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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고전 6:1-11
성경본문내용 (1)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로 더불어 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송사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2)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치 못하겠느냐(3)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4)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5)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 일을 판단할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6)형제가 형제로 더불어 송사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7)너희가 피차 송사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완연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8)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저는 너희 형제로다(9)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10)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11)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강설날짜 2013-05-22

 
2013년 고린도전서 공부

 

차라리 불의를 당하라

 

말씀:고린도전서 6:1-11

 

오늘부터 우리는 고린도전서 6장 말씀을 공부하겠습니다. 우리는 지난 두 주간에 걸쳐서 5장 말씀을 공부했습니다. 우리는 5장 말씀을 통해서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회 내에 있는 음행 문제와 그 음행을 용납하는 고린도 교회 교인들을 책망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바울은 이런 음행하는 자들과 사귀지 말라고 했습니다. 교회가 왜 이런 자들과 사귀지 말아야 합니까? 교회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대속함을 받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의 모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보면 고린도 교회가 교회 안에 들어온 음행을 물리치지 아니함에 대하여 바울 사도가 책망하다가 갑자기 성도들의 송사문제를 가지고 책망하고 있습니다. 주제가 완전히 바뀌는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성도들이 세상의 법정에서 서로 송사 하는 것이 교회로 들어오는 것은 음행이 교회로 들어오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음행이 헬라문화권에서 관용되어지고 즐기는 것이라면 송사의 문제도 역시 헬라문화에서 즐기는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헬라인들 중에 자유민들은 매일 새로운 것을 듣고 말하는 것에 세월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러니 서로 고소하고 재판하는 것도 즐기는 것입니다. 이런 문화 속에서 살다보니 교회에서 조차 성도들 간에 무슨 일이 생기면 그 문제를 교회답게 해결하기보다 세상의 법정으로 달려 간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교회다운 모습이 아닙니다. 바울 사도는 이 문제에 대하여 한탄스러워하면서 그들을 책망 하며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 안에서 함께 형제가 된 성도들 간에 어떤 금전적인 이해관계가 생겼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문제를 그들이 어떻게 해결 하는 것입니까? 세상 법정에다가 고소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합니까? 오늘 본문 7절을 보면 “너희가 피차 송사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완연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라고 합니다. 바울 사도는 교인들 간에 서로 송사하는 것만으로도 너희 가운데 이미 완연한 허물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고, 속는 것은 낫다’고 합니다. 이것이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미 이런 결론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가운데 무슨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를 하나님 앞에 들고 나가지 않는 것은 아닙니까? 왜냐하면 바울의 이 권면의 말씀대로 하면 내가 손해를 봐야 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손해 보기 싫어서 하나님 앞에 들고 나가지 않는 것입니다. 금전적인 문제든, 아니면 다른 어떤 문제든지 간에 성도들 안에 생긴 문제를 하나님께 들고 나가 아뢰면 무엇이라고 할까요?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40-42절에 보면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미 이런 결론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렇게 하면 손해를 보기 때문에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대로 해결하기 보다는 세상의 법정으로 달려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성도들 간에 금전적인 이해관계가 생기기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누가 꾸고자 하면 받지 않아도 되면 꾸어주어도 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꼭 받아야 한다고 하면 꾸어주지 말아야 합니다. 보증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보증을 서 달라고 할 때 자기가 감당할 능력이 되면 서 주고 그렇지 않으면 서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바입니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서 분명한 성경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간적으로 미안하기 때문에 마지못해 꿔 주고 보증을 써 줍니다. 그런데 그로인해 더 큰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할 수만 있으면 서로 사랑의 빚 외에는 지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피치 못하게 돈을 빌리고 보증을 서 주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성경에서 가르치는 원리대로 해야 합니다. 잠시 인간적으로 미안한 마음이나 껄끄러움을 이겨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인간적인 미안함 때문에 성경의 원리대로 하지 않았다가는 더 큰 문제에 부딪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로인해 교회가 시험에 들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회 교인들 간에 이해관계로 인해 세상의 법정에 고소하는 것에 대해서 안타까워하면서 ‘차라리 불의를 당하고, 손해를 보는 것이 낫다’고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바울 사도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까? 돈 떼이고 기분 좋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바울 사도는 차라리 불의를 당하고 손해를 보는 것이 낫다고 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교회를 이해해야 합니다. 교회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교회는 어떤 공동체입니까? 교회는 종말론적인 공동체입니다. 교회를 종말론적인 공동체라고 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모든 가치와 목표들의 끝을 알고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베드로후서 3:7절에 보면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천지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그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되고 있을 뿐입니다. 묵시의 세계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뜻이 이 세상 역사 속에서 다 이루어지면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은 불타 없어지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말론적인 공동체인 교회는 이 세상에 소망을 두고 살지 않는 것입니다. 장차 우리 주님의 재림을 통해 이루어질 성취된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사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교회가 이런 종말론적인 공동체이기 때문에 성도들 간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를 세상 법정에 송사하여 교회를 욕되게 하기보다 차라리 불의를 당하고 속는 것이 낫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3절을 보면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로 더불어 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송사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치 못하겠느냐.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라고 했습니다. 특히 2절 말씀에 보면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치 못하겠느냐”라고 책망합니다. 성도가 세상을 판단합니다. 세상이 성도에게 판단을 받게 됩니다. 심지어 천사들조차 성도에게 판단을 받게 됩니다. 세상이 판단을 받고 천사들이 판단을 받는 것은 예수님의 재림 때에 일어날 일입니다. 이때 성도가 어떻게 세상과 천사를 판단하는 것입니까? 성도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그리스도의 몸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과 천사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바로 이와 같은 성도의 위상이 어떠한지 너희가 아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이야 성도가 심판을 한다고 해도 천사는 어떻게 판단합니까? 바울 사도가 갈라디아서 1:7-9절에 보면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갈 1:7-9).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에게 “내가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도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보면 그 판단의 기준이 무엇입니까? 복음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복음의 능력을 천사들도 잘 몰랐습니다. 베드로전서 1:10-12절을 보면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고한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늘의 천사들도 복음의 비밀을 살펴보기를 원했습니다. 이 정도로 복음으로 구원을 받은 성도들이 대단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말씀은 성도들 자신의 대단함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이 대단하다는 것입니다. 천사들조차 판단할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3:7-11절을 보면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군이 되었노라.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의 일군이 되었다고 합니다.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신에게 이런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고 하나님 속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비밀의 경륜을 드러내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그로인하여 그리스도의 풍성이 얼마나 대단한지 이방인들에게도 전하여진 것입니다. 이러한 복음이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늘의 정사와 권세란’ 천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너희가 이 엄청난 성도의 신분을 모르고 세상의 법정에 고소를 하는가?’라며 책망을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재판관이란 오늘 본문 1절 말씀에 보면 ‘불의한 자들’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불의하다는 것은 그들이 부정한 짓을 해서 불의한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의롭다함을 받지 못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 재판관들을 4절에서는 ‘경히 여김을 받는 자’라고 했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4). 여기서 경히 여김을 받는다는 말은 단지 가볍게 여김을 받는다는 정도가 아니라 멸시를 받는 자들로 재판관을 삼는가 하는 말입니다. 성도가 세상을 판단하고 천사마저 판단하는 자들인데 어떻게 교회에서 가볍게 여기는 그런 세상의 재판관들 앞에 소송을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부끄러운 짓을 하느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고, 속는 것이 낫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고, 속는 것이 낫다”고 하는 말이 나오도록 해결하는 관점을 종말론적이라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것들이 다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란 이미 종말을 살고 있는 자들입니다. 종말론적인 시각에서 영원을 바라보지 않으면 이해관계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는 금전상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감정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억울하다고 여기는 부분들이 다들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시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에게 교회 갔더니만 이렇고 저렇더라고 하면서 흉보면서 해결하겠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한다고 해서 해결이 되겠습니까? 안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무슨 관점으로 보아야 합니까?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자요, 천사들조차 판단할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장차 판단하는 것만이 아니라 이미 우리가 그런 시각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관점은 지금 누구와 사귀고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지난주에 사귐에 대하여 말씀을 드렸습니다. 정말 우리가 주님과 사귐이 있다면 그 사랑에 눈멀었기에 다른 것들은 시시하게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누구와 사귀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 9-11절을 보면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목록들에서 자기는 전혀 해당사항이 없다고 자신하는 분이 있습니까? 남을 욕해보신 적이 한번도 없습니까? 도적질 한 적이 한번도 없습니까? 우리는 다만 들키지 않았을 뿐입니다. 우상숭배는 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까? 탐심이 우상숭배입니다. 우리 속에 탐심이 가득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없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으로 씻어주시고 거룩하게 하여 주시고 의롭게 하여 주심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이 예수 그리스도와의 사귐이 있다면 그래서 세상을 판단하고 천사까지 판단할 자들이라면 지금 교회 안에 일어나는 소송문제 하나 다루지 못하여 교회에서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여기는 세상의 재판관에게 소송을 하느냐는 책망인 것입니다. 우리 안에 지금도 형제에 대하여 억울함이 남아 있습니까? 나에게 금전적이든, 말이든, 피해를 입혔기에 너 잘되는지 한번 두고 보자고 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위의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 자들의 목록에 함께 포함되는 것입니다.

