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트신조
2017.07.22 10:16

2017년 도르트 신조 공부(제1장 1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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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도르트 신조 제1장 1항
강설날짜 2017-07-23

2017년 도르트 신조 공부

 

제1장. 도르트 신조의 첫 번째 교리

- 하나님의 선택(選擇)과 유기(遺棄) -

 

* 제1항 : 하나님 앞에서 정죄 받아야 할 모든 인류-모든 사람이 범죄함(전적 타락).

 

모든 사람이 아담 안에서 범죄 하여 저주 아래 놓여 있으며, 영원한 죽음에 처해지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에 만약 하나님께서 모든 인류를 죄와 저주 아래 버려두시며, 그 죄 때문에 그들을 정죄하시는 것이 그 분의 뜻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불의를 행하신 것이 아닙니다. 사도들의 말씀은 이러합니다. 로마서 3:19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로마서 3:23절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로마서 6:23절 “죄의 삯은 사망이니라.”

 

* 해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복음은 사람의 전적 타락(Total Depravity)이라는 어두운 배경에서 빛이 납니다(참조. 롬 3:9-18, 5:12-21; 요일 4:7-11; 롬 10:14-16).

 

도르트 신조의 첫 번째 교리는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로부터 시작합니다. 즉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영원한 생명을 얻을 사람을 선택하셨고, 그리고 영원한 죽음을 당할 사람을 유기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가리켜서 “이중 예정(double predestination)”이라고 말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예정이나 선택이라는 말을 듣기를 원치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예정이나 선택 혹은 유기라는 말에 대해서 자신의 잘못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운명이 결정지어진 것으로 여기거나, 이러한 일에 대해서 하나님을 운명의 장난자로, 비정한 운명의 손안에 놀아나는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오늘날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도 더 이상 이 교리에 대해서 말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예정교리 곧 선택과 유기에 대해서 교회가 가르치지 않거나, 설교되지 않는 것은 전적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정 교리는 성경이 가르치는 복음이며, 이 교리에는 ‘사람의 전적인 타락이라는 어두운 배경에 빛을 비추어 주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복음’이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예정(predestination)이란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들은 예정하면 모든 것이 결정되어 있다고 이해합니다. 하지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1647)는 예정에 대해서 이렇게 가르칩니다. (제3장 8절) : “하나님의 결정에 따라 하나님은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해서 어떤 사람과 천사들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예정(선택)되고, 다른 이들은 영원한 사망에 이르도록 예정(유기)되어 있다.” 그리고 칼빈(J. Calvin, 1509-1564)은 예정에 대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알려주는 것 이외의 것을 알려고 하는 것은 길 없는 황야를 걸어가려는 것이나, 또는 어두운데서 무엇을 보려고 하는 것 못지않게 어리석은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예정에 대한 교리는 중요하므로 무례한 논의나 침묵은 불가하다고 보았습니다. 이에 칼빈은 그의 기독교 강요 제3권 21장 5절에서 “우리는 예정을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이라고 부르며, 이 작정에 의해서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이 어떻게 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스스로 예정하셨다. 이는 모든 사람이 같은 상태로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어떤 사람을 위해서는 영생이 예정되며, 어떤 사람을 위해서는 영원한 저주가 예정되기 때문이다. 각 사람은 이 중의 어느 한쪽 결말에 이르도록 창조되므로, 우리는 생명 또는 사람에 예정되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도르트 신조가 가르치는 예정교리는 단순히 시대적 산물 곧 17세기 개혁주의 신조들이나 칼빈주의 신학자들의 발명품이 아니라, 이 교리들은 성경에서 직접 나온 것입니다. 즉 선택과 예정은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속합니다.

