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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학개서 1:1-6

2007년 학개서 강설(1)
                                                      성전이 무엇인가?
말씀:학개 1:1-6

 

오늘부터 구약의 소선지서 중에 학개서를 공부하고자 합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수요기도회에서 주로 교리 공부를 해왔습니다. 당분간 교리 공부를 중단하고 신구약 성경 공부를 하고자 합니다. 우리 교회는 성경공부를 많이 해 왔지만 사실 구약 성경은 많이 공부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선지서를 가지고 설교한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필요에 따라 본문 일부분을 택하여 특강으로 설교할 때가 대부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할 수만 있으면 구약과 신약을 번갈아 가며 꾸준히 공부하고자 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학개서 공부를 넘치게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학개서는 성전재건 역사를 독려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의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고레스의 칙령으로 바벨론에서 귀환한 유대인들은 열정을 갖고 성전 재건 역사를 섬겼습니다(참조. 에스라와 느헤미야서).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성전 재건 역사는 여러 가지 문제로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사마리아 사람들과 바벨론 포로로 잡혀 가지 않고 남아 있던 백성들의 조직적인 훼방과 재정적인 부담으로 성전 재건 역사에 대한 열정이 식어갔습니다. 그 결과 백성들은 자기 집을 꾸미며 안주하는 삶에 빠져들었습니다. 이런 시대 가운데 선지자 학개는 시들어가는 성전 재건 역사를 회복하도록 독려합니다. 그의 메시지의 핵심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는 것이었습니다(1:8). 학개는 당시 농작물의 흉작(1:9)과 한재(1:10-11)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나님을 의뢰하도록 상기시키시는 하나님의 징계의 손길이었음을 상기시키며 이렇게 주장하였습니다.

 

또한 학개는 하나님의 백성의 영적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이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며, 또한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유일한 증인들이었습니다. 만약 그들에게 믿음이 없다는 것이 밝혀진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훼손시키는 일이 될 것입니다. 학개는 백성들 앞에서, 그들이 여호와의 대리자로 하나님께서 친히 다스리는 이 세상의 특별한 백성이며, 단순히 바사의 통치에서 새로이 자유를 회복하며 누리려고 하는 이교도 집단이 아님을 확고히 하고자 하였습니다. 흥미 있는 것은 학개의 메시지에는 다른 선지서들에게서 나타나는 요소 곧, 우상숭배에 대한 통열한 공격이나 사회적인 병폐에 대한 언급뿐만 아니라, 간음이나 혼합주의에 대해서도 아무런 언급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의 주제는 오직 여호와의 전을 재건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에는 성전 건축에 대한 열망이 넘쳐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지서를 공부하는 데는 인색합니다. 왜냐하면 선지서를 재대로 공부하면 자신들이 성전을 건축하려고 하는 열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학개서 강설을 통해 오늘날 성전 재건의 의미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영적 우위성을 갖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올바른 성전 재건 역사를 섬기며,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먼저 본문을 살펴보기 전에 성전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여러분 성전이 무엇입니까? 이사야 66:1-4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을꼬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어서 다 이루었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려니와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고 어린 양으로 제사 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으며,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는 그들은 자기의 길을 택하며, 그들의 마음은 가증한 것을 기뻐한즉 나도 유혹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 없으며 내가 말하여도 그들이 청종하지 않고 오직 나의 목전에 악을 행하며 나의 기뻐하지 아니하는 것을 택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사람이 하나님께서 거하실 처소를 지을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사의 의미를 모르고 드리는 것은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이 살인과 다름이 없고, 어린 양으로 제사 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다고 합니다.

 

