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18장]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

by 손재호 posted May 13,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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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사무엘상 18장
성경본문내용 (1)다윗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마치매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연락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니라(2)그 날에 사울은 다윗을 머무르게 하고 그 아비의 집으로 다시 돌아가기를 허락지 아니하였고(3)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여 더불어 언약을 맺었으며(4)요나단이 자기의 입었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었고 그 군복과 칼과 활과 띠도 그리하였더라(5)다윗이 사울의 보내는 곳마다 가서 지혜롭게 행하매 사울이 그로 군대의 장을 삼았더니 온 백성이 합당히 여겼고 사울의 신하들도 합당히 여겼더라(6)무리가 돌아올 때 곧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여인들이 이스라엘 모든 성에서 나와서 노래하며 춤추며 소고와 경쇠를 가지고 왕 사울을 환영하는데(7)여인들이 뛰놀며 창화하여 가로되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지라(8)사울이 이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가로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의 더 얻을 것이 나라 밖에 무엇이냐 하고(9)그 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10)그 이튿날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사울에게 힘있게 내리매 그가 집 가운데서 야료하는 고로 다윗이 평일과 같이 손으로 수금을 타는데 때에 사울의 손에 창이 있는지라(11)그가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다윗을 벽에 박으리라 하고 그 창을 던졌으나 다윗이 그 앞에서 두번 피하였더라(12)여호와께서 사울을 떠나 다윗과 함께 계시므로 사울이 그를 두려워한지라(13)그러므로 사울이 그로 자기를 떠나게 하고 천부장을 삼으매 그가 백성 앞에 출입하며(14)그 모든 일을 지혜롭게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니라(15)사울이 다윗의 크게 지혜롭게 행함을 보고 그를 두려워하였으나(16)온 이스라엘과 유다는 다윗을 사랑하였으니 그가 자기들 앞에 출입함을 인함이었더라(17)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내 맏딸 메랍을 네게 아내로 주리니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용맹을 내어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라 하니 이는 그가 생각하기를 내 손을 그에게 대지 말고 블레셋 사람의 손으로 그에게 대게 하리라 함이라(18)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되 내가 누구며 이스라엘 중에 내 친속이나 내 아비의 집이 무엇이관대 내가 왕의 사위가 되리이까 하였더니(19)사울의 딸 메랍을 다윗에게 줄 시기에 므홀랏 사람 아드리엘에게 아내로 준바 되었더라(20)사울의 딸 미갈이 다윗을 사랑하매 혹이 사울에게 고한지라 사울이 그 일을 좋게 여겨(21)스스로 이르되 내가 딸을 그에게 주어서 그에게 올무가 되게 하고 블레셋 사람의 손으로 그를 치게 하리라 하고 이에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오늘 다시 내 사위가 되리라 하니라(22)사울이 그 신하들에게 명하되 너희는 다윗에게 비밀히 말하여 이르기를 보라 왕이 너를 기뻐하시고 모든 신하도 너를 사랑하나니 그런즉 네가 왕의 사위가 되는 것이 가하니라 하라(23)사울의 신하들이 이 말로 다윗의 귀에 고하매 다윗이 가로되 왕의 사위 되는 것을 너희는 경한 일로 보느냐 나는 가난하고 천한 사람이로라 한지라(24)사울의 신하들이 사울에게 고하여 가로되 다윗이 여차여차히 말하더이다(25)사울이 가로되 너희는 다윗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왕이 아무 폐백도 원치 아니하고 다만 왕의 원수의 보복으로 블레셋 사람의 양피 일백을 원하신다 하라 하였으니 이는 사울의 생각에 다윗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 죽게 하리라 함이라(26)사울의 신하들이 이 말로 다윗에게 고하매 다윗이 왕의 사위 되는 것을 좋게 여기므로 만기가 되지 못하여서(27)다윗이 일어나서 그 종자와 함께 가서 블레셋 사람 이백명을 죽이고 그 양피를 가져다가 수대로 왕께 드려 왕의 사위가 되고자 하니 사울이 그 딸 미갈을 다윗에게 아내로 주었더라(28)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계심을 사울이 보고 알았고 사울의 딸 미갈도 그를 사랑하므로(29)사울이 다윗을 더욱 더욱 두려워하여 평생에 다윗의 대적이 되니라(30)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나오면 그들의 나올 때마다 다윗이 사울의 모든 신하보다 더 지혜롭게 행하매 이에 그 이름이 심히 귀중히 되니라
강설날짜 2015-05-13

2015년 사무엘상 공부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


말씀:사무엘상 18:1-30

 

