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16장]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붓다

by 손재호 posted Apr 29, 2015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사무엘상 16장
강설날짜 2015-04-29

2015년 사무엘상 공부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붓다
말씀:사무엘상 16장

 

사무엘상 16장에서 사무엘하 5장까지 말씀은 다윗이 왕으로 세움을 받는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사무엘상 16장 말씀은 이 큰 단락의 첫 부분에 해당 되는 말씀으로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통해서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기름을 붓는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사건에 두신 하나님의 계시를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사무엘상 15장 말씀을 통해서 사울을 버리신 하나님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사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림으로 하나님께서도 사울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사울의 왕 됨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악한 요구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를 들어주셨지만 이방의 전제 군주와 같은 왕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의 왕으로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울 왕은 신탁자로써 자기 뜻대로 나라를 통치 할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여 통치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사울 왕은 여호와의 말씀보다 백성들의 눈치를 보고 자기 욕심을 따라 행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습니다. 그 결과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왕이 어떤 왕이신가 하는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버리시고 이새의 아들 다윗을 택하여 세우시고 그에게 기름을 부으셨습니다. 오늘 본문 1-3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기름을 뿔에 채워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 아들 중에서 한 왕을 예선하였음이니라. 사무엘이 가로되 내가 어찌 갈 수 있으리이까. 사울이 들으면 나를 죽이리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암송아지를 끌고 가서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러 왔다 하고 이새를 제사에 청하라. 내가 너의 행할 일을 가르치리니. 내가 네게 알게 하는 자에게 나를 위하여 기름을 부을찌니라”고 했습니다. 사무엘이 사울로 인하여 슬퍼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봤습니다만 사무엘상 15:1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는 말씀에 불순종한 사울을 왕 삼으신 것을 후회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사무엘은 사울을 위해 밤을 세워 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회개 하기는 커녕 도리어 자신의 명예를 위해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울을 폐하셨습니다. 사무엘상 15:34-35절에 보면 사무엘은 이런 사울을 죽는 날까지 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사울을 위하여 슬퍼함이었고, 여호와께서 사울로 이스라엘의 왕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들에 기초해서 볼 때 하나님께서 사울의 왕됨을 폐하였을 때 그로 인해서 사무엘이 큰 슬픔에 빠져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때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나타나셔서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고 하시면서 뿔에 기름을 채워 베들레헴 이새의 아들 중에 한 왕을 예선하였으니 그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예선했다’(דאיהי 라이티)는 말은 원래 ‘기쁨으로 보았다’라는 뜻인데 이 단어는 종종 특별한 선택의 행위를 뜻할 때 사용 되었습니다(창 41:33). 그러므로 본절에서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한 왕을 당신의 기뻐하심에 따라 택정하셨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그때 사무엘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2절을 보면 “내가 어찌 갈 수 있습니까? 사울이 들으면 나를 죽일 것입니다”고 했습니다. 사무엘이 이새의 아들들 중에서 왕을 세우기 위하여 가면 사울 왕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당연히 가만히 있지 않겠죠. 새로 세운 왕 뿐만 아니라 그에게 기름을 부어 세운 사무엘도 반역자로 몰아 죽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무엘의 이러한 반응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런 사무엘에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라고 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암송아지를 끌고 가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왔다고 하라고 합니다(2). 그리고 3절에 보면 그 제사에 이새를 청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여호와께서 행할 일을 알려 주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자신이 알려 주는 자에게 나를 위하여 기름을 부으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이새의 아들들 가운데서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우는 것은 백성을 위한 것이거나 왕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 자신을 위해 왕을 세우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는 3절에서 “나를 위하여 기름을 부을찌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한 왕은 우상입니다. 출애굽기 32:1절을 보면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아론에게 이르러 가로되 일어나라.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 때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고 합니다. 여기서 볼 때 알 수 있듯이 우리를 위한 왕은 우상입니다. 사울이 폐위를 당한 것도 하나님을 위한 왕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왕이었기 때문입니다.

 

4-5절을 보면 사무엘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여 베들레헴에 오자 성읍 장로들이 떨며 맞이하였습니다. 왕을 세우는 자가 사무엘이었는데 이런 선지자가 와서 자기들에게 무엇을 말할는지 두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평강을 위하여 왔느냐”고 물은 것입니다. 이에 사무엘은 “평강을 위해 왔다”고 하면서 여호와께 제사하기 위해 왔으니 스스로 성결케 하고 와서 함께 제사하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새와 그 아들들을 성결케 하여 제사에 참여 하도록 청하였습니다.

 

