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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왕하 13:1-13
강설날짜 2018-01-31

2018년 열왕기하 공부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말씀:열왕기하 13:1-13

 

지난 시간에 우리는 제사장 여호야다가 죽자 그의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고 우상숭배의 길로 행하는 유다 왕 요아스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 왕 여호아하스와 요아스가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한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말씀을 통해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1-3절을 보면 남 유다의 왕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 23년에 북 이스라엘은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왕이 되어 17년을 다스립니다. 그런데 그 왕에 대한 평가는 한마디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는 것입니다. 그가 행한 악은 북 이스라엘의 초대 왕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간 것입니다. 북 이스라엘은 언약을 배반함으로 반역으로 인해서 그 왕조가 다섯 번이나 바뀌었습니다. 여호아하스는 열한 번째 왕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왕들이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못했다고 했는데 도대체 여로보암의 죄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열왕기상 12:25-33절을 보면 “여로보암이 에브라임 산지에 세겜을 건축하고 거기서 살며 또 거기서 나가서 부느엘을 건축하고 그 마음에 스스로 이르기를 나라가 이제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리로다.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전에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유다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리로다 하고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 신이라 하고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이 일이 죄가 되었으니 이는 백성들이 단까지 가서 그 하나에게 숭배함이더라. 저가 또 산당들을 짓고 레위 자손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고 팔월 곧 그 달 십 오일로 절기를 정하여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하고 단에 올라가되 벧엘에서 그와 같이 행하여 그 만든 송아지에게 제사를 드렸으며 그 지은 산당의 제사장은 벧엘에서 세웠더라. 저가 자기 마음대로 정한 달 곧 팔월 십오일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절기로 정하고 벧엘에 쌓은 단에 올라가서 분향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여로보암은 자신이 통치하고 있는 북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 제사하러 갔다가 르호보암에게로 갈 것이 두려워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놓고 섬기게 한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유사 종교를 만들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찾아 가는 길을 가로막고 자기에게로 향하게 한 것입니다. 이러한 죄는 사울 왕에게서도 보게 됩니다. 블레셋이 쳐들어왔을 때 사무엘은 사울 왕에게 자신이 올 때 까지 기다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적은 쳐들어왔고 백성들은 도망을 가고 있는데 사무엘은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 순간 마치 그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사무엘이 나타났습니다.

 

사무엘상 13:8-15절을 보면 “사울이 사무엘의 정한 기한대로 이레를 기다리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사울이 가로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번제 드리기를 필하자 사무엘이 온지라. 사울이 나가 맞으며 문안 하매 사무엘이 가로되 왕의 행한 것이 무엇이뇨. 사울이 가로되 백성은 나에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은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치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영히 세우셨을 것이어늘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그 백성의 지도자를 삼으셨느니라 하고 사무엘이 일어나 길갈에서 떠나 베냐민 기브아로 올라가니라. 사울이 자기와 함께 한 백성을 계수하니 육백명 가량이라”고 했습니다. 여로보암의 죄와 사울의 죄가 같습니다. 백성들의 흩어짐을 면하기 위한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으로 백성들이 뭉쳐지기를 원한 것입니다. 이를 위해 제사도 지내고 성전도 만들고 여호와 신앙과 비슷한 행위를 한 것입니다. 말로는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지만 결국 자기를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여로보암의 죄입니다.

 

