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108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하박국 1:12-2:3

2007년 하박국서 공부

기다리라!

말씀:하박국 1:12-2:3

 

공의로운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율법이 시행되어야 할 유다 땅에 악인이 형통하고 의인이 고난 받는 이런 일이 어찌하여 일어나는 것입니까? 다른 나라라면 몰라도 유다 땅에서 이런 일이 계속되고 있으니 율법이 해이하게 되며, 공의가 굽게 되었다고 선지자가 하나님께 질문하고 있습니다. 이런 질문에 대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아주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하셔도 믿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신 그 놀라운 일이란 갈대아 사람을 일으켜서 유다를 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바벨론이 쳐들어오는데 그들의 두렵고 무서운 나라로서 그 힘으로 자기 신을 삼는 나라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우리는 지난 시간에 공부했습니다.

 

그러면 왜 그런 나라로 이스라엘을 공격하게 하시는 것입니까? 이스라엘 사람은 말이나 병거를 의지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여야 하는 나라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으니 이스라엘도 역시 이방나라처럼 세상의 힘을 그들의 신으로 삼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가장 힘센 바벨론으로 유다를 공격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들의 불신앙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인 것입니다. 이러한 심판에 대하여 그들이 그 당시에 믿을 수 없었던 것은 바벨론이 세계무대에서 새로운 강대국으로 등장한 것을 아직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전의 앗수르가 북 이스라엘을 공격하였듯이 이제는 바벨론이 남 유다를 공격할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하박국 선지자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이 답변을 들은 하박국 선지자가 이 답변에 대하여 또다시 질문합니다.

 

12-13절을 보면 “선지자가 가로되 여호와 나의 하나님, 나의 거룩한 자시여 주께서는 만세전부터 계시지 아니하시니이까 우리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리이다. 반석이시여 주께서 경계하기 위하여 그를 세우셨나이다. 주께서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궤휼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되 잠잠하시나이까”라고 합니다. 이 말씀에 보면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은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는 분인데 어찌 궤휼한 자를 방관하시며, 어떻게 악인이 의로운 사람을 삼키되 잠잠하고 계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심판을 받아 마땅하지만 그러나 우리보다 더 악한 나라에 의하여 심판을 받아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경험들이 없습니까? 내가 하나님 앞에서 잘못한 것은 인정하지만 그러나 나보다 못한 사람에게서 손가락질 받는 것은 더 견디기 힘든 것이 아닙니까? 내가 잘못하였을 때에 나보다 의로운 자가 나를 책망하면 할 말이 없겠는데 평소에 나보다 형편없이 악을 행하는 그런 자에게서 책망을 받는다면 이것이 과연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처사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 질문이 1:12-2:1절까지 입니다. 12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선지자가 가로되 여호와 나의 하나님, 나의 거룩한 자시여 주께서는 만세전부터 계시지 아니하시니이까 우리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리이다. 반석이시여 주께서 경계하기 위하여 그를 세우셨나이다.” 하박국 선지자는 이제 심판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심판 중에도 여호와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있습니다. 선지자가 자신을 유다나라로 대표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부릅니다. 주께서는 만세전부터 계시지 아니하셨나이까? 우리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리라고 합니다. 비록 심판을 행하시기 위하여 바벨론을 일으키신다고 하셔도 반석이신 주께서 우리를 경계하기 위하여 그렇게 하신 것임을 선지자의 질문 속에 그의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들어있습니다. 만세전에 계신 분이시기에 그의 계획과 작정이 영원할 것임을 믿는 것입니다. 비록 심판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영원하신 뜻이 취소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기대를 하고서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13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두 번째 질문입니다. 새 번역으로 보겠습니다. “주께서는 눈이 맑으시므로, 악을 보시고 참지 못하시며, 패역을 보고 그냥 계시지 못하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배신자들을 보고만 계십니까? 악한 민족이 착한 백성을 삼키어도, 조용히만 계십니까?” 우리가 악을 행하여 심판을 당하는 것이면 마땅하지만 그러나 우리보다 악한 이방민족이 우리를 심판하시는 것이 옳습니까? 14절을 보십시오. 어떻게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바다의 물고기마냥 아무나 잡아먹도록 하시는 것입니까? 주권자가 없는 곤충같이 여기십니까? 이런 질문이 여러분에게는 없습니까? 어떻게 하나님이 살아계신다고 하시면 하나님을 의지하는 백성들이 세상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눌림을 당하고 억압을 받도록 그냥 두시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15-17절입니다. 바벨론은 그들의 힘을 신으로 삼고 있는 나라입니다. 그들의 무기와 군사력으로 세상을 지배하면서 그 군사력을 신으로 섬기고 있는 그들의 무력적인 힘을 신으로 삼고 있는 나라인데 어떻게 그런 나라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유다 나라를 공격하여 올 수가 있다는 것입니까? 이런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질문이 없습니까?

