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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고전 14:26-40
성경본문내용 (26)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꼬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27)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다불과 세 사람이 차서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28)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거든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및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29)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변할 것이요(30)만일 곁에 앉은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거든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지니라(31)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32)예언하는 자들의 영이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33)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34)모든 성도의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저희의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35)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임이라(36)하나님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난 것이냐 또는 너희에게만 임한 것이냐(37)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한 것이 주의 명령인 줄 알라(38)만일 누구든지 알지 못하면 그는 알지 못한 자니라(39)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40)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
강설날짜 2013-11-13

2013년 고린도전서 공부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말씀:고린도전서 14:26-40

 

지난 시간에 우리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지혜에 장성한 자가 되라’고 권면하는 말씀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장성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 드리는 삶을 살게 됩니다. 오늘도 계속해서 고린도전서 14장 말씀을 공부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은사를 주시는 것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워 나가게 하기 위하여 주어진 것입니다. 몸이란 여러 지체가 서로 도우면서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주님의 몸으로서의 교회에도 여러 지체들이 서로 덕을 세우기 위하여 은사가 주어진 것입니다. 여기서 ‘덕을 세운다’는 것은 형제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나의 유익과 만족이 아니라 형제의 유익을 위한 것이기에 어떤 은사를 받았다고 해서 그로인해서 자기를 내세운다거나 자랑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6절 말씀을 보면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꼬.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어찌할꼬!’라고 했는데 왜 이런 말이 나오는 것입니까? 은사란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주어진 것인데 자기를 과시하고 자기를 자랑하고 있으니 탄식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모일 때에 여러 가지 은사가 있으나 그 모든 은사는 덕을 세우기 위하여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런 은사 중에 찬송시도 있고, 가르치는 말씀(didachv:디다케)도 있고, 계시(ajpokavluyi":아포칼뤼프시스)와 방언과 통역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은사들이 다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도 계시가 주어지는 것입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지금은 사도시대와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계시가 완성된 시대입니다. 사도의 사도됨이란 무엇입니까? 계시를 위하여 세움을 입은 것입니다. 바울 시대에는 아직도 계시가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부분적으로 하나님의 계시가 주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방언과 예언과 방언 통역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방언이나 예언을 어떤 식으로 생각하는가 하면 무당이 입신한 상태에서 자기의 의식과 상관없이 나오는 말로 생각을 합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요즈음도 이상한 말을 하는 사람들이 예언을 한다고 하면 꼼짝없이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계시와 예언과 방언이 부분적으로 주어질 그때에도 의식 없이 무질서하게 하는 것을 금하였습니다.

 

27-28절을 보면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다불과 세 사람이 차서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거든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및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26절에서 ‘너희가 모일 때에’라고 하였으니 교회 안에서 방언을 하게 될 때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방언을 할 때에는 두 세 사람이 차례대로 할 것이며, 한 사람은 통역하고 통역이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라고 합니다. 왜 잠잠 하라고 합니까? 그것은 교회에 덕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잠잠 하라’는 말씀이 오늘 본문에 보면 반복해서 등장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28, 30, 34).

29-30절을 보면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변할 것이요, 만일 곁에 앉은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거든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찌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예언도 두 세 사람이 차례대로 말하면 다른 사람은 분변할 것이라고 합니다. 예언한다고 다 옳은 예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분변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곁에 있는 사람에게 계시가 있으면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하라고 합니다. 여기서도 잠잠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왜 잠잠하라고 합니까? 31-33절을 보면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 예언하는 자들의 영이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예언을 하라고 합니다. 만약 두 세 사람이 예언을 받은 것이 있다고 한꺼번에 말해버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혼란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언을 하는 자들의 영이 예언을 하는 자들의 제제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을 분별하고 제제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차례로 말하여 모든 사람이 배우고 권면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또 그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요, 화평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34-36절 말씀을 보면 “모든 성도의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저희의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찌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임이라.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난 것이냐. 또는 너희에게만 임한 것이냐”라고 합니다. 바울 사도는 모든 성도가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합니다. 곧 이 말은 다른 교회에서도 그렇게 하는 것처럼 고린도교회의 여자들도 잠잠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세 번째 잠잠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무엇을 배우려면 집에 가서 자기 남편에게 물으라고 합니다. 바울은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을 듣는 여자 분들은 기분이 어떻습니까? 오늘날 많은 여성분들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말씀에 대하여 반발을 하고 나섭니다. 특히 페미니스트들은 이런 말씀에 대해서 지금이 19세기도 아니고 하며 반발을 합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많은 목사들이 이 말씀으로 설교를 하고 가르치는 것을 회피합니다.

