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7.30 16:28

[레위기 2장] 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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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상범
성경본문 레 2:1-16
성경본문내용 (1)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아(2)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로 가져올 것이요 제사장은 그 고운 기름 가루 한 줌과 그 모든 유향을 취하여 기념물로 단 위에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3)그 소제물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 자손에게 돌릴지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에 지극히 거룩한 것이니라(4)네가 화덕에 구운 것으로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만든 무교병이나 기름을 바른 무교전병을 드릴 것이요(5)번철에 부친 것으로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지 말고 기름을 섞어(6)조각으로 나누고 그 위에 기름을 부을지니 이는 소제니라(7)네가 솥에 삶은 것으로 소제를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와 기름을 섞어 만들지니라(8)너는 이것들로 만든 소제물을 여호와께로 가져다가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단으로 가져다가(9)그 소제물 중에서 기념할 것을 취하여 단 위에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10)소제물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 자손에게 돌릴지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에 지극히 거룩한 것이니라(11)무릇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소제물에는 모두 누룩을 넣지 말지니 너희가 누룩이나 꿀을 여호와께 화제로 드려 사르지 못할지니라(12)처음 익은 것으로는 그것을 여호와께 드릴지나 향기로운 냄새를 위하여는 단에 올리지 말지며(13)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14)너는 첫 이삭의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거든 첫 이삭을 볶아 찧은 것으로 너의 소제를 삼되(15)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위에 유향을 더할지니 이는 소제니라(16)제사장은 찧은 곡식 얼마와 기름의 얼마와 모든 유향을 기념물로 불사를지니 이는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니라
강설날짜 2014-07-30


2014년 7월 30일 수요모임강설 - 레위기 3강


소제


말씀 : 레 2:1-16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성막에서 행할 제사 규례로 5가지를 명하셨습니다. 왜 5가지로 명하셨습니까? 사실 5가지 모든 제사가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을 예표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왜 굳이 5가지로 나눠서 행하도록 하셨을까요? 이것은 이 질문과 비슷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행적에 대해서 왜 굳이 4복음서로 나누어서 기록하게 하셨을까요?” 하나의 복음서로 주시지 않고 헷갈리게 왜 4복음서로 주셨습니까? 그것은 하나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4가지 다른 시선에서 각기 다른 강조점을 가지고 기록하게 함으로써 예수님의 공생애를 보다 입체적으로 보다 풍성하게 계시하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희생제사규례를 5가지 종류로 명하신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에 대해서 보다 입체적이고 풍성하고 다양하게 가르쳐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섯 가지 제사 규례를 배울 때, “그게 그거 같은데 왜 이렇게 복잡하게 주셨나?” 그렇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그 제사에 나타난 독특한 강조점과 가르침들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묵상하면서 복음과 예배와 신앙의 풍성한 의미들을 깨달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배울 소제도 바로 그런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특히 소제는 다른 네 가지 제사와는 다르게 오직 유일하게 피 없이 드리는 곡물제사입니다. 그래서 소제에는 다른 제사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특징들이 있는데, 우리가 이것을 주의하며 살펴보아야 합니다. 먼저 소제라는 말은 원어로 ‘민하’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는 ‘봉헌물, 조공’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신하가 왕에게 충성과 신의를 지키겠다는 의미로 때때마다 바치는 선물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소제란 바로 신실한 예배자가 하늘에 계신 군주에게 바치는 일종의 조공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감사와 충성과 헌신을 표현하는 제사가 바로 소제입니다.


그러면 소제의 규례의 절차가 무엇입니까? 소제는 고운 가루에 기름과 유향을 넣어 예물을 삼아 드리는 제사입니다. 1절을 보시면...


“(1)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아”(레 2:1)


여기서 고운가루는 하얗고 부드러운 최고급 밀가루를 의미합니다. 고대사회에서 고운 밀가루는 사치품에 해당되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소제에서 오직 고운가루만을 드리도록 하신 것은 바로 자신의 최고의 정성과 가치를 담아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함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고운 밀가루에 감람유를 붓고, 유향을 그 위에 놓습니다. 유향은 유향나무의 진액을 말려서 만든 것인데, 그 당시 귀한 약재요 향신료였고, 향기가 매우 진한 특징이 있습니다. 2절과 3절을 보십시오.


