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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고후 13:1-13
성경본문내용 (1)내가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갈 터이니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정하리라(2)내가 이미 말하였거니와 지금 떠나 있으나 두 번째 대면하였을 때와 같이 전에 죄 지은 자들과 그 남은 모든 사람에게 미리 말하노니 내가 다시 가면 용서하지 아니하리라(3)이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증거를 너희가 구함이니 저가 너희를 향하여 약하지 않고 도리어 너희 안에서 강하시니라(4)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의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5)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6)우리가 버리운 자 되지 아니한 것을 너희가 알기를 내가 바라고(7)우리가 하나님께서 너희로 악을 조금도 행하지 않게 하시기를 구하노니 이는 우리가 옳은 자임을 나타내고자 함이 아니라 오직 우리는 버리운 자 같을지라도 너희로 선을 행하게 하고자 함이라(8)우리는 진리를 거스려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9)우리가 약할 때에 너희의 강한 것을 기뻐하고 또 이것을 위하여 구하니 곧 너희의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10)이를 인하여 내가 떠나 있을 때에 이렇게 쓰는 것은 대면할 때에 주께서 너희를 파하려 하지 않고 세우려 하여 내게 주신 그 권세를 따라 엄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라(11)마지막으로 말하노니 형제들아 기뻐하라 온전케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 하며 평안할지어다 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12)모든 성도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13)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강설날짜 2014-11-19

2014년 고린도후서 공부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시험하라


말씀:고린도후서 13:1-13

 

우리는 지난 시간에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회를 세 번째 방문하고자 하는 것에 대하여 살펴봤습니다. 바울 사도가 세 번째 고린도 교회를 방문할 것이라고 하면서 먼저 편지를 보내는 것이 고린도후서입니다. 오늘 말씀은 고린도후서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서 바울 사도의 마지막 권면의 말씀이 무엇이며, 마지막 인사가 무엇인지를 배우고자 합니다.

 

1-2절을 보면 “내가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갈터이니.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정하리라. 내가 이미 말하였거니와 지금 떠나 있으나 두 번째 대면하였을 때와 같이 전에 죄 지은 자들과 그 남은 모든 사람에게 미리 말하노니. 내가 다시 가면 용서하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세 번째 너희에게 가면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정하겠다고 합니다(참조. 신 19:15). 그리고 용서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러면 바울은 어떤 자들을 용서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까? 두 번째 방문을 하였을 때 말하였던 것처럼 죄 지은 자들을 용서 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봤습니다만 이런 책망 조차도 덕을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곧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 앞에 온전한 자들로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런 책망 속에서 바울 사도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요? 이 시간 우리가 이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바울 사도가 용서하지 않겠다고 하는 죄에 대해서 보겠습니다. 바울 사도가 용서하지 않겠다는 죄가 무엇입니까? 고린도후서 12:20-21절을 보면 “내가 갈 때에 너희를 나의 원하는 것과 같이 보지 못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너희의 원치 않는 것과 같이 보일까 두려워하며, 또 다툼과 시기와 분 냄과 당 짓는 것과 중상함과 수군수군하는 것과 거만함과 어지러운 것이 있을까 두려워하고, 또 내가 다시 갈 때에 내 하나님이 나를 너희 앞에서 낮추실까 두려워하고, 또 내가 전에 죄를 지은 여러 사람의 그 행한바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을 회개치 아니함을 인하여 근심할까 두려워하노라”고 했습니다. 이 땅의 모든 교회들이 다 문제가 있지만 고린도 교회만큼 문제가 많은 교회도 없습니다. 그러니 고린도전후서라는 이렇게 긴 편지가 남겨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교회의 문제를 통하여 결국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고린도 교회의 문제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오늘날 우리들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우리 안에 다툼과 시기와 분 냄이 없습니까? 아주 사소한 일에도 얼마나 많은 다툼들과 시기와 분 냄이 있습니까? 당 짓는 것과 중상함과 수군수군하는 것과 거만함과 어지러운 것이 없습니까? 결코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을 회개치 아니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없습니까? 이 말씀을 나는 바람피우지 않으니 해당 사항이 없다고 말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죄에 대한 책망은 한마디로 세상을 사랑하는 죄악들 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는 이러한 것들이 다 있었던 사람들 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름으로 용서를 받았는데 왜 아직도 그런 짓을 행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9-11절을 보면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 하는 자나 우상숭배 하는 자나 간음 하는 자나 탐색 하는 자나 남색 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 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 하는 자나 토색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과거를 묻지 않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 했습니다(고후 5:17). 그런데 왜 지금도 옛 사람의 허망한 것을 좇아 행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나서도 죄를 지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육신을 입고 있는 한 늘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갈등하게 됩니다. 바울도 이 문제로 늘 갈등을 했습니다(롬 7:23-25). 그런데 예수 믿는 자들이 연약하여 범죄 했을 때 부끄럽게 생각하고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런데 도리어 그것이 무엇이 문제냐며 큰소리치는 모습이 나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후서를 살펴보면 이런 모습들이 도처에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책망하는 바울 사도에게 당신이 사도가 맞느냐며 무시하고 대 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3-4절 말씀을 보면 “이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증거를 너희가 구함이니. 저가 너희를 향하여 약하지 않고 도리어 너희 안에서 강하시니라.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의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바울의 사도권에 대한 대답입니다. 고린도 교회 교인들 중에 그리스도께서 바울 안에서 말씀하시는 증거를 보여 달라고 하였습니다. 곧 바울이 사도라는 증거를 보여 달라는 것입니다. 이런 그들에게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향하여 약하지 않고 도리어 너희 안에서 강하시다는 것입니다. 정말 강한 사도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12장에서 바울은 자신이 부모의 심정으로 희생을 한다고 하고서는 여기 13장에서는 용서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아주 강한 모습입니다. 이것은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요구를 따라서 이랬다저랬다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신 것처럼 하나님의 능력으로 행하겠다는 것입니다.