예레미야 7장에 보면 예레미야 선지자는 안식일 성전 문 앞을 가로막고 서서 그곳에 제사하러 오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고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선지자들의 외침을 설교하려면 최소한 본문만 제대로 읽는다고 하여도 현재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들이 얼마나 엉터리가 되는지 들통이 나기에 기피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지서 중에 우리가 어려서부터 많이 들어온 선지서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말라기와 학개서입니다. 말라기는 십일조 때문에 자주 들었고, 학개서는 성전건축 때문에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학개서를 설교하면서 오늘날 성전을 짓자고 말하는 것은 정말 엉터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건물 성전은 이미 무너지고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전을 헐라고 하시면서 자신이 삼일 만에 일으키시겠다고 하신 것은 이제부터 건물 성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성전이며, 그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붙은 성도가 성전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성전은 결코 사람이 지을 수 없는 성전인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예배당을 지으면서 성전을 건축한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복음서에 보면(참조. 마 26:59절 이하)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하도록 고발한 직접적인 죄목이 성전을 허는 자라는 죄목이었습니다. 스데반 집사가 설교하다가 돌 맞자 죽은 설교의 내용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않는다는 설교를 하다가 돌에 맞아 죽은 것입니다(참조. 행 7장). 솔로몬이 건물 성전을 완공하고 나서도 고백하기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용납하지 못할 분을 어떻게 사람의 손에 지은 이런 곳에 거하시겠습니까? 하면서 기도한 것입니다(왕상 8:27). 스데반 집사가 솔로몬과 이사야의 증거를 언급하면서 설교하다고 죽은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도 예배당을 건축하면서 꼭 성전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 성전을 건축하는 일을 독려하기 위하여 학개서를 동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판벽한 집에 거하면서 하나님의 성전은 이렇게 초라하게 두어서야 되겠습니까? 그러니 여러분들이 아무리 노력하여도 부자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혹시 지금 조금 가지고 있다고 하여도 그것을 하나님께서 한번 불어버리시면 한 번에 다 날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설교하면서 성전 건축 역사를 위해 헌신하지 않다가 망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간증을 하게 합니다. 반대로 성전건축을 위하여 헌신하고 어렵게 헌금하였지만 복을 받아 부자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국적으로 수집하여 이야기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불러서 간증까지 시킵니다. 우리교회에서도 그렇게 하였다면 아마 아담한 건물정도는 마련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목사들이 왜 예배당 건물을 성전이라고 하면서 까지 건물에 그렇게 집착을 하는지 아십니까?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목사들은 교회를 멋있게 지어 놓으면 부흥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곧 부흥의 수단으로 예배당 건축 역사를 이루고자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예배당을 잘 지어 놓으면 많은 사람들이 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목회자들이 그런 유혹에 넘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진정한 부흥도 아니며, 예배당을 짓는 진정한 이유가 될 수도 없습니다. 겉으로는 부흥을 내세우고 하나님의 영광을 내세우지만 결국은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고자 함입니다. 우리 교회도 개척 20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2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상가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멋진 예배당을 보면 우리도 빨리 멋진 예배당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그런 생각이 바로 나의 욕심이라는 것입니다. 목사 임직식에 가보면 설교하시는 분이나 권면하시는 분들이 다 하나같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피할 것과 추구해야 할 것을 이야기 하면서 정욕에 대하여 여자와 돈을 조심하라고 합니다. 물론 이런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나 목사의 정욕은 그런 것 보다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하면서 목사의 야망을 이루고자하는 정욕이 더 큰 정욕입니다. 그런데 이런 욕망에 대해서는 별로 강조하는 분들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본문을 살펴보기 전에 우선 성전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성전이 무엇인지 바르게 알게 되어야 오늘날 부동산 건물(예배당)을 가지고 성전이라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성전이란 말 그대로 거룩한 전입니다. 우리는 왜 거룩한 곳이 필요하게 되었는지부터 살펴보아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하기 전 에덴동산에서는 따로 거룩한 장소가 필요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와 함께 거니셨습니다. 그러나 범죄 하여 쫓겨난 이후 이 세상은 죄악이 관영하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6:3절에 보면 하나님의 신이 사람과 함께 영원히 거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그 유예기간은 120년입니다. 이 기간 동안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노아는 방주를 준비하는 기간이기도 한 것입니다. 죄악이 관영한 땅에 거룩하신 하나님의 신이 사람과 함께 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죄악이 관영한 이 땅에 접족하실 곳이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을 불러내시고 그들과 함께 거하시기 위하여 특별한 공간이 필요하셨습니다. 그곳이 바로 성막입니다(참조. 출 25-27장). 그 성막 중에서도 지성소의 언약궤 뚜껑의 속죄소 위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속죄소를 ‘시은좌’라고 하기도 합니다. 곧,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지는 장소라는 것입니다. 이 속죄소에는 아무나 나갈 수가 없고 1년에 대제사장이 단 한 번 어린 양의 피를 들고 들어가서 그곳에 피를 뿌려야 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성막을 짓게 하신 것은 그들과 만나실 때에 희생의 피 위에서 만나시는 것이지 그냥 만나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성막이 이스라엘의 중심에 자리를 잡게 됩니다. 물론 성막의 중심은 언약궤입니다. 광야 40년 동안 성막위에 구름이 머무르면 머물러야 하고 구름이 떠오르면 이동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성막이 사사시대를 지내고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다윗이 건물 성전을 준비하고 솔로몬이 완공합니다. 솔로몬이 완공한 그 성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 하였습니다. 그때 솔로몬이 고백한 내용이 열왕기상 8장에 상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허락하신 것을 확실하게 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다윗에게 허락하신 것은 다윗이 하나님을 위하여 집을 지어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하여 집을 지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 집은 건물이 아니라 다윗의 왕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약속을 믿고 솔로몬이 간구한 것입니다. 이 왕위란 결국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영원한 왕위가 주님에게 돌아갑니다. 뿐만 아니라 성전도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이지만 아직 구약에서는 성전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솔로몬이 간구한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 하여 온갖 재앙이 올 때에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용서하여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여야 하는 것입니까? 거룩하신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성전에서 날마다 희생의 피가 흘려지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는 것은 자신들의 죄가 대속되어야 한다는 고백이 되는 것입니다. 곡식이 시들거나 깜부기가 나거나 어떤 전염병이 돌거나 전쟁에서 지거나 포로로 잡혀가거나 이방인라고 할지라도 이 전을 향하여 기도하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사하여 달라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왕상 8:46-50절을 보면 “범죄치 아니하는 사람이 없사오니 저희가 주께 범죄함으로 주께서 저희에게 진노하사 저희를 적국에게 붙이시매 적국이 저희를 사로잡아 원근을 물론하고 적국의 땅으로 끌어간 후에 저희가 사로잡혀 간 땅에서 스스로를 깨닫고 그 사로잡은 자의 땅에서 돌이켜 주께 간구하기를 우리가 범죄하여 패역을 행하며 악을 지었나이다 하며 자기를 사로잡아간 적국의 땅에서 온 마음과 온 뜻으로 주께 돌아와서 주께서 그 열조에게 준 땅 곧, 주의 빼신 성과 내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전 있는 편을 향하여 주께 기도하거든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저희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저희의 일을 돌아보옵시며, 주께 범죄 한 백성을 용서하시며 주께 범한 그 모든 허물을 사하시고 저희를 사로잡아 간 자의 앞에서 저희로 불쌍히 여김을 얻게 하사 그 사람들로 저희를 불쌍히 여기게 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이 간구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 하여 포로로 잡혀 갔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갈 때에 성전까지 파괴가 됩니다. 이로써 이 땅의 건물로서의 성전의 역사는 막을 내리게 됩니다.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죄악을 깨닫게 되고 성전을 향하여 기도합니다. 또한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70년 만에 돌아왔습니다. 이들이 돌아와서 성전 재건 역사를 이루게 됩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주도로 이루어지는 이 성전 재건 역사는 단순한 건물로서의 성전 재건이 아니었습니다. 건물로서의 성전 재건과 함께 에스라를 통해 율법 교육에 힘씀으로써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신앙 재건역사였습니다. 그러나 이 성전 재건 역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중단하게 됩니다.

