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1156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유다서 1:24-25

2008년 유다서 공부
                                                      능히 서게 하실 자
말씀:유다서 1:24-25

 

우리는 짧은 유다서 본문을 그동안 여러 번에 나누어서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유다서의 송영입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살펴본 내용들을 다시 한 번 요약하여 살펴보면서 마지막 송영에 대한 부분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유다는 예수님의 육신의 동생으로 알려진 사람입니다. 그런 유다가 예수님을 어떻게 고백하고 있습니까? 1절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 된 유다는 부르심을 입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라고 했습니다. 자신을 예수님의 동생이라고 소개하면 좀 더 권위가 있었을 것인데도 자신은 야고보의 형제라고는 하면서도 예수님에 대하여서는 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가 예수님을 새롭게 알고 믿게 된 것을 말해 줍니다. 우리가 복음서를 공부할 때 봤듯이 예수님의 육신의 형제들은 처음부터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은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귀신이 들렸다, 미쳤다고 생각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유다가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유다가 언제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건과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을 경험하면서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심을 깨닫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하여튼 이 유다는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받은 구원이 얼마나 좋았는지 그 일반으로 얻은 구원에 대하여 같이 구원을 얻은 형제들에게 편지를 보내려는 마음이 간절하였습니다. 그 일반으로 얻은 구원이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이 없이 부르심을 입고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것입니다. 1절 끝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들이라는 이 내용은 오늘 읽은 마지막 송영에도 연결됩니다. 유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들 곧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더욱 많기를 기원합니다.

 

바울 서신의 인사말은 대부분 은혜와 평강입니다. 고린도전서 1:3절에 보면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한다”고 했고, 갈라디아서 1:3절에도 보면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한다”고 했고, 에베소서 1:2절에도 보면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유다서에서는 은혜와 평강이 아니라 긍휼과 평강입니다. 유다서 1:2절에 보면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고 했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평강이 주어지듯이, 긍휼을 입은 자도 평강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평강이란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일어난 구원의 상태를 포괄적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샬롬’의 뜻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게 됨으로 이웃과 자연과의 관계도 바르게 되는 상황이 바로 평강인 것입니다. 이러한 평강이 주님의 은혜와 긍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이 시대에도 참으로 필요한 것은 세상의 권세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평강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평강을 깨어버리려는 자들이 등장한 것입니다. 4절에 보면 가만히 들어온 몇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거리로 바꾸어버리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믿음으로 주어지는데 그 믿음이란 단번에 주신 믿음인 것입니다. 우리는 단번에 받은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하여 자신의 피를 흘리신 믿음의 선물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믿음을 무너뜨리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게 하는 자들이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힘써 싸우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범사에 알았던 것을 다시 생각나게 하기 위하여 이 편지를 쓴다고 한 것입니다. 일반으로 얻은 구원, 곧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로 얻은 구원이 얼마나 기쁘고 놀라운 선물인지를 쓸 마음이 간절하였는데 가만히 들어온 몇 사람들 때문에 그들과 싸우기 위하여 다시 기억나게 하고 경계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거리로 바꾸어버린 자들이 어떻게 멸망하였는지를 구약의 여러 인물들과 사건들을 통하여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출애굽 한 백성들이 믿지 아니함으로 광야에서 멸망당한 사실과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한 천사들을 영원한 결박으로 어두움에 가두어버린 것과 소돔과 고모라와 그 주변의 도시들이 간음을 하고 다른 색을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5-7). 그런데도 이 꿈꾸는 자들은 그들처럼 육체를 더럽히고 권위를 업신여기고 영광을 훼방하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8). 마치 이성 없는 짐승처럼 자신들의 본능대로만 행하는 자들이기에 그것으로 멸망할 것이라고 합니다(10). 또한 이들은 가인의 길에 행하는 자들이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간 자들이며, 고라의 패역을 좇아 멸망을 받은 자들과 같은 길로 가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11). 그런데도 이들이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받은 자들의 모임에 기탄없이 들어와서는 함께 먹고 마시며 교제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애찬의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며,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가을나무라고 합니다. 그리고 자기의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며, 영원히 예비 된 캄캄한 흑암에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라고 합니다(12-13).