 

성경은 선택을 말할 때 선택을 가능한 한 회피해야 하는 것으로 말한 적이 없습니다. 에베소서 1장에서 사도 바울은 선택(예정)을 무섭고 두려운 것으로 말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신 사실을 찬송하며 기뻐할 것으로 말합니다. 에베소서 1:3-14절을 보면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누구는 선택하고 누구는 버림을 받는다는 이 사실은 인간의 편에서 생각할 때에는 불공평하게 보이며, 하나님에 대한 반감을 갖게 하겠으나 하나님 편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으며, 또한 불의를 행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 9:19-24절을 보면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뇨.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뇨 하리니.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 하리요.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 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토기장이 비유에서 말하고 있는대로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만물에 대해서 절대주권을 행사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생각해야 할 문제는 누구는 선택하고 누구는 버리시는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본래 어떤 상태에 있었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 먼저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알면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에 대해서 인간은 입이 열 개라도 아무 말도 못하는 것입니다. 곧 인간이 범죄 하여 전적으로 타락한 상태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하나님의 선택으로 말미암는 구원의 역사가 우리 인간을 향한 놀라운 은혜임을 알게 됩니다. 따라서 도르트 신조의 첫 항목은 “인간의 상태에 대해서 아담 안에서 범죄 하여 저주 아래 놓였다”고 시작합니다. 즉 도르트 신조의 제1장 1항의 시작은 로마서 3:19절에서 말하는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신 말씀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도르트 신조 제1장 1항을 보면 “모든 사람이 아담 안에서 범죄 하여 저주 아래 있고, 영원한 죽음을 받아 마땅하므로 하나님께서 온 인류를 죄와 저주 아래 남겨 두시고 그 죄로 말미암아 정죄하시기로 뜻하셨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불의를 행하시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아담 안에서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형상의 잃어버린바 된 인간의 상태, 인간의 비참함, 죄책의 상태인 인간의 전적인 타락과 부패, 바로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모든 사람’에 대해 증거 하는 진리입니다.

 

이처럼 도르트 신조의 제1장 1항에서는 성경의 죄의 기원을 밝히는데, 로마서 5:12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담이 창조된 독특한 위치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르미니우스 주의자들은 ‘모든 사람’이 아담 안에서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부정합니다. 곧 전적인 타락과 전적인 부패를 부정합니다. 비록 모든 사람이 아담의 죄를 통하여 죄로 기울어졌다는 사실을 인정할지라도, 그들은 모든 사람이 아담의 죄를 통하여 죄를 짓고 정죄 받았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전적으로 타락하거나 부패하지 않았고, 또한 아담이 행한 일로 정죄 받지 않았고, 자신들이 행한 일로 정죄를 받을 뿐이다’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우리는 이러한 그들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배웁니다. 로마서 5:12절을 다시 보면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아담 안에서 우리 모두는 죄를 지었다고 바울이 로마서 5장에서 밝히듯이, 도르트 신조 제1장 1항은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죄 가운데 그리고 저주 아래 버려두셨다”고 고백합니다. 따라서 도르트 신조 제1장 1항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심지어 한 사람도 구원할 책임이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에 대해서 벨직 신앙고백서 14조 첫 단락을 인용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땅에서 흙을 취하여 사람을 창조하시고, 당신의 형상과 모양에 따라 즉 선과 의와 거룩에 따라 사람을 만드시고 조성하셨음을 믿는다. 사람의 뜻은 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뜻과 일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이 이런 높은 위치에 있을 때, 그러한 위치를 바르게 인식하지도 않았고 자신의 탁월함을 가치 있게 여기지도 않았다. 사람은 마귀의 말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고의적으로 죄를 범하였고, 그 결과로 사망과 저주에 이르게 되었다. ... 사람은 자기 죄로 인해 자신의 참된 생명이신 하나님에게서 이탈하여 자신의 본성 전체를 부패시켰다. 이 모든 것으로 인해 사람은 육체적이고 영적인 죽음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져야 했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담 안에서 범죄 한 우리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정죄 받아야 할 자들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3:19절에서는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고, 로마서 3:23절에서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6:23절에서는 “죄의 삯은 사망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을 죄 가운데, 그리고 저주 아래 버려두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할지라도 어느 누구도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불공평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영원한 정죄, 곧 이것은 우리가 아담 안에서 죄를 지었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마땅히 받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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