“(2)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로 가져올 것이요 제사장은 그 고운 기름 가루 한 줌과 그 모든 유향을 취하여 기념물로 단 위에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3)그 소제물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 자손에게 돌릴지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에 지극히 거룩한 것이니라”(레 2:2-3)


예배자가 고운밀가루와 기름, 그리고 그 위에 유향을 놓은 소제물을 성막에 가져와 제사장에게 주면, 제사장은 그 예물 가운데 기념물로 일부분을 취하여 제단에 불태워 드립니다. 그리고 나머지 소제의 예물은 제사장의 응식으로 돌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다가 아닙니다. 4절부터 10절까지는 고운가루로 요리하여 드릴 수도 있음을 보여줍니다.


“(4)네가 화덕에 구운 것으로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만든 무교병이나 기름을 바른 무교전병을 드릴 것이요(5)번철에 부친 것으로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지 말고 기름을 섞어(6)조각으로 나누고 그 위에 기름을 부을지니 이는 소제니라(7)네가 솥에 삶은 것으로 소제를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와 기름을 섞어 만들지니라(8)너는 이것들로 만든 소제물을 여호와께로 가져다가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단으로 가져다가(9)그 소제물 중에서 기념할 것을 취하여 단 위에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10)소제물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 자손에게 돌릴지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에 지극히 거룩한 것이니라”(레 2:4-10)


즉 밀가루에 기름을 섞어 반죽하여 화덕에 구운 무교병, 또는 무교전병으로 드릴 수도 있고, 프라이팬에 납작하게 구워서 만든 딱딱한 과자로 드릴 수도 있으며, 또 솥에 삶아서 드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솥에 삶는다는 말은 기름에 튀기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밀가루튀김을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소제는 곡물을 요리하여 드릴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이 소제가 한분 귀한 손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최고의 음식으로 대접해드린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요리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는데, 그것은 그 과정에 누룩과 꿀이 들어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11)무릇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소제물에는 모두 누룩을 넣지 말지니 너희가 누룩이나 꿀을 여호와께 화제로 드려 사르지 못할지니라(12)처음 익은 것으로는 그것을 여호와께 드릴지나 향기로운 냄새를 위하여는 단에 올리지 말지며”(레 2:11-12)


누룩과 꿀은 처음 익은 것으로는 드릴 수는 있어도 소제로는 드릴 수 없었습니다. 처음 익은 열매는 신명기 26:2에서 명해진 것처럼 한해 농사의 첫 수확물을 바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의무적으로 드려야 했던 것으로 하나님께 불태워드리지 않고 곧바로 제사장의 수입으로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이 처음 익은 열매에 꿀과 누룩이 예외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불태워 드리는 소제에는 넣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소제를 드릴 때는 반드시 소금을 쳐야 합니다.


“(13)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레 2:13)


그리고 14절부터는 첫 이삭의 소제에 대해서 말합니다.


“(14)너는 첫 이삭의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거든 첫 이삭을 볶아 찧은 것으로 너의 소제를 삼되(15)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위에 유향을 더할지니 이는 소제니라(16)제사장은 찧은 곡식 얼마와 기름의 얼마와 모든 유향을 기념물로 불사를지니 이는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니라”(레 2:14-16)


앞서 말한 처음 익은 열매 규례는 모든 농산물에 대하여 의무적으로 드려야 하는 것이지만, 첫 이삭의 소제는 드리고 싶은 사람이 자원하여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농사를 지어서 첫 이삭의 소제를 드리고자 한다면, 첫 소산을 보다 많이 거두어서 그 중의 일부분은 처음 익은 열매로 드리고, 나머지는 그 곡식을 볶아 찧어서 오늘날로 말하면 거친 통밀가루 그대로 기름과 유향을 곁들어 바쳐야 하는 것입니다.


소제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보았는데, 그러면 이러한 소제 규례를 통해서 우리가 배울 점이 무엇인지 소제의 의미에 대해서 하나하나 배워보겠습니다.


1. 소제는 다른 제사에 부속된 제사


먼저 소제는 다른 제사에 부속된 제사입니다. 소제는 단독으로 드려지는 경우가 거의 없었습니다.


