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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상범
제35조
문답내용 제 35 조 주의 만찬의 성례

The Sacrament of the Lord’s Supper


우리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중생시키시고 당신의 가족 곧 당신의 교회로 받아들이신 자들을 육성(育成)하시고 양육(養育)하시기 위해서 성찬의 성례를 제정하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중생한 사람들은 이중적 생명을 가집니다. 하나는 육체적이고 일시적인 생명인데, 이 생명은 그들의 첫 번째 탄생으로 받고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인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영적이고 천상적인 생명인데, 이 생명은 그들의 두 번째 탄생에서 주어진 것이고, 그리스도의 몸의 교제에서 복음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이 생명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에게만 해당됩니다.

육체적이고 지상적인 생명을 유지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지상적이고 물질적인 떡을 정하셨습니다. 이 떡은 생명이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인 것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입니다. 신자들이 가지는 영적이고 천상적인 생명을 유지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하늘로부터 내려오신 산 떡, 곧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에게 보내 주셨는데(요6:51), 그분께서는 신자들이 당신을 먹을 때 즉 믿음에 의해서 영적으로 취하여 받을 때 신자들의 영적 생명을 육성하고 양육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영적이고 천상적인 떡을 우리에게 묘사하기 위해, 당신의 몸의 성례로서의 지상적이고 눈에 보이는 떡과 당신의 피의 성례로서의 포도주를 제정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손으로 그 성례를 받아 들고 우리의 입으로 그것을 먹고 마실 때, 우리의 육체적 생명이 그것에 의해서 유지되는 것이 확실한 것만큼, 우리가 우리 영혼의 손과 입으로 우리의 영적 생명을 위해 우리 영혼에 우리의 유일하신 구주 그리스도의 참된 몸과 참된 피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확실하다고 증거하십니다. ... (이하 생략)
강설날짜 2015-09-06

벨기에 신앙고백서 제35조


주의 만찬의 성례(1)


제 35 조 주의 만찬의 성례

The Sacrament of the Lord’s Supper


우리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중생시키시고 당신의 가족 곧 당신의 교회로 받아들이신 자들을 육성(育成)하시고 양육(養育)하시기 위해서 성찬의 성례를 제정하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중생한 사람들은 이중적 생명을 가집니다. 하나는 육체적이고 일시적인 생명인데, 이 생명은 그들의 첫 번째 탄생으로 받고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인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영적이고 천상적인 생명인데, 이 생명은 그들의 두 번째 탄생에서 주어진 것이고, 그리스도의 몸의 교제에서 복음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이 생명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에게만 해당됩니다.

육체적이고 지상적인 생명을 유지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지상적이고 물질적인 떡을 정하셨습니다. 이 떡은 생명이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인 것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입니다. 신자들이 가지는 영적이고 천상적인 생명을 유지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하늘로부터 내려오신 산 떡, 곧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에게 보내 주셨는데(요6:51), 그분께서는 신자들이 당신을 먹을 때 즉 믿음에 의해서 영적으로 취하여 받을 때 신자들의 영적 생명을 육성하고 양육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영적이고 천상적인 떡을 우리에게 묘사하기 위해, 당신의 몸의 성례로서의 지상적이고 눈에 보이는 떡과 당신의 피의 성례로서의 포도주를 제정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손으로 그 성례를 받아 들고 우리의 입으로 그것을 먹고 마실 때, 우리의 육체적 생명이 그것에 의해서 유지되는 것이 확실한 것만큼, 우리가 우리 영혼의 손과 입으로 우리의 영적 생명을 위해 우리 영혼에 우리의 유일하신 구주 그리스도의 참된 몸과 참된 피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확실하다고 증거하십니다. ... (이하 생략)


첫 번째 문장을 보시면...


우리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중생시키시고 당신의 가족 곧 당신의 교회로 받아들이신 자들을 육성(育成)하시고 양육(養育)하시기 위해서 성찬의 성례를 제정하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세례도 그렇지만 성찬도 이미 중생한 자들을 위한 의식입니다. 중생하지 않은 자는 성찬식을 통해서 그 어떠한 은혜도 받을 수 없습니다. 불신자가 믿음이 생기는 것은 성례로 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듣는 가운데 성령님께서 역사하심으로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단 거듭났으면 성찬식은 우리의 믿음을 육성하는 매우 중요한 은혜의 방도가 됩니다.