사무엘상 18장은 사울이 다윗을 시기하여 죽이고자 하는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치고 돌아오자 이스라엘 여인들로부터 열열한 환영을 받습니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7). 이 일로 사울은 다윗을 시기하여 주목하여 보았습니다. 사울은 이 시기심 때문에 결국 악령에 사로잡혀 다윗을 죽이고자 합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다윗은 사울의 모든 신하보다 더 지혜롭게 행하여 그 이름이 귀중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 보는 가운데 이 말씀을 통해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1절을 보면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치고 돌아왔을 때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연락이 되어서 다윗을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요나단의 마음이 어떻게 다윗의 마음과 연락이 되었을까요? 오늘 본문에서는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 요나단 자신도 용사라 다윗이 골리앗을 무찌르고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 그 마음이 끌렸던 것 같습니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3절에 보면 이에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여 그와 언약을 맺었습니다. 요나단이 구체적으로 다윗과 어떤 언약을 맺었는지 오늘 본문에서는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보면 서로에 대해, 또한 서로의 자손에 대해 선대하기로 언약을 했습니다. 사무엘상 20:14-16절을 보면 “너는 나의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의 인자를 내게 베풀어서 나로 죽지 않게 할뿐 아니라. 여호와께서 너 다윗의 대적들을 지면에서 다 끊어버리신 때에도 너는 네 인자를 내 집에서 영영히 끊어 버리지 말라 하고 이에 요나단이 다윗의 집과 언약하기를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대적들을 치실지어다 하니라”고 했습니다.

 

4절을 보면 요나단은 다윗과 언약을 맺고 자기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군복과 칼과 활과 띠도 다윗에게 주었습니다. 나중에 다윗이 사울의 미움을 받아 생명의 위협을 당하며 쫓겨 다니지만 요나단과의 우정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사무엘상 23장에 보면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십 황무지 수풀에 은거 해 있을 때 요나단이 찾아와서 다윗을 위로하고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도록 격려하였습니다. 사무엘상 23:16-17절을 보면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일어나 수풀에 들어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그로 하나님을 힘있게 의지하게 하였는데 곧 요나단이 그에게 이르기를 두려워 말라. 내 부친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요,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부친 사울도 안다 하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기초해서 보면 결국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은 주를 사랑하는 것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곧 주 안에서 서로 생명을 나누는 친구가 된 것입니다. 참으로 주 안에서 이런 생명을 나누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복입니다. 우리 가운데도 주를 사랑함으로 다윗과 요나단과 같이 생명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2절에 보면 사울은 골리앗을 물리치고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대승으로 이끈 다윗을 그 아비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자기 곁에 머물게 하였습니다. 5절에 보면 다윗은 사울이 보내는 곳마다 가서 지혜롭게 행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사울이 이런 다윗을 군대의 장으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젊은 다윗을 군대의 장으로 삼았지만 이스라엘의 온 백성들은 그것을 합당히 여겼습니다. 사울의 신하들도 이를 합당하게 여겼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름 부음을 받은 다윗과 함께 하시고 그를 섭리로 인도하고 계심을 볼 수 있습니다.

 

