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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고전 9:1-15
성경본문내용 (1)내가 자유자가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2)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니 나의 사도 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3)나를 힐문하는 자들에게 발명할 것이 이것이니(4)우리가 먹고 마시는 권이 없겠느냐(5)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이 없겠느냐(6)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이 없겠느냐(7)누가 자비량하고 병정을 다니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실과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떼를 기르고 그 양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8)내가 사람의 예대로 이것을 말하느냐 율법도 이것을 말하지 아니하느냐(9)모세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10)전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11)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 육신의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12)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을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을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라(13)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을 모시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14)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15)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
강설날짜 2013-07-10

2013년 고린도전서 공부

 

복음을 위한 사도됨의 변명

 

말씀:고린도전서 9:1-15

 

오늘부터 우리는 고린도전서 9장 말씀을 공부하겠습니다. 고린도전서 9장은 8장에서부터 10장까지 계속되는 우상의 제물과 관련된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방종에 대한 바울 사도의 권면의 말씀입니다. 특히 오늘 본문 말씀은 바울 자신의 사도됨에 대한 변명입니다. 바울이 왜 우상의 제물에 대해 권면을 하다가 갑자기 자신의 사도됨에 대해서 변명을 하는 것입니까? 오늘 우리가 본문 말씀을 통해서 그 의미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다 자기를 위하여 행동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난주의 말씀에서 살펴본 것처럼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자기를 위하여 행동하지 않고, 형제를 위하여 행동해야 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8:13절에 보면 바울은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자기를 위하여 행동하지 않고 형제를 위하여 행동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나에게 도움이 되기에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형제를 위하면 나중에 보상이 있겠지 하는 의도로 행동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한 가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을 주고 샀다는 그 이유 하나 만으로 그 형제를 위하여 자기가 할 수 있는 권리마저 평생 포기하겠다는 것이 바울 사도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면 그가 왜 그렇게 형제를 위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오늘 말씀에서 보면 복음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복음을 위하여서라면 자신이 바보가 되어도, 고생을 해도, 죽어도 좋다는 사람이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서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배설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자기가 귀하다고 여겨왔던 세상의 그 모든 것들이 다 자기 자랑이요, 자기 의요, 자기 영광이었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율법을 얼마나 열심히 지켰는지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고 할 만큼 철저한 자였습니다. 빌립보서 3:4-6절을 보면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만하니.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내가 팔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고 했습니다.

 

그가 왜 그렇게 열심히 율법을 지켰겠습니까? 자기를 위해서 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입니까? 바울 자신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렇게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나니 그것이 다 자기 영광이고, 자기 의이고, 자기 자랑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지금까지 귀하다고 여겨온 그 모든 것들을 다 배설물처럼 버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살게된 것입니다. 빌립보서 3:7-12절을 보면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복음을 위하여 열심히 살게 되었다고 하니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율법에 열심을 내던 사람이기에 복음에도 열심을 낸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복음을 위하는 열심이 또다시 바울의 열심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므로 바울로 바울 되게 한 것은 그의 열심이 아닙니다. 주님의 사랑이 그를 강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열심히 복음을 증거 하고서도 내가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그렇게 되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9-10절을 보면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순교할지라도 자기를 증거 하거나, 자기를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자신과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자랑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오늘 말씀에서 바울은 자기의 사도됨을 변호하고 있는 것입니까? 1-3절을 보면 “내가 자유자가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찌라도 너희에게는 사도니 나의 사도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나를 힐문하는 자들에게 발명할 것이 이것이니”라고 합니다. 바울이 자신의 사도됨을 변호하는 것은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복음을 위하여 자신의 사도됨을 변호하는 것입니다. 곧 바울은 자신의 사도됨을 인정하지 않을 때 자기가 증거 한 복음마저 부인하게 될까봐 자신의 사도됨을 변호하는 것이지 자신을 사도로 대접을 잘 해달라고 그렇게 변호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3절을 다시 보면 “나를 힐문하는 자들에게 발명할 것이 이것이니”라고 합니다. 바울은 자신을 힐문하는 자들에게 발명할 것이 있다고 합니다. 당시 고린도교회 가운데는 바울의 사도됨을 부인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 가운데 왜 그런 주장들이 나오게 되었는가 하면 우리가 7장에서 보았던 결혼문제의 경우를 보면 바울은 “결혼을 해도 되고 안 해도 되지만 안 하는 것이 더 낫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우리가 이미 예수를 믿고 영혼이 구원을 받았는데 몸이야 어떻게 한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결혼을 하지 않고 금욕적으로 사는 것을 보니 아직도 믿음의 지식이 부족한가보다 그러니 무슨 사도의 자격이 있는가 하는 식입니다.