“(3)여호와께 화제나 번제나 서원을 갚는 제나 낙헌제나 정한 절기제에 소나 양으로 여호와께 향기롭게 드릴 때에는(4)그 예물을 드리는 자는 고운 가루 에바 십분지 일에 기름 한 힌의 사분지 일을 섞어 여호와께 소제로 드릴 것이며(5)번제나 다른 제사로 드리는 제물이 어린 양이면 전제로 포도주 한 힌의 사분 일을 예비할 것이요(6)수양이면 소제로 고운 가루 한 에바 십분지 이에 기름 한 힌의 삼분지 일을 섞어 예비하고(7)전제로 포도주 한 힌의 삼분지 일을 드려 여호와 앞에 향기롭게 할 것이요(8)번제로나 서원을 갚는 제로나 화목제로 수송아지를 예비하여 여호와께 드릴 때에는(9)소제로 고운 가루 한 에바 십분지 삼에 기름 반 힌을 섞어 그 수송아지와 함께 드리고(10)전제로 포도주 반 힌을 드려 여호와 앞에 향기로운 화제를 삼을지니라”(민 15:3-10)


여기 보면 번제 드리고 소제 드리고, 또는 화목제 드리고 소제 드리고, 또는 (여기는 나오지 않지만) 속죄제 드리고 소제 드리고, 속건제 드리고 소제 드리고... 이런 식으로 소제는 단독으로 드리지 않고 다른 제사와 함께 드리는 일종의 부속된 제사입니다. 그래서 항상 모든 동물의 희생제사를 드린 후에는 죄를 사해주신 은혜에 감사해서, 그리고 자신의 제사를 열납해주신 것에 감사해서, 꼭 끝에 감사의 제사로 소제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소제는 모든 제사 중에 가장 많이 드려진 제사입니다. 이를테면 약방의 감초와 같습니다.


그래서 이것만 보더라도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일방통행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주시면, 인간 편에서는 감사의 반응이 나오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인격이라면 이것이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다 인격적으로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리고 죄악된 본성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를 너무나 쉽게 잊어버리기 때문에, 너무나 자주 감사하는 마음 없이 냉담하고 태연하게 이 세상을 살아갈 때가 많은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마음을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베풀어주신 그 구원의 은혜를 인해서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이 우리 마음에 있습니까? 아니, 오히려 우리가 십자가 복음 수없이 들어도 무덤덤하게 생각할 때가 많지 않습니까? 그것이 바로 배은망덕이고 인격이 참 잘못되어 있는 것입니다. 개도 먹여주고 키워주면 그 주인의 은혜를 알아서 주인을 사랑하고 충성하는데, 우리는 개만도 못한 인격을 가지고서 이 땅에서 짐승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 형체를 하고 말하고 행동한다고 해서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의 진짜 사람됨은 은혜를 갚을 줄 아는 인격에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누구에게 은혜를 받았으면 그 은혜를 알고 그 은혜를 갚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누구나 자기중심적이고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본성이 있기 때문에 은혜를 받아도 은혜를 갚을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철들면 알죠. 부모가 그렇게 애지중지하며 자신을 그렇게 희생하면서 자식들을 키워도, 자식들은 부모의 은혜를 모르죠. 그러나 언제 알게 되느냐 하면, 남자 같은 경우는 군대 가서 고생 진탕해봐야 비로소 철드는 것입니다. 여자는 애 낳아서 애 키워보면 그때서야 깨닫는 것이죠. 그렇게 철이 들어야 부모님의 은혜를 알고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 어머니 생각하면 눈물이 핑 도는 그런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바로 그렇게 영적으로 철이 들어야 합니다. 영적으로 철들지 않으면 예수님 은혜, 예수님의 사랑, 십자가 복음 암만 들어도, 그것으로 감격하지도 않고 감사하지도 않고 은혜를 갚을 생각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철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영적으로 철이 들 수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말씀과 기도와 성례에 힘써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음으로 우리는 철들게 됩니다. 그리고 또 우리가 이 땅에서 여러 가지 환란과 고난을 당함을 통해서 철들게 됩니다. 탕자가 대표적인 예이죠. 은혜모르는 호로 자식 같은 탕자가 집 나가서 진탕 고생하고 나니깐 아버지의 은혜와 사랑을 비로소 깨달아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고난이 꼭 필요합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한 은혜, 그리고 삶에서의 고난, 이 두 가기를 통해서 우리는 짐승 같은 우리의 인격이, 오로지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인격이 깨트려지고 성령님의 은혜로, 은혜를 알고 은혜를 갚을 줄 아는 아름다운 인격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 마음에 “보답할 수 없는 은혜에 대한 보답의 열망”으로 가득 차게 되는 것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일방통행이 아니고 서로간의 오고가는 아름다운 인격적인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그렇지 못하고 일방통행처럼 신앙생활 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기까지 사랑하셨는데, 우리는 주님께 대하여 냉냉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늘 우리에게 모든 신령한 복과 은혜를 공급해주시는데, 그것에 대해서 우리가 감사한 마음도 없이 당연하다는 듯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신앙생활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주님 아니었으면 다 심판받아 지옥 갈 사람들 아니었습니까? 주님의 사랑과 긍휼로 말미암아, 주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로 우리가 값없이 영생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이 은혜를 우리가 잊어버리지 말고, 늘 기억하면서 주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소제가 바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그러해야 함을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번제 드려서 죄사함의 은혜를 받고...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그 은혜에 너무 감사해서 감사와 헌신의 표현으로 소제를 드리고... 우리가 이런 아름다운 인격의 사람들로 변화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을 뿐만 아니라, 또한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께 감사하며 그 은혜를 갚고자 하는 열망으로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소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예표함


