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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상범
성경본문 삿 10:17-11:40
성경본문내용 (17)그 때에 암몬 자손이 모여서 길르앗에 진 쳤으므로 이스라엘 자손도 모여서 미스바에 진 치고(18)길르앗 백성과 방백들이 서로 이르되 누가 먼저 나가서 암몬 자손과 싸움을 시작할꼬 그가 길르앗 모든 거민의 머리가 되리라 하니라(1)길르앗 사람 큰 용사 입다는 기생이 길르앗에게 낳은 아들이었고(2)길르앗의 아내도 아들들을 낳았더라 아내의 아들들이 자라매 입다를 쫓아내며 그에게 이르되 너는 다른 여인의 자식이니 우리 아버지 집 기업을 잇지 못하리라 한지라(3)이에 입다가 그 형제를 피하여 돕 땅에 거하매 잡류가 그에게로 모여와서 그와 함께 출입하였더라(4)얼마 후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 하니라(5)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 할 때에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를 데려오려고 돕 땅에 가서(6)입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암몬 자손과 싸우려 하나니 당신은 와서 우리의 장관이 되라(7)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전에 나를 미워하여 내 아버지 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이제 너희가 환난을 당하였다고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8)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대답하되 이제 우리가 당신을 찾아온 것은 우리와 함께 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게 하려 함이니 그리하면 우리 길르앗 모든 거민의 머리가 되리라(9)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데리고 본향으로 돌아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게 할 때에 만일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게 붙이시면 내가 과연 너희 머리가 되겠느냐(10)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이르되 여호와는 우리 사이의 증인이시니 당신의 말대로 우리가 반드시 행하리이다(11)이에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과 함께 가니 백성이 그로 자기들의 머리와 장관을 삼은지라 입다가 미스바에서 자기의 말을 다 여호와 앞에 고하니라(12)입다가 암몬 자손의 왕에게 사자를 보내어 이르되 네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내 땅을 치러 내게 왔느냐(13)암몬 자손의 왕이 입다의 사자에게 대답하되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과 요단까지 내 땅을 취한 연고니 이제 그것을 화평히 다시 돌리라(14)입다가 암몬 자손의 왕에게 다시 사자를 보내어(15)그에게 이르되 입다가 말하노라 이스라엘이 모압 땅과 암몬 자손의 땅을 취하지 아니하였느니라(16)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광야로 행하여 홍해에 이르고 가데스에 이르러서는(17)이스라엘이 사자를 에돔 왕에게 보내어 이르기를 청컨대 나를 용납하여 네 땅 가운데로 지나게 하라 하였으나 에돔 왕이 이를 듣지 아니하였고 또 그같이 사람을 모압 왕에게 보내었으나 그도 허락지 아니하므로 이스라엘이 가데스에 유하였더니(18)그 후에 광야를 지나 에돔 땅과 모압 땅을 둘러 행하여 모압 땅 동편에서부터 와서 아르논 저편에 진 쳤고 아르논은 모압 경계이므로 그 경내에는 들어가지 아니하였으며(19)이스라엘이 헤스본 왕 곧 아모리 왕 시혼에게 사자를 보내어 그에게 이르되 청컨대 우리를 용납하여 당신의 땅으로 지나 우리 곳에 이르게 하라 하였으나(20)시혼이 이스라엘을 믿지 아니하여 그 지경으로 지나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그 모든 백성을 모아 야하스에 진 치고 이스라엘을 치므로(21)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시혼과 그 모든 백성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시매 이스라엘이 쳐서 그 땅 거민 아모리 사람의 온 땅을 취하되(22)아르논에서부터 얍복까지와 광야에서부터 요단까지 아모리 사람의 온 지경을 취하였었느니라(23)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아모리 사람을 자기 백성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셨거늘 네가 그 땅을 얻고자 하는 것이 가 하냐(24)네 신 그모스가 네게 주어 얻게 한 땅을 네가 얻지 않겠느냐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서 어떤 사람이든지 쫓아내시면 그 땅을 우리가 얻으리라(25)이제 네가 모압 왕 십볼의 아들 발락보다 나은 것이 있느냐 그가 이스라엘로 더불어 다툰 일이 있었느냐 싸운 일이 있었느냐(26)이스라엘이 헤스본과 그 향촌들과 아로엘과 그 향촌들과 아르논 연안에 있는 모든 성읍에 거한지 삼백년이어늘 그 동안에 너희가 어찌하여 도로 찾지 아니하였느냐(27)내가 네게 죄를 짓지 아니하였거늘 네가 나를 쳐서 내게 악을 행하고자 하는도다 원컨대 심판하시는 여호와는 오늘날 이스라엘 자손과 암몬 자손의 사이에 판결하시옵소서 하나(28)암몬 자손의 왕이 입다의 보내어 말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더라(29)이에 여호와의 신이 입다에게 임하시니 입다가 길르앗과 므낫세를 지나서 길르앗 미스베에 이르고 길르앗 미스베에서부터 암몬 자손에게로 나아갈 때에(30)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가로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붙이시면(31)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32)이에 입다가 암몬 자손에게 이르러 그들과 싸우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그 손에 붙이시매(33)아로엘에서부터 민닛에 이르기까지 이십 성읍을 치고 또 아벨 그라밈까지 크게 도륙하니 이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항복하였더라(34)입다가 미스바에 돌아와 자기 집에 이를 때에 그 딸이 소고를 잡고 춤추며 나와서 영접하니 이는 그의 무남독녀라(35)입다가 이를 보고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슬프다 내 딸이여 너는 나로 참담케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이로다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36)딸이 그에게 이르되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여셨으니 아버지 입에서 낸 말씀대로 내게 행하소서 이는 여호와께서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의 대적 암몬 자손에게 원수를 갚으셨음이니이다(37)아비에게 또 이르되 이 일만 내게 허락하사 나를 두 달만 용납하소서 내가 나의 동무들과 함께 산에 올라가서 나의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 하겠나이다(38)이르되 가라하고 두달 위한하고 보내니 그가 그 동무들과 함께 가서 산 위에서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고(39)두달만에 그 아비에게로 돌아온지라 아비가 그 서원한 대로 딸에게 행하니 딸이 남자를 알지 못하고 죽으니라 이로부터 이스라엘 가운데 규례가 되어(40)이스라엘 여자들이 해마다 가서 길르앗 사람 입다의 딸을 위하여 나흘씩 애곡하더라
강설날짜 2012-11-07