 

참된 강함이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약함이란 예수님이 힘이 없어서 약하신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후서 8:9절을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연보의 원리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연보 이야기를 하면서 그 원리가 무엇이라고 합니까? 그리스도께서 부요하신 분으로서 가난하게 되심은 우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가 약하심으로 십자가를 지신 것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약하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저의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함께 살 것이라고 합니다. 이 내용이 세상이 알 수도 없고 받을 수도 없는 믿음의 내용입니다. 우리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말하면서 ‘믿은 대로 된다. 네 소원대로 된다’는 말을 너무나 많이 들어왔습니다. 그것도 성경에 있는 말씀을 가지고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방법은 세상의 강한 것으로 하지 않으시고 세상의 미련하고 어리석은 것으로 하시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에서 우리는 이미 여기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고린도전서 1:18절에 보면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계속하여 우리는 세상의 강한 것을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우리 앞에 세상에서 가장 약하고 저주를 받은 십자가를 구원의 표로 제시하신 것은 우리의 죄를 알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도 세상에서 약함보다 강함을 원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고린도 교회 교인들의 모습이나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이나 별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모습을 바울 사도는 어떻게 해결하고 있습니까? 어떤 문제에 대하여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는 율법식의 방법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어떻게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까? 근본을 다시 물어야 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도대체 믿음에 있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5절을 보면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 합니다. 믿음이 있다는 것은 자기 기준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보고서 나는 이만하니 믿음이 있구나 하는 것으로 증거를 삼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고 묻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지 않는다면 너희는 버려진 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온갖 문제들을 말하면서 하나하나 어떻게 의지적인 결단으로 고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은 성령이 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이 임하게 되면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요 16:8-11). 죄란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그러니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예수님을 믿지 않고 내가 나를 믿고 내 결정과 내 인생의 야망을 위하여 살아온 모든 것이 죄임을 알게 됩니다. 이런 죄 때문에 예수님이 대신 죽으신 것을 알고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이 그리스도가 마음에 계시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이미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온갖 문제들이 다 들어난 것입니다. 시기와 질투와 자랑이 나온다는 것은 자신이 무언가 잘난 것이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들에게 바울 사도는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고린도전서 4:7절을 보면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뇨”라고 했습니다. 지금 너희의 믿음이 있는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모든 것을 다 선물로 받은 것임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들에게 은사가 나타나고 무슨 능력이 나타나니 그것을 가지고 자신이 약하여 짐으로 남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남을 누르고 죽이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무엇을 좀 잘한다는 것이 있을 때에 그것을 가지고 자신을 죽이고 남을 살리는데 사용하는가? 아니면 자기를 살리고 남을 죽이는데 사용하는가를 살펴보면 그 사람의 믿음이 받은 믿음인지 자기가 스스로 만들어낸 것인지 구별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바울 사도가 권면하는 내용이 이런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약하심으로 너희가 살게 된 것처럼 내가 약함으로 너희가 강하여진다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6절을 보면 “우리가 버리운 자 되지 아니한 것을 너희가 알기를 내가 바라고”라고 합니다. 바울 사도가 약하여 버림 받은 것처럼 보입니다. 바울은 만물의 찌끼처럼 여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버림을 받은 자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약함으로 다른 사람을 살리는 것이기에 버림 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한 알의 썩는 밀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요 12:24).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자기 백성을 다 살려내시는 것입니다. 이 복음을 증거 하는 자들도 결국 약한 모습으로, 죽는 모습으로 나오지만 그러나 그것이 버림 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7절 말씀을 보면 “우리가 하나님께서 너희로 악을 조금도 행하지 않게 하시기를 구하노니. 이는 우리가 옳은 자임을 나타내고자 함이 아니라, 오직 우리는 버리운 자 같을찌라도 너희로 선을 행하게 하고자 함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내가 약하게 되었으니 나는 옳다! 이것을 주장하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약하여진 것 그 자체가 또 다른 자기의 의가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예수 믿는 것이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나는 예수 믿는 것이 이렇게 약하여지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하면서 이것이 전체적으로 옳은 말씀이지만 이것을 자기가 옳다는 것에 대한 자기 정당성에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직 나는 버림 받은 자 같이 보일지라도 너희로 선을 행하게 하기 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8절을 보면 “우리는 진리를 거스려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진리를 거슬러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 받은 자의 모습입니다. 또한 이것이 믿음에 있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이런 모습을 9절에서 계속 봅니다. “우리가 약할 때에 너희의 강한 것을 기뻐하고 또 이것을 위하여 구하니 곧 너희의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우리가 약할 때에 너희의 강한 것을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내가 죽고 상대방이 사는 것을 기뻐하실 수가 있습니까? 세상은 남이 다 죽어도 자신이 살면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약하고 버림받은 자 같을지라도 다른 사람이 강하여진다면 그것을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또 구하는 것은 “너희의 온전함이라”고 합니다. 성도의 온전함이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믿음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를 시험하여 보라는 것입니다. 과연 지금 하고 있는 그런 일들이 그리스도가 너희 안에 계셔서 지시하시는 일인가를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10절을 보면 “이를 인하여 내가 떠나 있을 때에 이렇게 쓰는 것은 대면할 때에 주께서 너희를 파하려 하지 않고 세우려 하여 내게 주신 그 권세를 따라 엄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렇게 쓰는 것은 대면할 때에 주께서 너희를 파하려 하지 않고 세우려고 한다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동일한 책망을 받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이 과연 믿음의 모습입니까? 행동 하나 하나를 어떤 기준을 제시하여 그것에 들어오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새로운 율법주의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에게 물어봅시다. 내가 믿음에 있습니까? 그리스도가 내 마음에 계십니까? 그 분의 지시를 받고 사십니까? 그렇지 않다면 버려진 자가 되는 것입니다.