지금 읽은 민수기 말씀을 다시 보면... 재미있는 점을 발견하는데, 그것은 모든 동물의 희생제사에 소제만 곁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제라는 것도 곁들어진다는 것입니다. 소제와 전제는 항상 같이 가는 제사입니다. 전제는 소제의 예물에 포도주를 붓는 것을 말합니다. 왜 포도주를 부을까요? 이것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가나안 땅의 가장 대표적인 특산물이 바로 밀가루와 포도주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주된 양식이고 주된 음료이기 때문에 밀가루와 포도주를 함께 드리도록 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풍성한 수확물들에 대한 감사의 표현으로, 밀가루와 정성스럽게 요리된 빵, 그리고 포도주로 하나님께 대접해 드리는 의식인 것입니다.


그런데 둘째로 이것을 신약의 빛에서 보면, 밀가루 떡과 그 위에 부어지는 포도주는 각각 예수님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너무 알레고리한 해석이 아니냐, 과장된 해석 아니냐” 하며 의문을 제기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전제라고 하는 것, 포도주를 붓는 것을 사도바울이 디모데후서에서 관제라고 하면서 어떻게 적용했습니까? 사도바울은 그것을 자신의 피 흘림으로 해석했습니다.


“(17)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빌 2:17)

“(6)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딤후 4:6)


즉 포도주를 붓는 것이란 바로 피를 흘리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생각해 보면, 소제와 전제란 생명의 떡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으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주셨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소제와 전제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의 양식과 음료가 되시기 위해서 몸이 찢기시고 피를 흘려주셨음을 이 소제가 표현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소제 규례에는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기 때문에 은밀히 감추어졌던 것인데, 신약의 빛에서 보니깐 비로소 알게 되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깐 소제는 피 없는 제사이니깐 속죄의 의미가 전혀 없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기본적으로 그 전제에 깔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소제를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고운 가루 되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피를 흘려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다는 것을 우리가 이 소제를 통해서 묵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소제와 전제는 그뿐만 아니라, 이제 우리가 그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감사함으로 우리 자신을 바울과 같이 주를 위해 관제로 부어드리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이것이 바로 소제와 전제의 정신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성도의 이름은 “목 베임을 받은 자”입니다. 죽도록 충성하는 자입니다. 이것은 순교하는 사람들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주를 위해 순교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 지고 주님을 따르지 않는 자는 절대로 천국 못갑니다. 그래서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해야 하는 것이고, 더욱 주님이 베푸신 은혜를 인해서 우리 자신을 관제로 부어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사도바울을 본받아서 우리 자신을 관제와 같이 주님께 부어드리는 복된 인생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3. 소제는 정성스러운 준비의 과정을 필요로 함


