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5장] 음행하는 자들과 사귀지 말라

by 손재호 posted May 15,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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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고전 5:1-13
성경본문내용 (1)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이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비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2)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물리치지 아니하였느냐(3)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같이 이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4)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5)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6)너희의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7)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8)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9)내가 너희에게 쓴 것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10)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과 토색하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 하려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11)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람하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후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토색하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12)외인들을 판단하는데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중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치 아니하랴(13)외인들은 하나님이 판단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어 쫓으라
강설날짜 2013-05-15

 
2013년 고린도전서 공부

 

음행하는 자들과 사귀지 말라

 

말씀:고린도전서 5:1-13

 

오늘은 고린도전서 5장을 공부하겠습니다. 1-2절을 보면 바울 사도는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이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비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물리치지 아니하였느냐”며 심히 책망을 합니다. 고린도 교회에서 세상 사람들도 행하지 아니하는 음행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비의 아내를 취했다는 것입니다. 헬라문화나 로마문화가 다 성에 대하여 관대하고 문란하지만 자기 아버지의 아내를 건드리는 것은 법으로 금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교회 안에서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충격적인 범죄 입니까? 그런데 그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그런 죄를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자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자기들에게 많은 은사들이 나타나므로 자신들은 신령한 자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로인해 교만하여 졌습니다. 이방인들도 행하지 않는 음행을 하면서도 이런 자신을 자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만과 자기 자랑이 있는 곳에서 죄에 대하여 통분이 일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살펴본 4:19-21절 말씀에 보면 “그러나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의 말을 알아 볼 것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 보겠노니.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교만한 자의 말을 알아볼 것이 아니라 그 능력을 알아보겠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 능력이란 방언과 예언과 신유와 같은 신기한 능력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십자가의 능력이란 자신들의 죄가 십자가로 인하여 사함을 받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죄에 대하여 분통이 터져나와야 하는데 오히려 심각한 죄를 짓고 있는 형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통분히 여기지도 않고 그들을 물리치지도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말씀을 대하면서 어떤 생각이 듭니까? ‘이렇게 나쁜 놈이 있는가? 예수님의 공로를 무시해도 유분수지 어떻게 그런 죄를 짓고 자랑할 수 있는가?’ 하며 분노가 일어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이 말씀을 자기 자신에게는 하나도 적용시키고 있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은 그런 죄를 짓지 않았기에 괜찮다고 하면서 그 화살을 피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란 크고 작은 죄가 없습니다. 큰 죄는 사망에 이르고 작은 죄는 매 몇대로 해결된다는 그런 말씀이 없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롬 6:23). 그러므로 내가 저지르지 않았다는 죄의 목록이라고 해서 나는 그런 죄와 상관이 없다고 한다면 이미 자기 자신은 무슨 죄에 빠져 있는 것입니까? 교만하고 자기를 자랑하는 죄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나는 그런 죄를 짓지 않았는데 하면서 자기를 높이는 것입니다. 이것은 위선입니다.

 

교회 안에 한 형제의 죄가 자신의 고통으로 와 닿아야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또한 그러한 자를 바로 잡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돌아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란 개별자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한 덩어리로 보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22-23절을 보면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러므로 한 형제가 죄를 범하면 온 교회가 함께 고통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6-8절을 보면 “너희의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라고 합니다. 이 말씀에 보면 너희의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합니다. 지금 너희의 몸에 누룩이 들어왔는데 그것을 심각하게 보고 있지 않으니 너희가 과연 그리스도의 몸인가 하는 것입니다. 지금 고린도 교회에 누룩이 들어왔습니다. 이것은 암과 같은 존재입니다. 암이 굉장히 빠른 세포분열로 정상 세포들을 공격하는 것처럼, 누룩도 조금만 들어와 있어도 모든 반죽 덩어리를 발효시켜 변질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누룩이 들어왔는데도 통분히 여기지 아니하고 도리어 자기 자랑이나 하고 있다면 이것이 어떻게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책망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몸이 되었습니까? 7절을 다시 보면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원래 다 누룩이 있던 자들이었습니다. 곧 다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유월절 어린 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희생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누룩 없는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누룩 없는 자가 되어서 새 덩어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새 덩어리란 그리스도의 몸에 연합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 말씀은 유대인들이 유월절과 무교절을 지키면서 행하는 일과 관련이 있습니다. 유월절이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해방되어 나올 때에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라서 죽음의 사자가 넘어감으로 살아난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그들은 어린양의 희생으로 살아났기에 매년 그 절기를 지켜왔습니다. 그 절기를 지키면서 이어지는 일주일간은 누룩 없는 떡을 먹게 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유월절과 무교절을 지키기 위해서 집안에 있는 모든 누룩을 내다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신약시대는 그런 유월절이나 무교절의 절기를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8절을 다시 보면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라고 합니다. 여기서 묵은 누룩이란 날과 달과 절기를 지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은 이 세상의 악한 것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몸이 된 자들은 묵은 누룩도,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아닌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누룩 없는 떡이 누구십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의 죄를 용서 하시고, 우리의 누룩을 제 하시고, 죄 없으신 그리스도의 몸에 한 덩어리가 되게 하신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은 유월절 어린 양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일입니다.

 

그런데 다시 누룩이 들어오게 되는 것을 보고도 왜 통분이 일어나지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태도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을 모독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나서 완벽하게 죄를 짓지 아니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그리스도의 몸에 붙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지체에 누룩이 들어온 것을 보고서도 통분히 여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자기 자신들은 신령한 은사들이 있다고 스스로 교만하고 자랑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가 그들을 책망하고 치리하는 것입니다.

