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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고전 4:14-21
성경본문내용 (14)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15)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16)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17)이를 인하여 내가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니 저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 곧 내가 각처 각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18)어떤 이들은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지 아니할 것같이 스스로 교만하여졌으나(19)그러나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의 말을 알아 볼 것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 보겠노니(20)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21)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
강설날짜 2013-05-08

 
2013년 고린도전서 공부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말씀:고린도전서 4:14-21

 

우리는 지난 시간에 4:6-13절 말씀을 통해서 바울 사도가 자신이 본이 된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본에 비추어 볼 때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거꾸로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을 믿게 되면 교회에서나 세상에서 대단한 능력들이 나타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자신이 사도이지만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어떻게 사용하시는가를 증거했습니다. 죽이기로 작정한 자처럼 미말에 처하게 하셔서 천사와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미련하고 약하고 비천하고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 맞으며 정처가 없고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하고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권면하니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이렇게 말한 것은 고린도 교회 교인들을 부끄럽게 하고자 함이 아니었습니다. 사랑하는 자녀처럼 권면하고자 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 14-15절에 보면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교인들을 부끄럽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지만 아비는 많지 않다고 하는 것입니다. 곧 바울 사도는 아비의 심정으로 고린도 교회 교인들을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으로 너희를 낳았다고 합니다. 바울 사도는 복음으로 고린도 교회 교인들을 낳은 영적인 아비인 것입니다. 그래서 17절에 보면 디모데에게도 아들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15절에서 말한 일만 스승이란 율법이 몽학선생임을 말할 때에 사용한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수많은 사람들의 선생이 있지만 아비는 적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 사도는 자신이 아비로서 그들을 자기의 힘으로 낳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예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이 됩니다. 마태복음 23:8-11절을 보면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이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지도자는 하나이니 곧 그리스도니라.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자기들을 높이면서 높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하며 선생이라는 말을 듣기 좋아하는 것을 보고 자기를 따르는 무리들과 제자들에게 권면하신 말씀입니다. 너희는 선생이라, 아비라, 지도자라는 칭함을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선생은 한 분이시요, 아비도 한분이시요, 지도자도 한분이십니다. 땅에서 선생이나 아비나 지도자는 다 자기의 권세를 행사하는 자들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갑의 위치에 있는 자들입니다. 땅에서는 군사부일체라고 하여 권위의 상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 큰 자란 섬기는 자가 큰 자입니다(참조. 마 20:25-28).

 

세상과 하나님의 나라가 이처럼 다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가 아비라고 하는 것은 자기는 섬기는 자라는 것입니다. 곧 자기의 권위를 내세우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그리스도 안에서를 빼버리면 자기가 아비가 되고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자기가 낳은 자들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15절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가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입니다. 15절을 다시 보면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즉 자기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섬기는 자로서 고린도 교회 교인들을 권면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 사도가 권면하는 그 권면이 무엇입니까? 16절에 보면 “그러므로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 받으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자기 자신을 본받는 자가 되라고 권면을 합니다. 17절에 보면 이를 인하여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영적인 아들 디모데를 보낸다고 합니다.

 

그러면 바울 사도가 디모데를 보내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합니까? 17절을 다시 보면 “이를 인하여 내가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니. 저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 곧 내가 각처 각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회에 영적인 아들 디모데를 보내는 이유는 그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한 행사 곧 바울이 각처 각 교회에서 가르친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그러면 바울 사도가 무엇을 가르치고 본을 보였습니까? 18-21절을 보면 “어떤 이들은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지 아니할 것 같이 스스로 교만하여졌으나 그러나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의 말을 알아 볼 것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 보겠노니.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라고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가르치고 그 하나님 나라의 능력을 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회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서 가게 되면 그들의 말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능력을 보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말로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면서 실제 그 삶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써의 그 능력이 나타나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로인해 그들 가운데 다툼과 파당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 사도가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고 했는데 이 능력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흔히 능력하면 방언이나 예언이나 신유와 같은 이런 것들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부흥회를 하거나 기도원에 가면 이러한 것들을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광고를 하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능력을 받자고 합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14장에 보면 이미 고린도 교회에는 이러한 능력들은 풍성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인들에게 가면 알아보고자 한 하나님의 나라의 능력이란 그런 것이 아님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능력 그러면 이미 고정된 그런 생각들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여러 가지 은사들만이 아니라 교회에서 흔히 말하는 능력이라는 것이 세상에서 통하는 그런 능력들을 생각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세상 사람들보다 잘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잘된다는 것도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내용들입니다.

