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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화란개혁교회
강설날짜 2013-06-23

2013년 여름 사경회(개혁교회 어떻게 세워 갈 것인가?)

 

화란개혁교회

 

I. 들어가는 말

 

한국교회는 선교 받는 교회에서 선교하는 교회로 성장한지가 그리 오래지 않다. 과거 한국교회는 선교국으로부터 절대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한국교회는 주 선교국이었던 미국교회와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유럽 대륙교회의 영향은 직접적으로 받지 않았다. 이로 인해 한국교회와 유럽의 대륙교회는 서로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다.

 

교회는 어떤 나라에서든지 적극적인 의미에서 복음을 상황화하고 토착화 한다. 그 대표적인 예로 한국교회의 ‘새벽기도’와 ‘권사제도’를 들 수 있다. 이것들은 세계 어느 교회에서도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다. 또 한 예로 ‘주일학교’ 제도를 들 수 있다. 주일학교는 영국교회를 거쳐 미국교회에서 꽃핀 좋은 예이다. 우리는 대개 주일학교 제도가 세계 모든 교회에 있다고 당연히 생각하지만, 화란의 개혁교회는 대부분 주일학교가 없다. 주일날 아이들에게는 부모님과 함께 드리는 두 번의 예배가 주일예배의 전부이다. 그러나 비록 주일학교가 없지만, 신실한 화란 개혁교회 교인들은 가정에서 매 끼니 식사 후 성경을 읽으며 아이들을 신앙적으로 교육한다. 더 나아가 교단에서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사립학교를 만들어 학교에서 자녀들에게 신앙교육을 철저히 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놀랄 것이다.

 

이런 교회의 다양한 모습들은 그 교회가 각각 다른 역사 속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생겨난 독특한 특징들이다. 물론 우리의 시각에서 볼 때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겠지만, 우리가 이 글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다른 교회의 교회교육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교회교육의 장점을 한국교회에 비판적으로 수용하며, 단점은 교훈이나 경계로 삼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남한 면적의 삼분의 일밖에 되지 않는 자그마한 화란에 있는 개혁교회의 교육을 살피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먼저 짧게나마 화란교회의 역사를 살피지 않고서는 화란교회의 특징을 이해할 수 없기에 화란교회가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현재 화란교회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간략하게 소개하려 한다.

 

화란 지역은 일찍이 로마시대부터 간헐적으로 기독교가 전파되었다. 화란은 종교개혁시대 이전 로마교회 속에서 ‘공동체생활형제단’을 통한 경건운동의 진원지이기도 했다. ‘공동체생활형제단’은 당시 백성들에게 삶의 모델을 제시했고, 후에 종교개혁의 밑거름이 되었다. 그들은 공동체를 형성하여 한 장소에 모여 살았고 성경을 읽으며 경건한 삶을 실천했다. 이 운동의 대표적 인물이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책을 쓴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à Kempis)이다. 이 운동은 라인강의 하류에 위치해 있는 화란으로부터 시작하여 이 강을 거슬러 올라 독일 중부와 남부를 거쳐 스위스까지 영향을 미쳤던 중세 후기의 한 경건주의 운동이었다. 그러나 종교개혁 시대에 화란은 유럽 북부 대부분의 나라와 마찬가지로 루터의 종교개혁으로부터 절대적 영향을 받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루터의 책을 읽고 종교개혁 신앙으로 돌아선다. 1523년 화란 지역에는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최초의 두 순교자가 생겨난다. 루터가 이 두 순교자(Hendrik Voes와 Johannes van Essen)를 위해 애도의 시를 쓴 것은 유명하다.

 

또 다른 한 커다란 영향은 라인강이 시작되는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시작된 칼빈의 개혁운동이다. 당시 수많은 화란 신학생들이 제네바로 가서 신학수업을 하였고, 이들이 화란으로 돌아와 화란개혁교회 형성의 초석이 된다. 1559년 개교된 제네바 신학교(Genevan Academy)에는 한 때 2,000명의 신학생들로 붐볐다고 한다.

