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tra Form
설교자 최상범
제22조
문답내용 제 22 조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한 우리의 칭의

Our Justification Through Faith in Christ

우리는 성령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이 위대한 신비에 대한 참된 지식을 얻게 하기 위해서 우리 마음속에 참된 믿음을 일으켜 주셨음을 믿습니다. 이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그분의 모든 공로와 함께 받아들이고, 그분을 우리 자신의 소유로 만들고, 그분 외에 다른 어떤 것도 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다음의 둘 중의 하나일 수밖에 없지 중간은 없습니다. 즉 우리의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없음을 믿든지, 또는 만일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라면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한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구원을 얻었음을 믿든지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그분 외에 다른 무엇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엄청난 불경죄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결론을 내리면 그리스도께서는 단지 반쪽짜리 구주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과 함께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롬3:28)라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동시에 엄격히 말하자면 믿음 그 자체가 우리를 의롭게 해 주는 것도 아님을 고백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우리의 의로 받아들이는데 사용된 도구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모든 공로로 당신께서 우리를 위하여 그리고 우리를 대신하여 행하신 많은 거룩한 사역들을 우리에게 전가하셨습니다(imputes).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의가 되시고, 믿음은 우리가 그분의 모든 혜택들 안에서 그분과 교제하게 하는 도구입니다. 이 혜택들이 우리의 것이 될 때에, 그것들은 우리의 모든 죄를 사면하기에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강설날짜 2015-05-24

벨기에 신앙고백서 제22조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한 우리의 칭의


제 22 조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한 우리의 칭의

Our Justification Through Faith in Christ


우리는 성령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이 위대한 신비에 대한 참된 지식을 얻게 하기 위해서 우리 마음속에 참된 믿음을 일으켜 주셨음을 믿습니다. 이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그분의 모든 공로와 함께 받아들이고, 그분을 우리 자신의 소유로 만들고, 그분 외에 다른 어떤 것도 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다음의 둘 중의 하나일 수밖에 없지 중간은 없습니다. 즉 우리의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없음을 믿든지, 또는 만일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라면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한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구원을 얻었음을 믿든지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그분 외에 다른 무엇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엄청난 불경죄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결론을 내리면 그리스도께서는 단지 반쪽짜리 구주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과 함께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롬3:28)라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동시에 엄격히 말하자면 믿음 그 자체가 우리를 의롭게 해 주는 것도 아님을 고백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우리의 의로 받아들이는데 사용된 도구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모든 공로로 당신께서 우리를 위하여 그리고 우리를 대신하여 행하신 많은 거룩한 사역들을 우리에게 전가하셨습니다(imputes).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의가 되시고, 믿음은 우리가 그분의 모든 혜택들 안에서 그분과 교제하게 하는 도구입니다. 이 혜택들이 우리의 것이 될 때에, 그것들은 우리의 모든 죄를 사면하기에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오늘은 벨기에 신앙고백서를 통해서 이신칭의에 대해서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땅에 수많은 기독교 종파와 이단들이 있지만, 예수를 믿고 성경을 경전으로 받아드리는 종파라면 누구나 예수를 믿어 죄 사함 받고 의롭게 된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더브레 당시의 로마가톨릭도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사실에 대해서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그 믿음의 출처가 어디냐 하는 것과 의롭게 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이냐 하는 점에서 우리와 견해를 달리하는 것입니다.


먼저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믿음이 하나님이 일으키시는 것임을 분명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이 위대한 신비에 대한 참된 지식을 얻게 하기 위해서 우리 마음속에 참된 믿음을 일으켜 주셨음을 믿습니다.


We believe that
for us to acquire the true knowledge of this great mystery
the Holy Spirit kindles in our hearts a true faith


영어판을 그대로 직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이 위대한 신비에 대한 참된 지식을 획득하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 마음속에 성령님께서 믿음의 불을 붙이셨음을 믿습니다.” 여기서 언급되는 “이 위대한 신비”는 지난주에 배운 내용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 되시고 또 친히 제물이 되셔서 영단번의 희생제사를 드리심으로써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시고 우리를 온전히 구원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복음진리는 방금과 같이 언어로 전달된 정보요 지식으로 우리 앞에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지식이 우리의 귀를 통해 우리의 머리에 저장되었다고 해서 우리가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믿음으로 우리가 그 지식을 획득해야지만 그것이 참된 구원이 된다고 고백합니다.


오늘날 교회 나오지만 이 지식을 그냥 정보로 머리에 가지고 있으면서, 자신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참된 구원은 그 지식을 믿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이 무엇입니까? 그 다음 문장을 보시면...


