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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유다서 1:8-11

2008년 유다서공부
                                                          꿈꾸는 사람들
말씀:유다서 1:8-11

 

우리는 지난 시간에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거리고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이 어떻게 심판 받는 것인가를 구약의 예를 들어 증거 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 증거의 세 가지는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멸망하는 것과, 천사들이 자기들의 지위를 지키지 아니함으로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갇힌 것과,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도시들이 간음과 다른 색을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은 것에 대하여 거울이 되었음을 보았습니다. 이러한 분명한 하나님의 심판을 알고서도 그런 심판을 우습게 여기는 자들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8절에서 ‘꿈꾸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꿈꾸는 사람들이란 교회나 세상이나 가릴 것 없이 꿈과 희망, 비전에 대한 그런 꿈이 아닙니다. 우리가 본문의 꿈꾸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를 바로 알기 위해 먼저 흔히 알고 있는 이런 세상적인 꿈에 대하여서 잠시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래야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 것입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구호가 온 나라를 들썩거리게 하였습니다. 이런 꿈이란 사람들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에서도 꿈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얼마나 많은 교회가 표어로 사용하고 있는지 꿈이라는 단어, 비전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지 않으면 아주 시대에 뒤떨어진 교회이기나 한 것처럼 꿈이 지배하는 그런 교회들이 되어가는 것을 봅니다. 큰 꿈과 큰 비전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건물도 옛날에는 예배당 외에 짓는 건물을 교육관이라고 지었는데 이제는 비전센터라고 짓고 있습니다. 오늘날은 많은 교회가 예배당보다 훨씬 더 멋있고 크게 짓습니다. 다양한 문화시설과 운동시설을 만들어 놓고서 자신들의 비전을 이루겠다고 합니다. 만약 유다서의 저자가 오늘날 한국에 와서 본다면 이런 교회들을 보고 꿈꾸는 자들이라고 하였을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나 세상이 꿈을 이야기 하지만 그런 꿈은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꿈들입니다. 정말 하나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일,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꿈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욕망을 모아서 그것을 꿈이라고 여기며, 그것을 이루도록 하는 것은 다른 복음인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기에 그리스도의 종이 아닌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1:10절에 보면 바울은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본문에서 말하는 꿈꾸는 자들이란 어떤 자들입니까? 공동번역에 보면 ‘제 정신을 잃고’라고 번역했고, 표준 새 번역에서는 ‘몽상에 빠져서’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꿈꾸는 자들이란 구약에서 거짓 선지자들이 거짓 계시를 받고서 참된 계시라고 말한 자들처럼 된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열왕기상 22장에 보면, 아합 왕 때에 시드기야 선지자와 미가야 선지자의 대립을 보게 됩니다. 시드기야도 계시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 증거물로 철 뿔을 만들어 가서 아람과 전쟁하면 이긴다고 합니다. 미가야는 하나님께서 거짓말 하는 영을 그들에게 부어서 그렇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합 왕은 결국 다수의 말을 듣고 전쟁에 나갔습니다. 혹시 죽을까봐 변복을 하고 나갔습니다. 그러나 우연히 한 병사가 쏜 화살에 맞아 죽게 됩니다.

 

