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9장] 아론의 첫 제사

by 최상범 posted Sep 1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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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상범
성경본문 레 9:1-24
성경본문내용 (1)제 팔일에 모세가 아론과 그 아들들과 이스라엘 장로들을 불러다가(2)아론에게 이르되 흠 없는 송아지를 속죄제를 위하여 취하고 흠없는 수양을 번제를 위하여 취하여 여호와 앞에 드리고(3)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수염소를 속죄제를 위하여 취하고 또 송아지와 어린 양의 일년 되고 흠 없는 것을 번제를 위하여 취하고(4)또 화목제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드릴 수소와 수양을 취하고 또 기름 섞은 소제물을 가져 오라 하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나타나실 것임이니라 하매(5)그들이 모세의 명한 모든 것을 회막 앞으로 가져오고 온 회중이 나아와 여호와 앞에 선지라(6)모세가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하라고 명하신 것이니 여호와의 영광이 너희에게 나타나리라(7)그가 또 아론에게 이르되 너는 단에 나아가 네 속죄제와 네 번제를 드려서 너를 위하여, 백성을 위하여 속하고 또 백성의 예물을 드려서 그들을 위하여 속하되 무릇 여호와의 명대로 하라(8)이에 아론이 단에 나아가 자기를 위한 속죄제 송아지를 잡으매(9)아론의 아들들이 그 피를 아론에게 받들어 주니 아론이 손가락으로 그 피를 찍어 단 뿔들에 바르고 그 피는 단 밑에 쏟고(10)그 속죄제 희생의 기름과 콩팥과 간 꺼풀을 단 위에 불사르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심과 같았고(11)그 고기와 가죽은 진 밖에서 불사르니라(12)아론이 또 번제 희생을 잡으매 아론의 아들들이 그 피를 그에게로 가져오니 그가 그 피를 단 주위에 뿌리고(13)그들이 또 번제의 희생 곧 그 각과 머리를 그에게로 가져오매 그가 단 위에 불사르고(14)또 내장과 정갱이는 씻어서 단 윗 번제물 위에 불사르니라(15)그가 또 백성의 예물을 드리되 곧 백성을 위한 속죄제의 염소를 취하여 잡아 전과 같이 죄를 위하여 드리고(16)또 번제 희생을 드리되 규례대로 드리고(17)또 소제를 드리되 그 중에서 한 움큼을 취하여 아침 번제물에 더하여 단 위에 불사르고(18)또 백성을 위하는 화목제 희생의 수소와 수양을 잡으매 아론의 아들들이 그 피를 그에게로 가져오니 그가 단 주위에 뿌리고(19)그들이 또 수소와 수양의 기름과 기름진 꼬리와 내장에 덮인 것과 콩팥과 간 꺼풀을 아론에게로 가져다가(20)그 기름을 가슴들 위에 놓으매 아론이 그 기름을 단 위에 불사르고(21)가슴들과 우편 뒷다리를 그가 여호와 앞에 요제로 흔드니 모세의 명한 것과 같았더라(22)아론이 백성을 향하여 손을 들어 축복함으로 속죄제와 번제와 화목제를 필하고 내려오니라(23)모세와 아론이 회막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백성에게 축복하매 여호와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나며(24)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른지라 온 백성이 이를 보고 소리지르며 엎드렸더라
강설날짜 2015-09-09

레위기 10강


아론의 첫 제사


말씀 : 레위기 9장


지난주에 우리는 아론이 대제사장으로 위임되는 내용을 배웠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제 대제사장이 된 아론이 공식적으로 첫 번째 제사를 드리는 사건입니다. 먼저 레위기 9장의 전체 구조를 보면...


1~4절 : 모세가 아론에게 공식적인 첫 번째 제사에 관한 지침을 명함

5절 : 백성들이 그 지침에 순종하여 제사를 드릴 준비를 함

6절 : 모세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것이라는 약속을 함

7절부터 21절 : 아론이 공식적인 첫 번째 제사를 드림

22-24절 : 아론이 백성들을 축복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 가운데 나타남


1절을 보겠습니다.


“제 팔일에 모세가 아론과 그 아들들과 이스라엘 장로들을 불러다가”(레 9:1)


제8일 곧 위임식이 끝난 다음날 모세는 아론과 그 아들들과 이스라엘 장로들을 회막문(성막) 앞으로 불렀습니다. 이 말 속에는 위임식 때 모여 있었던 200만 가량의 회중들이 잠시 해산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모세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 그리고 장로들만 모인 상태에서 아론에게 공식적인 첫 번째 제사에 대한 지침을 알려줍니다. 그 지침은 결국 두 가지 내용입니다.