이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그분의 모든 공로와 함께 받아들이고, 그분을 우리 자신의 소유로 만들고, 그분 외에 다른 어떤 것도 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은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내 마음에 영접하는 것입니다. 마음이라는 단어가 나왔다는 것 자체가 믿음은 지식의 차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지식과 감정과 의지로 이루어진 한 인격의 행위임을 보여줍니다.


먼저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내 마음에 모셔 들이는 것입니다.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받아들인다’고 표현하는데, 이 표현은 믿음이 바로 믿는 자의 의지의 행위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믿음은 인간의 책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망한 이유는 우리와 같이 복음전함을 받았지만 그들이 믿음으로 화합지 아니했기 때문입니다. 믿지 못한 책임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또한 우리의 믿고자 하는 의지가 우리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불 붙여주신 것임을 증거 합니다.


“(8)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지 아니하였으리라 ... (10)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 (12)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2:8,10,12)


성령이 아니고서는 이 복음을 받아들일 수가 없는데, 왜냐하면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어디 이상한데 홀려가지고 사이비 광신자같이 일생 노예같은 삶을 산다고 하면서 우리를 불쌍하게 생각합니다. 그들에게는 복음이 어리석어 보입니다. 우리도 예수 믿기 전에는 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복음을 믿게 되었습니까?


“(17)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18)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엡 1:17-18)


성령께서 먼저 우리의 눈을 열서 우리가 죄인임을 알게 하시고, 또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나타난 사랑을 알게 하시고, 또 그의 부르심의 소망과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안에 그리스도를 감격가운데 영접하고자 하는 의지를 창조하셔서 우리로 기쁨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기 때문에, 이것이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이는 그 누구도 “나는 믿었고 너는 안 믿었다”고 하면서 자신의 믿음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입니다.


다시 믿음에 대한 서술을 보십시오.


이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그분의 모든 공로와 함께 받아들이고, 그분을 우리 자신의 소유로 만들고, 그분 외에 다른 어떤 것도 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은 예수님을 믿는 것인데, 그 믿음에는 바로 그 예수님이 나를 위해 무슨 일을 하셨는가에 대한 믿음도 포함되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바로 예수님이 나를 죄와 심판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사람이 되사 십자가에 달리셨음을... 믿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십자가로 모든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셨고 또 우리를 온전히 의롭게 하셨음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이란 예수님을 나의 소유로 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제 예수님을 내 행복을 위한 도구로 삼아 이용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마치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 상대방에게 “넌 내꺼야”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의미인 것입니다. 그것은 사랑의 연합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예수를 소요한 백성들은 예수님과 연합하여, 예수님의 모든 것을 자기 자신의 것으로 받아 누리는 은혜를 받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이 이루신 모든 공효와, 그분의 지혜와 능력과, 모든 획득하신 상급과 축복들이 예수 안에서 우리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은 그분만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의지’란 우리가 지금 우리의 몸무게를 의자에 맡긴 채 편안하게 앉아 있듯이, 나의 모든 삶과 영혼의 운명과 나의 구원을 그분께 전폭적으로 맡기고 그분 안에서 안식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이 하신 일을 영접하는 것이고, 그분을 소유하는 것이고, 그분을 온전히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 중에 하나라도 빠져있다면 그것은 가짜 믿음입니다.


로마가톨릭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그러나 그분이 하신 일, 곧 그분의 공로는 온전히 믿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전폭적으로 의지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믿음은 가짜입니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로마가톨릭이 극구 부인하면서 팔짝 뛸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이 얼마나 교묘하게 복음을 훼손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첫째로 그들은 믿음이 성령님의 은혜가 아니라 사람의 행위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하나님 편에서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만 해서는 안 되고, 사람 편에서도 그 은혜를 위해 스스로 준비하고 결심하고 순종하는 반응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이 로마가톨릭의 뿌리 깊은 행위구원론입니다.