 

유럽 많은 나라들이 로마교회와 국가의 정교 유착의 폭력 아래서 종교개혁 신앙을 가진 자들이 심한 박해를 받고 있었듯이 화란도 예외는 아니었다. 화란의 지배자는 당시 스페인의 왕이면서 독일의 황제였던 칼 5세였는데, 루터와 칼빈의 신앙을 좇는 자들을 화형에 처하는 등 혹독한 박해를 계속했다. 이로 인해 많은 신자들이 화란을 떠나 영국 런던과 독일 북부, 중부, 스위스 등지에 망명하여 교회를 세웠고, 바로 이 교회들이 화란 개혁교회의 모태가 되었다. 망명교회들이 1571년 독일 북부 엠던(Emden)에 모여 최초의 망명 화란개혁교회 총회를 구성한다. 이 때 칼빈의 신학에 근거한 ‘벨직 신앙고백’과 칼빈이 만들어 준 프랑스 교회법을 토대로 교회의 틀을 세우게 되는데 이것이 화란개혁교회의 진수다. 이후 화란개혁교회 역사는 바로 이 초기교회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몸부림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란의 개혁교회는 생성 초기부터 국가와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된다. 화란이 로마교를 신봉하던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후 화란 왕실은 로마교로부터 빼앗은 교회 건물을 개신교에게 주고 수도원 재산을 개신교를 위해 사용하도록 했다. 그리하여 개혁교회는 1572년부터 안정된 교회의 성장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는 화란개혁교회가 박해 없이 평안히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 유럽 다른 나라 개신교도들도 박해가 있을 때면 늘 개신교의 나라 화란으로 피신해 신앙의 자유를 누리곤 했다. 그러나 이런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큰 폐단도 있었다. 국가의 왕이 교회의 일에 개입할 수 있음으로 인해 교회와 정부가 반대 입장에 서게 될 경우 교회는 영적으로 엄청난 손실을 입게 되었다는 점이다. 교회가 국가로부터 정치적, 물질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데서 오는 교회의 영적 손실은 중세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교회역사에서 늘 반성되었던 점이다. 화란교회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국가는 화란개혁교회의 영적인 신앙까지 보호해 주지는 못했다. 17세기, 18세기 유럽을 휩쓸었던 인문주의가 낳은 아들 계몽주의 사조의 영향으로 인해 교회는 신학적으로 자유화되고 신앙적으로 세속화되었다. 그렇지만 신실한 성도들은 이에 대항해서 칼빈의 개혁 신앙으로 무장하고 말씀으로 용감하고 끈기 있게 싸워왔다. 사탄의 끊임없는 공격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교회는 결코 넘어지지 않았다. 지금도 교회는 승리하고 있다. 화란개혁교회는 400년의 역사에서 크게 세 번 정도의 교회 분리(1834년, 1886년 그리고 1944년)를 경험한다. 물론 이 분리는 부정적 의미의 교권쟁탈전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복음을 파수하려는 진리 운동의 결과였다.

 

금세기 화란의 교회는 한국의 교회와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다시 말하면 화란교회는 세속화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신학적으로 자유화되고, 신앙적으로 뒷걸음질 치고 있다. 성경은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단순히 사람의 문학 작품 중의 하나로 여겨진다. 높은 첨탑을 가진 아름다운 교회에는 관광객들의 발걸음 소리만 들릴 뿐이다. 교회에서 동성연애자들이 공식적으로 교인으로 축복될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신학교에 동성연애 동아리가 있을 정도이다. 매년 교인들의 숫자는 줄어들고 있다.

