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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고후 1:1-11
성경본문내용 (1)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또 온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2)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3)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4)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5)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6)우리가 환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와 구원을 위함이요 혹 위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를 위함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7)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예하는 자가 된 것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8)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9)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10)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시리라 또한 이후에라도 건지시기를 그를 의지하여 바라노라(11)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를 인하여 많은 사람도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
강설날짜 2014-01-29

2014년 고린도후서 공부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말씀:고린도후서 1:1-11

 

오늘부터 우리는 고린도후서를 공부하겠습니다. 본문 말씀을 살펴보기 전에 잠시 고린도후서의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를 디도 편으로 고린도교회에 보내고 난 후에 그들의 반응을 염려하면서 기다렸습니다. 바울은 나중에 디도를 만나서 고린도교회 가운데 많은 문제들이 해결 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교회 가운데 아직도 해결이 되지 않은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고린도후서를 통해서 그 문제들을 중심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린도후서를 살펴보는 가운데 바울 사도를 통해서 고린도교회에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고린도교회 가운데 고린도전서를 통해서 해결되지 않은 대표적인 문제가 무엇이었습니까?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떠난 후에 고린도교회에는 거짓 선생들이 들어와서 바울이 전한 복음을 변개시키려고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을 흠잡으며 하는 말이 바울은 사도가 아니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은 아주 사단적인 역사였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전한 복음을 부정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바울이 사도가 아니라면 바울이 전한 복음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가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짓 교사들이 바울의 사도권을 부정하는 것은 바로 바울이 전한 복음을 부정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아주 사단적인 역사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사도됨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바울 자신의 사도적인 권위를 내세우고자 함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자신이 전한 복음을 변호하기 위해서 바울은 그렇게 자신의 사도됨을 주장한 것입니다.

 

1-2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또 온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고 합니다. 이 말씀에 보면 바울은 편지 첫머리에 안부 인사를 하면서 자신이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사도가 되었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사도가 된 것은 자기가 원해서 된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만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나기 전에 바울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예수가 이단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를 따르는 자들을 핍박하고 잡아 죽이고 진멸하는 일에 앞장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 인줄 알고 열심을 다하였던 바리새파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그가 대제사장으로부터 공문을 받아 다메섹으로 예수 믿는 자들을 잡으려고 가다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빛 가운데서 만났습니다(행 9장). 부활의 주님께서는 그를 사로잡으셔서 이방에 당신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삼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사도가 된 것은 전혀 자기가 되고 싶어서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 가운데 바울의 의지와는 아무 상관없이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으로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서신 첫머리에 안부 인사를 하면서 자신이 사도가 된 것은 자신의 뜻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았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사도가 된 바울이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들에게 문안을 합니다. 1-2절을 다시 보면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또 온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의 교회’라고 할 때 그 교회와 같은 말이 무엇입니까? 성도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사람들이 생각하는 건물로서의 교회가 아니라 예수 믿는 사람들, 즉 성도들을 교회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교회에 바울 사도가 무엇으로 인사를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찌어다”라고 인사하고 있습니다. 고린도교회가 바울에게 행한 것은 여러 가지 섭섭한 일이 많이 있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바울이 전도하여 세운 교회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그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간 후에 다른 사람들이 와서 바울을 모함하여 사도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언행이 일치가 안 된다고 비난하기도 하고, 사례는 받지 않으면서 예루살렘에 보낼 헌금을 하라고 독려하니 그것을 떼먹으려고 그러는 것이 아닌가 하는 반응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바울의 입장에서 보면 고린도교회를 향한 섭섭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그들에게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의 사도됨이란 바로 이런 모습에서도 찾아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3-4절 말씀을 보면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먼저 ‘찬송하리로다’라고 하며 하나님께 찬송을 돌리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의 심령에서 찬송이 먼저 터져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무엇이 찬송할 상황입니까? 환난과 핍박을 당하고 있는데, 그것도 죽도록 환난과 고난을 당하고 있는데 왜 찬송이 나오는 것입니까? 바울 사도가 받는 환난과 고난은 자기 자신의 욕심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가 당하는 환난과 고난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사도로서 받는 환난과 고난인 것입니다.

 

그러면 그 환난과 고난을 통하여 무엇을 알게 되었기에 이렇게 찬송을 다하고 있는 것입니까? 5절 말씀을 보면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위로를 알게 된 것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신비를 알게 된 것입니다. 그 고난이 무슨 고난인지를 알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자기 백성들에게 넘겨주시는 것은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 것입니다. 그로인해서 바울은 환난과 고난 가운데서도 찬송이 터져 나온 것입니다.