결코 로마가톨릭은 갈라디아교회처럼 예수도 믿고 율법도 지켜야 구원받는다고 하는 행위구원론을 주장한 것이 아닙니다. 로마가톨릭도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구원받는다고 말합니다. 얼마나 은혜를 이야기하느냐 하면, 예수를 믿고 세례 받으면 더 이상 지옥형벌이 없다고 말합니다. 세례 받는 이후에 짓는 죄에 대해서는 따로 징계의 차원에서 형벌을 받아야 하지만, 그 죄 때문에 지옥 가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므로 갈라디아 교회의 거짓선지자들의 행위구원론하고 다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는 갈라디아서에 나오는 행위구원론과 같은데 그 이유는 구원의 전 과정에 있어서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에 열심히 협력해야만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극히 드문 경우이기는 하지만) 참된 신자라도 잘못되어서 치명적인 죄를 지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이 취소될 수가 있음을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예수를 통해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실 뿐만 아니라, 또한 내가 열심히 믿고 순종해야 구원받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로마가톨릭의 교리가 행위구원론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로 로마가톨릭의 교리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에서 “의롭게 됨”을 우리의 성품이 진짜 의롭게 변화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우리하고 완전히 다르죠.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의롭다 함을 받는 것입니다. 즉 하늘법정에서... 우리바깥에서 하나님이 의롭다고 선언하심으로써 (우리 내면은 그 상태 그대로 인데) 우리의 신분이 바뀐다고 고백합니다. 즉 우리가 예수와 연합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죄 값이 다 치러졌고(즉 모든 죄를 사함 받았고), 또 예수님께서 이루신 완전한 의로움을 우리의 것으로 여겨주심으로써(의의 전가) 우리가 옳다 함을 받고, 영생을 얻고 하나님 나라를 상급으로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만 있으면 충분하고, 예수님만 자랑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의 성품도 변화되어서 실제로 의롭게 사는 삶이 있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칭의와 구별하여 성화에서 다루는 것입니다.


한편 로마가톨릭은 우리가 말하는 칭의와 성화를 하나로 섞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로마가톨릭은 예수를 믿는 신자는 믿음으로 의롭게 변화되기를 시작했으며, 따라서 일평생 율법을 열심히 지켜서 자기 의를 쌓아야만 한다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행위를 따라 평가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서 그들은 야고보서를 인용하면서 사람이 믿음으로만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아니라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고 주장합니다. 바로 여기에 인간의 공로사상이 도입되는 것입니다. 로마가톨릭의 구원론은 철저하게 자기 의, 자기 공로 사상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개개인이 스스로 의롭게 살아서 스스로 의의 공로를 쌓아야 합니다. 그리고 죄를 지었을 때는 반드시 사제를 찾아가서 고해성사를 하고 따로 벌을 받거나 보속행위를 함으로써 속죄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만일 그 죄가 치명적인 죄일 때에는 구원이 취소되고 그렇지 않을 때는 그 죄 때문에 지옥가지는 않지만 연옥에서 고생을 많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가톨릭 신도들은 예수님만을 믿고 의지하고 찾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은혜도 필요하지만, 그 은혜에 잘 협력하는 자기 자신도 잘 믿고 의지해야 하고, 자기 의, 자기 공로도 의지해야 하고, 또 죄를 지었을 때는 보속행위를 해야 하니깐, 사제, 교황도 필요하고, 부족한 의는 의가 남아도는 성자들한테서 좀 나눠받아야 하니깐 성자도 필요하고, 예수님께 직접적으로 부탁하기 부담스러우니깐 마리아를 의지하기도 하고... 이러한 개념은 명백하게 거짓복음인 것입니다. 루터와 칼빈, 그리고 모든 택한 백성들은 하나같이 이 로마가톨릭의 견해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하면서 이단으로 정죄하였습니다. 더브레 역시 이 부분에 대해서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다음의 둘 중의 하나일 수밖에 없지 중간은 없습니다. 즉 우리의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없음을 믿든지, 또는 만일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라면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한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구원을 얻었음을 믿든지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그분 외에 다른 무엇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엄청난 불경죄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결론을 내리면 그리스도께서는 단지 반쪽짜리 구주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충분하기 때문에 그분만을 의지할 것이냐, 아니면 전적으로 부정할 것이냐 두 종류만 있지, 적당히 의지하면서 그와 아울러 또 다른 것을 의지하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로마가톨릭이 예수도 의지하고, 또 자기 자신도 의지하고, 교황 사제 성자 마리아를 의지하는 모습들은 바로 그들의 믿음이 가짜라는 것을 스스로 증거하는 것입니다. 암만 그들이 예수님 이야기 많이 하고 암만 오직 믿음 오직 은혜를 강조해도 다 가짜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가짜 믿음이 단지 로마가톨릭만의 문제입니까?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도 얼마든지 로마가톨릭처럼 신앙생활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알고 예수님만을 믿고 의지하면서 예수님 안에서 참 안식을 누리면서 예수님만 자랑하고 십자가만 자랑하는 마음이 우리에게 있습니까? 이런 마음과 삶이 우리 가운데 없다면, 우리는 실천적으로 로마가톨릭인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신앙을 잘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계속해서 벨기에 신앙고백서 내용을 보시면...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과 함께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롬3:28)라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동시에 엄격히 말하자면 믿음 그 자체가 우리를 의롭게 해 주는 것도 아님을 고백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우리의 의로 받아들이는데 사용된 도구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모든 공로로 당신께서 우리를 위하여 그리고 우리를 대신하여 행하신 많은 거룩한 사역들을 우리에게 전가하셨습니다(imputes).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의가 되시고, 믿음은 우리가 그분의 모든 혜택들 안에서 그분과 교제하게 하는 도구입니다. 이 혜택들이 우리의 것이 될 때에, 그것들은 우리의 모든 죄를 사면하기에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더브레는 율법의 행함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로마서 말씀을 인용하면서 믿음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로마가톨릭은 믿음을 하나님의 “의롭게 만드시는 은혜”를 획득하게 하는, 칭찬받아 마땅한 인간의 행위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믿음이 단지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들이는데 사용된 도구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은 우리의 믿음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 온전히 선하고 의롭게 사셨고, 그 의를 우리에게 전가하셨으므로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은 것입니다.