 

11절 말씀을 보면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형제들아! 기뻐하라. 온전케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 하며 평안할찌어다. 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라고 합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후서를 마무리 하면서 마지막으로 ‘기뻐하라’고 합니다. 지금 고린도 교회의 문제는 기뻐할 사항이 못됩니다. 우리가 고린도전후서에서 이미 살펴보았습니다만 고린도 교회에는 많은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파당이 생겨 자신들의 우월함을 내세우며 시기하고 경쟁하며 다투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음행의 문제, 우상숭배의 문제, 성찬식의 문제, 결혼문제 등 온갖 문제들이 산적해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서 어떻게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기뻐하라고 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입니까? 바울은 사랑과 평화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실 것이라고 합니다.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11). 그렇습니다.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함께 계시기 때문에 어떤 상황과 어떤 형편 가운데서도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바울은 ‘온전케 되라’고 합니다. 바울이 여기서 말하는 온전케 된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온전케 된다는 것을 자꾸만 자신의 완벽함 쪽으로 나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미 앞에서 보았습니다만 자신의 강함이나 온전함이 아니라 자신이 약할수록 그리스도가 강하시고, 자신이 약할수록 그리스도가 온전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말하는 온전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온전함이 자신에게 덧 입혀지는 것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위로를 받으라’고 합니다. 여기서 위로를 받으라는 것은 바울 사도의 권고를 귀담아 들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을 같이하고 평안하라’고 합니다. 이러한 것들을 지키는 조건으로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이것을 권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로 하여금 거룩하게 교제하며, 서로 문안하라고 합니다. 12절에 보면 다른 지역의 성도들도 너희에게 문안한다고 합니다. 바울 사도가 마지막으로 권면하는 것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자질을 믿고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기에 이렇게 권면하는 것입니다.

 

13절 말씀에 보면 바울 사도는 마지막 축도로 고린도후서를 끝맺고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찌어다”(13). 이 말씀은 강복선언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우리들 가운데 늘 함께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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