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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고후 4:7-12
성경본문내용 (7)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8)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9)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10)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11)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12)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
강설날짜 2014-04-09

 

2014년 고린도후서 공부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말씀:고린도후서 4:7-12

 

고린도후서 4장은 1:12-7:16절까지 이어지는 바울 사도의 사도직 곧 사도권의 정통성과 그 사도직을 수행하는 자세에 대해 변호하는 일련 기사의 연속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1-6절 말씀을 통해서 사도직에 임한 자신의 자세와 관련하여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만 전했다고 하는 바울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오늘도 지난 시간에 이어서 7-12절 말씀을 공부하고자 합니다. 바울 사도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고난 가운데서도 복음 전파에 매진함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7절 말씀을 보면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바울 사도는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다”라고 합니다. 여기서 바울 사도가 말하는 ‘이 보배’가 무엇이며, ‘질그릇’은 무엇입니까? 여기서 말하는 ‘이 보배’는 세상 사람들이 다 싫다고 버려버린 십자가의 예수님을 말합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본 6절 말씀을 보면 “어두운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고 했습니다(고후 4:6). 어두운데서 빛이 비취라 하시던 하나님이란 무에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말합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어 주셨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천지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그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어 주신 것입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영광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보배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보배를 우리의 질그릇에 가졌다고 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질그릇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우리의 육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창조하실 때 흙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범죄 한 우리 인간의 육체는 후패하고 낡고 병들고 늙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은 죽고 그 후에는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이런 연약함을 질그릇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질그릇은 쉽게 깨어지고 약한 그릇입니다. 그런데 이런 질그릇 같은 것이 바로 우리 인간의 모습인 것입니다. 창세기 3장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 한 우리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죽음을 선고 받습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 창세기 3:19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한 아담에게 “네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흙’이란 히브리어로 ‘rp;[’(아파르)라는 단어인데 ‘티끌’, ‘먼지’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은 흙으로 지어졌습니다. 그리고 범죄함으로 흙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범죄 한 우리 인생은 하나님께서 그 코에서 생기를 거두어 가버리시면 언제든지 티끌과 같이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인생은 질그릇과 같은 연약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시편 90:1-12절 말씀을 보면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 주께서 저희를 홍수처럼 쓸어 가시나이다. 저희는 잠간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벤바 되어 마르나이다. 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 내심에 놀라나이다.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 두셨사오니.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일식 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누가 주의 노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를 두려워하여야 할대로 주의 진노를 알리이까.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이 시편 90편은 모세의 기도인데 우리 인간의 실존을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범죄 하여 생명나무로 나아가지 못하는 인생들의 현실이 이렇게 된 것입니다. 땅의 티끌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우리 인생인 것입니다. 그 인생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수고와 슬픔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노와 자신의 날 계수함을 아는 것이 지혜인 것입니다. 이 시편 90편에 나타난 인간의 실상을 한마디로 말하면 질그릇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질그릇에 보배를 담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이 질그릇에 보배를 가졌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7절 말씀을 다시 보면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를 연약한 우리 인간 곧 질그릇과 같은 우리가 가진 것은 능력의 심히 큰 것이 질그릇과 같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음을 보이기 위하여 그렇게 하셨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복음이라는 보배는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가치가 있지만 그것을 전하는 우리 인생은 조금도 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4절 말씀을 보면 “오직 하나님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 전할 부탁을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우리가 복음을 전할 부탁을 받았다고 합니다. 복음을 전할 부탁을 받은 자들을 ‘질그릇’으로 설명하는 것은 바울이 사람의 육체를 얕보거나 육체는 단순히 영혼을 담는 그릇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는 복음이라는 빛 자체의 헤아릴 수 없는 가치와 아름다움에 비춰 볼 때 빛을 가지고 있는 자가 가치가 없고 매력이 없음을 상대적으로 대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심히 큰 능력은 오직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 인간에게 있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인간의 연약함에서 그 온전함이 나타나 보이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2:9절 말씀을 보면 “내게 이르시기를 네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예수님이 천지만물의 창조의 목표입니다. 그 예수님이 바로 우리 인생의 보배이며, 나머지는 다 그 보배를 빛내기 위하여 도구로 사용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성도라고 하여도 그 겉모습은 질그릇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순간 다른 성질로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세월이 갈수록 점점 더 나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과 똑 같이 늙고 병들고 죽어갑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내가 예수님을 믿으면 그 순간부터 점점 더 나아지는 질그릇이 되고자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보라! 내가 예수를 믿고 나서 이렇게 성공하지 않았느냐’고 하는 것을 과시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것이 타락한 인간의 본능인 것입니다. 그런데다가 설교시간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세뇌를 받고 있으니 성경의 말씀과는 정 반대로 가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무엇에 가려져 있는 것입니까? 수건이 가려져 있는 것입니다. 질그릇인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연약하고 더 깨어지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왜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까? 능력이 질그릇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음을 나타내 보이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8절 말씀을 보면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라고 합니다. 바울 사도는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한다고 합니다. 답답함을 당한다고 합니다. 곧 우리가 핍박을 받고 고난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다윗이 사울 왕에게 쫓겨 도망 다닐 때의 모습과 같은 것입니다. 도저히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람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싸이지 아니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싸이지 아니한다’는 말은 모든 어려운 문제들이 시원하게 해결된다는 그런 말씀이 아닙니다. 질그릇이 사방에 싸여서 꼼짝을 못하여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는 전혀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바울 사도가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무어라고 하였습니까? 자신은 죄인과 같이 매여 있지만 복음은 매이지 아니한다고 하였습니다. 디모데후서 2:9절 말씀을 보면 “복음을 인하여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싸이지 아니한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을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답답한 문제가 시원하게 해결되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소망이 주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소망이 주님께 있기 때문에 비록 답답함 가운데 있을지라도 낙심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핍박을 받아서 사람들에게는 버림을 받는 모습이지만, 거꾸러뜨림을 당하여 망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버림을 받거나 망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 보배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질그릇을 보시고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보배를 보고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피와 땀을 보시고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보배로운 피로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연약과 부족과 실패와 범죄도 주님의 보배로운 피를 이겨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질그릇이란 무엇을 보여주는가 하면 자신의 연약함을 통하여 주님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자신의 약함을 자랑한다고 합니다. 고린도후서 12:9-10절 말씀을 보면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왜 자신의 약함을 자랑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자신의 약함을 통해서 주님의 강함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35-39절 말씀을 보면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극심한 환난 가운데서도 이기심을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세상에서 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이 모든 어려움을 다 당합니다. 심지어 날마다 주를 위하여 죽음을 당하게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습니다. 바울 사도가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까? 다른 사도들도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무엇에서 끊어지지 않는 것을 능력이라고 합니까? 우리가 주님을 붙들고 있는 능력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사랑,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지지 아니하는 것이 능력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능력이 질그릇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10-11절 말씀을 보면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진다고 합니다. 곧 십자가를 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은 어디에 나타나는 것입니까? 십자가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우리 성도들을 십자가, 즉 날마다 죽음으로 넘겨버리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그렇게 하시는 것은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고 그렇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이제부터 내가 세상에서 보란 듯이 잘살게 될 것이라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이제 나는 죽었다고 복창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이는 주님께서 우리를 날마다 죽음에 넘겨버리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고자 할 때 괴로운 것은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죽어야 하는데 죽지 않으려고 하니까 괴로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죽음에 넘겨진 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죽음에 넘겨진 자임을 아는 사람은 현재 당하는 괴로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닥치는 모든 일들을 통하여 주님께서 자신을 죽음에 넘기시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괴로움 가운데서도 기뻐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을 핍박하고 괴롭게 하는 자를 향하여 도리어 축복하는 것입니다. 이때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서 무엇이 나타나게 하십니까? 우리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나타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질그릇에 담긴 보배를 드러내는 모습입니다.