2012년 11월 7일 한결교회 수요강설

사사기 제21강


사사 입다 이야기


말씀 : 삿 10:17-11:40


지난주에 살펴보았듯이 오늘 본문 역시 협상과 조종, 이용의 맥락에서 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11:1-3 : 입다의 일생

2) 11:4-11 :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이야기

3) 11:12-28 : 입다와 암몬 왕과의 협상과정

4) 11:29-40 : 전쟁의 승리와 입다의 서원


그런데 이 입다 이야기를 해석함에 있어서 기드온과 마찬가지로 크게 두 가지의 입장이 있습니다. 입다를 믿음의 인물로서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있고, 그 반대로 입다를 아주 부정적으로 보는 입장이 있습니다. 입다를 긍정적으로 보는 경우는 김홍전 박사님이나 메튜헨리, 그리고 대부분의 청교도의 경우에 그렇게 해석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입다를 부정적으로 보는 경우는 대부분의 저명한 성경신학자들, 현대신학자들이 주류를 이룹니다. 입다를 긍정적으로 보는 김홍전 박사님 같은 경우는 입다의 서원까지도 아주 긍정적으로 해석합니다. 한글 성경에는 입다가 자기 딸을 번제로 하나님께 바쳤다고 나와 있지만, 그것이 잘못 번역된 것이고, 사실은 입다가 자기 딸을 마치 나실인으로 하나님께 드렸듯이 그렇게 드려서 하나님께 번제 드리는 그 제사의 일을 평생 동정녀로 헌신하도록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해석은 조금 지나친 것 같고, 대부분의 목회자와 청교도들은 입다가 훌륭한 믿음의 영웅이지만, 그러나 서원한 것만큼은 큰 실수라고 언급합니다. 그럴지라도 입다는 위대하고 훌륭한 영웅으로서 칭송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자라고 언급합니다.

 

그러나 과연 본문이 입다를 전체적으로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단지 마지막에 한 가지 실수만 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지 우리는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오늘 본문을 통해 이 사람이 믿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로 부정적인 부분이 더 많다고 해석합니다. 이 해석에 동의 안하셔도 됩니다. 제가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본문을 한 구절 한 구절을 보면서 생각해보십시다.


1) 11:1-3 : 입다의 생애


(1)길르앗 사람 큰 용사 입다는 기생이 길르앗에게 낳은 아들이었고(2)길르앗의 아내도 아들들을 낳았더라 아내의 아들들이 자라매 입다를 쫓아내며 그에게 이르되 너는 다른 여인의 자식이니 우리 아버지 집 기업을 잇지 못하리라 한지라(3)이에 입다가 그 형제를 피하여 돕 땅에 거하매 잡류가 그에게로 모여와서 그와 함께 출입하였더라