 

II. 화란의 자유 개혁교회

 

그렇지만 고무적인 것은 비록 수적으로는 적은 무리들이지만 말씀대로 살기 위하여 초기 화란개혁교회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교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성경을 하나님의 유일한 말씀으로 믿으며,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자들이다. 주일 뿐만 아니라 평일에도 삶의 전 영역에서 말씀대로 살려고 한다. 이들은 앞에서 소개한 초기 화란개혁교회의 모습을 유지하면서 세속화된 현대 사회에서 교회를 개혁하려고 노력하는 교회들이다.

 

그러면 이러한 화란교회는 구체적으로 어떤 교회들인가? 물론 교회나 교단과 관계없이 개인 신앙에 따라서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그 경향으로 본다면, 먼저 ‘기독교 개혁교단’이 있다. 이 교단은 유아세례 교인을 합쳐서 9만명 정도 되는데, ‘아뻘도른’이라는 도시에 신학대학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화란 자유개혁교회’가 있다. 이 교회는 유아세례 교인을 합쳐 13만명 정도의 교인이 있는데, ‘깜뻔’에 신학교를 두고 있다. 그리고 국가교회에 속해 있으면서 개혁신앙을 고수하고 있는 독특한 그룹이 있는데, 이들은 ‘개혁연맹’이라 불리며 40만 정도의 교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화란개혁교회’라 불리는 조그마한 교단이 있는데, 교인이 4만 정도밖에 되지 않아 신학교를 운영하지 않고 있다.

 

III. 화란개혁교회의 특징과 모습

 

화란개혁교회의 기독교교육에 대해 설명하기 이전에, 먼저 화란개혁교회의 특징과 실제를 아는 것이 이해에 도움이 되리라 여겨진다. 일반적으로 교회를 특징짓는 요소는 크게 ‘신앙고백’과 ‘교회정치’ 형태라고 볼 수 있다.

 

1. 신앙고백을 중요시하는 교회

 

화란개혁교회는 사도신경, 니케아신조, 아다나시우스 신조, 벨직 신앙고백,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 도르트 신조를 그들의 신앙으로 고백한다. 이 신앙고백을 통하여 화란 개혁교회가 초대교회의 신앙과 종교개혁 신앙을 아끼고 사랑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벨직 신앙고백’(1561)은 화란 종교개혁의 대표적 산물로서, 칼빈의 제자였던 기도 드 브레스(Guide de Bres)가 만들었다. 이 신앙고백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그는 몇 년 후 체포되어 순교했다(당시 화란에서만 5만 명의 순교자가 나왔다고 한다). 지금까지도 이 신앙고백은 개신교 세계에서 아주 훌륭한 신앙고백으로 인정되고 있다.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1563)은 하이델베르그 대학 교수인 울시누스(Ursinus, 칼빈의 제자)와 올리비아누스(Olevianus)가 주도하여 만든 것으로, ‘웨스트민스터 대소교리문답’에 버금가는 개신교 최고의 교리문답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도르트 신조’는 1618/19년 화란의 도르트레흐트(Dordtrecht)에서 열린 국제적 회의에서 이단 알미니안주의를 정죄한 유명한 신앙고백이다. 그러므로 화란개혁교회의 신앙이 어떠한지 알기 위해서는 이 신앙고백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화란개혁교회 교인들은 이 신앙고백이 성경의 권위보다 우위를 차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신앙고백이 성경을 잘 요약하고 있기에 신앙고백을 아끼고 사랑한다. 이 내용들은 설교 시간에 가르쳐 질뿐만 아니라, 교회의 여러 모임들에서도 주제로 채택되어 계속 토론되어진다. 이 때문에 일반 교인들도 이 신앙고백의 내용을 잘 알고 있다. 다른 한편 종교개혁 이후 지금까지 이 신앙고백들로부터 벗어나려는 세속화의 움직임은 계속되어 왔고, 19, 20세기에는 이 신앙고백을 거부하는 경향이 두드러져 국가교회를 포함한 어떤 교단이 급속히 자유화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2. 장로 중심의 교회정치

 