 

사도행전 7장에 보면 스데반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유대인들의 죄를 지적하자 그들은 이를 갈며 옷을 찢으며 스데반에게 달려들어 돌로 쳐 죽였습니다. 그런데 그 때 스데반의 반응이 어떠하였습니까? 사도행전 7:54-60절 말씀을 보면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 대. 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쌔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고 했습니다. 스데반은 자기를 돌로 치는 자들을 위하여 도리어 주님께 용서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스데반이 부르짖어 기도하기를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질그릇에 담긴 보배를 드러내는 모습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통해서 질 그릇 속에 담긴 보배 곧 주님의 십자가 복음의 능력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12절 말씀을 보면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고 합니다. 바울 사도는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한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나타내는 방법은 질그릇을 깨뜨리는 방법으로만 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보배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일에 포장지가 너무 좋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보배보다 상자가 더 좋으면 안 되기 때문에 보배만 보배답도록 그 보배를 질그릇에 담아 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질그릇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 담긴 보배 때문에 질그릇을 구원하시는 것이지 질그릇이 좋아서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연약함에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죽을 육체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나타나게 하시려고 우리를 날마다 죽음에 넘기우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발악을 하여도 소용이 없습니다. 나 죽기 싫다고 소리를 질러도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를 죽음에 밀어 넣으시는 분이 전능하신 능력으로 밀어 넣고 계시기 때문에 실패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질그릇으로 빚으신 것은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있음을 증거 하기 위하여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흙이 약하고 깨어지고 부수어져도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질그릇이 깨어짐으로 그 안의 보배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은 죽음보다 강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죽음에 넘겨서라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지지 아니함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배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허락해 주신 것을 감사하고 찬양합니다. 우리에게 더욱 은혜를 주셔서 우리의 질그릇으로 보배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드러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오직 보배 되신 우리 주님의 영광만이 온전히 드러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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