6-9절 말씀을 보면 다윗이 골리앗을 주의 이름으로 물리치고 전쟁에서 대승을 한 후에 돌아 왔습니다. 그때 이스라엘의 여인들이 나와서 열열히 환영을 하였습니다. 그 환영이 어떠합니까? 6-7절을 보면 무리가 돌아올 때 곧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여인들이 이스라엘 모든 성에서 나와서 노래하며 춤추며 소고와 경쇠를 가지고 왕 사울을 환영하는데 여인들이 뛰놀며 창화하여 가로되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창화하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hn:[ 아나’라는 단어인데 문자적인 의미는 ‘대답하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여인들이 돌아가면서 교대로 노래를 이어 받아서 하였던 것 같습니다. 당연히 다윗에게 돌아갈 칭송이지만 사울 왕은 시기심에 사로잡혀 분노하였습니다. 다윗을 자신의 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곧 다윗이 앞으로 이 나라를 차지할 놈으로 주목하여 보았습니다. 8-9절을 보면 “사울이 이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가로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의 더 얻을 것이 나라 밖에 무엇이냐 하고 그 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사울의 이러한 두려움의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영이 떠나버렸기 때문입니다. 사울이 처음에 사무엘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았을 때 그는 참으로 겸손하였습니다. 우리가 사무엘상 10장에서 봤습니다만 백성들이 제비를 뽑아 사울을 왕으로 세우려고 하였을 때 그는 짐 사이에 숨어 있었습니다. 그만큼 그는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며 자기 영광을 추구하였습니다. 그로인해서 하나님 앞에서 행하기보다 백성들의 눈치를 보았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말씀을 버림으로 하나님께서도 사울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버리자 이제 그에게 두려움이 찾아온 것입니다. 사울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다윗을 미워하고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10-12절을 보면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고 노래한 그 이튿날에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힘 있게 내렸습니다. 그로인하여 사울은 집 가운데서 야로 하였습니다. 여기서 ‘야료’(惹鬧)하였다는 말은 시끄럽고 흐트러지도록 이끈다는 말인데 사울이 악령에 사로잡혀 야단법석을 벌인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울을 위해서 다윗이 평소처럼 수금을 타지만 사울은 그런 다윗을 향하여 도리어 창을 두 번이나 던져서 죽이려고 합니다. 사울이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12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사울을 떠나 다윗과 함께 계시므로 사울이 그를 두려워한지라”고 했습니다. 사울이 현재 왕임에도 불구하고 다윗을 두려워한 것은 하나님의 영이 자신을 떠나 다윗과 함께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13-16절을 보면 “그러므로 사울이 그로 자기를 떠나게 하고 천부장을 삼으매 그가 백성 앞에 출입하며, 그 모든 일을 지혜롭게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니라. 사울이 다윗의 크게 지혜롭게 행함을 보고 그를 두려워하였으나 온 이스라엘과 유다는 다윗을 사랑하였으니 그가 자기들 앞에 출입함을 인함이었더라”고 했습니다. 사울은 다윗에 대한 시기심으로 악령에 시달렸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사울은 다윗을 군대의 장에서 천부장으로 강등시켜 자기를 떠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함으로 다윗은 백성들 앞에 출입하며 모든 일을 지혜롭게 행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모습을 본 사울은 또다시 두려운 것입니다. 15절을 다시 보면 “사울이 다윗의 크게 지혜롭게 행함을 보고 그를 두려워하였으나”라고 했습니다. 다윗이 백성들에게 인정을 받으면 받을수록 사울은 다윗이 이제 곧 자기를 밀어내고 왕이 될 것이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은 이처럼 다윗을 미워하였지만 이스라엘과 온 유다는 다윗을 사랑하였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다윗이 자기들 앞에 출입하였다”라는 말은 무슨 말씀일까요? 이 말은 다윗이 사울 왕 앞에 출입하였다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는 왕으로서 하나님 앞에 출입하였다는 말입니다. 사무엘하 5:1-2절을 보면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와 말하여 가로되 보소서. 우리는 왕의 골육이니이다. 전일 곧 사울이 우리의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려 출입하게 한 자는 왕이시었고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윗을 왕으로 모셔오면서 하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윗을 왕으로 모셔 오면서 하는 말이 “우리는 왕의 골욕이니이다. 전일 곧 사울이 우리의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려 출입하게 한 자는 왕이시었고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출입하였다’는 말은 사울이 비록 왕으로 있었지만 백성들을 하나님 앞에서 인도하여 출입한 자는 다윗이라는 것입니다. 다윗이 사울의 미움을 받아 강등되었지만 백성들의 왕노릇을 하고 있었습니다.

 

17-19절을 보면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내 맏딸 메랍을 네게 아내로 주리니.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용맹을 내어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라 하니. 이는 그가 생각하기를 내 손을 그에게 대지 말고 블레셋 사람의 손으로 그에게 대게 하리라 함이라. 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되 내가 누구며 이스라엘 중에 내 친속이나 내 아비의 집이 무엇이관대 내가 왕의 사위가 되리이까 하였더니. 사울의 딸 메랍을 다윗에게 줄 시기에 므홀랏 사람 아드리엘에게 아내로 준바 되었더라”고 했습니다. 사울이 다윗에게 자신의 맏딸 메랍을 아내로 주겠다고 하면서 나를 위하여 용기를 내어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라고 합니다. 여기서 볼 때 사울은 자신을 위하여 싸우는 것이 여호와를 위한 싸움임을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들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면서 실상은 자기의 이익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행할 때가 많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울이 다윗에게 자기 맏딸을 주면서까지 자신을 위하여 용기를 내어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라고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것은 다윗을 위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에게서 죽게 하려고 다윗에게 블레셋 사람을 공격하도록 요구한 것입니다. 이런 사울의 요구에 다윗은 자기 집안이 왕의 사위가 될 만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고 하며 거절을 합니다. 그런데 사울은 자기 딸을 다윗에게 줄 마음이 아에 없었습니다. 사울은 이미 자기 딸 메랍을 므홀랏 사람 아드리엘에게 아내로 주어버렸습니다. 사무엘상 17장에서 우리가 본 대로 사울은 골리앗을 물리치면 많은 상금을 주며 자기 딸을 주며 세금을 면제해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17:25). 그런데 사울은 그 약속도 지키지 않았고 이제는 다시 맏딸을 주겠다는 조건을 내 걸면서까지 다윗을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사울의 이러한 행동은 다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20절을 보면 사울의 딸 미갈이 다윗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누가 사울 왕에게 고하여 바쳤습니다. 사울 왕이 이 소식을 듣고 좋게 여기며 다시 다윗을 죽일 계략을 꾸밉니다. 21절에 보면 사울은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딸을 그에게 주어서 그에게 올무 되게 하고 블레셋 사람의 손으로 그를 치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사울은 미갈을 다윗에게 주어 사위로 삼는 척하면서 블레셋 사람으로 하여금 다윗을 치게 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사울은 자신의 신하들에게 비밀 명령을 내립니다. 22절에 보면 “사울이 그 신하들에게 명하되 너희는 다윗에게 비밀히 말하여 이르기를 보라. 왕이 너를 기뻐하시고 모든 신하도 너를 사랑하나니. 그런즉 네가 왕의 사위가 되는 것이 가하니라 하라”고 했습니다. 이에 사울의 신하들이 다윗에게 왕이 사위 삼기를 원하고 왕의 신하도 그렇다고 전합니다. 그러자 다윗은 자신은 가난하고 천한 사람이라서 감히 왕의 사위가 될 수 없다고 합니다(23). 그러자 25절에 보면 사울은 다시 신하들에게 다윗에게 가서 왕은 아무 폐백도 원하지 않고 다만 왕의 원수의 보복으로 블레셋 사람의 양피 이백을 원한다고 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다윗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 죽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사울의 신하들이 다윗에게 사울 왕의 말을 고하매 다윗이 왕의 사위가 되는 것을 좋게 여김으로 날이 차기 전에 블레셋 사람 이백 명을 죽이고 왕이 원한 양피 이백을 바쳤습니다(26-27). 그러자 사울이 자기 딸 미갈을 다윗에게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다윗이 사울 왕의 사위가 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하셨습니다.