그런데 독특한 점은 벨기에 신앙고백서가 중생자들을 언급하면서, 그들을 예수님의 가족이라고 표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이라고 말합니다. 성찬을 이야기하면서 이 가족관계를 이야기한 것은 의도적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식사란 그저 생명을 지속하기 위한 영양공급이 아니라, 함께 식사하는 사람과 깊은 친교를 나누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식사는 아무하고나 같이 하는 것이 아니라 깊은 유대관계가 있는 사람들과만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식사는 가족끼리 함께 모여서 합니다.


마찬가지로 성찬식은 주님의 만찬입니다. 주의 피로 맺어진 혈연관계에 있는 우리가 함께 모여서 주님과 더불어 식탁교제를 나누는 의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찬에 참여하면서 한 가족이라는 의식을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성찬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두 번째 문단을 보시면...


중생한 사람들은 이중적 생명을 가집니다. 하나는 육체적이고 일시적인 생명인데, 이 생명은 그들의 첫 번째 탄생으로 받고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인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영적이고 천상적인 생명인데, 이 생명은 그들의 두 번째 탄생에서 주어진 것이고, 그리스도의 몸의 교제에서 복음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이 생명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에게만 해당됩니다.


육체적이고 지상적인 생명을 유지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지상적이고 물질적인 떡을 정하셨습니다. 이 떡은 생명이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인 것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입니다. 신자들이 가지는 영적이고 천상적인 생명을 유지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하늘로부터 내려오신 산 떡, 곧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에게 보내 주셨는데(요6:51), 그분께서는 신자들이 당신을 먹을 때 즉 믿음에 의해서 영적으로 취하여 받을 때 신자들의 영적 생명을 육성하고 양육하십니다.


성찬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바로 주님의 살과 피가 우리 영혼의 양식이 된다는 것입니다.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이 점을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만큼 아주 친절하게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먼저 중생한 자에게는 두 가지 생명이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부모로부터 태어난 육적인 생명이고, 하나는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난 영적인 생명입니다. 육적인 생명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있지만, 영적인 생명은 오직 예수님을 믿는 신자에게만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은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는 것을 거듭남이라고 표현합니다. 구원은 생명적 현상입니다. ‘예수천국불신지옥’ 또는 ‘천국행 열차 티켓’이라는 단순한 틀을 가지고서 구원을 생각하면 안 됩니다. 구원은 생명적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구원을 잘 이해하려면 생명에 대해서 잘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선 생명을 생각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로 생명은 오직 생명으로부터 태어남으로써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수많은 생명체가 살고 있지만, 그 어느 하나도 부모가 없이 스스로 생겨난 생명체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적인 생명도 우리 스스로 창출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남으로써 부여받은 것입니다.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 1:13)


둘째로 생명은 태어나면 끝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영양을 공급받아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생명을 지속하고 또 완성을 향해 자라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축복가운데 건강하게 잘 태어났어도 이후에 영양이 충분히 공급되지 않으면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것이 좋을 뻔 했다”라고 생각할 만큼 아주 비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TV광고를 통해서 아프리카의 수많은 아이들이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어가는 비참한 광경을 봅니다. 이를 통해서 영양을 지속적으로 공급해주는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알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의 생사를 좌우하는 엄중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굶어죽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버는 것입니다. 돈 없으면 죽습니다. 이 돈에 우리의 생명이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에게 이 육적인 생명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참되게 예수를 믿고 거듭난 자에게는 보이지 않는 영적인 생명이 그 안에 있는 것입니다. 이 영적인 생명도 육적인 생명과 똑같은 생명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그리스도의 피와 살을 공급받지 않으면 결국 비참하게 되고, 결국에는 그 영적생명이 죽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의 큰 착각중의 하나가, 육적인 생명은 3-4일 동안 물과 음식을 먹지 않으면 결국 죽게 된다는 것을 알면서, 영적인 생명은 은혜 없이 1달, 1년, 10년을 살아도 안 죽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번 구원받은 자는 결코 구원이 취소되지 않는다고 하는 성도의 견인 교리를 오해한 것입니다. 물론 한번 구원받은 자는 결코 구원이 취소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취소되지 않는 이유가 영적인 생명은 육적인 생명하고는 달라서 먹지 않아도 시름시름 앓기는 하겠지만 결코 죽지는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영적인 생명도 육신의 생명과 똑같아서 지속적으로 먹지 않으면 결국 죽게 되는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신자 안에 끊임없이 일하심으로 그 신자로 믿음으로 생명의 양식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모하게 하시고 붙잡도록 하셔서 지속적으로 은혜를 공급받도록 하기 때문에 구원이 취소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인 생명과 관련하여 육적인 생명과 똑같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어야만 영적인 생명이 살 수 있고, 그것이 지속적으로 공급되지 않으면 우리의 영혼은 말라비틀어질 것이고, 비참해질 것이고, 결국 죽고 말 것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요 15:5-6)