길르앗은 지역 이름입니다. 그리고 입다는 이름이 길르앗인 사람의 자식인데, 사사기 저자는 그를 큰 용사라고 일컫습니다. 이 명칭은 믿음의 용사 기드온에게 칭해졌던 호칭입니다. 입다를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바로 이 호칭이 입다의 믿음을 입증해주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러나 이 용어는 그가 기백이 뛰어나고 전쟁에 능한 용사라는 뜻이지 그의 신앙이나 인격의 훌륭함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울과 여로보암에게도 이 명칭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어쨌든 큰 용사인 입다는 불행하게도 어두운 과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기생의 자식이었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기생은 하나님 앞에 가증한 여자였고, 그녀로부터 태어난 자식을 사생자라고 하는데, 율법에 의하면 사생자는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올 수 없었습니다(신 23:2). 그러므로 입다는 사회적으로 괄시와 멸시를 받을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입다의 아버지 길르앗이 입다를 집에 데려와 키웠던 모양입니다. 아버지가 데려와 키웠다면 그는 길르앗의 아들이지 사생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길르앗의 본처로부터 태어난 자식들이 나중에 아버지 길르앗이 죽자, “사생자의 자식이 우리와 함께 분깃을 차지할 수 없다” 해서 그를 집에서 쫓아내었던 것입니다. 하루아침에 의지할 데 없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는데, 아마 그는 이 억울함을 그 마을의 장로들에게 호소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7절에서 볼 때 이 장로들도 입다를 미워하여 그 호소를 거절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입다는 하는 수 없이 길르앗을 떠나 돕 땅으로 망명했습니다. 돕 땅은 좋은(토브) 땅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이 입다의 용맹함과 기백이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아서 많은 잡류들이 몰려왔습니다. 입다를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이 잡류를 가난한 사람들, 입다와 같이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이라고 보면서, 마치 다윗이 사울의 낯을 피하여 도망갔을 때, 그에게 환란당하고 멸시 당하던 많은 사회적 약자들이 모였던 것과 같은 경우라고 봅니다. 그리고 입다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그들을 인도하면서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기 위한 리더쉽을 훈련받았다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조금 잘못된 해석입니다. 왜냐하면, 여기서 ‘잡류’라고 되어 있는 이 단어는 “비었다”는 뜻의 단어인데, 이 단어가 사람과 관련해서 쓰일 때는 항상 불량배들, 비류들, 방탕한 자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에서 단 한 번도 좋은 의미로 쓰이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이 단어가 아비멜렉이 경박한 유를 샀다라고 할 때 쓰인 단어와 동일합니다(9:4). 그래서 이 단어는 불량배들과 방탕한 자들이 입다의 기백과 용맹함에 매력을 느끼고 스스로 따랐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단지 아비멜렉과 차이점이 있다면, 아비멜렉은 그들을 돈 주고 샀던 반면, 입다의 경우는 그들 스스로가 입다를 따르겠다고 모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비멜렉은 그들을 데리고서 자기 형제들에게 복수했지만, 입다는 복수하지 않았습니다. 아비멜렉과 입다는 각각 첩의 자식, 또는 기생의 자식으로서 비천한 신분의 사람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러나 아비멜렉은 무자비한 살인과 동족상잔이라는 파괴를 행했지만, 입다는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입다와 아비멜렉은 비슷하면서도 하늘과 땅이라는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입다는 다만 돕 땅에서 잡류들을 모아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살았던 모양입니다. 물론 그가 불량배들을 모았다고 해서 무조건 강도나 살인을 행해서 먹고 살았다고 볼 필요는 없습니다. 그 당시 잡류들의 무리들은 보통 그 지역의 군사적 용병으로서 일하여 먹고 살았기 때문에, 입다도 그렇게 살았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이 부분에서 입다가 긍정적인 인물이라고 볼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그가 기백과 용맹함이 있는 인물이었고 리더쉽이 뛰어난 인물이었음에는 틀림없습니다.


2) 11:4-11 : 길르앗 장로들의 입다 설득


이제 암몬 왕이 쳐들어오는 이야기를 합니다. 먼저 10장 17-18절을 보시면,


(17)그 때에 암몬 자손이 모여서 길르앗에 진 쳤으므로 이스라엘 자손도 모여서 미스바에 진 치고(18)길르앗 백성과 방백들이 서로 이르되 누가 먼저 나가서 암몬 자손과 싸움을 시작할꼬 그가 길르앗 모든 거민의 머리가 되리라 하니라(삿 10:17-18)


암몬 자손이 쳐들어오자, 이스라엘 자손들도 모여서 진을 쳤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스라엘에게는 전쟁을 지도할 용맹한 장군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길르앗 장로들(방백들)이 지도자를 찾아 나섰습니다. 그들은 전쟁할 군대장관을 찾으면, 그 사람을 군대장관뿐만 아니라, 평상시에 자신들을 다스릴 자신들의 머리로 삼아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머리란 우두머리로서 거의 왕과 같은 지도자를 말합니다. 이것은 조금 위험한 발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만이 그들의 머리가 되셔야 하는데, 그들은 사람을 왕으로 세우고자 하는 것입니다. 어쨌든 길르앗 방백들(장로들)은 여러 논의 끝에 돕 땅에서 자신의 기백과 용맹함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입다가 자신들의 지도자로서 가장 적합한 인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입다를 찾아왔습니다. 11장 4절을 보시면,


(4)얼마 후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 하니라(5)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 할 때에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를 데려오려고 돕 땅에 가서(6)입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암몬 자손과 싸우려 하나니 당신은 와서 우리의 장관이 되라


군대장관 자리를 줄 테니 우리를 위해 싸워달라고 말합니다. 그때 입다가 뭐라고 말합니까?