 

그러면 바울이 왜 여자들에게 이 말을 하는 것일까요? 바울이 가부장적인 사람이기 때문일까요? 이 시간 왜 바울이 여자들에게 잠잠하라고 하는지 그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디모데전서 2:8-15절을 보면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라.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찌니라.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이와가 그 후며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절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하는 여자들의 마땅한 자세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바울 사도는 왜 여자가 교회에서 잠잠해야 한다고 합니까?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에베소교회가 거짓교사들에 의해 분노하며 다투는 일에 여자들도 가세한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여자들이 남자를 주관하는데까지 나간 것입니다. 이런 그들에게 바울은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절 종용하라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가 무질서하였습니다. 은사를 받았다고 하는 자들이 자기를 자랑하고 자기를 나타내기에 바빴습니다. 그런 일에 여자들도 가세하였습니다. 그로인해 교회가 큰 무질서 가운데 빠지고 분노와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여자가 남자에게 복종하라는 말씀도 질서의 차원에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또 한 가지는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다’는 것입니다. 여자가 남편의 말을 듣고 순종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는 여자들이 남자를 주장하기 위한 말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의 이러한 권면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말이 많았습니다. 자기들이 신령한 은사를 받았다고 하면서 ‘바울 사도 너만 계시를 받느냐’고 무시하는 자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마치 모세를 비난한 사람들처럼 바울 사도를 비난하는 것입니다. 이런 그들에게 바울 사도는 무어라고 합니까? 오늘 본문 37-40절을 보면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한 것이 주의 명령인줄 알라. 만일 누구든지 알지 못하면 그는 알지 못한 자니라.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고 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마치 선지자나 신령한 자인 것처럼 생각하며 비난하는 자들에게 자신의 이 편지가 주의 명령인줄 알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고 합니다.

 

