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11장] 사단의 일군, 의의 일군

by 손재호 posted Oct 15,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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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고후 11:7-15
성경본문내용 (7)내가 너희를 높이려고 나를 낮추어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너희에게 전함으로 죄를 지었느냐(8)내가 너희를 섬기기 위하여 다른 여러 교회에서 요를 받은 것이 탈취한 것이라(9)또 내가 너희에게 있어 용도가 부족하되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함은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이 나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라 내가 모든 일에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조심하였거니와 또 조심하리라(10)그리스도의 진리가 내 속에 있으니 아가야 지방에서 나의 이 자랑이 막히지 아니하리라(11)어떠한 연고뇨 내가 너희를 사랑하지 아니함이냐 하나님이 아시느니라(12)내가 하는 것을 또 하리니 기회를 찾는 자들의 그 기회를 끊어 저희로 하여금 그 자랑하는 일에 대하여 우리와 같이 되게 하려 함이로라(13)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14)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15)그러므로 사단의 일군들도 자기를 의의 일군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강설날짜 2014-10-15

2014년 고린도후서 공부


사단의 일군, 의의 일군


말씀:고린도후서 11:7-15

 

우리는 지난 시간부터 고린도후서 11장 말씀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자기를 대적하는 자들을 향하여 자기 자신을 자랑하는 바울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또한 자기 자신을 중매장이로 소개하는 것을 살펴봤습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이 복음을 전하여 죄인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정결한 신부로 드리는 중매장이의 역할을 하나님의 열심으로 감당한다고 하였습니다(고후 11:2).

 

그런데 바울은 어떻게 죄인들이 흠이나 점도 없이 정결한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수가 있다고 하였습니까? 우리의 한 남편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안에서 정결함을 얻는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죄가 주홍같이 붉을지라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눈과 같이 희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정결한 신부가 되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복음으로 중매하여 놓은 고린도 교회에 거짓 선지자들이 들어와서는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끊어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하기 위하여서 먼저 바울을 공격하여야 하였습니다. 곧 바울이 잘못된 일꾼이라고 하고 자신들을 참된 일꾼이라고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여러 가지로 바울을 공격 하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고린도 교회에서 바울이 사례비를 받지 않는 것을 가지고 그의 사도됨을 공격하였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대하여 바울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변호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7-12절 말씀을 보면 “내가 너희를 높이려고 나를 낮추어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너희에게 전함으로 죄를 지었느냐. 내가 너희를 섬기기 위하여 다른 여러 교회에서 요를 받은 것이 탈취한 것이라. 또 내가 너희에게 있어 용도가 부족하되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함은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이 나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라. 내가 모든 일에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조심하였거니와 또 조심하리라. 그리스도의 진리가 내 속에 있으니 아가야 지방에서 나의 이 자랑이 막히지 아니하리라. 어떠한 연고뇨. 내가 너희를 사랑하지 아니함이냐. 하나님이 아시느니라. 내가 하는 것을 또 하리니 기회를 찾는 자들의 그 기회를 끊어 저희로 하여금 그 자랑하는 일에 대하여 우리와 같이 되게 하려 함이로라”고 했습니다. 고린도 교회 교인들 중에 바울의 사도권을 인정하지 않는 자들은 바울이 사례비를 받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것을 두고 사도의 자격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 아니냐고 공격하였습니다. 또한 그들은 11절 말씀을 보면 바울이 사례비를 받지 않고 사역을 한 것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공격하였습니다.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회를 섬길 때 사례비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사도가 아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것을 꼬투리로 바울의 사도됨을 부정한 것입니다. 이런 그들에게 바울 사도는 자신이 왜 사례비를 받지 않고 복음을 전했는지를 밝히면서 자신이 사례비를 받지 않고 복음을 전한 것이 무슨 죄를 지은 것이냐고 아주 강하게 반문을 합니다. “내가 너희를 높이려고 나를 낮추어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너희에게 전함으로 죄를 지었느냐”(고후 11:7).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서 복음 사역을 섬기고자 할 때 많은 돈이 필요하였을 것입니다. 우선 자신이 먹고 사는 문제도 있었을 것이고, 복음 사역을 섬기면서도 많은 물질이 필요하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 역사를 섬기면서 할 수만 있으면 고린도 교회 형제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그들로부터 사례비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대신 그는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마게도냐 여러 교회에서 온 형제들이 바울의 전도 사역을 물질적으로 후원하며 섬겼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고린도 교회 형제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궁핍함을 각오하면서도 사례비를 받지 않았는데 그것이 도리어 그들로부터 공격을 받는 빌미가 된 것입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 형제들로부터 사례비를 받지 않고 복음을 전한 것은 자신이 사도의 자격이 없었기 때문도 아니요, 고린도 교회 교인들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바울은 사도로써 그들을 너무너무 사랑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너무 사랑하였기 때문에 할 수만 있으면 그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을 공격하는 그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고린도 교회 교인들을 사랑했는지를 하나님께서 아신다고 하였습니다. 11절을 다시 보면 “어떠한 연고뇨. 내가 너희를 사랑하지 아니함이냐. 하나님이 아시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고린도 교회 교인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하나님을 증인으로 세울 만큼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하였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형제들로부터 얼마든지 사례비를 받을 자격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사례비를 받지 않은 것입니다. 바울은 사도의 자격이 없기 때문에 사례비도 받지 않고 복음을 전한다고 비난하는 그들에게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다른 교회에서 연보를 받아서 사역한 것이 무슨 죄를 지은 것이냐고 아주 강하게 반문했습니다. 7-9절 말씀을 다시 보면 “내가 너희를 높이려고 나를 낮추어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너희에게 전함으로 죄를 지었느냐. 내가 너희를 섬기기 위하여 다른 여러 교회에서 요를 받은 것이 탈취한 것이라. 또 내가 너희에게 있어 용도가 부족하되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함은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이 나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라. 내가 모든 일에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조심하였거니와 또 조심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에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고린도 교회 형제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 조심하고 또 조심하겠다고 하였습니다.