 

이런 질문에 대한 일본인의 소설이 있습니다. 엔도 슈사쿠의 침묵이라는 소설인데 일본에 포루투칼의 신부들이 일본에 선교를 가서 당하는 일들을 줄거리로 한 소설입니다. 신부 앞에서 신자를 고문하며 그 신음소리를 듣게 하여 신부가 배교를 하면 살려주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신부가 그 사람을 살리려고 배교합니다. 그리스도가 여기에 있었어도 배교하였을 것이라고 하면서 배교를 합니다. 성화를 밟고 지나갑니다. 그때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밟아라! 나는 밟히기 위하여 왔다고,,, 그런 과정에서도 기적은 일어나지 않고 신은 침묵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믿음이란 일본인들을 선교하는 문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믿음에 대한 투쟁이었음을 주인공의 입을 통하여 말하고 있는 책입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이 살아계시기에 기도하고 금식하면서 매달리면 반드시 응답한다는 그런 설교를 너무나 많이 들어왔습니다. 그것도 자기의 소원과 꿈을 이야기 하면서 그것을 성공하면 하나님을 위하여 사용하겠다는 엄청난 포부를 말하면서 당연히 자기가 성공해야 하고 성공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손해라고 자신만만해 하는 사람들이 한 두 사람이 아닙니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들도 세상의 힘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멋있게 해보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유다가 바벨론의 심판을 받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않고 세상의 힘을 의지 하였기에 세상에서 가장 힘센 나라가 쳐들어오는 것입니다. 사사시대에 힘 있는 왕을 달라고 백성들이 요구하였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 왕이신데 그 하나님을 버리고 인간 왕을 요구한 것입니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키가 크고 힘이 센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힘 있는 사울 왕 보다 훨씬 더 키가 크고 힘이 센 골리앗이 공격해 온 것입니다. 이 골리앗 앞에 벌벌 떨 듯이 바벨론이 쳐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골리앗을 물리친 사람은 아직 군대 갈 나이도 아닌 소년 다윗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을 받아서 주의 이름을 의지하여 이긴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는 세상의 힘을 두려워하지 않고 주님의 이름만 기대합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형들조차 건방지다고 나무란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하심은 사람의 기대를 언제나 빗나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측할 수 없도록 일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답변을 보겠습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두 번째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이 무엇입니까? 2:1절에 보면 하박국 선지자가 질문을 하고 하나님의 대답을 기다립니다.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은 결국은 2장 전체에서 바벨론이 멸망할 것이라고 말씀하시지만 그러나 당장에 어떤 결과를 주시지는 않습니다. 몇 년 만 기다리는 식의 말씀은 없습니다. 다만 기다리라고만 답변을 하십니다. 2:2-3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묵시를 판에 기록하여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도록 하라고 하십니다. 왜 이렇게 판에 명백하게 새겨야 합니까? 반드시 성취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묵시를 믿을 사람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당장에 결론이 날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7장에서 보면 남쪽 유다가 북 이스라엘과 아람왕의 연합군의 공격을 받습니다. 그때 이사야 선지자가 아하스 왕에게 징조를 구하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물리치신다는 징조를 구하라고 하지만 아하스 왕이 구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불신앙 때문입니다. 지금 당장 적이 쳐들어 와 있는데 어떻게 구원하실 수 있겠느냐며 믿지 않았을 때에 하나님께서 친히 징조를 주십니다. 그 징조가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는 징조입니다. 