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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상범
성경본문 히 9:26-28
성경본문내용 (26)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27)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28)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
강설날짜 2014-12-24

2014년 성탄 기념 축제의 밤 주제강설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요절 : 히 9:26-28


성탄절이 되면 우리의 모든 관심사는 두 가지에 집중되는 것 같은데, 첫 번째는 아기 예수님의 탄생에 집중됩니다. 물론 ‘성탄’이라는 말 자체가 거룩한 탄생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탄절을 마치 예수님 생일잔치하듯 기념한다면 그것은 상당히 잘못 생각하는 것입니다. 성탄의 참된 의미는 “예수님이 탄생하셨다”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내려오셨다”라는 것입니다. 석가모니나 공자처럼 훌륭한 인물 한 사람이 태어났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이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신 그분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입니다. 그것이 성탄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두 번째로 성탄절이 되면 우리는 응당 비천하고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신 사랑의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성탄절마다 교회에서 하는 설교의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늘 영광 다 버리고 낮고 낮은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다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이런 메시지 징 하게 들었죠? 물론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러나 성탄절 날 우리가 이 사실에만 집중하고 아기 예수님만 생각하며 감상에 젖어 있다면, 그것은 너무 좁은 시각으로 복음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부활하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셔서 하늘 보좌우편에 앉으신 예수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 그리고 장차 이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혁혁한 위엄과 영광가운데 재림하여 오실 예수님께 대한 두려움과 경외감 없이, 그저 한 연약한 아기의 모습을 그리며 감상에 젖어있다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복음의 내용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아무리 전해도 세상 사람들은 감동받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형제님을 사랑하셔서 하늘 영광 다 버리고 이 낮고 낮은 베들레헴 마구간에 한 아기의 모습으로 내려오셨습니다.”라고 말하면, “왜 그러시지. 난 바라지도 않는데, 거 되게 부담스럽게 왜 그러신데...” 그렇게 반응합니다. 자기가 왜 구원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깨달음이 없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성육신의 은혜를 설교하는 것 자체가 매우 썰렁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탄절 날에 예수님의 성육신의 은혜를 진정으로 알기 위해서는 우리는 반드시 예수님의 성탄, 곧 초림만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그와 더불어서 예수님의 다시 오심 곧 재림을 이야기하고 또 재림 이후에 있을 심판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히브리서 본문이 바로 우리에게 이러한 사실을 가르쳐줍니다.


(26)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예수님께서는 2000년 전에 우리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습니다. 죄를 없이 한다는 말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내려오셨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한번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죗값을 단번에 다 치르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한번 죽으시고 부활하셨다가 몇 년 지나서 또 내려오셔서 또 죽으시고 하실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요?


(27)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즉 한번 죽는 것이 사람에게 정하신 바이기 때문입니다. 불교처럼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환생해서 태어났다가 또 죽고 그렇게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한번 죽으면 끝이고, 그 이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그걸로 끝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은 한번밖에 없는 인생이고, 죽은 후에는 그 한 번의 인생을 가지고서 하나님 앞에서 최종 결산하고 끝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온전히 사람이신 예수님도 그 인생이 반복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한 번의 인생도 우리를 위한 인생입니다. 곧 우리를 의롭다 칭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대신하여 한 번의 인생을 온전히 의롭게 사신 것이고, 또 우리의 죄를 없이 하기 위하여 우리의 죄값을 다 담당하사 한 번의 죽음으로 우리의 지옥형벌을 대신 당하신 것입니다. 그것으로 구속을 다 완성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속죄의 제사는 결코 반복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생각할 때 논리적인 결론이 무엇입니까? 주님이 장차 이 세상에 다시 오실 것인데, 그 다시 오심은 다시 속죄를 하기 위해서 오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본문이 뭐라고 말합니까?


(28)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


재림하여 오시는데, 그때는 죄와 상관없이, 우리를 궁극적인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오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 표현되지 않았지만, 또한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재림은 죄와 상관없이 오시는 것이기 때문에 초림 때와는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오시는 것입니다. 초림 때는 베들레헴 마구간에 연약한 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일반 사람과 다를 바 없어서 예수님과 마주보고 이야기도 할 수 있었고, 또 심지어 사람들이 예수님을 욕하고 조롱하고 때리고 죽이고... 그렇게 함부로 대해도 별일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재림은 어떠합니까? 그때도 사랑과 자비의 연약한 한 인간의 모습으로 오시는 것입니까? 인류의 죄를 용서해주시기 위해 자기를 비우고 자기를 낮추셔서 이 세상에 임하십니까? 아닙니다. 아주 높이되신 만유의 주로서, 세상의 심판자로서 위엄과 영광가운데 구름을 타고 다시 오시는 것입니다. 초림 때와는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이 세상에 오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그 예수님을 보고 두려움과 충격과 공포에 사로잡혀 그분의 위엄에 압도되어 저절로 무릎이 꿇리고 그분 앞에 엎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주님의 재림을 소망하며 믿음으로 이 땅을 산 거룩한 성도들을 영원한 구원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죄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맹렬한 진노를 쏟아 부어, 어떠한 자비도 없이 그들을 가장 잔인하고 철저하게 짓밟으실 것입니다. 그러면 심판받는 죄인들은 어떤 자들입니까? 교회 안 나가는 사람들입니까? 아닙니다. 그 죄인의 목록이 요한계시록에 나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 21:8)