교회정치 형태로 보자면 화란개혁교회는 로마교의 교황을 중심한 교권적 교회정치 형태를 거부하며 다른 한편 민주주의식 회중교회 정치 형태를 거부한다. 이 점에 있어서는 장로교와 동일하다. 그러면 ‘장로교’와 ‘개혁교회’ 정치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두 교회는 모두 장로정치를 고수하므로 ‘장로회’ 곧 ‘당회’를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차이가 있다. 화란개혁교회는 16세기에 교회법을 처음 제정하면서 칼빈의 체제를 따른 프랑스 교회법을 대부분 이어받는다. 개체 교회는 기본적으로 독자적인 주님의 몸된 교회이고, 각 교회는 ‘당회’를 가진다. 그리고 주님의 명령대로 교회의 연합을 위하여 ‘시찰회’, ‘총회’로 모여 영육간에 서로 도운다.

 

그런데 화란개혁교회의 정치 형태의 독특한 점은 목사를 포함한 직분자의 교회에 대한 절대적 영향력을 거부한 것이다. 한 직분이 다른 직분의 우위에 있지 않고, 한 교회가 다른 교회를 간섭할 수 없고, 상회가 하회의 우위를 점할 여지를 거부한 점이다. 목사는 말씀을 전하고 교회의 양들을 섬기는 수종자일뿐 다른 직분자보다 더 높은 자리에 있지 않다.

 

또한 한 교회에 목사가 여러 명 있을 경우 담임목사, 부목사 개념이 없고 동역 개념에서 똑같은 목사일 뿐이다. 화란개혁교회 목사는 설교에서 자신이 만들어 낸 이상한 내용이나 이단적 사상을 설교하여 성도들을 쉽게 유혹할 수 없도록 되어있다. 목사가 신앙고백과 다른 말씀을 전할 때는 당회가 제재를 가하여 설교를 하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 만약 목사가 이단적 사상을 전하면 시찰과 노회의 동의하에 당회가 그를 치리할 수 있다.

 

화란개혁교회의 매 예배시간에 일어나는 아주 특이한 모습을 보면 이 점을 잘 이해할 수 있다. 예배 전 설교자로 지정된 목사는 그 주일의 수종장로의 뒤를 따라 강단 앞까지 간다. 그 장로가 목사에게 악수를 청하면서 간단하게 ‘수고 하십시오’라는 인사말을 하거나 혹은 눈길을 보낸다. 그리고 목사는 강단으로 올라가 예배를 진행한다. 이 광경은 온 교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행해진다. 이것의 의미는 당회가 이 목사님을 그 날 말씀의 수종자로 결정했음을 온 교회 앞에 보여 주는 것이다.

 

각 개체 교회의 ‘당회’는 교회 정치에 있어서 가장 최종적인 권위를 가진다. 시찰, 노회, 총회는 단순히 여러 교회 대표들이 ‘소수’ 혹은 ‘다수’ 모임에 불과하다. 여기에는 ‘상회’, ‘하회’ 개념이 없다. 이들 다수회들, 곧 시찰, 노회, 총회는 한 신앙고백 안에서 그리스도의 한 몸을 이루라는 그리스도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한 모임이고, 각 교회에서 해결하기 힘든 신앙의 문제가 있을 때 함께 성도들의 대표들이 모여서 의논하여 말씀에 일치할 때 함께 그것을 따르기로 약속하는 모임이다. 이 모임에서 총회장은 모임이 있을 동안에만 회의의 진행을 맡고 회의가 끝나면 아무런 힘이 없다. 총회는 ‘중간위원회’(interim-commitee)를 두어서 대내외적인 총회적 일을 담당하도록 한다.

 

요약하면, 개혁교회의 특징은 장로교와 다를 바 없지만, 직분자의 교권적 위계체제를 철저하게 없앴다는 점과 교회 연합모임의 성격이 교권적 계단식 체계가 아니라는 점에서 장로교와 차이가 있다.