여기서 주님은 분명히 “나를 붙잡고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죽게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편에서는 구원이 취소될 수 없고 또 태어난 영혼이 죽을 수 없습니다만, 그러나 알곡과 가라지가 섞여 있는 교회를 향해 말씀하실 때는 떠나면 죽는다고 분명히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이 경고를 통해 참된 신자들은 더욱 깨어 기도하며 영적인 생명의 안위를 위해 더욱 많은 신경을 쓰게 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날마다 먹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성찬식을 날마다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지속적으로 공급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있으면 좋겠지만 없어도 괜찮은 옵션이 아니라 우리의 영적생명의 생사를 좌우하는 본질적인 문제입니다.


우리가 최근에 십자가 은혜를 깊이 체험한 때가 언제인지 생각해보십시다. 혹시 너무 오래도록 은혜 없이 살지 않았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우리가 심각하게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육신은 이틀만 굶어도 정신이 아련해지고, 온통 먹을 것만 보이고, 또 먹고자 하는 강력한 식욕을 보이는데, 영혼은 오래도록 은혜가 없어도 아무 일 없는 듯이 잘 살아간다는 것은, 그 영혼이 거듭나지 않았든지... 또는 그 영혼이 심각하게 병들어서 거의 죽게 되어 있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사데교회가 꼭 그러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데 교회를 향해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계 3:1-5). 물론 완전히 죽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셨죠. “너는 일깨워 그 남은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임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이기는 자는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흐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바꾸어 말하면 회개하지 아니하면, 곧 죄에 지고 세상에 지고 돈에 져서 궁극적인 신앙의 승리를 얻지 못하는 사람은 구원받지 못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오늘날 교회 가운데 생명책에 그 이름이 흐려질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자들은 사실은 처음부터 거듭나지 아니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고 참으로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영의 영식을 공급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영의 양식을 공급받는데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이 무엇입니까?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요 6:27)


바로 썩는 양식을 위해 일하는 것이 영의 양식을 공급받는데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이 됩니다. 썩는 양식은 육적인 생명을 위한 양식입니다. 그러므로 영의 양식을 공급받기 위해서는 썩는 양식을 위해 일하는 것을 전적으로 중단해야 합니다. 그러면 직장 다 그만두고 오직 기도하고 말씀 읽고 전도만 하라는 말입니까? 그 말이 아닙니다.


문맥을 보면... 예수님께서 오병이어기적을 일으키신 후에 백성들이 예수님을 억지로 임금 삼으려고 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통해 로마를 물리치고 부국강병을 이루어서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아보겠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썩는 양식을 위해 일한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의 안녕, 이 세상에서의 행복과 즐거움을 위해 일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곧 돈을 사랑함이고, 결국에는 하나님보다 자기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의 안녕과 행복을 추구하려는 욕망을 완전히 죽일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영육이원론으로 오해하지 마십시오. 돈 벌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우리가 직장생활을 주를 위해서 하고, 주께 하듯 하고, 번 돈으로 선한 사업에 부하고, 있는 것으로 만족하면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서 살아간다면 그것이 거룩한 삶이요, 영의 양식을 위해 일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육적 생명의 안녕과 행복을 영적 생명의 안녕과 행복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것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보다 돈을 사랑함으로 돈 욕심을 부리면서, 선한 사업에 부한 것이 아니라, 돈을 많이 벌어서 이 땅에 쌓아놓고, 이를 통해서 이 땅에서 행복하게 잘 살아 보겠다는 생각이 바로 죄인 것입니다.


이 욕심이 우리 안에 있으면 우리는 영의 양식을 공급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즉 돈을 사랑하고 돈을 추구하게 되면 반드시 영적인 생명의 안녕과 행복을 포기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돈과 하나님은 동시에 섬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한 가지를 죽이고 한 가지를 살리든지, 또는 한 가지를 중히 여기고 한 가지를 경히 여기든지 해야 하는 것입니다.