 

8장부터 10장까지는 우상의 제물과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방종에 관한 바울 사도의 권면의 말씀인데 바울은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면서 먹을 자유가 있지만 자신은 형제를 위하여 평생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고전 8:13). 그러면서 우상의 제물로 받쳐졌던 음식을 먹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0:20-21절을 보면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말하니까 고린도교회 성도들 중에서는 바울이 우상에 대하여 지식이 없다고 본 것입니다. 그러니까 무슨 사도냐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9:20-23절을 보면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예하고자 함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모든 사람에게 자유 하였으나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다고 합니다. 율법 있는 자에게는 율법 있는 모습으로, 율법이 없는 자에게는 율법 없는 자의 모습으로, 약한 자들에게는 약한 자의 모습으로,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행하니 사람들이 무어라고 하겠습니까? 줏대도 없고, 일관성도 없고, 너무나 연약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글에는 힘이 있으나 사람을 직접 만나보면 외모도 시원찮고 말도 시원찮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압도할 만한 무슨 권위를 내세우지도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무시하고 깔본 것입니다. 더군다나 이런 바울 사도가 고린도교회에서 사례도 받지 않으니 사람들이 뭐라고 하였겠습니까? 자신이 사도가 아니기에 당당하게 사례도 달라고 하지 못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다른 사도들이나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당당하게 자기들의 권리를 주장하는데 바울은 그런 권리를 주장하지도 못하는 것을 보니 사도가 아닌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1:5-9절을 보면 “내가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 줄 생각하노라. 내가 비록 말에는 졸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이것을 우리가 모든 사람 가운데서 모든 일로 너희에게 나타내었노라. 내가 너희를 높이려고 나를 낮추어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너희에게 전함으로 죄를 지었느냐. 내가 너희를 섬기기 위하여 다른 여러 교회에서 요를 받은 것이 탈취한 것이라. 또 내가 너희에게 있어 용도가 부족하되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함은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이 나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라. 내가 모든 일에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조심하였거니와 또 조심하리라”고 했습니다. 바울과 고린도교회 사이에 이런 편지가 오고 가는 것은 어떤 상황입니까?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바울 사도를 얼마나 무시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런데 바울은 이런 그들에게 내가 너희를 높이려고 나를 낮추어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너희에게 전한 것이 죄를 지었느냐고 반문합니다. 또한 내가 너희를 섬기기 위해 다른 여러 교회에서 사례를 받은 것은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여기서도 바울 사도는 자신의 사도됨을 증거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바울은 그렇게 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다른 사도들보다 부족함이 없으니 그들과 동등한 대우를 해 달라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을 위하여 이렇게 자기의 사도됨을 변호하는 것입니까? 고린도후서 11:4절을 보면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라고 합니다. 바울 사도를 무시하는 것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조차 무시하고 다른 복음을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에 대하여 바울이 견디지 못하는 것입니다. 내가 어떠한 대접을 받아도 상관이 없지만 복음이 왜곡되는 일은 견딜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에게도 바울과 같은 이런 심정이 있습니까? 만약 우리가 바울 사도와 같은 대접을 받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화병이 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바울은 어떠합니까? 오늘 본문 1-3절을 다시 보면 “내가 자유자가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찌라도 너희에게는 사도니 나의 사도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나를 힐문하는 자들에게 발명할 것이 이것이니”라고 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종이 아니라 자유자라고 합니다. 그러니 남의 종이 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고린도교회에 종이 된 것은 자기 목회 성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복음을 위하여 그렇게 한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위하여 자기 자유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이런 바울을 무시하고 사도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사도가 아니냐, 내가 예수 우리 주를 만나 보지 못하였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고, 그 주님으로부터 직접 이방의 사도로 임명을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말을 해야만 하는 바울 사도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바울은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라고 반문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사도인 증거가 바로 고린도교회 교인들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사도라 하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나의 사도됨을 주 안에서 확증하는 도장이 바로 너희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너희가 나를 향하여 힐문을 하고 있으니 나의 말을 들어보라는 것입니다. 내가 사도로서 마땅한 자유와 권리를 사용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다른 사도들보다 부족해서 요구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오직 복음을 위하여 그렇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3-14절을 보면 “나를 힐문하는 자들에게 발명할 것이 이것이니. 우리가 먹고 마시는 권이 없겠느냐.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이 없겠느냐.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이 없겠느냐. 누가 자비량하고 병정을 다니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실과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떼를 기르고 그 양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내가 사람의 예대로 이것을 말하느냐. 율법도 이것을 말하지 아니하느냐. 모세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전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 육신의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을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을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라.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을 모시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다른 사도들과 베드로처럼 자기도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한이 없겠느냐고 반문합니다.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한이 없겠느냐고 반문합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군사가 자비량하고 다니겠느냐? 포도를 심고 과실을 따먹지 않겠느냐? 양떼를 기르면서 그 젖을 먹지 않겠느냐?’고 반문합니다. 바울은 자신도 다른 사도들처럼 얼마든지 그러한 권한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내가 사람의 예로 말하느냐. 율법에도 이것을 말하지 아니하느냐고 합니다. 율법에도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고 한 것은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두고 말한 것이라고 합니다. 성전에서 일 하는 자는 성전에 드려진 것을 먹고, 주님도 복음을 전하는 자는 복음으로 산다고 하였는데 일하는 자가 제 먹을 것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바울 자신은 그러한 마땅한 권리를 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5절을 보면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찌언정......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다른 사도들과 똑같이 그들이 누렸던 사도로서의 권리를 얼마든지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권리를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기를 알아달라는 말입니까? 아니면 지금부터라도 이렇게 마땅한 사례를 해 달라는 것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내가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여기서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하고 점을 찍어둔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내가 죽을지언정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 말을 함으로 인하여 내가 자랑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오직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위하여 살았습니다. 이를 위하여 자신의 권리도 포기하였습니다. 참으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 가운데도 사도 바울의 복음을 위하는 그 마음을 덧입혀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들도 오직 복음을 위하여 자기의 자유를 쓰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들을 통해서 오직 복음의 능력이 온전히 나타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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