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5266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고전 13:1-7
성경본문내용 (1)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2)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3)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4)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5)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6)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7)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강설날짜 2013-10-16

2013년 고린도전서 공부


사랑이 없으면---


말씀:고린도전서 13:1-7

 

오늘부터 우리는 소위 사랑장이라고 불리우는 고린도전서 13장 말씀을 공부하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12:12-31절 말씀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한 몸 됨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으로 말미암아 구원함을 받은 우리 형제, 자매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이 한 몸 됨의 의미를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주님의 몸된 교회가 바르게 세워져 가게 됩니다. 교회가 교회다움을 나타내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하와를 주시면서 둘이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라고 하셨습니다(창 2:24). 그런데 한 몸이라면 자기 몸처럼 돌보고 섬기고 책임을 져야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범죄 한 이후 인간의 모습은 어떠하였습니까? 서로 남의 탓을 하며 핑계되기에 바빴습니다(창 3장). 아담과 하와의 모습에서 한 몸 다운 모습이 전혀 나타나지 않습니다. 한 몸이면 서로 남의 탓을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런데 범죄 한 인간의 모습은 한 몸이 아니라 서로 너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며 상대방에게 그 책임을 돌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담과 하와가 보여준 범죄 한 인간의 실상입니다. 범죄 하고 타락한 인간은 아무리 한 몸이라고 해도 결국 자기 몸밖에 챙기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런 우리에게서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어떤 인간도 이루어 낼 수없는 한 몸이 되는 일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어 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사람이 되셔서 율법 아래 오신 것입니다. 율법의 제정자가 율법의 정죄 아래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물로 세례를 받으시고 죄인들과 연합이 되셔서 죄의 삯인 저주와 심판을 받기 위하여 십자가로 가신 것입니다. 그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를 하나님과 한 몸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26:17-3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에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제자들과 함께 가지셨습니다. 이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떡을 떼어주시면서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잔을 주시면서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통해서 제자들에게 십자가의 의미를 깨우쳐 주시고, 성만찬을 제정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자가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것입니다. 이 일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다 이루심을 자기 백성들에게 적용시키시기 위하여 부활승천하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성령을 보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하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이 되어 그의 몸이 되는 것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22-33절을 보면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찌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몸 같이 할찌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찌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남편과 아내에 대한 권면의 말씀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교회에 관한 비밀의 말씀입니다. 둘이 연합하여 한 몸이 되라는 아담과 하와에게 주신 그 말씀이 바로 교회와 그리스도에 대한 비밀인 것입니다. 첫째 아담은 자기 몸을 주지 못합니다. 주어도 죄인의 몸이기에 책임을 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몸을 주심으로 그의 아내 된 교회의 티와 주름 잡힌 것과 흠을 없게 하시고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몸의 지체라는 것입니다. 부부도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자기 몸처럼 서로 사랑하고 돌보는 것입니다.

 

교회는 건물이나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조직이나 단체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피로 값을 주고 사신 주의 백성들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러면 그 안에 지체들은 다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이기에 어떻게 서로 돕고 섬기며 봉사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입니까? 에베소서 5:29절에서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같이 한다”고 합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된 자들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보양함과 같이 서로 보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워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지체이기에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어떠합니까? 자기 몸을 보살피듯이 아내를 보살피고 아내는 남편을 경외합니까? 성도끼리 자기 몸을 보살피듯이 서로 보살피고 있습니까? 오히려 시기와 분쟁이 일어나고 있지는 않습니까? 누가 서로 잘났는지 시샘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는 너보다 낫다는 생각을 가지고 형제를 무시하고 판단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고린도교회의 문제가 무엇이었습니까? 파당이 생기고, 서로 잘났다는 자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어버린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 복음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자기들에게 나타나는 은사들로 인해 자기가 잘났다고 교만해 진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의 복음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교만해 질 때 필연적으로 자기 자랑이 나오고 파당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무너뜨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이 된 것은 그들의 열심이나 착함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언약을 따라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셔서 오른손으로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8-10장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은혜를 잊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사랑을 잊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희생과 공로로 일어난 그 큰 구원을 잊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떠하였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은 늘 그 은혜를 잊어먹었습니다. 그들은 살만해지면 자기들이 잘나서 구원받는 것인 양 자기들의 의를 자랑하고 교만히 행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향하여 진노하셨습니다. 그 구원을 잊어버리고 믿지 아니한 자들을 심판하셨습니다.