 

이제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다리오 왕 이년 유월 그날 초하루라고 합니다. 이 때는 바벨론 포로에서 1차로 돌아온 사람들이 노예까지 합하여 약 5만 명이 됩니다. 이들이 성전지대는 건축하였으나 사마리아 사람들의 방해와 자신들의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성전 건축이 약 15년간이나 중단이 된 때입니다. 이때 학개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는 것입니다. 2절에 보면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언급할 때에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이 스알디엘의 아들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 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한 것입니다. 스룹바벨은 다윗의 후손이고 여호수아는 사독 계열의 제사장의 후손입니다. 이 두 사람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학개 선지자가 증거 함으로 이들이 분발하여 성전 건축을 재개하게 됩니다. 이 백성이, 내 백성이라고 하지 않으시는 것이 이미 책망의 말씀입니다.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않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전이 황무하였는데 너희가 어렵다고 전을 건축하지 못하였다면 너희의 집도 어려운채로 두어야지 너희의 집들은 판벽 하여 놓고 사느냐고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너희의 소위를 돌아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성전을 지을 때가 되지 않았다고 하면서 자신들은 판벽 된 집에 살고 있는 자신들의 행동을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너희의 지나온 날들을 돌이켜 보아라는 것입니다. 6절을 보면 너희가 많이 뿌려도 수입이 적었고, 먹어도 배부르지 않았고,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고,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고, 일군이 일하여 삯을 받아도 그것이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었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 본문의 말씀을 가지고 오늘날도 성전을 건축해야 복을 받는다고 사기 치는 사람들이 한 두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허물어버린 성전을 누가 다시 세운다는 것입니까? 이제 건물의 성전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성전입니까? 예수님의 몸이 성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어디를 향하여 기도하여야 하는 것입니까? 예루살렘의 성전 터를 향하여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성전을 다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2:9절을 보면 지금 재건하는 성전이 초라해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고 합니다. 그 영광스러운 성전이 무엇입니까? 이렇게 묻는 것이 아닙니다. 그 영광스러운 성전이 누구입니까? 라고 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성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세상에서 하나도 영광스럽지 않는 성전입니다. 세상의 시각으로 보아서는 영광스러울 것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임한 자들은 예수님을 영광의 성전으로 본 것입니다. 요한복음 1:14절을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독생자의 영광입니다. 이 영광이 고난과 십자가 속에 감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자기 백성에게만 알리시기 위하여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한 자는 세상의 영광이 전혀 없으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가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분으로 믿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16과 6:19절에 보면 성도를 성전이라고 합니다. 성령이 임한 성도가 성전이 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에 붙어있기에 성전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도 유대인들이 가짜 성전을 지키기 위하여 참된 성전이신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죽인 것처럼 참된 성전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지체를 가짜 성전을 짓느라고 배척하고 있는 현실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받은 모든 은혜는 우리의 영원한 성전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그분이 자신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영원한 효력을 발휘하시는 그 희생의 능력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성전 되신 주님의 은혜를 늘 기억하며 살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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