(7)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전에 나를 미워하여 내 아버지 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이제 너희가 환난을 당하였다고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입다는 “나를 싫어서 버릴 때는 언제고, 이제 어려움을 당하니깐 날 찾아왔느냐? 너희가 그렇게 옹호했던 내 형제들에게나 가서 부탁해라. 왜 나한테 왔냐? 나는 너희들 안 도와줄 것이다.” 그렇게 말합니다. 이 장면이 재미있게도,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대화와 비슷합니다. 이스라엘도 평안할 때는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그런데 막상 환란이 닥치자 그제서야 하나님을 찾고 도와달라고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회주의적인 요청에 냉정하게 거절하셨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회주의적인 모습과 오늘 본문의 길르앗 장로들의 기회주의적인 모습이 잘 대칭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이후의 여호와 하나님의 반응과 입다의 반응에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부모의 심정, 연민 때문에 그 마음이 바뀌었지만, 입다는 자신의 이익과 개인적인 야망에 의해서 움직였습니다. 입다는 그렇게 차갑게 따지면서 거절함으로써 더 좋은 것을 얻어냈습니다. 그가 무엇을 더 얻어내었는지 8절을 보십시오.


(8)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대답하되 이제 우리가 당신을 찾아온 것은 우리와 함께 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게 하려 함이니 그리하면 우리 길르앗 모든 거민의 머리가 되리라


입다의 냉정한 거절에 길르앗 장로들이 회개하면서 “우리를 위해 싸워준다면, 전시의 군대장관 자리뿐만 아니라, 평상시의 우리의 우두머리가 되게 해주겠다.” 그렇게 말합니다. 이런 거 보면 입다는 협상의 귀재입니다. 기회주의자들인 길르앗 장로들 머리위에 올라타서, 그들을 잘 삶아 요리해서 더 좋은 자리를 얻어내었던 것입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장로들이 군대장관과 우두머리 자리를 준다고 하자, 다시 한 번 그 약속을 분명히 지킬 것인지 확인합니다.


(9)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데리고 본향으로 돌아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게 할 때에 만일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게 붙이시면 내가 과연 너희 머리가 되겠느냐


여기 보면, 입다는 만일 자신이 암몬 자손과 싸워서 여호와께서 승리를 주시면, 정말 나에게 우두머리 자리를 주겠느냐고 물어봅니다. 전쟁이 여호와께 달려있다고 말하는 것을 볼 때, 아예 믿음이 없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마음 기저에는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신이 우두머리가 되고자 하는 야심으로 가득합니다. 이렇게 확인 차 묻자 장로들은 여호와께서 이 일의 증인이시다라고 말합니다.


(10)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이르되 여호와는 우리 사이의 증인이시니 당신의 말대로 우리가 반드시 행하리이다


그들은 여호와 앞에 맹세함으로써 입다와의 계약을 확증합니다. 이제 입다는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11)이에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과 함께 가니 백성이 그로 자기들의 머리와 장관을 삼은지라 입다가 미스바에서 자기의 말을 다 여호와 앞에 고하니라


입다가 고향으로 돌아가자, 백성들이 환영하여 맞이하였고 그를 자신들의 군대장관과 우두머리로 삼았습니다. 전쟁에 승리하지도 않았는데, 머리로 삼았습니다. 전폭적인 신뢰와 지지를 보낸 것입니다. 그리고 입다는 미스바에서 자기의 말을 여호와 앞에 고하였습니다. 이 말은 미스바(하나님께 제사로 예배하던 처소, 거룩한 장소일 것으로 추정됨)의 거룩한 장소에서 입다가 자신이 길르앗의 군대장관이요 머리가 되었음을 공적으로 선언하고 맹세하는 계약체결 의식을 행한 것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공적인 선언과 함께 자신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해달라는 기도를 거기서 드렸을 것입니다.


3) 11:12-28 : 암몬 왕과 입다의 외교 협상


이제 12절부터 입다는 암몬 왕에게 사자를 보내어 대화를 통해 협상하고자 합니다. 곧바로 전쟁할 것이 아니라, 전쟁은 최후의 수단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입다는 먼저 암몬 왕에게 왜 쳐들어왔느냐고 물어 따집니다.


(12)입다가 암몬 자손의 왕에게 사자를 보내어 이르되 네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내 땅을 치러 내게 왔느냐


그러자 암몬 왕이 대답합니다.