“아론에게 이르되 흠 없는 송아지를 속죄제를 위하여 취하고 흠 없는 수양을 번제를 위하여 취하여 여호와 앞에 드리고”(레 9:2)


첫 번째 지침은 아론 자신을 위한 속죄제와 번제를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론은 먼저 자신을 위해 속죄제를 위한 수송아지와 번제를 위한 수양을 준비해야 합니다. 두 번째 지침은 백성들을 위해 드리는 제사에 관한 지침입니다. 3절을 보시면...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수염소를 속죄제를 위하여 취하고 또 송아지와 어린 양의 일년 되고 흠 없는 것을 번제를 위하여 취하고 또 화목제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드릴 수소와 수양을 취하고 또 기름 섞은 소제물을 가져오라 하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나타나실 것임이니라 하매”(레 9:3-4)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로 드려야 할 예물은 속죄제를 위한 염소와 번제를 위한 소와 양, 그리고 화목제를 위한 소와 양, 그리고 기름 섞은 소제물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속죄제를 위해 염소를 드리는 것은 의외입니다. 사실 앞서 배운 속죄제 규례에 의하면 온 백성을 위한 속죄제의 경우는 소를 드려야 하는데, 여기서는 염소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 점은 대속죄일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아마도 이 제사가 백성들의 어떤 특정한 죄에 대한 제사가 아니라 백성들의 보편적인 죄에 대한 속죄이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백성들이 드려야 할 제사 중에 속건제가 빠진 이유도 똑같은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백성들을 위한 제사지침에서 아주 중요한 표현이 나옵니다. 3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즉 모세가 아론에게 명하고, 아론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을 부르신 이후부터 출애굽의 모든 과정과 그리고 광야에서의 모든 여정에서 반복되는 패턴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고, 모세는 아론에게 이르고, 아론은 백성들에게 이르는 것입니다. 물론 나중에 모세가 믿음이 성장해서 말더듬는 문제를 극복합니다. 그래서 모세 본인이 아론의 도움 없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할 때가 자주 있었습니다. 그러나 출애굽기 본문은 이 패턴을 끊임없이 잃지 않고 유지합니다. 그러나 이 패턴이 끊기는 시점이 있으니 바로 아론이 금송아지 숭배한 사건이후부터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다시금 이 패턴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의미심장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론의 죄를 모두 용서하셨고, 다시금 아론의 리더십을 친히 인정해주시고 세워주셨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광경을 이스라엘 장로들이 목격하도록 하셨습니다. (사실 장로들을 불러 세웠지만 그들을 왜 불러 세웠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들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할 것이 없었는데도 말입니다.) 혹시 장로들 가운데 아론의 리더십에 대해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추측하건데 하나님은 백성들의 장로들이 보는 앞에서 아론을 모세의 대언자로서 그 리더십을 세워주시고자 이렇게 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리하여 누구도 아론이 대제사장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못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나중에 아론의 희생제사 후에 있게 되는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를 통해서도 확증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 구조를 좀 더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론이 처음 등장할 때는 분명 모세의 말더듬는 문제의 도우미로 등장합니다. 그러나 모세가 나중에 말 더듬는 문제를 극복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패턴(여호와->모세->아론->백성)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구속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데, 왜냐하면 이 패턴이 바로 제사장의 직무를 잘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은 백성들의 중보자로서 제사만 드릴 의무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세로부터 들은 말씀을 백성들에게 고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곧 모세오경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가르칠 의무가 있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는 구약의 제사장이 신약의 목회자와 비슷합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또한 모든 성도들이 다 제사장이기 때문에 목회자를 통해 배운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사람들에게 고하여 이를 의무가 모든 성도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곧 전도와 가르침의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약의 제사장이라면 열심히 배울 뿐만 아니라, 그 배운 내용을 교회 형제 자매들에게, 가정의 자녀들에게, 믿지 않는 이웃에게 전하는 삶을 힘써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신약백성의 제사장 직무입니다.


계속해서 본문을 보시면... 이렇게 모세는 아론에게 공식적인 첫 번째 제사에 대한 지침을 명하였습니다. 아론은 모세의 명령에 순종하여 자신을 위한 제사예물을 준비하고, 또 백성들에게 필요한 예물을 준비하도록 일렀습니다. 그리하여 5절에 장로들과 함께 백성들이 예물을 준비하여 회막문 앞으로 나아왔습니다.


“그들이 모세의 명한 모든 것을 회막 앞으로 가져 오고 온 회중이 나아와 여호와 앞에 선지라”(레 9:5)


이에 모세가 어떻게 합니까?