육적인 생명의 안녕과 행복 추구 ↔ 영적인 생명의 안녕과 행복 추구


이것은 영적 생명을 추구하기 위해 육적을 위한 모든 혜택들을 박탈하고 육적 생명 자체를 미워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육체를 위해 정하시고 베풀어주신 혜택들을 감사함으로 받아 누려야 합니다. 다만 우리는 우리 형편에 늘 자족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고, 우리의 육적 생명이 본질이 아니라 우리의 영적생명이 본질이라는 것을 알고 이 둘이 충돌할 때는 언제든지 영적 생명을 택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주님이 늘 채워주실 것을 믿고 살지만, 설사 하나님이 채워주지 않으실 지라도...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주를 위해 살기를 택하고 이 땅에서 굶어죽는 것이 참된 신자의 신앙생활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시험받으신 사건에 잘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배부른 상황에서 돌이 떡이 되게 하라는 시험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40일 금식하셔서 매우 굶주린 상황에서... 곧 육신의 생명이 몹시 위태로운 상황에서 돌이 떡이 되게 하라는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은 바꾸어 말하면, “이 굶어죽을 위기의 상황에서 사단이 시키는 대로 해서 떡을 먹고 육신이 사느니, 차라리 하나님의 말씀을 택하고 굶어죽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시험을 예수님만 직면하신 것이 아니라, 모든 신자는 반드시 이 시험을 직면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이 양자택일의 상황을 직면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우리 육신의 행복과 안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것을 추구하며 살 것이냐... 아니면 영의 생명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모든 돈 욕심을 버리며, 때때로 안정된 삶을 포기하고 굶어죽을 위기를 마다하지 않으면서 말씀을 택하는 삶을 살 것이냐...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가 참으로 거듭난 자라고 한다면 우리는 후자의 삶을 택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육적인 생명은 무익하고 영적인 생명이 진짜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


이 땅에서 부자로 행복하게 살아도 그만, 이 땅에서 가난해서 굶어죽어도 그만입니다.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우리의 영적생명입니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입니다. 그래서 그분을 믿음으로 지옥형벌에서 구원받는 것... 그래서 그 영혼이 영원히 하나님을 예배하며 사는 것... 이것이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영적생명의 삶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살아도 산 게 아닙니다. 온갖 산해진미를 맛보면서 부족함 없이 살아도 살았으나 죽은 자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있으면 비록 이 땅에서 가난하고 비참하게 살아도 성공한 인생이고 복된 인생입니다.


우리가 영적생명이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썩어질 것을 위해 일하기를 그만두고 영적생명의 양식을 간절히 소망하며 추구해야 합니다. 마치 옛날에 우리가 예수님 믿기 전에 돈이 전부인줄 알고 돈에 나의 행복이 달려있는 줄 알고 돈 없으면 죽는 줄로 알고 돈을 사모하며 사랑하며 살았듯이, 우리는 예수님이 전부인줄 알고 예수님에 나의 행복이 달려있는 줄 알고 예수님 없으면 죽는 줄로 알고 예수님을 사모하고 사랑함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영의 양식을 추구하는 삶이며 그것이 바로 우리의 믿음입니다. 요한복음 말씀을 보면 다음과 같은 수식이 성립합니다.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 일하는 것 = 예수님을 믿는 것(6:29,35) =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


그러므로 우리는 갓난아이가 젖을 사모하듯이, 날마다 예수님을 간절히 사모하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나의 생명의 양식으로 삼아 날마다 예수님을 먹고 마시며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를 위해 힘쓰고 애쓰지만, 우리의 연약함과 무감각함 때문에 잘 믿지 못하는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성찬을 제정하시고, 떡과 포도주라는 눈에 보이는 표징을 통해 주님이 생명의 양식이 되심을 밝히 보여주시고, 또 우리가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실 때 친히 우리 안에 임하셔서 십자가의 은혜로 우리의 영혼을 먹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님이 우리를 위해 살이 찢기시고 피를 흘려주셨음을 우리에게 인쳐주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영적이고 천상적인 떡을 우리에게 묘사하기 위해, 당신의 몸의 성례로서의 지상적이고 눈에 보이는 떡과 당신의 피의 성례로서의 포도주를 제정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손으로 그 성례를 받아 들고 우리의 입으로 그것을 먹고 마실 때, 우리의 육체적 생명이 그것에 의해서 유지되는 것이 확실한 것만큼, 우리가 우리 영혼의 손과 입으로 우리의 영적 생명을 위해 우리 영혼에 우리의 유일하신 구주 그리스도의 참된 몸과 참된 피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확실하다고 증거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배려이며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우리가 날마다 주님을 먹고 마시며 살아갈 수 있게 해주시고, 특별히 성찬식을 통해 더욱 생생하고 충만하게 주님을 먹고 마시며 살아갈 수 있게 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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