 

3-5절을 보면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바울 사도가 그런 자를 곧 음행하는 자를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이런 자를 사단에 내어 주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육신은 멸하고 영은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구원을 얻게 하려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사단에게 내어 주었다’라는 말씀은 교회 공동체에서 징계로 출교하였다고 봅니다. 또 ‘육신을 멸하고 영은 살린다’고 하는 것은 영은 거룩하고 육신은 더럽다는 영육 이원론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것을 육신이라고 봅니다. 영이란 관계가 회복이 된 것을 영이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범죄 한 자를 사단에게 내어 주었다는 것은 교회에서 출교라는 징계를 통하여 그를 회개하게 하여 주 예수의 날에 살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또는 육체의 고통을 말할 수도 있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할 수가 있다고 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죽어버리면 끝나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죽여서라도 다시 살려내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에 구원을 받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이렇게 하시는 것입니까? 그냥 죄 지었으면 지옥에 보내버리면 되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고 구원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언약을 이루시기 위함입니다. 곧 자기 맹세를 지키시기 위함입니다. 그리하여 자기 아들의 능력과 영광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죽은 자를 다시 살려내시는 능력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나타나서 온 우주에 그 아들의 영광으로 충만케 되는 일에 사단도 하나의 도구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누룩 없는 자가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붙은 새 덩어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사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의 살과 피가 나를 살리시기에 묵은 누룩이나 세상의 괴악한 누룩이 들어오는 것을 보면 통분히 여기면서 그의 살과 피만이 우리를 살리심을 믿고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9-10절을 보면 “내가 너희에게 쓴 것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과 토색하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 하려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고 합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 교인들을 위해 쓴 서신에 음행하는 자들과 사귀지 말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만약 세상에서 음행하는 자들과 도무지 사귀지 않으려고 하면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다 음행하는 자들이요, 탐하는 자들이요, 토색하는 자들이요, 우상숭배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수도원처럼 독자적으로 살던지, 아니면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서 세상의 문명을 등지고 스스로 자급자족 하면서 살아야 그들과 사귀지 않게 되는데 그렇게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물론 역사적으로 볼 때도 많은 사람들이 그런 방식으로 자기들만이 거룩한 모임이라고 살아왔고 지금도 그러한 공동체들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만 그런데 그렇게 한다고 해서 그들 안에서 죄가 나오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여전히 죄가 그들 가운데서 나오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생 자체가 죄덩어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바울이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음행하는 자들과 사귀지 말라는 말은 무슨 말씀입니까? 세상에 속한 사람들과 사귀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형제라고 하는 자들이 음행하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과 사귀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 자신들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우리가 누구와 사귀는 것을 좋아합니까?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안다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지금 교회 안에서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주님과 동행하기를 좋아하고, 보이는 이 세상을 멀리하면서,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만 사모하며 사는 그런 사람입니까? 아니면 세상을 사랑하고 자기를 자랑하기를 좋아하고 음행하는 자 입니까? 만약 우리가 음행하는 자를 보고도 통분히 여기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는 다 그 나물에 그 밥입니다. 똑같은 자입니다. 서로 적당히 눈감아주며 타협하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누구를 책망하고 잘라내어야 할 그런 문제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들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11절을 보면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람하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후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토색하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에 보면 음행만이 아닙니다. 탐람하는 자와도 사귀지 말아야 합니다. 탐람이란 다른 말로 탐심입니다. 탐심은 곧 우상숭배입니다. 그리고 욕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들이나 토색하는 자들과도 사귀지 말라고 합니다. 이런 자들과는 함께 먹지도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내 자신이 그러한 사람인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세상에서 재미있고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재미있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죄라고 책망하십니다.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일들 중에 재미있는 일이란 다 죄짓는 일입니다. 아이나 어른이나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잘 하는 일은 죄 짓는 일 아닙니까? 위에 나오는 내용들이 재미없는 일이 있습니까? 말리면 더 하고 싶어 하고, 숨어서도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죄 짓는 일입니다. 이런 죄들을 책망하는 곳이 바로 교회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가 과연 세상의 것들이 침투하여 들어오는 것을 보고서 책망을 하고 있습니까? 통분히 여기고 있습니까? 이 세상의 지혜는 세상적이요, 마귀적이요, 정욕적입니다. 그런 세상의 지혜로 보면 교회란 미련하고 어리석어 보이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통하는 재미와 쾌락과 힘들이 교회에서는 정죄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교회가 어떻습니까?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란 말은 세상 사람들보다 윤리적이고 도덕적으로 좀더 착하게 산다는 그런 정도가 아닙니다. 세상이 추구하는 내용과 방향과 목표에 있어서 완전히 대조되는, 완전히 반대되는 길을 가는 것이 바로 빛과 소금인 것입니다. 세상이 추구하는 것이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것이라면 교회가 추구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주님의 약속의 세계인 것입니다. 세상에서 성공이란 보암직하고 이 세상의 자랑거리가 됩니다. 그러나 교회가 말하는 성공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난을 받고 이 세상에서 끊어지는 것이 성공인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6:14-18절을 보면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책망의 말씀이 모두 우리에게 해당되지 않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요한일서 1:5-9절을 보면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죄 없다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귐은 끝이 있습니다. 부모 형제도, 친구도, 애인도, 불륜도 다 끝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헛된 사귐에 목숨을 걸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십자가로 우리를 깨끗케 하시고 영원한 사귐 가운데로 인도하신 우리 주님과 사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주님의 십자가 안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하게 하신 우리 주님의 은혜를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 은혜 위에 굳게 서서 우리 속에 있는 모든 음행과 토색과 우상숭배의 죄악을 물리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오직 우리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힘입어 주님과 사귐이 있는 거룩한 공동체가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 교회 가운데 모든 시기와 다툼과 분쟁이 사라지고 교회다움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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