을 새롭게 하여 모든 위로로 가득하게 하시고, 당신의 아버지 같은 선하심에 대한 참된 확신을 우리에게 주시며, 새로운 본성으로 우리를 옷 입히시고, 이 모든 일로 옛 본성을 벗어버리게 하십니다.


여기서도 더브레는 목사들이 주는 의식세례와 성령님께서 베푸시는 성령세례의 효과를 분명히 구별하고 있습니다. 성령세례에는 죄 사함 뿐만 아니라, 마음을 새롭게 하는 본성의 변화를 반드시 동반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본성의 변화가 없는 자는 성령세례를 받지 아니한 자인 것입니다. 그런 자들은 의식세례를 받았어도 구원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계속해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를 보시면...


이런 일은 그런 물로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의 보배로운 피를 뿌림으로 되는 것이고, 그것은 우리의 홍해이고 우리가 바로의 압제 곧 마귀를 피하여 영적인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통과해야만 하는 홍해입니다.


이런 일, 곧 성령세례 받는 일은 물로 되는 것이 아니라고 고백합니다. 성령세례는 물세례를 받을 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말씀을 듣고 그리스도를 믿어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피로 죄 씻음 받을 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성령세례를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사건과 연결시킵니다.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넌 사건에 세례의 의미가 있다는 것은 사도 바울이 증거한 그대로입니다.


“(1)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2)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고전 10:1-2)


이 홍해를 건넌 사건은 세 가지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즉 첫 번째로 그 홍해를 건넌 사건은 애굽의 계속되는 공격과 압제에서 궁극적으로 벗어난 사건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고, 또 두 번째로 그 사건은 영적인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으며, 세 번째로 그것은 단 한 번만 일어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모든 인생은 사단 마귀의 폭정 아래서 죄와 비참함 가운데 살아갑니다. 이런 인생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주셨습니다. 그러면 이제 모든 사람들이 다 자동으로 구원받게 된 것입니까? 그런 것이 아니라 오직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만이, 다시 말해 성령의 홍해를 건넌 자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반복될 수 없는 단회적 사건입니다. 생명의 태어남은 한번만 할 수 있지 반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열망하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오직 한 번만 세례를 받아야 함을 믿습니다. 세례는 결코 반복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두 번 태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를 보시면...


또한 세례는 물이 우리 위에 주어지고 우리가 그 물을 받을 때에만 유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전 생애에 걸쳐서 유익을 주는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오직 한번 받는 단번의 세례로 만족하지 않으며 신자의 어린 자녀들에게 세례를 베푸는 것을 비난하는 재세례파의 잘못을 배격합니다.


세례는 한번 받는 것이지만, 그 효과는 일평생 지속됩니다. 세례를 받으면, 교회는 그 사람에게 세례증서를 주는데, 이 세례증서는 단순한 종이 쪼가리가 아니라, 그것은 우리의 사죄를 확증해주는 보증서와 같습니다. 주님께서 나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어주셨고, 또 나의 모든 죄를 다 도말하시고 사해주셨다는 (하나님의 도장이 찍혀 있는) 보증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 받을 때, 그리고 이미 세례 받은 사람은 그 세례증서를 봄으로써 참으로 큰 위로를 받고 은혜를 받으며 또 믿음이 견고해지는 것입니다. 세례는 한 번 받는 것이지만, 그 세례의식이 일평생 두고두고 우리에게 은혜를 끼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우리의 세례 받은 사실을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마치 구약의 성도들이 항상 그 언약의 표를 자기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그것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했던 것처럼, 그렇게 신약의 성도들도 세례의식을 마음속에 품고 살아야 합니다.


한편 재세례파는 로마가톨릭에서 받은 세례가 무효이며, 다시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이들의 주장이 인간적으로 볼 때 충분히 이해는 되지만 그러나 성경적으로 볼 때 너무 과격한 주장입니다. 세례는 삼위일체를 고백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고백하는 교회가 베풀었으면, 그리고 신앙고백자가 그것을 믿고 세례 받았으면, 설사 그 교회가 이단이라 하더라도 그 세례는 참된 세례인 것입니다.


그리고 재세례파는 유아세례를 반대했는데, 이 역시 비성경적인 주장입니다.


우리는 동일한 약속에 근거하여 이스라엘에서 유아들이 할례를 받았던 것처럼, 신자의 자녀들이 세례를 받아야 하고 언약의 표로 인쳐져야 한다는 것을 믿습니다. 정말로 그리스도께서는 어른들의 죄를 씻기 위하여 피 흘리신 것만큼 신자의 자녀들의 죄를 씻기 위해서도 피 흘리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이가 태어난 직후에 어린 양을 드리라고 율법에서 명령하신 것처럼, 신자의 자녀들도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하여 행하신 것에 대한 표와 성례를 받아야만 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의 성례입니다. 세례가 우리 자녀들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의 할례와 동일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바울은 세례를 그리스도의 할례라고 불렀습니다(골2:11).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유아세례의 근거로 세례와 할례의 연관성을 주장합니다. 구약과 신약이 많은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근저에는 은혜언약으로 통일되어 있기 때문에, 그리고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할례와 세례가 본질적으로 동일한 의식이기 때문에, 우리는 유아할례와 마찬가지로 유아세례도 하나님의 뜻임을 믿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아세례를 행할 때, 그 의미는 성인세례와 동일한 것입니다. 적지 않은 학자들이 유아세례와 관련하여 세례의 본질적인 의미인 죄 씻음과 중생의 의미는 빼버리고 그냥 언약의 영향권아래 들어왔다고 하는... 또는 교육적인 의미만 있다고 하는 어설픈 의미로만 적용하는데, 그것은 참된 신앙의 고백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이렇게 분명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그리스도께서는 어른들의 죄를 씻기 위하여 피 흘리신 것만큼 신자의 자녀들의 죄를 씻기 위해서도 피 흘리셨습니다.


부모는 어설프게 유아세례에 참여하지 말고 그리스도께서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자녀들을 위해서도 피흘려주셨음을 믿음으로, 그리고 자신만 구원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자녀들도 구원해주셨음에 대한 감사와 감격으로 이 의식에 참여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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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 벨기에 신앙고백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벨직 신앙고백서) 제32조 - 교회의 질서와 권징 file 제32조 최상범 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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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벨기에 신앙고백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벨직 신앙고백서) 제30조 - 교회의 정치 file 제30조 최상범 675
140 벨기에 신앙고백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벨직 신앙고백서) 제2조, 제3조 강설 - 특별계시와 성경 file 제2조 최상범 859
139 벨기에 신앙고백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벨직 신앙고백서) 제29조 - 참 교회와 거짓 교회의 표지 file 제29조 최상범 862
138 벨기에 신앙고백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벨직 신앙고백서) 제28조 해설 - 교회에 가입해야 할 모든 사람의 의무 file 제28조 최상범 679
137 벨기에 신앙고백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벨직 신앙고백서) 제27조 - 보편적 교회 file 제27조 최상범 730
136 벨기에 신앙고백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벨직 신앙고백서) 제26조 - 그리스도의 중보 file 제26조 최상범 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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