 

우리는 환난과 고난을 당하면 어떤 생각하기를 잘합니까? 원망과 불평하기를 잘합니다. 그런데 우리로 고난을 주지 말고 위로를 주면 안 됩니까? 병 주고 약주는 것도 아니고 왜 그렇게 하십니까?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마귀가 세상의 영광으로 유혹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에 마귀의 유혹이 무엇이었습니까? 마태복음 4:1-11절 말씀을 보면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마귀는 먼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는 것입니다. 또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면 천사들이 보호해 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귀 자신에게 절하면 세상의 영광을 다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모든 유혹들을 다 물리치시고 십자가 고난의 길로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능력과 세상의 영광을 다 가질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 주님께서는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시고 십자가 고난의 길을 가신 것입니다.

 

오늘날도 이런 유혹은 얼마든지 임하는 것입니다. 네가 능력 있는 주의 종이라면 기적을 행하여 보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영광을 보여 보라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에게도 이러한 요구들이 끊임없이 온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바울 사도는 무어라고 답변을 합니까? 내가 보여줄 수 있고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뿐이라고 한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14절 말씀을 보면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환난과 고난과 핍박과 버림받음입니다. 세상에서의 버림받음만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조차도 버림을 받은 모습이 십자가입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하는 그 절규를 하나님은 외면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모습입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결코 용납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이루신 것입니까? 히브리서 5:8-10절 말씀을 보면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족함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고난을 통해서 순종을 배워 온전하게 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온전함이란 무엇에 대한 온전함입니까? 자기를 순종하는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기 위해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고난의 신비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고난을 당할수록 그리스도의 고난의 신비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위로도 넘치게 됩니다. 자기의 고난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당할수록 그리스도의 고난을 바라보고 그것을 신뢰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의 구원의 근거가 되심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고난으로 인하여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들이 그리스도의 고난 앞에서 입을 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고난이 넘침과 같이 그리스도의 위로도 넘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까? 야고보서 1:2-4절 말씀을 보면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통하여 온전케 되셨다는 것을 성도가 고난을 통하여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고난 속에서 곧 그 십자가 안에서 온전한 용서와 구원이 있음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또 묻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 방법 말고 다른 방법 곧 고난 없이 세상의 영광이 주어지는 방법은 없습니까? 예! 없습니다. 그런 방법은 마귀가 제시한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기 백성만 알아채도록 감추어둔 방법이 바로 고난의 길입니다. 좁은 문, 좁은 길입니다. 이 길은 많은 사람이 찾지 않지만 그러나 이 길이 생명의 길입니다. 이는 마치 밭에 감추어진 보화와 같습니다. 겉으로는 고난으로 포장해 두었지만 그러나 속으로는 말할 수 없는 위로와 소망이 넘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도에게 어느 정도로 고난이 오는 것입니까? 8-9절 말씀을 보면 살 소망까지 끊어지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라고 했습니다. 물에 빠진 자는 지푸라기라도 잡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지푸라기조차 치워버리는 방법으로 일하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하심 입니다. 왜 그렇게 하십니까?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기 위하여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죽어도 괜찮은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도의 위로요, 소망이요, 힘이 되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믿음으로 인하여 여러 가지 시련과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면 그것이 다른 성도에게 위로를 주기 위함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당하는 고난이 나중에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형제들에게 말할 수 없는 위로를 주게 되는 것입니다. 6-7절 말씀을 보면 “우리가 환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와 구원을 위함이요, 혹 위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를 위함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예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환난을 받는 것은 바로 성도들의 위로와 구원을 위한 것이며, 바울 사도가 위로를 받는 것도 성도들이 고난을 견디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이미 그리스도의 고난의 신비를 알게 된 바울이 그 고난의 자취를 남겨서 성도들에게 위로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는 성도들은 세상의 환난이 두렵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두려움은 환난이 닥칠까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성도에게는 환난이 오히려 그리스도의 사랑을 더욱 온전하게 드러나게 할 뿐입니다. 그 사랑으로 인하여 환난 중에 위로와 소망이 더욱 든든해 질 뿐입니다. 믿음의 뿌리가 더욱 견고하게 내려질 뿐입니다. 그러므로 주를 찬송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의 이 찬송이 우리들에게도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10-11절 말씀을 보면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시리라. 또한 이후에라도 건지시기를 그를 의지하여 바라노라.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를 인하여 많은 사람도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큰 사망에서 건지셨다고 합니다. 또한 지금도 건지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후에라도 건지시기를 그를 의지하여 곧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바란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환난 가운데서도 주님이 주시는 위로함을 덧입고 환난 가운데 있는 바울 자신과 믿음의 동역자들을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고 합니다. 이는 많은 사람들의 기도로 얻은 은사를 인하여 많은 사람들도 자신들로 인해서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인해서 어떤 환난이 있습니까?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그 환난 가운데서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건지심을 믿고 주님이 주시는 위로를 덧입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자신이 처한 환난으로 인해서 낙심하지 않게 하시고, 도리어 환난 가운데 있는 믿음의 동역자들을 위로하며,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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