우리 여자 분들이 이 말씀을 듣고서 잠잠하시겠습니까? 바울은 은사를 받았다고 하면서 분별없이 나서서 말하는 것을 금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이렇게 여자가 잠잠하라는 것은 여자를 무시하거나 깔보는 것이 아닙니다. 잠잠해짐으로 보여야 할 일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그리스도 앞에서 잠잠한 신부가 된다는 것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앞에서는 여자만 잠잠할 것이 아니라 남자도 잠잠해야 하는 것입니다. 방언과 예언을 하는 남자들도 순서에 따라 하고 다른 사람이 하게 되면 잠잠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판단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28절에서도 잠잠하라고 하고, 30절에서도 잠잠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잠잠하라’고 하는 것은 여자만의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도 바울 사도가 특히 여자에게 잠잠하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신부로서의 역할을 하라는 것입니다. 신부가 신랑을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부는 신랑에게 복종하는 것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잠잠해야 할 일은 잠잠하지 않고 잠잠하지 말아야 할 일은 잠잠한 것이 문제입니다. 처음에 은사를 말씀하면서 교회로 모인 성도란 모두가 다 은사를 받은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드러나 보이는 은사가 있고, 숨겨진 은사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 더 높고 낮음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은사가 있습니까? 아닙니다. 모든 은사는 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고 봉사하기 위하여 주어진 은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각자 받은 은사대로 서로 덕을 세우며,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워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받은 몸을 가지고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모든 은사란 덕을 세우기 위하여 주어진 것입니다. 덕을 세운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유익하게 하는 것입니다. 곧 형제, 자매의 유익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은사가 형제, 자매들을 유익하게 하는 일에 사용되고 있습니까? 내가 말하는 한마디 한마디가 교회에 유익을 주고 있습니까? 내가 하는 행동 하나 하나가 교회에 유익을 주고 있습니까? 우리들의 몸은 우리들의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값 주고 사신 것이기 때문에 우리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몸을 자기 편한 대로 사용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서로의 덕을 세우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몸을 형제, 자매들을 섬기는 일에 사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형제, 자매를 위해 쓰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까? 피곤하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니 이기적인 죄악된 본성 때문입니다. 사실 마음만 있다면 얼마든지 섬길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죄악된 본성으로 인해 주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몸을 섬기고, 자기 이익을 앞장 세우기 때문에 형제, 자매를 섬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우리 자신들의 모습을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 회개해야 합니다. 교회란 한 몸으로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가 되십니다. 우리 성도들은 그 몸의 지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몸의 지체들이 서로 섬기듯이 교회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서로 섬기도록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그 섬김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마음을 더욱 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를 봅시다. 과거 우리 교회 가운데 의견충돌이 있고, 서로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었을 때에 어떻게 하였습니까? 교회를 떠나 갔습니다. 말씀을 잘못 가르친다거나 다른 복음을 전하는 그런 문제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있었습니다. 물론 교회를 떠나 다른 교회로 가면 당장은 사람들과 부딪치지 않기 때문에 좋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교회다운 일일까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일까요?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의 몸된 교회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들 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들이지만 우리가 서로 의견이 다를 수 있고, 또한 서로 스타일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로 인해서 서로 싸우고, 다툴 수도 있습니다. 서로 상처를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지체로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지체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부딪히며, 그것을 극복해 나가야 합니다. 힘든다고 떠나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지체는 몸을 떠나서는 존재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몸에는 분쟁이 없어야 합니다. 몸의 지체 간에 서로 분쟁이 생기면 그 몸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병든 몸이 되는 것입니다. 그 몸이 설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서로 부딪치면서 자신의 죄를 발견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온갖 죄인들이 모인 곳임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도 잠잠하지 못하는 인간임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무언가 조그마한 것이라도 잘한 것이 있으면 잠잠하지 못하고 자랑하고 싶고, 조금만 억울한 일이 있으면 몇 배를 부풀려서라도 말하고야 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자신의 죄를 회개하게 됩니다. 주님 앞에 겸손하게 됩니다. 이를 통해서 서로 깨어지면서 우리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워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우리를 섬기셨는가를 생각하면 나의 죄를 알게 되고 주님께 회개의 기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우리가 서로 부딪히지 않고서는 이런 은혜를 맛보지 못할 것입니다. 때로는 화가 나서 씩씩거리기도 하고, 교회 안 오면 이런 꼴 보지 않아도 되겠지 하고 싶은 마음도 들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주님께서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어떤 은혜를 주시겠습니까? 자신이 죄인임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53:7절을 보면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곤욕을 당하고 괴로움을 당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자신의 잘못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허물과 우리의 죄악을 인하여 대신 곤욕을 당하시면서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처럼 그 입을 열지 아니하신 것입니다. 이 주님 앞에 우리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죄인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님! 이런 죄인이기에 주님께서 대신 죽으시지 않고서는 어떤 가능성도 없는 인간입니다’라고 하면서 오직 주를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언도 그치고 방언도 그치지만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복음은 계속 전파됩니다. 이 복음 앞에서 우리 마음의 숨은 일이 드러나게 됨으로 회개하고 주님을 믿게 되는 것이 이 시대의 은사요, 기적인 것입니다. 복음을 듣고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자신은 잘하는 것이 있는 줄 알았는데 복음을 듣고 보니 내가 행한 것이 다 죄 뿐이라는 고백을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의롭게 되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만 주어지는 것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고백을 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바로 교회이며, 이런 교회에서 서로 섬기게 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섬김을 더 깊이 알아가고, 예수 그리스도의 완벽한 섬김을 받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마태복음 20:28절을 보면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하나님의 복음을 듣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날마다 주님의 복음의 은혜를 맛보며 사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에게 주신 주님의 은사로 서로 덕을 세우는 삶을 사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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