 

지금 바울 사도의 심정이 어떠하겠습니까? 고린도전서 12장과 14장에 보면 수많은 은사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13장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랑장이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12-14장에 걸쳐서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있는 은사 문제에 대해서 권면하는 가운데 주어지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13장은 은사가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점검하는 장인 것입니다. 곧 자기들이 은사를 받았다고 잘난 체 하는 그들에 대하여 책망으로 주어진 말씀입니다. 고린도전서 12:8-11절을 보면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고 했습니다.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이처럼 많은 은사를 행하는 것으로 인해 자기를 자랑했습니다. 형제를 무시했습니다. 이로 인해 교회 가운데 많은 분쟁이 발생하고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주님의 몸을 허물고 있었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바울은 “너희가 사랑을 아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2:31절에 보면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더욱 큰 은사, 곧 가장 좋은 길이 무엇입니까? 사랑인 것입니다. 아무리 큰 은사를 받았다고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오늘 본문 1-3절을 보면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은사 그러면 대게 무엇을 생각합니까? 능력으로 병을 고치고, 방언이나 천사의 말이나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서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산을 옮길만한 믿음과 내 모든 것으로 구제하는 것과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주는 것과 같은 이런 것들을 은사로 봅니다. 얼마나 대단한 은사입니까? 그런데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내어주는 것, 곧 자기 몸을 불살라 이웃을 위하여 내어주는 것, 이런 은사가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일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 그런 일을 행한 내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아무 것도 아닌 것이면 그나마 다행일 것입니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7:22-23절을 보면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고 했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는 것,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권능을 행하였는데 주님께서는 그 날에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한다고 합니다. 물론 이 말씀은 거짓 선지자를 분별하라고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은사 그러면 능력을 행하는 그런 쪽의 은사들을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큰 능력을 행한다고 하더라도 무엇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까?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아무 것도 아닌 정도가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를 도무지 모른다고 하십니다. 주님 앞에 불법을 행하는 자요, 심판을 받을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다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에 접촉 되어서 그 사랑에 기초해서 마땅함으로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아니한 모든 것은 다 주님 보시기에 불법입니다.

 

그러면 사랑이 무엇입니까? 4-7절을 보면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사랑을 여러 가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먼저 바울은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대게 사람들은 억울한 일을 당해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권면합니까? 네가 참으라고 합니다. 참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막상 자기가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되면 어떻게 합니까? 나는 절대로 참을 수 없다고 합니다. 한번 두고 보자고 합니다. 네가 과연 잘되나 안 되나 내가 너 망하는 꼴을 보고야 말겠다는 마음으로 오래 참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랑으로 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데 우리는 사랑의 처음 속성인 오래 참음부터 이미 글렀습니다. 온유하며 오래 참는 것이 아니라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참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므로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다”는 이 말씀은 우리를 책망하는 말씀입니다. 우리 교회는 사랑이 없으니 서로 사랑하자고 말할 내용이 아니라 ‘주여 용서하소서!’ 라고 회개가 나와야 되는 말씀입니다.

 

디모데전서 1:15-16절을 보면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절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다고 합니다. 이 소식은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자에게 복음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자신이 죄인중의 괴수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죄인 중의 괴수를 오래 참으심으로 구원하셨다는 것은 앞으로 구원이 일어나는 자들도 주님의 오래 참으심으로 구원이 일어난다는 것을 보이시기 위함입니다.