 

세상은 말 그대로 능력이 대접받는 곳입니다. 무능하면 도태됩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국민교육헌장을 암송하면서 자랐습니다. 자신의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는 환경에서 자랐기에 능률과 실질이 나타나지 않으면 가정에서나 국가에서나 교회에서는 열등한 인간으로 여기는 그런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골수에 박힌 능력이란 것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눈에 보이는 어떤 결과물을 성취해 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도 능력이란 것이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으로 말하여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공사례를 설교시간에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좋아라고 듣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간증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이야기를 하면 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이 환영하는 능력이란 하나님 나라의 능력과 무관합니다. 무관한 정도가 아니라 아에 기피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능력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만이 아니라 가는 곳곳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전도하였습니다. 혹시나 자기의 지혜나 능력으로 전도가 되어 사람의 지혜에 있게 될까봐서 얼마나 조심했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이미 살펴봤습니다만 고린도전서 2:1-5절을 보면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바울 사도가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고 얼마나 조심하였는지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성령의 나타남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전도한 바울이 과연 무엇을 드러내고자 한 것입니까? 2:2절에 보면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는 것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나라의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십자가가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까? 고린도전서 1:18절을 보면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 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십자가의 도란 멸망하는 자들이 볼 때에는 미련하고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을 얻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력인 십자가를 전하는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입니까? 세상에서 보란듯이 세상의 힘과 세상의 영광을 입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같은 모습, 바울 사도와 같은 모습들이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바울의 모습이 어떤 모습입니까? 고난을 받고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길입니다.

 

바울 사도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다 그런 길로 갔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능력이란 자기를 자랑하거나 업적을 과시하는 것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십자가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스데반 집사는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행했습니다.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처럼 빛이 났습니다. 이런 사람이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죽을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돌이 날아오다가 멈추거나 되돌아가서 던진 사람들에게 맞았습니까? 아닙니다. 던지는 대로 다 맞았습니다. 그로인해 눈이 터지고 머리가 깨어졌습니다.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갔습니다.

 

그런데 그 죽어가는 그 순간에 스데반 집사는 혼자 무엇을 본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서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 주님을 보면서 그는 자신을 향해 돌을 던지는 자들을 향하여 ‘저들을 사하여 달라’고 주님께 기도를 한 것입니다(행 7:54-60).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능력입니다. 십자가에서 보이신 예수님의 능력이 성령과 은혜가 충만한 스데반 집사에게 나타난 것입니다. 그 돌 던지는 현장에 바울이 주도적인 인물로 동참한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스데반 집사와 같은 길을 가는 것입니다. 자기를 향하여 욕하는 자들을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 즉 참고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들로부터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 같이 여김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능력입니다. 바울 사도가 말하는 하나님 나라의 능력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능력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 자신들을 돌아봅시다. 과연 우리가 능력이라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스데반 집사나 바울 사도의 이러한 능력이 정말 자신에게 임하기를 원하십니까? 오히려 누가 나를 향하여 가난하다고 부족하다고 무시하면 어떻게 반응합니까? ‘좋다 두고 보자! 내가 전능한 하나님께 기도하여 능력을 받아서 너보다 부자가 되고 성공해서 네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주마!’ 이런 것을 능력으로 여기고 있지 않습니까? 목사는 무엇을 능력으로 보는 것입니까? 엄청난 교인수와 웅장한 건물과 많은 돈으로 큰일을 많이 하는 것을 능력 있는 주의 종이라고 합니다. 이런 것을 비판하는 자들은 그럴 능력이 없으니 뒤에서 비판이나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바울이 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무엇입니까?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기피하는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기피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교회에 나오면서 예수를 부르고 십자가를 말하는 우리가 기피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닌 것입니다. 주님께서 택하시고 부르신 자들만이 받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하나님의 능력으로 무엇을 하자는 것입니까? 십자가가 구원의 능력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구원의 능력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나라의 능력은 이 세상에서 구원하는 능력입니다. 곧 이 세상에서 끄집어내는 능력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별세하게 하는 능력인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성의 경우를 봅시다(창 19장). 롯과 그의 가족들은 소돔과 고모라의 비옥한 땅에서 부유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먹고 살만해지니까 더욱 쾌락을 추구하였던 것입니다. 그런 성읍에서 무엇이 능력으로 통하였겠습니까? 더욱 많은 돈과 권세, 더 나은 재미를 누리는 것이 능력으로 통하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는 그 성은 유황불로 태워버려야 하는 세상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하나님의 나라의 능력은 무슨 능력입니까? 그 소돔과 고모라 성에서 탈출하는 것이 능력입니다. 지금 하늘에서 불이 쏟아지고 있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이 소돔과 고모라가 우리에게 본이 되는 것입니다. 롯과 그 아내와 두 딸이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탈출을 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미적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사들이 그들의 손을 잡아서 끌어내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중보를 기억하시고 하나님께서 끄집어내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롯의 처는 어떻게 하였습니까? 뒤를 돌아본 것입니다. 그곳에는 사윗감도 있고, 그동안 마련한 재산들과 집들이 불에 태워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돌아봐지는 것이 인지상정이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 순간 그녀는 소금기둥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이 농담으로 여겨지십니까? 롯의 사위들이 그 소식을 들었지만 그들은 농담으로 여긴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다 멸망을 당한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능력이 무엇이겠습니까? 이 세상은 불살라지기 위하여 존재하고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3:7절에 보면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묵시의 세계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서 다 이루어지면 이 세상은 불타 없어집니다. 이런 세상에서 참된 능력이란 이 세상에서 건짐을 받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이 소돔과 고모라성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천하를 얻고도 네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하시는 것입니다. 복음은 우리를 세상에서 떼어내어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별세하신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묶여서 별세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능력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능력이기에 어느 누구도 사람의 능력으로는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 아들의 십자가의 능력으로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가운데서 나타날 때 다툼과 파당이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뿐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 가운데도 하나님의 능력 곧 십자가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통해서 오직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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