이 예언의 성취는 이사야 시대 이후 약 700년이 지나서 성취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임마누엘의 성취란 인간의 불신앙을 공격하시면서 주어지는 예언인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믿든지 안 믿든지 하나님의 약속은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박국 선지자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그 묵시의 정한 때가 있으니 기다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비록 더딜지라도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더디다고 하는 것은 우리 눈에만 더디게 보이는 것이지 하나님은 하나도 더딘 것이 아니라 만사가 다 주님의 뜻대로 하나의 실수도 없이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잠잠히 기다리는 것입니다. 세상이 어떻게 요동을 칠지라도 악인이 의인을 삼키고 부조리한 일이 매일 일어나는 곳이지만 그러나 주님은 살아계셔서 자신의 일을 쉬지 않고 이루어가고 계심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받은 묵시대로 바벨론은 멸망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시대의 사람들은 믿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묵시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런 말씀의 궁극적인 성취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으로 연결이 됩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천년 전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다시 오실 때까지 성도란 복음을 증거 하면서 다시 오시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믿고 기다리는 자들이 세상에서 어떤 모습으로 보이겠습니까? 우리도 하박국 선지자의 고민이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더 힘을 가지고 큰소리치면서 사느냐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면 믿는 우리에게 힘을 주세요! 이것이 기도제목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믿음이란 세상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만 알 수 있도록 십자가라는 고난으로 가려놓은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그 버림받은 모습에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동참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이란 하나님의 정하여 놓은 묵시의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는 이 말씀을 기억하면서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3:8-13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고 했습니다. 더딘 것이 아니라 우리가 회개하도록 참고 기다리신 것입니다.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회개하게 하시고 주님의 묵시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악인이 판을 치는 이 시대에 끝까지 인내하며 믿음으로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TAG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강설날짜 조회 수
472 [성탄말씀] 초림과 재림 히 9:26-28 최상범 2014-12-24 1131
471 [학개서 2장] 하늘과 땅의 진동 file 학개서 2:20-23 손재호 1102
470 [학개서 2장] 오늘부터 복을 주리라 file 학개서 2:10-19 손재호 1324
469 [학개서 2장] 나중 영광 file 학개서 2:1-9 손재호 1346
468 [학개서 1장] 자기의 소위를 살펴보라 file 학개서 1:7-15 손재호 1127
467 [학개서 1장] 성전이란 무엇인가 file 학개서 1:1-6 손재호 1409
466 [하박국 3장] 우리에 양이 없을찌라도 file 하박국 3:16-19 손재호 1053
465 [하박국 3장] 부흥케 하옵소서! file 하박국 3:1-15 손재호 1345
464 [하박국 2장]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file 하박국 2:4-14 손재호 1922
» [하박국 1장] 기다리라! file 하박국 1:12-2:3 손재호 1087
462 [하박국 1장] 어찌하여! file 하박국 1:1-11 손재호 1699
461 [하박국 2장] 잠잠할찌니라 file 하박국 손재호 890
460 [유다서 1장] 꿈구는 사람들 file 유다서 1:8-11 손재호 1101
459 [유다서 1장] 다시 생각나도록 file 유다서 1:5-7 손재호 983
458 [유다서 1장]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 file 유다서 1:3-4 손재호 1033
457 [유다서 1장] 능히 서게 하실 자 file 유다서 1:24-25 손재호 1117
456 [유다서 1장] 사도들이 한 말을 기억하라 file 유다서 1:17-23 손재호 1309
455 [유다서 1장] 에녹의 예언 file 유다서 1:12-16 손재호 1254
454 [유다서 1장] 예수 그리스도의 종 file 유다서 1:1-2 손재호 1266
453 [요한이서 1장] 처음부터 가진 것 file 요한이서 1:4-9 손재호 964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 24 Next
/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