여기서 누가 가장 먼저 심판받습니까? 예수님 안 믿는 사람이 아니라, 두려워하는 자입니다. 두려워하는 자는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그러나 주님을 따르고자 할 때 당하는 많은 고난과 어려움, 조롱과 핍박을 두려워하여 뒷걸음질 친 비겁한 자들을 말합니다. 주를 위해 목숨 바칠 각오 없이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 양다리 걸치면서 적당하게 신앙생활하는 모든 자들이 바로 여기서 언급된 비겁한 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목숨을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영광만을 위해 살겠다고 하는 각오 없이 비겁한 신앙생활을 끝까지 고집하는 자들은 참되게 예수를 믿은 사람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자기 스스로는 구원받았다고 확신할지 몰라도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런 비겁한 자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비겁하게 신앙생활하고 있지 않는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모든 비겁한 자들은 주님의 재림의 때에 가장 먼저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모든 불신자들이 심판받습니다. 모든 믿지 아니하는 자들, 흉악한 자들, 살인자들, 음란한 자들, 술 취한 자들, 돈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고 온갖 우상을 섬긴 자들, 그리고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을 예수님께서는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 넣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재림하실 때 많은 사람들이 충격과 공포로 두려워 떨며 자신에게 임할 비참한 운명으로 인해서 피눈물을 흘리며 통곡할 것입니다.


“(7)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계 1:7)