(13)암몬 자손의 왕이 입다의 사자에게 대답하되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과 요단까지 내 땅을 취한 연고니 이제 그것을 화평히 다시 돌리라


여기서 언급된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과 요단까지의 땅은 예전에 모압 사람들의 땅이었지만, 아모리 사람들이 그것을 빼앗았고, 이후에 모세의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빼앗아서 정착하게 된 땅이었습니다(민 21:21-31). 입다 시대에는 분명히 암몬 사람들이 모압을 점령했던 것으로 보이고, 이제는 이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강까지의 이스라엘 땅까지 자기 땅이라고 억지 주장하면서 점령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억지주장에 대해서 입다는 아주 정확하고 공의로운 논증을 통해서 이 땅이 이스라엘의 땅임을 선언합니다. 여러 가지 긴 말을 했지만 요점은 세 가지 입니다. 첫째 이스라엘이 정착한 이 땅은 암몬의 땅이 아니었다는 것, 둘째 아모리 족속의 땅인데 여호와께서 그들을 몰아내시고 이스라엘에게 친히 허락하신 땅이라는 것, 셋째 그 땅 옆에 붙어있는 모압 족속들도 300년 동안 아무런 항의도 하지 않았다는 것, 세 가지를 말합니다.


첫째로 이스라엘이 정착한 이 땅은 암몬의 땅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를 보겠습니다. 먼저 지도를 보십시오.

1.jpg

 

이 지도를 보시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후에 가데스에 이르러서는 에돔에 사자를 보내어 통행을 허락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이때 에돔이 거절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냥 지나쳐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 나라 같으면, 예를 들어 바벨론이나 앗수르 같은 경우는 무조건적으로 전쟁을 통해 모조리 정복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인 이스라엘은 그러한 단순한 침략과 약탈을 목표로 하는 전쟁이 아니라, 가나안 족속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대의명분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심판의 대상으로 고려하지 않으신 에돔 족속과 모압 족속, 그리고 암몬 족속과는 충돌하지 말도록 명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돔 족속과 모압족속이 통행을 거절하자 어떻게 하지 못하고 빙 둘러서 아르논 강가에 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아모리 족속에게 통행을 허락해달라고 요청했을 때, 아모리 족속의 헤스본 왕 시혼은 통행을 거절할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을 공격하고자 했습니다. 이 아모리 족속은 심판의 대상이었던 가나안 족속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비로소 이스라엘에게 전쟁을 명하시고 아모리 족속을 그들의 손에 붙이셔서 진멸하게 하시고 그 땅을 취하게 하신 것입니다(지도의 빨간색 부분에 해당되는 땅).

 

그러므로 이 땅은 애초에 암몬 땅도 아니고 모압 땅도 아닙니다. 아모리 족속의 땅이었고, 그 땅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취하라고 주신 땅입니다. 그래서 두 번째로 입다는 하나님이 주신 땅이므로 우리 땅이라는 것입니다.


(23)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아모리 사람을 자기 백성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셨거늘 네가 그 땅을 얻고자 하는 것이 가 하냐(24)네 신 그모스가 네게 주어 얻게 한 땅을 네가 얻지 않겠느냐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서 어떤 사람이든지 쫓아내시면 그 땅을 우리가 얻으리라


그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에 있어서 영토전쟁은 곧 전쟁 당사자들이 각각 섬기는 신들의 전쟁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런 세계관에 기초해서 호소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섬기는 그모스라는 신이 너에게 땅을 주어 취하게 한다면, 너희가 당연히 신의 뜻인 줄 알고 취하지 아니하겠느냐? 그것이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치가 아니냐... 우리가 사는 이 땅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땅이니 무슨 땅이든지 주시면 우리가 취할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논리가 아주 뛰어나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로 공소시효가 끝났음을 말합니다.


(25)이제 네가 모압 왕 십볼의 아들 발락보다 나은 것이 있느냐 그가 이스라엘로 더불어 다툰 일이 있었느냐 싸운 일이 있었느냐(26)이스라엘이 헤스본과 그 향촌들과 아로엘과 그 향촌들과 아르논 연안에 있는 모든 성읍에 거한지 삼백년이어늘 그 동안에 너희가 어찌하여 도로 찾지 아니하였느냐


만일 모압 족속이 그 땅을 자신의 땅이라고 생각했으면, 계속 공격하면서 찾고자 했을 것이지만, 300년 동안 아무런 항의도 없었습니다. 발람 선지자를 시켜서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하였던 모압 왕 발락 왕도 저주하고자 했을 뿐이었지, 어떻게 그들을 공격해서 땅을 차지하려고 했다거나, 그 땅은 우리 땅이니 달라고 하면서 따져물었다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곧 모압 왕도 그 땅이 자기 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최종적으로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27)내가 네게 죄를 짓지 아니하였거늘 네가 나를 쳐서 내게 악을 행하고자 하는도다 원컨대 심판하시는 여호와는 오늘날 이스라엘 자손과 암몬 자손의 사이에 판결하시옵소서 하나(28)암몬 자손의 왕이 입다의 보내어 말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더라


여호와를 온 세상의 재판장이요 심판자이심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입다의 역사관 신앙관이 잘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무고함과 암몬 왕의 악한 억지 주장에 대해 판결하시기를 호소합니다. 이를 통해 확실히 전쟁의 명분과 정의는 입다에게 돌아갔습니다. 전쟁에서 매우 중요한 것은 전쟁의 대의명분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침략과 약탈이라는 눈에 뻔히 보이는 악한 전쟁이라도 억지로 그럴듯한 대의명분을 만들어야 사람들을 하나로 결집시켜 전쟁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입다의 주도면밀한 논증을 통해 암몬은 아무 할 말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악함이 드러난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정신적으로 패배한 것입니다.