 

바울의 관심사는 오직 복음이 제대로 증거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례비를 받지 않아야 겠다고 생각한 곳에서는 사례비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사례비를 받아도 되겠다고 생각하는 곳에서는 사례비를 받았습니다. 바울은 오직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이 된 것입니다. 바울이 살던 그 당시 문화를 보면,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새로운 지식을 전하는 자들이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들이 어느 도시에 들어가서 연설을 하면 그 지역의 유지들이 그 사람을 후원하였다고 합니다. 그 사람이 많은 사람들에게 환호를 받는 사람일수록 그는 더 나은 대접을 받았습니다.

 

이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 바울 사도가 사례비를 받지 않은 것은 후원금을 받으면서 연설하는 자들과 자신을 차별화시키기 위함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곧 자신이 전하는 복음이 그들이 전하는 새로운 지식과 다름을 보이기 위함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자신이 전하는 복음은 자신의 지식으로 남을 설득하여 자신을 추종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은 낮아지고 다른 사람을 섬기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7절에서 고린도 교회 교인들을 높이려고 자신을 낮추어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전한 것이 죄를 지었느냐고 반문을 한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진리를 가지고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위하여 모든 일에 스스로 조심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자신이 전한 복음이 바른 복음임을 알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거짓 선생들이 바른 복음을 전한다고 하기에 그들의 자랑거리를 끊어버리기 위하여 계속하여 바울의 자랑이 막히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10절을 보면 “그리스도의 진리가 내 속에 있으니 아가야 지방에서 나의 이 자랑이 막히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 곧 복음이 막히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13-15절 말씀을 보면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단의 일군들도 자기를 의의 일군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과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향하여 무엇이라고 합니까?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 곧 속이는 일군이요,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단도 자신을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듯이 거짓 선생들도 곧 사단의 일군들도 의의 일군으로 가장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바울 사도는 이러한 일이 큰 일도 아니라고 합니다. 그리고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흔히 사단의 일군 그러면 여름에 나오는 공포영화 속의 귀신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단의 일군은 무서운 귀신처럼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광명한 천사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가장 아름답고 매혹적인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단의 속임수입니다. 사단이 사람들이 피하고 싶은 흉측한 모습으로 찾아온다면 누가 그 마귀의 속임에 넘어가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단은 가장 달콤한 유혹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여러 가지 유혹을 어떻게 분별하여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하느냐, 자랑하지 않느냐로 분별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사단의 일군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믿는 자기 자신의 잘남을 자랑하는 자들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이런 능력과 수준에 이르지 못하였지만 자기 자신들은 남들과 달라서 이런 수준에 이러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비밀을 알려 주겠으니 자신을 따르라고 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중매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따르게 하고 자신들의 단체를 추종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이 다 거짓 선지자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자신을 얼마나 믿을 수가 없었으면 예수님을 믿는 것이겠습니까? 자기 속에 가능성이 1%도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입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범죄하고 나서 인간 속에 무엇이 들어오게 되었습니까? 나도 할 수 있다는 사상입니다. 나도 노력만 하면 무엇이나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노력하여 이룰 수 있는 정점이 어디까지라고 생각합니까? 나도 신이 될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범죄 한 우리 인간의 실존입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 교회에서 나오는 설교들을 들어보면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자신의 능력을 고양시키는 쪽으로 나아가는 것을 많이 보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할 수 없었던 일을 예수님을 믿고 나서는 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전부 다 세상적인 것들 입니다. 아무리 겉으로 포장하여 주를 위한다고 하지만 그 속에는 사람의 노력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들 입니다. 이런 가르침과 이런 가르침을 하는 자들은 다 거짓 가르침이요, 거짓 선생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거짓된 가르침과 거짓된 선생들을 잘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들과 이들의 가르침을 물리쳐야 합니다.