 

IV. 화란 개혁교회의 모습

 

화란개혁교회의 ‘예배와 교회활동’들을 살펴보자. 화란 자유 개혁교회는 주일 오전, 오후 두 번의 예배를 드린다. 한 가지 한국교회가 배워야 할 것은 오전 예배 참석숫자와 오후 예배 참석숫자가 거의 차이가 없다는 점이다. 신자들의 자녀들은 초등학교에 입학 할 때쯤 되면 부모와 함께 예배에 참석한다. 수요 예배와 새벽 기도회는 없다. 성찬은 3개월에 한 번 시행되는데, 성찬에 예식문(15분 정도)을 읽는 것 외에 설교는 없다. 왜냐하면 성찬 자체가 하나의 무언의 설교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성찬이 있은 주일 저녁에는 구역별로 한 성도의 집에 모여서 커피를 마시며 성도의 교제를 나눈다.

 

화란개혁교회는 장로들의 역할이 크다. 화란교회가 ‘개혁교회’라고 불리지만, 사실 ‘장로교’라 불려도 될 만큼 ‘장로교회’에서의 장로의 역할보다 ‘개혁교회’에서의 장로의 역할이 더 크다. 한 화란자유개혁교회의 예를 들면, 장로는 구역마다 두 사람이 배정되어 있는데, 구역 성도들을 심방하며 영혼을 돌보는 일을 책임진다. 일주일에 이틀 저녁은 교인 가정 심방을 한다. 매주 월요일 저녁에 있는 긴 당회 모임을 합하면 장로들의 교회 사역은 대단한 수준이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장로 직분은 임기가 4년인데 너무 힘들어서 교인들이 장로 되기를 싫어할 정도이다. 그래서 4년 사역하고 2년 쉬고, 다시 선거를 통해 임명받아 사역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장로 직분은 우리 한국에서와 같이 부정적 의미의 명예로운 자리가 아니라, 참으로 섬김의 직분이다. 집사 직분도 4년 임기제인데, 한국의 안수 집사에 해당된다. 구역에 한 명의 집사들이 배정되기에 집사가 장로보다 수적으로 적다.

 

그리고 종교개혁 이후 지금까지 화란개혁교회는 시편 150편 전체에 곡조를 붙인 시편찬송을 파이프 오르간 반주에 맞추어 부른다. 이것은 칼빈이 여러 사람이 도움으로 만들었기에 곡조는 16세기 형태로 단순한 멜로디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의 찬송가가 대부분 영국과 미국의 부흥운동 때 불려졌던 노래들인데 비해서, 시편 찬송은 구약의 성도들부터 지금까지 사랑받는 노래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화란개혁교회 교인들은 왜 한국교회에 ‘시편찬송’이 없는지 의아해 한다. 반대로 한국교회 교인들은 ‘시편찬송’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 금세기에는 화란개혁교회도 시편 이외에도 신앙적으로 건전한 찬송이면 예배 시간에 부르기도 한다. 우리 한국교회도 이 ‘시편찬송’을 배운다면 큰 영적인 유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V. 나가며

 

이제까지 우리는 화란개혁교회의 특징과 실제를 살펴보았다. 화란개혁교회는 철저한 신앙고백적 신앙 위에 교회정치 체계를 세웠다. 화란개혁교회는 개인 각자의 상이한 신앙고백보다는 그리스도의 한 몸, 곧 한 교회 안에서 동일한 신앙고백을 가짐으로 영적인 성도의 교제를 풍성하게 나누며, 더 나아가 이 신앙을 교회 정치와 모든 교회 활동에서 적용하며 살려고 몸부림 친 종교개혁의 장자교회라고 할 수 있다.

 

# 이 글은 임경근 목사의 글을 조금 수정하고 편집하였다(이 글은 손재호 목사의 홈페이지 교회사 자료실에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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