 

입다의 이스라엘 역사에 관해 정통한 지식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신앙, 그리고 그의 협상을 위한 화술의 대가로서의 자질이 이러한 명분전쟁에서 승리하게 한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확실히 입다는 화술의 대가입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심판자로 믿고 있는 것을 볼 때 그가 여호와께 대한 신앙이 전혀 없는 사람은 아닙니다. 믿음의 인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온전한 믿음인가? 온전히 하나님을 경외하고 신뢰하는 믿음인가?” 하는 점에서는 의문이 남습니다. 왜냐하면 다음 이야기에서 그의 화술의 대가로서의 자질이 그로 하여금 아주 비참한 처지로 떨어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4) 11:29-40: 전쟁의 승리와 입다의 서원


암몬 왕이 악하게 입다의 협상안을 거절하자, 하나님이 신이 입다에게 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입다를 사사로 세워 본격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암몬 자손들의 압제에서 구원해내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아주 좋은데, 갑자기 입다가 위험한 발언을 합니다.


(29)이에 여호와의 신이 입다에게 임하시니 입다가 길르앗과 므낫세를 지나서 길르앗 미스베에 이르고 길르앗 미스베에서부터 암몬 자손에게로 나아갈 때에(30)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가로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붙이시면(31)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


이것이 무엇입니까? 이 구절을 다르게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입다는 이 전쟁을 승리하게 하시고 자기를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게 하시면, 그 집에 돌아갈 때 제일 처음 맞이하는 사람을 하나님께 번제로 바치겠다고 서원하였습니다. 이 입다의 서원으로 인해서 이야기는 이제 급반전되어, 더 이상 전쟁에서 어떻게 승리를 얻었는지, 승리를 얻은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사 입다의 통치를 통해 얼마큼 태평세월을 누렸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하지 않고, 입다가 자신의 서원으로 말미암아 어떤 비참한 결말을 맞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로 인해서 에브라임 지파간의 동족상잔의 비극이 어떻게 일어났는지에 대해서 장황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전쟁의 승리에 관한 언급은 딱 두 구절 밖에 없습니다.


(32)이에 입다가 암몬 자손에게 이르러 그들과 싸우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그 손에 붙이시매(33)아로엘에서부터 민닛에 이르기까지 이십 성읍을 치고 또 아벨 그라밈까지 크게 도륙하니 이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항복하였더라


이렇게 이야기의 초점이 구원과 승리가 아니라, 입다의 서원으로 인한 비참한 결말과 동족상잔의 비극에 있다는 것은 사사기 저자가 입다를 전혀 긍정적인 인물로 묘사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특히 입다가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끔찍한 서원을 하는 모습은 어찌하든지 이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하나님과 최대한으로 협상해서 어떤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기회주의자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입다의 약삭빠르고 계산적인 본성을 보여주며, 자기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상황과 환경을 조성해 보려는 또 다른 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그것이 드러나지만 협상은 입다의 삶의 방식이었습니다.

 

도대체 우리는 오늘 본문을 보면서 여호와께서 승리를 위해 입다를 사용하고 계신 것인지, 아니면 입다가 승리하기 위해 여호와를 사용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애매모호한 상황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와 아울러서 사람을 번제로 바치겠다는 것은 얼마나 이교적인 사고방식입니까?


(21)너는 결단코 자녀를 몰렉에게 주어 불로 통과케 말아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레 18:21)

(31)네 하나님 여호와께는 네가 그와 같이 행하지 못할 것이라 그들은 여호와의 꺼리시며 가증히 여기시는 일을 그 신들에게 행하여 심지어 그 자녀를 불살라 그 신들에게 드렸느니라(신 12:31)

(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2)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또 이르라 무릇 그가 이스라엘 자손이든지 이스라엘에 우거한 타국인이든지 그 자식을 몰렉에게 주거든 반드시 죽이되 그 지방 사람이 돌로 칠 것이요(3)나도 그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그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이는 그가 그 자식을 몰렉에게 주어서 내 성소를 더럽히고 내 성호를 욕되게 하였음이라(4)그가 그 자식을 몰렉에게 주는 것을 그 지방 사람이 못 본 체하고 그를 죽이지 아니하면(5)내가 그 사람과 그 권속에게 진노하여 그와 무릇 그를 본받아 몰렉을 음란히 섬기는 모든 사람을 그 백성 중에서 끊으리라(레 20:1-5)


율법에 나온 것처럼 하나님께서 매우 진노하시는 죄악이 바로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제물로 바치는 의식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암몬 족속들과 모압족속들이 주로 행하던 바였습니다. 입다는 자신의 손으로 공격하여 진멸한 암몬 자손들의 이교 풍습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서원은 하나님의 분노와 진노를 사는 서원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이방신 취급하는 행위요, 하나님을 이용하고 조종해보려고 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와 사랑과 충성을 드려야 할 언약의 대상자로서 보는 것이 아니라, 협상해야 할 대상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분노하셨습니다. 그 분노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자신의 악한 서원에 따른 그 무시한 대가를 자기 스스로 치르도록 하신 것입니다. 누가 제일 처음 맞이하며 나왔습니까?