신명기 13:1-5절을 보면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네게 말하기를 네가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좇아 섬기자 하며 이적과 기사가 그 말대로 이룰지라도 너는 그 선지자나 꿈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순종하며 그를 경외하며 그 명령을 지키며 그 목소리를 청종하며 그를 섬기며 그에게 부종하고 그 선지자나 꿈꾸는 자는 죽이라. 이는 그가 너희로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며 종 되었던 집에서 속량하여 취하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케 하려하며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행하라 명하신 도에서 너를 꾀어내려고 말하였음이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거짓 선지자들도 그들대로 보는 꿈과 환상과 계시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그들 자신들이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물론 심판받기 위하여 그렇게 됩니다만 그들의 말을 듣는 자들도 결국 심판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말을 청종해서는 안됩니다. 물리쳐야 합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9-12절에 보면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곧 그렇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자들을 심판하기 위하여 그렇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7장 말씀에 보면 “하나님의 나라가 여기에 있다 저기에 있다고 하여도 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어느 시대나 꿈꾸는 자들이 자신들을 추종하게 하려고 온갖 이야기들을 다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의 꿈꾸는 자들이란 마음의 욕망을 하나님의 일로 포장하여 위대한 일을 이루어내고자 하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이런 자들을 더욱 조심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꿈꾸는 자들이란 결국 자기들의 주장을 펼치기 위하여 ‘계시를 보았다, 환상을 보았다. 그러므로 자신들이 전하는 영적인 지식만이 참이라’고 사람들을 미혹하는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유다는 이러한 자들과 힘써 싸우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러한 꿈꾸는 자들의 특징이 어떻게 드러나는 것입니까? 8절에 보면 첫째로 육체를 더럽히는 것입니다. 마치 소돔과 고모라 성의 사람들처럼 육체를 더럽히고 다른 색을 따르면서도 자신들은 자유 한다고 하는 자들입니다. 이런 꿈꾸는 자들이 왜 이렇게 나오는가 하면 그 배후에는 영지주의 사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지주의는 이 세상을 창조하였다는 창조주를 평가 절하합니다. 우리도 그런 생각이 들 때가 많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고 다스리신다면 세상이 어떻게 이런 꼴로 돌아가도록 내 버려두셨는가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습니다. 자신들의 죄를 모르기에 이런 반항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꿈꾸는 자들은 이 세상을 창조한 신은 등급이 낮은 신으로 보고 이런 세상에서의 구원이란 세상의 모든 속박에서 자유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권위를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정당한 권위들마저 업신여기는 자들입니다. 이런 권위를 업신여기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훼방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훼방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비방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비방하는 것은 말과 행동으로서 비방하였습니다.이들은 세상에서 그 어떤 규범에도 순종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교회에서 사도들이 가르친 내용들도 무시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니 어떤 세상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교회에서도 자기들의 음행이나 우상숭배들조차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서 그렇지 못하는 자들을 믿음이 연약한 자나 믿음이 없는 자로 보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5:11-13절에 보면 교회 안에 그런 자들과는 사귀지도 말고 쫒아내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밖에 있는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야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하지 아니하랴.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 

 

셋째로 영광을 훼방하는 자들입니다. 영광을 훼방한다는 것은 이들이 얼마나 안하무인인지 천사의 예를 들어서 증거 하고 있습니다. 9절을 보면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천사장이라도 감히 훼방하는 말을 못하고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한다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미가엘과 마귀가 모세의 시체를 두고서 다투었다는 내용은 유대인들의 전승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 전승을 유다가 성령의 감동으로 사용한 것이라고 봅니다. 신명기 34:5-6절을 보면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벧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 묘를 아는 자 없으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약속의 땅을 보기는 하지만 들어가지는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므리바 물가에서 하나님의 명하라는 말씀을 지팡이로 치면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않았기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장사되었지만 그 묘를 아는 자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묘는 천사의 의하여 감추어진 것입니다. 이 사건의 배후에 미가엘과 마귀의 다툼이 있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세의 무덤을 왜 알지 못하게 하였을까요? 그 이유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하다가 불 뱀에 물려 죽어갈 때에 하나님께서 놋으로 뱀을 만들어 그것을 쳐다보는 자는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열왕기하 18장에 보면 이 놋 뱀을 히스기야 왕 때까지 보관하며 음란하게 섬겼습니다. 그래서 히스기야 왕이 그 놋 뱀을 부수어버렸습니다(왕하 18:1-5). 그런 물건들이 우상숭배에 사용된다면 모세의 묘지도 우상숭배의 대상이 될 것이기에 천사가 숨겨버린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이런 천사장 미가엘조차 함부로 훼방이나 비방의 말을 못하는데 이들 꿈꾸는 자들은 하나님의 영광조차 함부로 비방하는 안하무인인 자들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이런 모습들이 얼마나 빈번하게 일어나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농담거리로 바꾸어서 코미디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다서에서 경고하는 이런 꿈꾸는 자들의 말과 행동들이 오늘날 교회에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면 우리가 믿음의 싸움을 제대로 싸우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런 것들을 용납하고 있는 것입니다. 육체를 더럽히고, 권위를 업신여기고, 영광을 훼방하는 일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자연스럽게 들어와 있는지를 이런 말씀에 비추어 조사를 해보면 깜짝 놀랄 정도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하나님께 돌릴 영광을 얼마나 사람들에게 돌리고 있습니까?