 

28-30절을 보면 사울은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계시고 자기 딸 미갈도 다윗을 사랑하는 것을 보고 더욱 더욱 다윗을 두려워합니다. 사울은 자기의 아들 요나단은 이미 다윗을 사랑하여 자기의 모든 것을 다 준 것을 압니다. 그러므로 사울이 다윗을 더욱 두려워하여 평생토록 다윗의 대적이 됩니다. 그러나 다윗은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이 싸우러 나오면 사울의 모든 신하들보다 더욱 지혜롭게 행하여 그의 이름이 심히 귀하게 됩니다(30). 이제 사울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다윗을 중심으로 이스라엘과 주변나라들까지 새로운 질서가 세워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마음에 합한 다윗을 섭리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사울 편에 설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다윗 편에 설 것인가를 결정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마찬가지 입니다. 세상에서의 일들을 두려워하여 세상의 편에 설 것인가, 아니면 세상이 싫다고 버린바 된 예수 그리스도의 편에 설 것인가를 결정해야 합니다. 우리의 두려움이 무엇인지 우리는 직시하여 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윗을 따르려면 기존의 왕의 미움을 받습니다. 반역자로 몰려 처형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다윗을 따를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야만 합니다. 사무엘상 22장에 보면 환난을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들이 다윗에게로 몰려갔습니다. 사무엘상 22:2절을 보면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 장관이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명 가량 이었더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신 자들입니다. 사울 왕이 비록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망령된 제사를 드림으로 폐함을 당하였지만 여전히 이스라엘의 왕으로 굴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다윗이지만 그를 따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다윗을 따른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무엇이 두려움 입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따르고자 할 때에 무엇이 두려움으로 다가옵니까? 성경에서 처음 나타난 두려움은 선악과를 따 먹은 이후입니다. 창세기 3:9-10절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타락한 인간의 최초의 반응이 벗었기에 두려움을 느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의 두려움이란 결국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린 것이 두려움의 근원입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내가 나를 지키려고 하니 모든 이웃들이 나의 적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두려움에서 어떻게 해방이 될 수 있는 것입니까? 요한복음 14:27절을 보면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떠나신다는 말씀에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떠나시는 것이 더 유익한 것은 떠나심으로 보혜사 성령을 보내시기 때문입니다. 그가 오시면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나게 하시면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시고 함께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사울의 두려움은 하나님의 영이 떠남으로 두려움이 왔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주의 영이 임하여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두려움에 짓눌려 살지 않게 됩니다. 주님이 주시는 참된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요한일서 4장에 보면 두려움을 이기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사랑이라고 하였습니다. 요한일서 4:18-19절을 보면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먼저 사랑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위해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대속물로 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삼일만에 부활하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므로 우리의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습니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은 죽음을 이기신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여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의 두려움이 어디에서 오는지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주님의 사랑을 알게 하여 주시고, 오직 주님의 그 온전한 사랑 안에 거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모든 두려움을 물리치게 하시고, 우리로 주님의 사랑 안에서 늘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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