(34)입다가 미스바에 돌아와 자기 집에 이를 때에 그 딸이 소고를 잡고 춤추며 나와서 영접하니 이는 그의 무남독녀라


자신의 외동딸이 춤추며 맞이하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자마자 입다는 탄식하며 슬퍼할 수밖에 없습니다. 본문은 전쟁에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승리의 기쁨은 다 사라지고, 온통 탄식과 슬픔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입다의 딸은 아빠가 어떤 서원을 했는지도 모르고 전쟁의 승리에 도취되어 춤추며 맞이하러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죽음의 춤이었습니다(죽음의 왈츠). 이제 어떻게 할 것입니까? 입다는 그 서원을 지키려고 합니다. 딸도 그 사실을 알고서는 여호와께 한 서원이니 지켜야 된다고 말합니다.


(35)입다가 이를 보고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슬프다 내 딸이여 너는 나로 참담케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이로다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36)딸이 그에게 이르되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여셨으니 아버지 입에서 낸 말씀대로 내게 행하소서 이는 여호와께서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의 대적 암몬 자손에게 원수를 갚으셨음이니이다(37)아비에게 또 이르되 이 일만 내게 허락하사 나를 두 달만 용납하소서 내가 나의 동무들과 함께 산에 올라가서 나의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 하겠나이다(38)이르되 가라하고 두달 위한하고 보내니 그가 그 동무들과 함께 가서 산 위에서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고(39)두달만에 그 아비에게로 돌아온지라 아비가 그 서원한 대로 딸에게 행하니 딸이 남자를 알지 못하고 죽으니라 이로부터 이스라엘 가운데 규례가 되어(40)이스라엘 여자들이 해마다 가서 길르앗 사람 입다의 딸을 위하여 나흘씩 애곡하더라


입다가 이 서원을 지킨 것은 잘한 행동일까요? 잘못한 행동일까요? 이 점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해석을 합니다만,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그가 분별없이 서원한 것도 잘못이지만, 그러나 그 서원을 이행하여 사람을 죽여 하나님께 바친 것은 더 큰 악행인 것입니다. 정말 입다가 신앙의 인물이었다면, 차라리 잘못된 서원한 것을 회개하고 그 서원을 지키지 말아야 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도 가증히 여기시지만, 사람을 제물로 하나님께 바쳐서 하나님을 이방신 취급하는 것을 더욱 가증히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입다는 자신이 그런 서원하였으므로 그 서원을 어기는 것보다는 자기 딸을 죽이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한 서원은 반드시 지켜야 된다는 율법 조항에 근거해서 외동딸을 죽여서라도 지켜야 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21)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네게 죄라(22)네가 서원치 아니하였으면 무죄하니라 마는(23)네 입에서 낸 것은 그대로 실행하기를 주의하라 무릇 자원한 예물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 네가 서원하여 입으로 언약한 대로 행할지니라(신 23:21-23)


율법에 이 말씀이 있으니, 서원을 무조건 지키겠다는 것... 그것이 정말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태도입니까? 아닙니다. 사실 이 생각이 얼마나 일관성이 없는 생각입니까? 율법에 분명히 사람을 바치는 제사를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고, 또 심지어는 그런 악행을 행하면 돌로 쳐죽일 것을 명하시면서 금하셨는데, 그런 엄중한 율법의 계명에 대해서는 무지하든지 아니면,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서, 이런 아주 이교적이고 잘못된 서원에 대해서는 율법을 따라 목숨 바쳐 지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전혀 일관성이 없는 것입니다. 결국 이것이 드러내는 것은 입다가 얼마나 율법에 무지한 자며, 하나님을 섬기되 순전히 자기 나름대로 하나님을 섬기고, 그래서 하나님을 대하기를 마치 이 세상의 이교 신들처럼 하나님을 협상의 대상으로 대하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만 입다의 모습일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가 다 그렇게 종교적으로 타락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타락상을 사사기 저자는 이 입다라는 인물을 통해 표상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입다는 자기 자신의 행동에 대한 결과를 스스로 맞이해야 하는 입장에 놓였습니다. 아브라함의 경우는 하나님께서 자기 독자를 번제로 바치라고 명령하셨고, 그리고 번제로 바치려고 하실 때에 하나님께서 말리셨습니다. 그러나 입다의 경우는 하나님께서 바치라고 하신적도 없는데, 스스로 바치겠다고 하였고, 그리고 그가 자신의 외동딸을 바치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는 침묵하십니다. 이것은 입다의 서원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표현입니다.