 

그러면 이런 거짓 선생들 곧 진짜와 가짜를 어떻게 분별 할 수 있습니까? 고린도전서 2:12-13절을 보면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거짓 선생들 곧 진짜와 가짜는 성령으로 분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이 임하여 분별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세상의 영을 받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은 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들이 다 은혜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 은혜로 주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그리스도의 종이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알게 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세상의 영을 받은 자는 인간의 가능성을 가지고 세상의 것들을 추구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더 매력이 있어 보입니까? 거짓 선지자들이 훨씬더 매력이 있어 보이는 것입니다. 세상의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이생의 자랑이 될만한 것들, 곧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세상의 자랑거리를 내세우는 자들이 얼마나 능력 있어 보입니까? 뱀이 하와를 유혹하듯이 거짓 선생들이 다른 복음, 다른 영, 다른 예수를 전파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들의 특징은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중매쟁이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종으로 삼아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된 의의 일꾼들은 자기의 외모나 능력을 나타내면서 자기를 추종하게 하는 자들이 아니라 자기를 부인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이 메시인가 하면서 따라 오는 자들에게 자신은 메시아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자신은 메시아의 신들메 풀 자격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을 따라오던 자들이 예수님에게로 간다고 제자들이 말하자 자신은 쇠하여야 하겠고 예수님은 흥하여야 한다고 하였습니다(요 3:30).

 

사도행전 3장에 보면 베드로가 성전 미문에서 날 때부터 앉은뱅이 된 자를 일으켰을 때에 사람들이 그를 주목하였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한 말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고 하였습니다(행 3:12). 베드로는 앉은뱅이가 일어난 것이 자신의 권능과 자신의 경건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기를 부인했습니다. 이 사람이 일어난 것은 너희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온전히 낫게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였습니다.

 

바울도 자신의 약함을 자랑한다고 했습니다(고후 11:30). 자신은 죄인 중의 괴수라고 했습니다(딤전 1:15).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갈 6:14). 이런 자들이 진정으로 의의 일꾼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사단의 일꾼들은 자신의 외모를 자랑합니다. 그러나 그 결국은 그들의 행위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 행위대로 된다는 것은 결국 자기들의 종을 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자기는 뒷전으로 물러나야 하는데 왜 자신들을 몰라주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다 엉터리입니다.

 

갈라디아서 1:6-10절을 보고 오늘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결국 사단이 하는 일이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게 하고자 하는 것이 사단의 목적입니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란 세상 사람들의 눈에 어리석고 미련한 것인데 그것을 세상의 좋은 것으로 바꾸어서 제시하는 것이 다른 복음인 것입니다. 사도들이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한다고 하는 사람이 사람을 좋게 하고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한다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의 종이 아닙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사도들이 전한 복음을 분명히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그 복음 가운데 굳게 섬으로 거짓 선생들을 분별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 하는 의의 일군으로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