이렇게 세상 사람들에게 주님의 재림은 참으로 두렵고도 끔찍한 날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초림이 역사적인 사건인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재림도 의문의 여지없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지금 이 이야기가 동화속의 이야기도 아니고, 공상과학영화 이야기도 아니고, 종교적 망상에 빠진 사람들의 허망한 이야기도 아닙니다. 누구든지 이 사실을 믿든지 아니 믿든지 이 두려운 사건을 이제 곧 현실로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참으로 주님의 재림의 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종말이 머지않았습니다. 물론 주님이 재림하시기 전에 우리가 먼저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어쨌든 개인적인 종말입니다. 설사 주님의 재림이 조금 지체되더라도 우리 모두가 곧 죽을 것이라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인생의 진리 아닙니까? 그러므로 종말은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이요 의문의 여지가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러한 현실을 바르게 직시하고, 우리가 처한 상황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자신의 영혼의 운명에 대해서 지대한 관심을 가져야 할 텐데...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이 부분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별로 생각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대부분 이 문제를 덮어두고 매일매일 당면한 인생문제들에 몰두하며 하루하루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단 마귀가 끊임없이 우리로 하여금 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 눈앞에 세상의 화려함과 즐거운 것들을 보여주어 우리를 속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신의 죽음에 대해, 종말에 대해 신경 쓰지 못하도록 우리를 현혹시킵니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보여주고 매일 매일 직면하는 인생문제들을 주어서 사람들의 사리판단을 흐리게 하고, 우리의 관심사를 자꾸 그쪽으로 향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단마귀에게 속아서 하루하루 바쁘게 살다가 갑자기 말기 암이나, 사고로 죽음이 임박하게 되었을 때, 그때 돼서 “아... 내가 속았구나... 내가 인생 잘못 살았구나...” 후회하고, 비로소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오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는 이 엄중한 진리를 직면하고서, 그때가 되어서 자신의 영혼에 대해 진지한 관심을 가지고, 예수님을 찾고 구원을 부르짖고... 물론 죽을 때 되어서라도 자기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참되게 믿으면 구원받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참으로 이 죽음을 사람들을 회심시키는 아주 중요한 방도로 사용하십니다. 그래서 이승구 교수님도 이 죽음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죽음은 하나님께서 성도를 성화시키기 위한 최후의 방도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죽음 앞에서 비로소 겸손해지고, 심령이 가난해지고, 사리판단이 정확해지고, 가치판단이 제대로 되어져서 무엇이 본질이고 비본질인지 무엇이 행복이 불행인지 제대로 깨닫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죽을 때 항상 후회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후회합니까? 평소에 왜 삶과 죽음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하며 살지 못했는가 하는 후회입니다. “평소에 내 장례식을 생각하며 하루하루 살았더라면 내가 이렇게 살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후회를 하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가 제가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시중에 파는 “죽을 때 비로소 후회하게 되는 25가지”라는 책에 나오는 후회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여러 가지 후회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그 중에 하나가 “죽도록 일만 하면서 살지 말 걸...” 하는 후회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죽도록 일만하면서 살면 죽을 때 반드시 후회합니다. 물론 돈이 있어야 먹고 살 수 있습니다. ‘미생’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살아 남기위해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 분투하는 그 과정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죽자 살자 일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사실은 속고 있는 것입니다. ‘미생’ 드라마는 거짓말입니다. 제가 열심히 일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드라마에서 장그래가 그렇게 자신이 미생임을 알고 육신의 완생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만큼, 영혼의 완생을 위해서 얼마나 고민하고 고뇌하고 일하는 것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없거든요. 그러니깐 거짓말인 것입니다. 장그래처럼 살면 죽을 때 반드시 후회합니다. 여러분, 먹고 사는 것이 본질이 아닙니다. 돈은 조금 없어도 괜찮습니다. 지금 안 벌어놓으면 나중에 노후가 불안 하다구요? 그때가 되면 또 하나님이 살 길을 열어주십니다. 요즘 아무리 먹고 살기 힘들다 해도 굶어죽는 사람 없잖아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우리를 굶기실 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우리의 영혼의 운명이고, 죽음 이후에 있을 영원한 세계에서의 우리의 운명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은혜 없이는 그 누구도 천국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영혼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시간도 없을 만큼,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경건하게 살기 위해 말씀 읽고 기도할 시간도 없을 만큼 일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살면 죽을 때 반드시 후회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죽음을 직면하게 될 때 또 다른 공통된 후회중의 하나가 바로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하고 미워하며 살았던 것에 대한 후회입니다. 죽을 때가 되어서야 “사람이 이렇게 짧은 인생 살다 허무하게 죽을 것을 왜 그렇게 서로 미워하고 다투고 서로 못 죽여서 안달 난 것처럼 그렇게 아옹다옹 하면서 살았던가... 내가 양보하고 용서하고 섬기면 될 것을 왜 내가 내 자존심 내세워가며 미워하고 원망하고 다투고 서로 상처주고 상처를 받았던가...” 그런 후회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임종직전에 용서받고 용서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고민과 후회를 평소에 하면 좋을 텐데, 왜 죽을 때가 되어서야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사단마귀에게 속고 살다가 사람이 죽음을 직면하게 될 때, 비로소 사단마귀의 모든 거짓된 속임수가 드러나고 사단마귀가 이 세상에 덮어놓은 모든 거짓된 포장과 가림막이 걷어지면서, 비로소 인생의 진실을 직면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을 때 비로소 겸손해지고, 지혜로워지고, 가치판단이 제대로 되고, 영적 소원이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명한 말이 있는데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들은 위대한 교사들이며 죽음의 가장 큰 교훈은 바로 '삶'이다.”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이런 깨달음을 미리 얻고자 입관체험(임종체험)을 합니다. 그것을 하면 예수님 안 믿는 사람들도 깨닫는 것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세상 사람들이 하는 그 입관체험을 지금 우리가 이 엄중한 말씀 앞에서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 앞에서 인생의 명백한 진리...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오,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하는 진리... 그리고 “주님이 구원을 위하여 자기를 바라는 자들을 위해 두 번째 오시리라”는 이 명백한 진리를 직면하고서, 죽을 때가 되어서 후회하지 말고, 지금 후회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단마귀에게 속으면 안 됩니다. 돈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 거라고, 그리고 세상의 좋은 것들이 나를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고 유혹하는 사단마귀의 속삭임에 넘어가지 마십시오. 우리가 살면서 먹을 것이 있고 입을 것이 있으면 족한 줄로 알고 하나님이 나에게 선물로 주신 모든 것들... 재물과 가족과 세상의 모든 좋은 것들을 감사함으로 누리면 된 것이지, 그것을 사랑하고 추구하고 의지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여자를 사랑하고,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면서 살면, 우리가 죽을 때 그것들이 우리를 배신하고 우리에게 큰 고통을 안겨다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탄절을 맞이하여 주님의 초림과 재림을 함께 묵상하면서,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근신하며 깨어 기도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간절히 찾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우리가 “아기 예수님... 아기 예수님...” 부르며 감상에 젖어있을 때가 아닙니다. 우리의 영적 처지를 생각하며 울며불며 회개하고 주님의 은혜를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없이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연약한 한 아기의 모습으로 내려오셨습니다. 내가 받아야 할 형벌을 다 십자가에서 대신 받아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그분의 은혜를 믿는 마음으로 받아들이십시다. 그리고 그 은혜만을 온전히 붙잡고 의지하며 삽시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함을 받아서, 세상 정욕, 세상 물욕을 다 버리고, 이 땅에 재물을 쌓지 말고, 경건의 의무에 힘쓰면서, 경건하고 의롭고 거룩하게 이 세상을 주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재림을 소망하며 믿음으로 이 땅에 살며 고난 받을 때,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두 번째 나타나실 것입니다. 이런 후회 없는 인생을 사는 복된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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