“모세가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하라고 명하신 것이니 여호와의 영광이 너희에게 나타나리라”(레 9:6)


이에 모세는 아론과 모든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것을 권면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를 약속합니다. 이 하나님의 현현에 대한 약속은 4절에서 이미 주어졌죠. 물론 그때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과 백성들의 장로들만 들었습니다. 그러나 온 회중이 모였을 때 모세는 다시금 이 약속의 말씀으로 온 회중을 격려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약속의 말씀을 듣고 놀라운 기대감으로 흥분되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는 것이야말로 자신들의 출애굽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 가운데 나타난다는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하신다는 것의 증표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이 은혜를 얼마나 사모했는지요...


비록 어리석게도 하나님 앞에 우상숭배의 죄를 범했지만, 그들은 다시금 하나님의 긍휼을 입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한대로 가나안 땅을 줄테니 가서 차지하되 나는 가지 않겠다”고 말씀하실 때, 백성들은 황송한 마음에 눈물을 흘리며 참회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자신들과 함께 하지 아니하시면 가나안땅의 풍요와 번영을 누려도 그것이 아무 의미 없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용서해주시고 자신들과 함께 해주시기를 간절히 고대하였습니다. 이러한 그들의 간절한 마음은 성막 건축할 때에 쓸 재료들을 아낌없이 헌상해드린 것에서 잘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제 성막이 완성되고 대제사장도 세웠고 제사규례도 주어졌고, 마지막으로 아론이 희생제사를 드릴 일만 남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온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간절히 고대하면서 숨죽이며 아론을 지켜보았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은혜가 아론의 희생제사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7절부터 아론은 모세가 명한대로 공식적인 첫 번째 제사를 드립니다. 그야말로 역사적이고 감격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론은 먼저 자기를 위해 제사를 드리고 그 다음에 백성들을 위해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가 또 아론에게 이르되 너는 단에 나아가 네 속죄제와 네 번제를 드려서 너를 위하여, 백성을 위하여 속하고 또 백성의 예물을 드려서 그들을 위하여 속하되 무릇 여호와의 명대로 하라”(레 9:7)


7절에 나오는 것처럼 아론이 먼저 자신을 위해 제사 드리는 것은 단순히 자신을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백성들을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백성들을 위한 중보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중보자 본인의 죄가 없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점은 레위기 16장의 대속죄일 의식에서도 똑같이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아론을 보면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아론과 비교할 수 없는 탁월한 대제사장이 되시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가 하나도 없으시기 때문에 자기를 위하여 드릴 필요 없이, 곧바로 십자가에서 영단번의 희생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구속하셨습니다.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유일한 대제사장이 되십니다.


그러면 계속해서 본문을 보겠습니다.


“이에 아론이 단에 나아가 자기를 위한 속죄제 송아지를 잡으매 아론의 아들들이 그 피를 아론에게 받들어 주니 아론이 손가락으로 그 피를 찍어 단 뿔들에 바르고 그 피는 단 밑에 쏟고 그 속죄제 희생의 기름과 콩팥과 간 꺼풀을 단 위에 불사르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심과 같았고 그 고기와 가죽은 진 밖에서 불사르니라”(레 9:8-11)


아론은 모세가 명한대로 속죄제를 드렸습니다. 이 구절에서 중요한 점은 모세가 여기서 그 어떤 역할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앞서 위임식 때는 모세가 제사를 집례했습니다. 피를 단에 바르고 제단에 제물을 태워드리는 것도 모세가 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다 합니다. 이것은 이제 제사를 드림에 있어서 더 이상 모세를 의지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독특한 점은 속죄제의 피를 성소 안에 들어가서 휘장에 뿌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위임식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것은 아직 아론이 성소 안으로 들어간 적이 없기 때문에 성소를 정화해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 다음 아론은 번제를 드렸습니다.


“아론이 또 번제 희생을 잡으매 아론의 아들들이 그 피를 그에게로 가져오니 그가 그 피를 단 주위에 뿌리고 그들이 또 번제의 희생 곧 그 각과 머리를 그에게로 가져오매 그가 단 위에 불사르고 또 내장과 정갱이는 씻어서 단 윗 번제물 위에 불사르니라”(레 9:12-14)


그 다음 백성들을 위한 제사가 드려집니다.