그리고 또한 소제의 중요한 정신이 무엇이냐 하면 예배를 준비하는 과정도 예배라고 하는 것입니다. 소제는 집에서부터 예배가 시작됩니다. 다른 제사는 그냥 제물을 마련해서 성막에 데리고 오기만 하면, 그때로부터 해서 모든 제사의 과정들이 시작되고 진행됩니다. 그러나 소제는 집에서부터 그 의식이 시작됩니다. 먼저 고운가루를 만들어야 합니다. 고운 가루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밀을 충분히 건조시켜야 하고, 그리고 맷돌로 반복해서 갈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얀 고운 가루가 될 때까지 오래도록 갈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름도 준비해야 합니다. 올리브(감람열매)를 즙틀에 짜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유향을 준비하고 소금을 준비하고 포도주도 준비해야 합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고운 가루가 아닌 빵이나 과자나 튀김으로 드리고자 한다면, 집에서 밀가루로 반죽하고 굽는 요리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리고 그 전체 과정에서 꿀과 누룩이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이 과정 전체가 소제의 규례 안에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막에 와서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그 부분만 보시는 것이 아니라, 그 전의 모든 준비 과정까지 하나하나 다 중요하게 보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토요일 밤늦게까지 TV보고 인터넷 하다가 주일날 늦게 일어나서 부랴부랴 준비해서 예배 나왔을 때, 헌금도 미리 준비하지 않고, 그냥 지갑에 있는 거 대충 꺼내서 급하게 봉투에 넣어서 헌금함에 넣고... 오늘 설교말씀 미리 읽고 묵상한 것 없이 와서 예배를 드린다면... 그러한 예배를 하나님이 받으시겠습니까? 예배는 11시부터 예배시작이 아니라, 준비하는 과정도 다 예배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11시에 와서 예배드리는 것만 보시는 것이 아니라, 그 예배를 위한 모든 준비의 과정들을 다 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예배는 어떻게 보면 토요일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월화수목금토 모든 날이 예배를 준비하는 날입니다. 즉 우리의 전 삶의 목표가 주일예배인 것입니다.


그리고 예배를 준비하는 우리의 일주일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삶 속에서 누룩과 꿀을 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룩은 좋은 말로 하면 발효이지만, 나쁜 말로 하면 부패와 오염을 의미합니다. 즉 누룩은 우리 마음을 부패시키고 오염시키는 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꿀은 사람에게 달콤함과 즐거움을 주는 세속적인 행복을 의미합니다. 이런 것들을 우리의 일주일동안의 예배를 준비하는 삶 가운데서 제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7)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8)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고전 5:7-8)


누룩 없는 떡을 먹는 의식은 사실 유월절 의식 때 주어졌던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앞으로 우리가 5가지 제사를 계속해서 배울 것인데 5가지의 모든 제사 규례는 다 유월절 어린양의 희생 제사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유월절 어린양 희생제사의 정신이 그대로 5가지 제사에 나타나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누룩 없는 떡을 먹는 것입니다. 특히 유월절 다음 날이 바로 무교절인데, 무교절은 유월절 다음날부터 7일 동안 누룩 없는 떡을 먹는 의식을 말합니다.


“(15)너희는 칠일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그 첫날에 누룩을 너희 집에서 제하라 무릇 첫날부터 칠일까지 유교병을 먹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끊쳐지리라”(출 12:15)


무교절의 7일은 그리스도의 초림부터 재림까지의 기간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어린양의 보혈로 구원받은 우리가 주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누룩 없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죄를 멀리하고 죄와 싸우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월절 때 쓴나물을 먹는데, 이것은 고난을 상징하죠. 우리는 세상의 즐거움과 행복의 꿀을 버리고 주를 위해 고난 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는 것이 쉽습니까? 너무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맛없는 무교병이나 쓴나물보다도 눈앞에 있는 맛있는 누룩과 달콤한 꿀을 취하며 살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사도바울의 권면을 들어야 합니다.


“(7)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전 5:7)


유월절 어린양되신 예수님이 나를 위해 희생당하셨음을 기억하고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이 묵은 누룩을 제거해야 합니다. 이것은 한번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날마다 제거해서 날마다 새 덩어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찬송가 102장 가사처럼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보다도 귀한 것은 없네...예수 밖에는 없네...” 고백하면서 주님을 향한 순결함과 진실한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된 예배의 삶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주일날 딸랑 나와서 예배드리는 것, 그것만 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월화수목금토 일주일의 삶에서 과연 이러한 거룩하고 순결하게 하나님만을 예배하는 삶을 사는지 그 과정을 다 지켜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우리가 우리의 묵은 누룩과 꿀을 제거하고 하나님께 참된 예배를 드리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4. 소금과 기름과 유향의 의미