6-7절을 보면 이에 이새와 그 아들들이 사무엘에게로 나아왔습니다. 사무엘이 자기 앞에 나아온 이새의 아들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그 앞에 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사무엘은 엘리압의 외모를 보고 마음에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7절에 보면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말씀하시기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하셨습니다(7b). 사울의 용모와 신장으로 인하여 백성들이 그를 환호하여 왕으로 세웠습니다. 그런데 사무엘도 엘리압의 용모와 신장을 먼저 본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한 사무엘조차도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사무엘에게 하나님께서는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자신은 그 중심을 보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중심’이란 마음, 영혼, 의지, 심장 등으로 번역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의 선함을 보시고 택하신 것일까요? 결코 그렇지는 않습니다. 사람의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어려서부터 항상 악할 뿐이라고 성경은 분명히 선언하고 있습니다(창 6:5, 8:21). 다윗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다윗도 간음을 행하고 살인을 행하는 것입니다(삼하 11장).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외모로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신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사람들이 보는 식으로 하나님은 보시지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8-12절을 보면 엘리압이 탈락하자 이새는 아비나답을 사무엘 앞에 지나가게 합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는 그도 택하지 않았다고 하십니다. 이에 삼마도 사무엘 앞에 지나가게 합니다. 그런데 삼마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새가 그렇게 그 아들 일곱을 다 사무엘 앞을 지나가게 하였지만 여호와께서는 그 중에서 아무도 택하지 아니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일곱’이란 완전하다는 의미로 보아도 됩니다. 아버지 이새가 아들들 중에 하나님의 택하실 자가 있을까 하여 데리고 온 일곱은 아무도 택함을 받지 못하였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사무엘이나 이새나 간에 외모로 본 것입니다. 이에 사무엘이 아들이 더 없느냐고 묻자 이새가 막내가 있는데 양을 지킨다고 하였습니다. 이새는 다윗은 아직 어려서 왕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아에 데리고 오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사무엘은 이 다윗을 데리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와야 식사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급히 양을 지키고 있던 다윗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모습이 어떠하였다고 합니까? 12절을 보면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다윗의 외모를 봤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이 말은 외모를 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울과 비교해서 다윗은 아직 소년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람의 중심을 보신다는 것은 사람의 조건과 대비되는 관점으로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시지 않습니다. 그 중심을 보십니다. 신명기 10:17절을 보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의 신이시며 주의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신의 신이시요, 주의 주이시며, 크고 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보시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람을 외모로 보시지 아니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2:16절을 보면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참으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라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7:2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사람을 고치신 일로 시비 거는 자들에게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롭게 판단하라고 하셨습니다.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의 판단으로 판단하라”(요 7:24). 사도행전 10장에 보면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주의 천사의 지시로 억지로 가서 복음을 전하였을 때에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는 것을 보고서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신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10:34-35절을 보면 “베드로가 입을 열어 가로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외형적인 조건으로 취하면 그것이 죄를 짓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2:1-9절을 보면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으니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만일 너희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더러운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돌아보아 가로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이르되 너는 거기 섰든지 내 발등상 아래 앉으라 하면 너희끼리 서로 구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찌어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괄시하였도다. 부자는 너희를 압제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저희는 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 훼방하지 아니하느냐. 너희가 만일 경에 기록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한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만일 너희가 외모로 사람을 취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죄자로 정하리라”고 했습니다. 회당에 부자가 오고 가난한 자가 왔을 때에 차별하여 대하면 이것이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구원함을 받는 것은 그 사람이 다른 어떤 사람보다 더 나은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언약을 위하여 창세전에 택하신 자들을 일방적인 긍휼로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2:13절을 보면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긍휼 안에는 차별이 있을 수가 없고 외모를 따질 수가 없습니다. 다 불쌍히 여김을 받아서 구원함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사울보다 마음이 착해서 택함을 받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보는 생각들과 하나님의 마음이 다름을 보여 주시기 위하여 외모로 보시지 않으시고 그 중심을 보신다고 말씀 하신 것입니다.

 

13절과 18절을 보면 다윗이 사울과 다른 마음의 중심에 어떤 선한 것이 있었다면 하나님께서 다윗의 자질을 사용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음으로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이 되었다고 합니다. 13절을 보면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음으로 여호와께 감동되어 다윗의 생애가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18b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사울에게 다윗을 추천하는 자들의 말입니다.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아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기에 다윗의 다윗 됨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다윗을 잠시만이라도 함께 하시지 않으시면 간음과 살인을 하고 자기 힘을 과시하기 위해 인구조사를 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고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으로만이 다윗이 되는 것입니다.

 

14-23절을 보면 다윗에게 기름을 붓자 여호와의 영이 다윗을 크게 감동시키십니다. 그런데 사울에게는 여호와의 영이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을 번뇌하게 합니다. 사울도 여호와의 영에 감동이 되었을 때에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였지만 여호와의 영이 떠나고 악령이 임하여 이렇게 된 것입니다. 사울의 신하들이 이를 알고서 사울 왕에게 수금을 잘 타는 이로 하여금 왕의 앞에서 수금을 타게 하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악령이 떠날 것이라고 합니다. 이에 사울 왕은 그렇게 하라고 합니다. 그 때 소년 중 한 사람이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는 다윗을 추천하고 사울은 다윗을 보고 크게 사랑하여 자기 무기 드는 자로 세웁니다. 또 사울에게 악령이 역사할 때에 다윗이 수금을 타면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령이 그에게서 떠나갔습니다. 이렇게 해서 다윗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왕으로 세워집니다.

 

고린도전서 1:26-31절을 보면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도입니다.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합니다.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고 합니다. 그 자랑이 무엇일까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면 예수님만을 자랑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그 사람의 세상적인 조건을 보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 되십니까? 그 분은 나의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이 되십니다. 우리가 이렇게 고백한다면 이런 자들 안에서 무슨 차별이 있겠습니까? 고린도후서 5:17절을 보면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외모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는지를 봅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계시면 우리도 사람의 외모가 아닌 그 중심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그 마음의 중심을 보시고 다윗을 택하사 기름 부어 세우시는 하나님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 앞에 서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마음 중심에 모셔 들이게 하시고 그 은혜 안에서 함께 형제된 자들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TAG •

Articles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