“그가 또 백성의 예물을 드리되 곧 백성을 위한 속죄제의 염소를 취하여 잡아 전과 같이 죄를 위하여 드리고 또 번제 희생을 드리되 규례대로 드리고 또 소제를 드리되 그 중에서 한 움큼을 취하여 아침 번제물에 더하여 단 위에 불사르고 또 백성을 위하는 화목제 희생의 수소와 수양을 잡으매 아론의 아들들이 그 피를 그에게로 가져오니 그가 단 주위에 뿌리고 그들이 또 수소와 수양의 기름과 기름진 꼬리와 내장에 덮인 것과 콩팥과 간 꺼풀을 아론에게로 가져다가 그 기름을 가슴들 위에 놓으매 아론이 그 기름을 단 위에 불사르고 가슴들과 우편 뒷다리를 그가 여호와 앞에 요제로 흔드니 모세의 명한 것과 같았더라”(레 9:15-21)


여기서 독특한 점은 온 백성을 위한 제사인데도 아론 스스로를 위해 드릴 때와 같이 아론이 잡고, 아론의 아들들이 각을 뜨고 갖다 주면 아론이 불태워드리는 방식으로 드렸다는 것입니다. 백성들은 가만히 지켜볼 뿐입니다. 이것은 대속죄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를 통해 대제사장은 온 백성의 대표라고 하는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대제사장의 신분은 중보자로서 하나님께 속한 자일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대표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동일본질이실 뿐만 아니라 우리와 동일본질이셔서 하나님과 우리의 참 중보자 되신다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합니다.


아론은 모세의 명대로 백성들을 위한 속죄제, 번제, 소제, 화목제의 희생을 모두 드렸습니다. 그 다음에 이제 아론이 백성들을 향해 손을 들고 축복합니다.


“아론이 백성을 향하여 손을 들어 축복함으로 속죄제와 번제와 화목제를 필하고 내려오니라”(레 9:22)


손을 들었다는 것은 손에서 축복의 광선이 발사된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기도였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워낙 유대인들은 기도할 때 손을 들어 기도하는 것이 전통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론의 축복 기도를 우리가 줄여서 ‘축도’라고 말하는 것이고, 이것은 오늘날 우리들의 예배에서도 행해지는 것입니다.


아론이 뭐라고 축복하며 기도했을까요? 아마도 민수기 6장 22절 이하의 내용으로 축도했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찌니라 하라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찌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민 6:22-27)


이 말씀에서 드러나는 것은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시고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이 한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직접 표현하시는 것이 아니라, 제사장을 대리자로 세워 대신 말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사장이 말할 때 하나님께서 그 약속하신 복을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제사장에게는 축복(祝福)권이 있습니다. 제사장이 복 주는 것이 아닙니다. 복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제사장의 중보와 축복을 통해서 백성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따라서 구약의 성도들은 복을 받기 위하여 온전히 제사장을 의지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본문을 곧바로 목회자와 연결시켜서 목회자에게 축복권이 있는 줄로 알고 목회자를 의지하면서 신앙생활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목회자에게 축복권이 있습니다. 목회자도 왕 같은 제사장이니까요. 그러나 신약의 모든 성도가 다 왕 같은 제사장이기 때문에 다 똑같은 축복권이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합니다.


물론 목회자가 참 목자 되신 예수님을 대신하여 교회를 친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예배 마지막에 예수님을 대신하여 축복 기도한다는 점에서는 구약의 제사장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대리자(사자)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신약의 목사와 구약의 제사장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중보사역의 성격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장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모형으로서 중보자였기 때문에, 구약의 성도들은 그 제사장을 의지해야만 합니다. 반면 신약의 목사는 (그리고 모든 신약의 성도들도) 제사장으로서 중보의 사역을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참된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그분을 의지하도록 돕는 차원에서의 중보자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신약의 성도들은 목회자를 예수님께서 세우신 종으로 믿고 순종하며 지도를 잘 받아야 하지만, 결단코 목회자를 의지하면 안 됩니다. 신약의 성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유일한 중보자로 믿고 그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오늘날 적지 않은 목회자들이 마치 자신이 제사장인 것처럼 행세해서, 그래서 자기가 축복기도 해주면 복 받고, 축복기도 안 해주면 복 못 받을 것처럼 분위기를 만들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를 따르고 의지하도록 하는 일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거짓선지자의 행태라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보면서 우리 모두에게 축복권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서로가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또 서로가 서로에게 하나님의 복이 임하기를 위해 축복해야 합니다. 이런 자세로 날마다 중보기도 하는 사람이 진짜 제사장의 직분을 제대로 감당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계속해서 본문을 보시면... 이제 모세와 아론이 성소 안으로 들어갑니다.


“모세와 아론이 회막에 들어갔다가 나와서...”(레 9:23)


모세야 회막에 자주 들락날락했지만, 아론은 처음으로 성소에 들어가는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거기서 모세와 아론은 아마도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며 하나님께 백성들을 중보하는 기도를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와 아론이 다시 나와서 재차 백성들을 축복했습니다.