 

베드로 사도도 베드로후서 3:15절에서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이란 주님의 사랑의 속성인 오래 참으심으로 구원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 어느 말씀을 보아도 우리가 이루어낼 수 있는 말씀은 한 말씀도 없는 것입니다. 모두 회개하여야 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 13:4-7)는 이 말씀을 이제 ‘우리 서로 사랑합시다’고 하면서 이 목록을 볼 것이 아니라 회개할 제목으로 봐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투기하지 않는데 우리는 투기하였습니다. 주여 용서하소서! 사랑은 자랑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자랑하였습니다. 자기의 육체를 자랑하였습니다. 용서 하소서! 사랑은 교만하지 아니한다고 했는데 얼마나 교만하였는지 하나님보다 더 높아진 교만을 용서하소서! 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아니한다고 했는데 우리가 얼마나 무례하였습니까? 용서하소서!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한다고 했는데 복음을 이용하면서 자유라고 하면서 자기의 유익만을 구하였음을 용서하소서! 사랑은 성내지 아니하고,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고,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진리와 함께 기뻐하며, 모든 것을 참고, 믿고, 바라는 것인데 다른 것은 다 참아도 이것 많은 못 참겠다고 팔 걷어 부치는 이 죄인을 용서하소서! 우리는 이처럼 주님 앞에 용서를 구하는 마음으로 봐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랑 장을 보면서 우리의 죄를 발견하게 됩니다. 정말 주의 오래 참으심과 용서가 없이는 도저히 구원받을 수 없는 죄인임을 더욱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린도전서 13장 말씀을 보면서 내가 이렇게 사랑하자는 것보다 내가 먼저 주님의 용서와 사랑을 덧입어야만 하는 존재임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깊이 알 때 우리의 지체들을 향한 시선도 달라지게 됩니다. ‘당신보다 내가 더 용서를 받아야 하는 사람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주님께서 이렇게 오래 참아주셨습니다.’ 우리 가운데 이런 은혜의 역사가 임할 때에 나의 결단과 결심으로 나오는 용서와 사랑이 아니라 우리 주님의 은혜로만 나오는 용서와 사랑이 증거 될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 가운데 주님의 사랑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 사랑에 접촉됨으로 마땅함으로 사랑이 나타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오직 주님의 몸된 교회가 세워져 가게 하시고, 주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TAG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강설날짜 조회 수
635 [고린도전서 15장] 복음을 알게 하노니. file 고전 15:1-11 손재호 2013-11-20 33432
634 [고린도전서 4장]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file 고전 4:14-21 손재호 2013-05-08 6244
633 [고린도전서 6장]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file 고전 6:12-20 손재호 2013-05-29 6207
632 [고린도전서 12장]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file 고전 12:12-31 손재호 2013-10-09 6155
631 [고린도후서 4장]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file 고후 4:7-12 손재호 2014-04-09 5964
630 [사사기 10-11장] 사사 입다 이야기 file 삿 10:17-11:40 최상범 2012-11-07 5723
629 [고린도전서 15장] 나는 날마다 죽노라. file 고전 15:29-34 손재호 2013-12-11 5720
628 [고린도전서 2장]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file 고전 2:6-16 손재호 2013-03-27 5692
627 [고린도전서 5장] 음행하는 자들과 사귀지 말라 file 고전 5:1-13 손재호 2013-05-15 5537
626 [고린도전서 14장]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file 고전 14:26-40 손재호 2013-11-13 5503
625 [고린도전서 8장]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 file 고전 8:1-13 손재호 2013-07-03 5410
624 [고린도전서 10장] 우리의 거울이 되어 file 고전 10:1-13 손재호 2013-08-07 5373
623 [고린도전서 9장] 복음을 위한 사도됨의 변명 file 고전 9:1-15 손재호 2013-07-10 5351
622 [고린도전서 11장] 주의 만찬에 대한 권면 file 고전 11:17-34 손재호 2013-09-11 5324
» [고린도전서 13장] 사랑이 없으면--- file 고전 13:1-7 손재호 2013-10-16 5266
620 [고린도전서 14장] 지혜에 장성한 사람이 되라 file 고전 14:20-25 손재호 2013-11-06 5214
619 [고린도전서 7장]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지내라 file 고전 7:17-24 손재호 2013-06-19 5131
618 [고린도전서 6장] 차라리 불의를 당하라 file 고전 6:1-11 손재호 2013-05-22 5116
617 [고린도후서 1장]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file 고후 1:1-11 손재호 2014-01-29 5019
616 [고린도전서 7장] 남편과 아내의 의무 file 고전 7:1-7 손재호 2013-06-05 4903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 32 Next
/ 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