오늘 레위기 본문을 계속해서 보시면 소제를 드릴 때 누룩과 꿀을 제해야할 뿐만 아니라 소금과 기름과 유향을 반드시 첨가해야 함을 말씀합니다. 이것도 다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먼저 모든 소제에는 반드시 소금을 치도록 명하셨습니다. 아니 모든 제사, 곧 번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에도 다 제물에 소금 칠 것을 명하셨습니다. 그 의미는 누룩하고는 정반대인 것입니다. 누룩은 부패하게 하고 변질되게 하지만, 소금은 그 반대의 역할을 합니다. 부패하지 않게 하고 변질되게 않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의 영원불변함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19)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모든 성물은 내가 영영한 응식으로 너와 네 자녀에게 주노니 이는 여호와 앞에 너와 네 후손에게 변하지 않는 소금 언약이니라”(민 18:19)

“(5)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소금 언약으로 이스라엘 나라를 영원히 다윗과 그 자손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알것이 아니냐”(대하 13:5)


성경에 ‘소금언약’이라는 표현이 가끔 나오는데, 그것은 바로 변함없는 영원한 언약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양측에서 다 그 언약을 확고히 하는 것입니다. 소제에 소금을 치는 것은 하나님이 예배자에게 영원히 그를 버리지 않으시리라 하고 서약하시는 것이고, 또 예배자 편에서는 하나님께 변치 않는 충성을 바치겠다고 서약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편단심으로 주님만을 위해 살아야 하는데, 실제 삶은 늘 흔들리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육신을 입고 있는 한 우리는 우리 안에 남아있는 죄의 정욕으로 말미암아 끊임없이 죄의 유혹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마음이 누룩과 소금의 끊임없는 영적 전쟁터임을 알고, 날마다 누룩을 제거하고 또 소금을 우리 마음에 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할 때 누룩을 제거하고 소금을 칠 수 있습니까? 유월절 어린양의 희생을 기억할 때만이, 그리고 하나님의 영원불변하는 은혜언약을 우리가 붙잡을 때만이 우리가 누룩을 제거하고 소금을 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날마다 이러한 은혜를 우리에게 부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기름과 유향이 소재의 재료로 사용되는데, 이것도 다 의미가 있습니다. 기름은 우선 성령의 기름부음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기름부음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름은 또한 유향과 함께 기쁨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9)기름과 향이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나니 친구의 충성된 권고가 이와 같이 아름다우니라”(잠 27:9)


소제에서 핵심은 우리의 감사와 헌신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제는 하나님께 드리는 향기로운 냄새입니다. 우리가 참기름을 흘리면, 온 방에 참기름의 고소한 냄새가 가득합니다. 유향을 놓고 태울 때도 그 유향의 독특한 향기가 온 사방에 가득해집니다. 그래서 그 향기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죠. 소제의 기름과 유향은 바로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기름과 유향이 기쁨을 의미하는 것임을 우리는 다른 곳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민수기 5장에 나오는 의심의 소제 같은 경우를 보면, 아내가 간음을 행했다고 의심되지만 이에 대한 증거가 없을 경우, 남편은 아내를 제사장에게 데리고 가서 보리 가루로 소제의 예물을 드린 후 다양한 저주의 의미가 담긴 의식을 행합니다. 이때 남편이 드리는 소제에는 기름과 유향이 전혀 사용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경우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향기로운 냄새로 드리는 제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15)그 아내를 데리고 제사장에게로 가서 그를 위하여 보리 가루 에바 십분지 일을 예물로 드리되 그것에 기름도 붓지 말고 유향도 두지 말라 이는 의심의 소제요 생각하게 하는 소제니 곧 죄악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니라”(민 5:15)


그리고 이와 같은 예는 속죄제에서도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는 비둘기도 살 수 없는 극빈자들에게 동물이 아닌 고운가루로 속죄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해주셨는데, 이때도 보면 기름과 유향을 넣지 않는 것입니다.