 

5-8절을 보면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 일을 판단할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형제가 형제로 더불어 송사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너희가 피차 송사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완연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저는 너희 형제로다”라고 합니다. 바울 사도는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이 말을 한다고 합니다. 너희 가운데 형제간 일을 판단할만한 지혜 있는 자가 하나도 없느냐고 책망합니다. 바울 사도는 형제들 간에 송사를 하는 것은 이미 서로 간에 완연한 허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고, 속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지만 저희는 너희 형제라고 합니다. 꼭 세상의 법정에 송사하지 않아도 우리 마음에서 그런 송사가 일어나지 않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이미 허물이 있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 말씀 앞에 서야 합니다. 우리는 과연 종말론적인 자세로 살고 있습니까? 이 세상의 끝을 아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의와 생명으로 세계로 옮겨주신 우리 주님과의 사귐이 과연 있습니까? 우리 가운데 주님과의 사귐이 더욱 깊어져서 이 세상을 미리 판단하면서 살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장차 천사조차 판단할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판단에 휘둘려지지 말며, 주님의 판단 앞에서 살아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불의를 당하고 속으면 바보라고 합니다. 그러나 형제 안에서 바보가 되면 어떻습니까? 우리가 종말론적인 공동체라면, 주님과의 사귐이 있다면, 차라리 불의를 당하고, 차라리 속는 것이 나은 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 가운데 이런 은혜가 있게 하시고, 그 은혜를 맛보며 사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교회가 그리스도의 온전하심을 나타내는 성숙한 교회로 세워져 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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