 

이러한 자들의 심판에 대하여 14-15절에 보면 에녹의 예언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녹이 사람들에 대하여 예언하였다는 것입니다. 주께서 수많은 천사들과 함께 강림하셔서 뭇 사람을 심판하시는데 모든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아니한 일과 또 경건치 아니한 죄인이 주께 거슬러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함이라고 합니다. 이 사람들은 원망하는 자며, 불만을 토하는 자며,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들이며, 그 입으로는 자랑하고 이익을 위하여 아첨하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15-16). 에녹의 예언대로 노아 홍수의 심판이 난 것을 이 본문의 말씀을 살펴볼 때 보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오늘날 이 시대가 에녹이 예언한 때와 별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래서 베드로후서 3장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말세에 하나님의 말씀을 희롱하는 자들이 나와서는 심판이 없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종말이 없다고 하는 자들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유다가 말한 것처럼 이성 없이 자기들의 본능대로 산다는 것입니다. 종말이 없고 심판이 없다고 믿고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는 불을 보듯이 분명한 것입니다.

 

이성 없는 짐승처럼 자기 본능대로 사는 시대가 어느 시대나 다 있었지만 오늘날 이 시대만큼 짐승처럼 사는 것을 아주 노골적으로 드러내놓고 사는 시대도 없는 것 같습니다. 정말 이 시대는 자기 몸의 쾌락만을 위하여 사는 세상입니다. 모든 가치를 눈에 보이는 것에 둡니다. 안목의 정욕과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였듯이 온 세상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아예 노골적으로 더 당당하게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1-7절을 보면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저희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바 되어 항상 배우나 마침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정말 이 시대는 이 말씀대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유다서 1:17절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말하기를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치 아니한 정욕대로 행하는 자들이 있으리라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미 이천년 전의 문제만이 아니라 오늘날 지금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오늘날도 마지막 때입니다. 예수님의 초림 때부터 재림 때까지가 다 종말입니다. 그러므로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종말 안에 있는 것입니다. 종말의 특징은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합니다.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합니다. 한 마디로 자기의 정욕대로 살아갑니다. 이들은 당을 짓고 육에 속한 자로서 성령이 없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유다는 이 서신을 받는 성도들에게 유다서 1:20-21절에 보면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건축하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고 합니다. 그리고 유다서 1:22-23절에 보면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이 여기며,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며, 또 어떤 자는 그 육체로 더럽힌 옷이라도 싫어하되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고 합니다.

 

유다서 전체를 이렇게 살펴보니 두렵지 않습니까? 불안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얼마나 자기의 정욕대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입니까? 주님의 뜻에 순종하기보다는 내 몸이 이끄는 대로 나의 욕심을 따라 행하는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나의 만족과 나의 유익을 위한 결정을 먼저 하면서 살아가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유다가 경계하기 위하여 예를 든 수많은 사건과 사람들의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할 수가 있겠습니까? 지난주에 이 말씀을 보았습니다만 만약 우리에게만 이 일을 맡기셨다면 우리는 정말 소망이 없는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죄와 허물로 죽은 자이기에 우리 스스로는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것은 우리가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할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로 말미암기 때문입니다. 곧 성령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로 말미암기 때문입니다.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가 어떻게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겠습니까? 이것은 불가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로만 곧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만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으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오늘 본문인 마지막 인사말을 살펴보겠습니다. 긍휼, 불쌍히 여기심, 주님의 해산의 고통이 담겨있는 긍휼을 아는 유다는 인사말에서 긍휼과 평강과 사랑을 기원했습니다. 그러면 유다는 마지막 송영으로는 어떻게 인사하며 마무리 합니까? 24-25절에 보면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자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만고 전부터 이제와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이라고 합니다. 유다는 이제까지 거짓 선생들에 대해서 논의하며 그들을 분별하고 싸우도록 권면했습니다. 이런 유다는 이제 마지막 인사에서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없이 하시고 영광과 흠이 없이 그의 영광 앞에 서게 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 주님은 누가복음 18장에 보면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는 세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의롭다고 하여 주신 긍휼의 주님이십니다(눅 18:9-14). 그런데도 우리는 수많은 심판의 사례들을 통하여 두려워지는 것입니다. 이 편지를 보는 사람들도 두려울 것입니다. 물론 마땅히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두려워 떠는 자들이 주님께 나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 두려움이 오히려 찬양으로 끝이 나는 것이 오늘의 본문입니다. 24절을 다시 보면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자”라고 했습니다.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거짓 선생과 같은 방해세력도, 이단도, 마귀의 위협에도 능히 보호하십니다.