 

10절을 보면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훼방하는도다. 또 저희는 이성 없는 짐승 같이 본능으로 아는 것으로 멸망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이 사람들이란 꿈꾸는 자들을 말합니다. 이들 자신들은 진리에 섰다고 말하고 행동하지만 그러나 그들의 말과 행위를 보면 성전 된 육체를 음행으로 채우고, 정당한 권위마저 업신여기고, 하나님의 영광마저 비방하면서도 자신들은 진리를 알기에 자유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왜 이렇게 된 것입니까?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훼방하는 것입니다. 바른 권면을 들으면 오히려 비방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이성이 없는 짐승과 같이 본능으로 행합니다. 이들은 결국 그 행위로 멸망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꿈꾸는 이런 자들은 사실 짐승과 같이 본능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유다는 이런 자들에게 저주를 선언합니다. 11절을 보면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좇아 멸망을 받았도다”고 합니다. 유다는 꿈꾸는 자들에 대하여 ‘화 있을진저!’ 저주를 발합니다. 곧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합니다. 유다는 꿈꾸는 자들을 또다시 구약의 세 인물 곧 가인과 발람과 고라를 예로 들어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인과 발람과 고라 이 세 사람은 다 같이 이성 없는 짐승처럼 그 본능으로 행하게 된 결과가 살인과 음행과 권위에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먼저 가인의 경우를 보면 하나님께서 동생 아벨의 제사만 받아주시고 자신의 제사는 받아주시지 않으시는 것을 보고 동생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가인에게 죄가 너의 문에 도사리고 있다고 경고를 하시면서 너는 죄를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짐승 같은 본능은 죄를 다스릴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동생을 살해한 것입니다. 이러한 가인의 길이란 자신이 받아들여지지 아니함으로 인하여 시기와 질투와 미움으로 형제를 살해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이 가지 않습니까? 우리 마음의 동기를 예수님은 행위로 보시기에 우리의 마음에 가인과 같은 마음이 있다면 그것이 멸망의 길인 것입니다.

 

두 번째 발람입니다. 민수기 22-24장에 보면 발락과 바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발락 왕이 발람을 불러서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라고 합니다. 발람은 그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으신다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그러나 무엇 때문에 그 어그러진 길을 가는 것입니까? 삯을 위하여 그렇게 한 것입니다. 삯을 위하여 거짓 것을 참되다고 합니다. 쓴 것을 단 것이라고 합니다. 평화가 없는데도 평화를 말합니다. 하나님보다 사람의 눈치를 보게 됩니다. 이런 모습들이 발람의 길입니다. 우리는 이러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행동의 원인과 목표점이 어디에 있습니까?

 

세 번째 고라입니다. 민수기 16장에 보면 고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고라는 모세와 아론이 대제사장의 직분을 행하는 것을 보고 왜 너희만 잘난 체 하느냐고 대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에 대하여 불만을 가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정당한 권위에 대하여 대항한 것은 곧 하나님을 거역한 것입니다. 모세가 지도자가 되고 싶어서 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아모스서에서도 봤습니다만 아모스도 원해서 선지자가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고라는 민수기 16:1-4절에 보면 총회에서 택함을 받은 유명한 족장 250명을 대동하고 와서 왜 똑같이 자신들도 레위지파로 거룩한데 왜 너희만 높이느냐고 하였습니다. 이에 모세는 엎드렸다가 고라와 그 모든 무리에게 말하였습니다. 민수기 16:9절에 보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스라엘 회중에서 너희를 구별하여 자기에게 가까이 하게 하사 여호와의 성막에서 봉사하게 하시며 회중 앞에 서서 그들을 대신하여 섬기게 하심이 너희에게 작은 일이겠느냐”고 하였습니다. 결국 이들은 하나님 권위를 업신여기고 영광을 훼방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고 말은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죄에서 자유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것은 정말 주님의 은혜가 드러나는 삶입니까? 아니면 오늘 책망을 받는 꿈꾸는 사람들처럼 자신들은 가장 영적이라고 여기지만 그러나 그 속은 멸망 받는 짐승처럼 자신들의 본능에만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권위를 업신여기며, 하나님의 영광을 훼방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자신의 본능대로 살아가면서도 자신은 예수 믿고서 자유 한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오늘 책망 받은 사람들처럼 꿈꾸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참된 꿈이 있습니다. 참된 꿈이 무엇입니까? 유다서 24-25절을 보면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자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만고 전부터 이제와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이 말씀이 우리의 참된 꿈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자기의 본능을 좇아 사는 헛된 꿈을 꾸는 자들이 되지 않게 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오직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위에 굳게 서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를 하나님께 세세토록 돌리 드리는 삶을 사는 자들이 되게 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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