“... 백성에게 축복하매 여호와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나며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른지라 온 백성이 이를 보고 소리지르며 엎드렸더라”(레 9:23-24)


그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며 불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번제단 위의 제물과 기름을 살랐습니다. 여기서 ‘사르다’는 단어는 ‘먹다, 삼키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음식을 드시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징적 표현을 통해서 여호와께서 그 제물을 기쁘게 열납해 주셨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러한 놀라운 광경을 보고 온 백성들이 소리를 지르며 엎드렸습니다. 여기서의 소리는 ‘두려움과 놀람의 소리’라기보다는 ‘기쁨과 환희와 찬양의 소리’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소원대로 그들에게 긍휼을 베풀어주시고 그들 가운데 임재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너무 기뻐하여 환희의 소리를 외쳤습니다. 또한 그들은 즉시로 엎드렸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경외감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기쁨과 두려움이 전혀 모순되지 않고 그들 마음에 경외라는 마음으로 공존했습니다. 이것이 예배자의 참된 자세입니다.


그러면 여호와의 영광이 임재 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여호와의 영광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서부터 나오는 찬란한 광채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 광채를 보면 곧바로 죽기 때문에 하나님은 자신의 광채를 불과 구름으로 가리십니다.


이전에도 이미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 가운데 임재한 적이 있었습니다.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을 때에도 하나님의 영광이 불과 빽빽한 구름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성막건축을 완료했을 때도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가 구름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아론의 공식적인 첫 번째 제사 후에도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가 나타났습니다. (표현은 없지만 구름으로 나타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임재가 다 성격이 조금씩 다릅니다. 시내산에서의 임재는 부부가 언약을 맺고 결혼식을 하는 것에 해당하고, 성막건축 때의 임재는 결혼한 부부가 신혼집을 마련하고 그 집에 잠시 들어가 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의 임재는 궁극적으로 이스라엘 가운데 임하셔서 그들과의 동거를 시작하시는 사건입니다. 부부가 신혼집에 들어가 합방하여 연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마도 이때 하나님께서 성막에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임재하셔서(출 40:36-38 참조) 이 순간부터 가나안 땅 입성 때까지 40년간 함께 하신 것으로 추측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는 그 약속의 궁극적인 성취는 바로 중보자 아론의 속죄제사 후에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구약의 내용은 신약에서 예수님을 통해 그대로 성취가 됩니다.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게 세례 받으심으로 친히 우리를 위한 제물이 되시고, 물위로 올라오실 때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시고 우리를 위한 대제사장으로 위임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죄를 짊어진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대속의 피를 흘리심으로써 우리를 구속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고 하늘성소로 올라가시면서 제자들을 축복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저희를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서 손을 들어 저희에게 축복하시더니 축복하실 때에 저희를 떠나 하늘로 올리우시니”(눅 24:50-51)


그리고 영광스럽게 되셔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구름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렸습니다.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행 1:9)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 그분 자신이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라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이제 영광스럽게 된 예수님을 우리 눈으로 보면 눈이 멀거나 잘못하면 죽을 수가 있기 때문에 구름으로 가리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늘성소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를 하십니다. 그 결과 성삼위 하나님이 당신의 교회 안에 임재하시고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신 사건이 바로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입니다. 성령강림하실 때 각사람 머리에 불이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보이는 것도 사실 오늘 본문을 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불은 성령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다음 주에 더 자세하게 배울 것입니다...)


이 불같이 임한 성령님을 통해 성삼위 하나님이 우리를 성전 삼아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지요? 우리는 정말 더러운 죄인인데,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시고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와 동거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본문을 보면서 우리가 처음 예수님 믿고 성령 받았을 때를 떠올리게 됩니다. 신혼부부의 첫날밤과 같이 예수님과 처음으로 연합했던 그날을 우리가 잊을 수가 없죠. 감격과 감사가 넘쳐서 하나님을 즐거이 예배드렸던 그 때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은혜를 받은 우리로서는 마땅히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날마다 감격과 감사로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우리 안에 계신 성삼위 하나님과의 교제를 누리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마음이 어떠합니까? 감격과 감사를 잃어버리고 형식적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도 잊어버리고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회개하고 다시금 처음 예수님을 만났던 그 십자가의 자리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그래서 십자가 은혜를 다시금 깊이 깨닫고 성령으로 충만함을 입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주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을 즐거이 예배하며, 주와 복음을 위해 자기를 헌신해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우리가 처음 예수님을 믿고 성령 받았을 때처럼 다시금 뜨겁게 예수님을 사랑하고 즐거이 예배드리는 감사와 감격을 회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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