“(11)만일 힘이 산비둘기 둘이나 집비둘기 둘에도 미치지 못하거든 그 범과를 인하여 고운 가루 에바 십분 일을 예물로 가져다가 속죄 제물로 드리되 이는 속죄제인즉 그 위에 기름을 붓지 말며 유향을 놓지 말고”(레 5:11)


왜냐하면 속죄제에서의 가장 중요한 초점이 자신의 부정과 죄를 위해 제물이 대신해서 죽는다는 점에 있기 때문에, 속죄제로 드리는 곡물 제사에는 유향과 기름이 사용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제의 유향과 기름은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향기로운 냄새를 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예배의 목적이 나의 만족과 나의 즐거움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데 있음을 잘 보여줍니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예가 바로 예수님의 발에 향유옥합을 부어드린 여인의 예배입니다. 이 여인은 그러한 행위를 통해 무언가를 얻기를 바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알고, 또 자신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신 그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주님께 자신을 헌신해 드리는 의미로 향유를 부어드렸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유향과 기름의 예배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러한 예배를 찾으시고 또 이렇게 예배드리는 자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예배가 어떠합니까? 많은 경우 이 세상에서 복 받기 위해 예배드리고, 천국가기 위해 예배드리고, 이 예배를 통해 내가 위로 받고 은혜 받기 위해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다 기름과 유향이 빠진 예배입니다. 우리의 예배의 목적은 단 한가지여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예배를 통해 위로도 받고 은혜도 받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자 할 때, 거기에 자연적으로 따라오는 것이지, 이 우선순위가 뒤바뀌면 안 되는 것입니다.


5. 소제는 제사장들의 필요를 섬기는 것


계속해서 소제의 마지막 중요한 의미에 대해서 배워보겠습니다. 소제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에 하나는 예배자가 가져온 예물의 일부만, 즉 기름이 섞인 고운가루 한 줌과, 유향 전부를 취해서 그것을 기념물로 단에다가 불태워 하나님께 드리고, 나머지는 다 제사장의 음식으로 사용되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두 가지 의의가 있습니다. 첫째로 제사장들에게 주식을 제공하는 실용적 목적이 이 소제에 있음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사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기업이 없기 때문에 이들은 전적으로 백성들의 호의에 의존해서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필요를 책임지도록 아예 법으로 정해놓셨는데, 그것이 바로 십일조입니다. 백성들은 먼저 레위인들에게 십일조를 바칩니다. 그리고 레위인들은 제사장들에게 십일조를 바칩니다. 그래서 제사장은 레위인들의 십일조로 먹고 생활했습니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서 성막에서 제사를 통해 여러 가지 분깃을 얻어 그것으로 생활했습니다. 특히 가장 많이 드려진 이 소제는 제사장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수입원이었습니다.


그리고 둘째로 소제의 예물을 제사장에게 응식으로 주신 것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는데, 그것은 단순히 제사장에게 필요를 채워준다는 개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예배자가 하나님께 헌신의 의미로 대접해드리는 빵과 포도주의 음식을 하나님이 맛있게 받아 잡수셨다는 것을 가시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제사장들이 받아먹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자는 자신이 바친 그 밀가루와 빵과 과자와 튀김을 제사장들이 자신의 응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보면서 그리고 그것으로 제사장들이 먹고 생활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이 자신의 예배를 기뻐 받으셨음을 확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디서 드러나느냐 하면, 이것을 오직 성막 안에서만 그리고 제사장들만 먹도록 하신 것에서 잘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소제뿐만 아니라 번제와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사장의 가족들은 여기서 얻을 분깃이 없습니다. 그들은 오직 백성들의 첫 열매로 드리는 예물이나, 레위인들의 십일조로 생활하는 것이고, 제사를 드리는 가운데 제사장들에게 주어진 예물들은 오직 성막에 봉사하는 제사장만이 참여할 수 있는 것입니다.


“(16)그 나머지는 아론과 그 자손이 먹되 누룩을 넣지 말고 거룩한 곳 회막 뜰에서 먹을지니라(17)그것에 누룩을 넣어 굽지 말라 이는 나의 화제 중에서 내가 그들에게 주어 그 소득이 되게 하는 것이라 속죄제와 속건제 같이 지극히 거룩한즉(18)무릇 아론 자손의 남자는 이를 먹을지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에서 그들의 대대로 영원한 소득이 됨이라 이를 만지는 자마다 거룩하리라”(레 6:16-18)


그러니깐 이것이 단순히 제사장들의 생활비 공급차원에서 주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제사장이 그것을 먹고 생활하는 것 자체가 바로 예배의 일부분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아주 큽니다.