“(30)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31)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고전 1:30-3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5:21)


그러므로 우리는 로마가톨릭처럼 다른 성자를 의지하여 의를 나눠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 모든 사람은 다 죄인이지 남에게 의를 나눠줄 수 있는 성자는 없습니다. 아니 단 한분이 계시는데, 그분이 바로 이 세상의 유일한 성자,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는 모든 인류에게 온전한 의를 나눠주고도 남음이 있는 의로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님께 나아가 그분을 믿고 의지하기만 하면 영생을 얻기 위한 충분한 의를 은혜로 공급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만 있으면 됩니다.


그리고 로마가톨릭처럼 우리는 세례 받은 이후에 다시 속죄받기 위해 사제에게 고행성사하거나 보속행위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와 일평생 싸워야 하는 죄악된 본성까지... 모든 우리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받아 마셨습니다. 우리 죄에 대한 그 어떠한 진노나 형별이 조금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를 마치 단 한 번도 죄를 짓지 않은 것처럼 대우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구원을 위해 누구에게로 가겠으며 누구를 의지해야 하겠습니까?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값없이 우리를 의롭다 하신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을 감사 찬양합니다! 우리가 이 믿음으로 주님을 내 마음에 모시고, 주님을 소유하고 주님을 의지함으로써,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 삼위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며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설교자 조회 수
36 벨기에 신앙고백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벨직 신앙고백서) 제14조 강설 - 사람의 타락과 자유의지 file 제14조 최상범 728
35 벨기에 신앙고백서 벨기에 신앙고백서 (벨직 신앙고백서) 강설 제8조- 삼위일체 file 제8조 최상범 753
34 벨기에 신앙고백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벨직 신앙고백서) 제15조 - 원죄 file 제15조 최상범 747
33 벨기에 신앙고백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벨직 신앙고백서) 제13조 강설 - 하나님의 섭리 file 제13조 최상범 735
32 벨기에 신앙고백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벨직 신앙고백서) 제12조 강설 - 하늘과 땅의 창조 file 제12조 최상범 740
31 벨기에 신앙고백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벨직신앙고백서) 제9조,제10조,제11조 강설 - 삼위일체(2) file 제9-11조 최상범 1575
30 벨기에 신앙고백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벨직 신앙고백서) 제2조, 제3조 강설 - 특별계시와 성경 file 제2조 최상범 984
29 벨기에 신앙고백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벨직 신앙고백서) 본문 내용과 성경본문 수록된 편집본 file 전체 최상범 1064
28 벨기에 신앙고백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벨직 신앙고백서) 강설 - 서론 file 서론 최상범 2837
27 벨기에 신앙고백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벨직 신앙고백서) 제1조 강설 - 하나님의 속성 file 제1조 최상범 2086
26 벨기에 신앙고백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벨직 신앙고백서) 제3조, 제4조 강설 - 정경 file 제4,5조 최상범 785
25 벨기에 신앙고백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벨직 신앙고백서) 강설 제6조, 제7조 - 성경의 충족성 file 제6,7조 최상범 853
24 벨기에 신앙고백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벨직 신앙고백서) 제16조 강설 - 하나님의 선택 file 제16조 최상범 671
23 벨기에 신앙고백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벨직 신앙고백서) 제17조 강설 - 타락한 인간의 회복 file 제17조 최상범 627
22 벨기에 신앙고백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벨직신앙고백서) 강설 제18조 -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 file 제18조 최상범 671
21 벨기에 신앙고백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벨직 신앙고백서) 제19조 강해 - 그리스도의 한 위격 안에 있는 두 본성 file 제19조 최상범 779
20 벨기에 신앙고백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벨직 신앙고백서) 제20조 강해 -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 file 제20조 최상범 949
19 벨기에 신앙고백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벨직 신앙고백서) 제21조 -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속죄 file 제21조 최상범 732
» 벨기에 신앙고백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벨직신앙고백서) 제22조 -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한 우리의 칭의 file 제22조 최상범 734
17 벨기에 신앙고백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벨직 신앙고백서) 제23조 -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의 file 제23조 최상범 771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Next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