 

물론 여호와께서 모든 이야기의 후방에서 다 지켜보시고, 섭리하심으로써 아주 기회주의자적인 입다 마저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을 암몬의 압제에서 구원하여내셨지만, 또한 입다에게 승리의 기쁨이 아닌 탄식을 주심으로, 하나님은 결코 그들에 의해서 조종당하고 이용당하시는 분이 아니심을 드러내시고, 자신을 이방신 취급한 입다를 스스로 비극적인 일을 당하도록 내버려두심으로써 징계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의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인격자로서, 언약의 당사자로서 우리의 신뢰의 대상이요 사랑의 대상이지, 우리 자신을 위해 이용하고 조종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뭔가 조건을 제시하면, 그에 응당한 대가를 주시는 그런 협상의 대상으로 생각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 잘 나오고, 헌금 잘 내고, 헌신 충성하면, 복주시고, 사업 잘되게 하시고, 건강을 주시고, 만사형통하게 해주시고...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이 세상의 모든 종교의 신과 동급으로 취급하는 매우 신성모독적인 죄악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우리 가운데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좀 더 고차원적으로 이런 식의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율법주의적인 생각입니다. 우리는 천성적으로 지독한 율법주의자들이기 때문에, 은혜생활을 잘 못하면, 언제라도 여기에 빠져들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옛날 우리 할머니들이 새벽에 정화수 떠놓고 정성을 들여서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는 것처럼 신앙생활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가 그런 식으로 공로를 쌓아서 구원을 받습니다. 내 정성을 들이면 신이 받아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불교도 자기가 열심히 정성을 들여서 부처에게 절하고 기도하고, 108번뇌를 수행을 통해 없애고, 속세의 욕심을 벗어던지고, 열심히 선하게 살면, 소위 성불하면 부처가 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가 다 그렇습니다. 다 자기 열심, 자기 결단, 내 헌신, 희생이 근거가 되고 공로가 되어서 모든 것을 이룹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 그 사람을 조건적인 법의 관계 아래 가두는 것이고, 거기는 오직 인과율의 법칙만이 주관하는 것입니다. 책임의 테두리에 모든 인생들이 갇혀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어떠합니까? 유일하신 참 하나님께서 그런 식의 하나님이십니까?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그러한 관계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이고, 은혜와 신뢰와 사랑의 관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얼마나 자주 세상의 종교처럼 책임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율법적으로 신앙생활 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기도 열심히 해야지, 말씀 열심히 읽어야지... 예배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십일조도 하고, 열심히 전도해야지...” 그렇게 내 못난 것으로 인해서 자책하며 삽니다. 물론 기도 안하면 전도 안하고 사는 것에 대해서 죄책감을 느껴야 합니다만, 그러나 그렇게 못 살기 때문에, 하나님께 날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용납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스스로 절망에 빠진다면 그것은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하나님께 사랑받을 만한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한 조건을 갖추기 위해서 나의 행위에 얽매이는 삶을 사는 것은 바로 오늘 본문에서 입다가 하고자 했던 것과 거의 동일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협상하려고 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이 세상 종교의 신과 동급으로 취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런 식의 신앙생활을 가르치는 자에 대해서 저주를 선언한 것입니다. 그것은 거짓 복음이요 사람을 망하게 하는 복음이요 그것을 전하면 천사라도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저주를 선언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율법을 도입하게 되어진다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는 없어지고, 성령의 은혜도 없어지고, 오직 율법과 죄에 종노릇하는 비참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정말 예수님을 믿음으로 거듭난 자라고 한다면, 주님과 함께 죽고 산 자라고 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책임의 테두리 안에 있지 않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온전히 죄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미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십니다. 우리가 잘 해야 성령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성령을 주셨고, 성령을 주신 것은 모든 축복을 우리에게 주시겠다는 보증이 됩니다. 그러므로 모든 신령한 축복들이 값없이 은혜로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께 어떤 조건을 제시해야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거나, 또는 하나님께 어떤 행위를 제시해야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내 행위가 먼저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먼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존재하기도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셨고,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셔서 우리를 향한 자기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그런 사랑을 우리가 받았고, 또 지금까지 사랑받아왔고, 지금도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현재 아무리 죄가 많고 연약해도, 주님의 그 십자가의 은혜를 의지하여 주님께 나아갈 수 있고, 주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고, 주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나에게서 어떤 조건을 만들어서 하나님께 나아가려고 하거나, 내가 나를 얼마만큼 닦고 준비하고 조건이 완성되면 하나님이 응답하시겠지 그렇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향한 신뢰이고, 그것이 바로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음으로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께 나아가서 먼저 주님의 사랑을 많이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우리가 깊이 깨달을 때, 우리는 그 주님의 은혜를 알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고, 거기서 진정한 순종과 충성이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은혜를 힘입어 언약의 대상자로서 인격자로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랑함으로 충성하는 모든 한결지체들이 되게 하여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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