오늘날 목회자들도 직업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일군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씀하셨고 사도바울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했기 때문에 그 말씀을 따라서 목회자들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따로 직업을 갖지 않습니다. 그래서 목회자들은 철저하게 교회의 성도들의 호의에 의존해서 살아갑니다. 목회자가 교회로부터 받는 생활비는 월급이 아닙니다. 사례비입니다. 성도들이 목회자들을 사랑하고 존경하기 때문에, 그리고 말씀을 가르쳐주고 진리를 알게 해준 것이 너무 감사해서, 그 감사의 표시로 사례비를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월급이라고 말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교회가 목회자에게 사례비 주는 것이 그 과정 전체가 바로 예배입니다.


“(18)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빌 4:18)


빌립보 교회가 사도바울에게 생활비를 지원해주었는데, 그것에 대해서 사도바울은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향기로운 예배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이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냥 주일날 교회 와서 의무적으로 헌금하고 예배 마치면 집에 가고...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바른 의미로 헌상하고, 또 그 헌상으로 목회자를 섬기면서 그 마음에 목회자에 대한 감사의 마음, 존경의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액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례비 꼬박꼬박 많이 달라는 말이 아니라, 목자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중요한 것입니다. 마음속에는 목사에 대한 미움과 불만이 가득한데 그냥 의무적으로 헌금해야 하니깐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의미 없는 예물인 것입니다. 뭐가 중요합니까? 마음이 중요합니다. 갈라디아서에 보면 갈라디아 성도들이 바울을 천사와 같이,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했다고 나오고 또 “너희가 할 수만 있다면 눈이라도 빼어 나에게 주었으리라”라고 바울이 고백합니다(갈 4:14-15). 이것이 목자와 양의 아름다운 관계입니다.


그런데 목회자가 이런 구절을 들먹이면서 이렇게 말하면 안 됩니다. “봐라... 바울한테는 이렇게 갈라디아 성도들이 잘 했는데 당신들은 왜 나한테 이렇게 안 해주냐...” 그렇게 윽박지르는 것은 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그런 대접 받고 싶으면 본인이 먼저 바울처럼 살아야죠. 정말 바울처럼 양들을 위해서 목숨 내놓아가며 헌신할 생각은 없으면서 나도 바울과 같은 대접을 받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주제넘은 생각은 없는 것입니다. 제가 그런 것이죠. 사실 이런 내용을 말하는 저 자신이 낯 뜨겁습니다. 사실 제가 스스로를 보면 저는 정말 굶어죽어도 쌉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의 긍휼과 호의로 이렇게 생활하고 있기에 너무 황송하고, 또 그래서 더욱 회개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참 목자는 돈 주기 때문에 양들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아니라, 굶어죽어도 양떼들을 위해 목숨 내놓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교회에 사례비를 요구하기 이전에 예수님과 바울을 본받기 위해 애를 써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목회자 편에서 애써야 하는 부분이고, 여러분들의 입장에서 애써야 하는 부분은 목회자가 좀 허물지고 부족한 부분이 있어도, 그래도 하나님께서 저 사람을 목회자로 세워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위해 목회자를 존경하고 사랑하고 모든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마음을 가지려고 애를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서로가 이런 관계가 되도록 하기 위해 노력해야죠. 그래서 목자는 양떼들을 위해 목숨 내어놓고 헌신하고, 양들은 목자를 위해 간이며 쓸게며 다 빼주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이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목자와 양의 관계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가 어떻습니까? 성도들은 “아... 목사님 사례비가 너무 많다. 우리 교회 성도 가운데 가난한 사람도 많은데 뭘 저렇게 많이 주나? 목회자는 무조건 가난해야 돼.” 그렇게 생각하면서 어찌하든지 적게 주고 싶어 하고, 목회자는 사례비가 적다고 더 달라고 떼쓰고... 참으로 안타까운 상황인 것입니다. 이게 남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이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회개하고 바울과 갈라디아교회 성도들같이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가운데 바르게 헌상하고 그 헌상으로 교회가 목회자를 섬김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예배와 헌상이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우리 교회에 충만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소제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배웠는데, 이 사실들을 잘 정리해서... 그것을 우리 마음에 새겨서 소제의 정신으로 예수를 믿고 섬기며 사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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