 

4절을 다시 보면 가만히 들어온 이단들도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 위하여 미리 기록된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이단들의 활동이 왕성하여도 능히 자기 백성을 보호하신다는 것입니다. 능히 보호하시기에 거침이 없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어떤 거침도 제거하여 버리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셔서 그 영광 앞에 서게 하시는데 그냥 세우시는 것이 아니라 흠이 없이 세우신다고 합니다. 우리의 죄가 주홍같이 붉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게 하여 주신다는 그 주님의 말씀처럼 흠도 점도 티도 없이 우리를 주님 앞에 세워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주님 앞에 세워지는 것이 두려움과 공포로 세워주시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으로 세워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영광스럽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즐거움으로 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그러나 이것을 우리가 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은혜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직접 우리를 그렇게 세우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신 것은 자신만이 하나님 앞에서 즐거움으로 서기 위함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택하신 자들도 함께 서게 하시기 위해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12:1-3절을 보면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참으신 것은 자신만 하나님 앞에 즐거움으로 서기 위함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 자들도 그 앞에 즐거움으로 서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소식입니까? 온몸이 전율할 정도로 기쁜 소식이지 않습니까? 거룩하신 주님 앞에 모든 경건치 아니한 것들이 다 불의 심판을 받을 것인데 나 같은 죄인이 즐거움으로 주님 앞에 선다는 그 놀라운 약속을 어찌 찬양하지 아니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25절에서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만고 전부터 이제와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하며 찬송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분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능히 보호하시고 그 앞에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것인데,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우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만고 전부터 이제와 세세에 있을 것입니다. 이 찬송을 부를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큰 기쁨의 자리는 없을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 위에 굳게 서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잘 감당해 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를 흠이 없이 하나님의 영광 앞에 능히 세우실 주님을 소망하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잘 감당케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긍휼과 평강을 풍성히 누려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TAG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강설날짜 조회 수
478 [성탄말씀] 초림과 재림 히 9:26-28 최상범 2014-12-24 1149
477 [학개서 2장] 하늘과 땅의 진동 file 학개서 2:20-23 손재호 1132
476 [학개서 2장] 오늘부터 복을 주리라 file 학개서 2:10-19 손재호 1396
475 [학개서 2장] 나중 영광 file 학개서 2:1-9 손재호 1414
474 [학개서 1장] 자기의 소위를 살펴보라 file 학개서 1:7-15 손재호 1164
473 [학개서 1장] 성전이란 무엇인가 file 학개서 1:1-6 손재호 1456
472 [하박국 3장] 우리에 양이 없을찌라도 file 하박국 3:16-19 손재호 1079
471 [하박국 3장] 부흥케 하옵소서! file 하박국 3:1-15 손재호 1373
470 [하박국 2장]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file 하박국 2:4-14 손재호 1980
469 [하박국 1장] 기다리라! file 하박국 1:12-2:3 손재호 1120
468 [하박국 1장] 어찌하여! file 하박국 1:1-11 손재호 1757
467 [하박국 2장] 잠잠할찌니라 file 하박국 손재호 912
466 [유다서 1장] 꿈구는 사람들 file 유다서 1:8-11 손재호 1134
465 [유다서 1장] 다시 생각나도록 file 유다서 1:5-7 손재호 1004
464 [유다서 1장]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 file 유다서 1:3-4 손재호 1057
» [유다서 1장] 능히 서게 하실 자 file 유다서 1:24-25 손재호 1156
462 [유다서 1장] 사도들이 한 말을 기억하라 file 유다서 1:17-23 손재호 1344
461 [유다서 1장] 에녹의 예언 file 유다서 1:12-16 손재호 1283
460 [유다서 1장] 예수 그리스도의 종 file 유다서 1:1-2 손재호 1289
459 [요한이서 1장] 처음부터 가진 것 file 요한이서 1:4-9 손재호 995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 24 Next
/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