그런데 누가 이런 죄에서 떠날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이 땅의 교회들이 온갖 전도방법을 개발하고 교회 부흥을 말하지만 결국은 목사나 교인들이 자기를 중심으로 모이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우리 안에는 없습니까? 우리 안에도 동일하게 여로보암의 마음과 사울의 마음이 있습니다. 십자가 복음,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면서도 우리 마음속 한 구석에는 여로보암과 사울의 마음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못하면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망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3절을 다시 보면 여호와께서는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못한 이스라엘을 향하여 노를 발하사 늘 아람 왕 하사엘의 손과 그의 아들 벤하닷의 손에 붙이셨다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늘 아람 왕 하사엘과 벤하닷에게 붙이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늘’ 여로보암의 죄를 짓기 때문입니다. 4절을 보면 아람 왕이 이스라엘을 학대하니 여호아하스가 여호와께 간구합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학대받음을 보시고 그 간구를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5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구원자를 이스라엘에게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자손이 아람 사람의 손에서 벗어나 예전과 같이 장막에 거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여호아하스가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못할 때에 아람을 통하여 고난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고난을 당하자 그제서야 여호아하스가 여호와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호아하스의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붙들어주셨다는 뜻입니다. 여호와께서 붙들어주신다는 이름을 지은 사람은 그의 아버지입니다. 그러면 그의 아버지 예후가 자기 아들을 여호와께서 붙들어 주기를 원한다는 의미를 담은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붙들고 계시기에 죄에 대하여 책망이 따르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간구하자 여호와께서 그 간구를 들으시고 구원자를 보내어 주셔서 아람의 손에서 벗어나서 자기 장막에 거하게 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6절을 보면 “저희가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여로보암 집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좇아 행하며 또 사마리아에 아세라 목상을 그저 두었더라”고 합니다. 여호아하스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이러합니다. 살만하니까 또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이런 그들을 어떻게 하십니까? 7절을 보면 “아람 왕이 여호아하스의 백성을 진멸하여 타작마당의 티끌 같이 되게 하고 마병 오십과 병거 십승과 보병 일만 외에는 여호아하스에게 남겨두지 아니하였더라”고 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못하는 여호아하스와 그 백성을 아람을 통해 징치하셨습니다. 아람 왕이 여호아하스의 백성을 멸절하여 타작마당의 티끌 같이 되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너희가 원래 땅의 티끌임을 알라는 사랑의 매를 드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못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강제로 떠나게 하십니다. 그래서 왕에게 마병 오십 명과 병거 열대와 보병 만 명 외에는 남은 것이 없습니다. 적이 이들마저 진멸하지 않는 이유는 이렇게 남겨둠으로 그들로부터 조공을 받는 것이 더 유익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역사도 여호와 하나님의 일하심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일하심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렇게 하심으로 그들이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로보암’이라는 이름의 뜻은 ‘백성의 수가 많다’는 뜻입니다. 백성의 수가 많게 하려고 여호와께로 가지 못하게 하고 가짜 여호와께로 이끈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죄에서 돌이키게 하시려고 백성들의 숫자들을 줄여버리시는 것입니다. 힘을 의지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의지해야 할 것임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늘 환난이 일어나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의지해야 하는지를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세상의 힘을 의지하게 않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의 언약을 의지하여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오늘 본문 8-9절을 보면 “여호아하스의 남은 사적과 모든 행한 것과 그 권력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여호아하스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사마리아에 장사되고 그 아들 요아스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고 합니다. 결국 여호아하스가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러면 여호아하스가 지옥에 갔습니까? 이 여호아하스가 바로 우리라고 보면 우리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도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을 여호와께서 어떻게 이끌어 가십니까? 환난을 당하게 하시고 힘을 다 빼 버립니다. 이렇게 되는 자들이 여호와께서 붙들어 주시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가 복된 자입니다.

 

오늘 본문 10-13절을 보면 “유다 왕 요아스의 삼십 칠년에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십 륙년을 치리하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좇아 행하였더라. 요아스의 남은 사적과 무릇 행한 일과 유다 왕 아마샤와 싸운 권력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요아스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이스라엘 왕들과 함께 사마리아에 장사되고 여로보암이 그 위에 앉으니라”고 합니다. 여호아하스가 죽고 그의 아들 요아스가 왕이 됩니다. 남 유다의 왕도 요아스이고, 북 이스라엘의 왕도 요아스입니다. 동명이인 입니다. 북 이스라엘의 요아스 왕이 16년간 다스리는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합니다. 그 죄는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한 것입니다. 이 요아스가 죽고 나자 그 아들 여로보암이 북 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이 왕이 여로보암 2세입니다. 요아스가 여로보암을 존경하니 자기 아들에게 이와 같은 이름을 붙이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세 번이나 나오는 말씀이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못하였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자들이 어떻게 구원을 받겠습니까?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자기 언약의 신실함을 위하여, 곧 자기 아들의 희생의 공로를 위하여 이들을 붙들고 가시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는 것입니다.

 

열왕기하 13:22-23절을 보면 “여호아하스 왕의 시대에 아람 왕 하사엘이 항상 이스라엘을 학대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세우신 언약을 인하여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풀어 긍휼히 여기시며 권고하사 멸하기를 즐겨 아니하시고 이때까지 자기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셨더라”고 합니다. 여호아하스가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못하였습니다. 그로인해 아람 왕이 쳐들어와서 괴롭게 하자 기도하였습니다. 이에 여호와께서 구원자를 보내어 주셨습니다. 그로인해 잠시 백성들이 자기들의 집에서 살게 되지만 다시 여로보암의 죄로 돌아갑니다. 이처럼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못하는 여호아하스를 왜 구원하여 주시는 것입니까?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 때문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우리는 구약을 율법으로 봅니다. 그러나 율법의 수건이 걷어지면 구약에서도 복음을 보게 됩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후서 3장에서 새 언약의 일꾼이란 모세의 수건이 벗겨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새 언약으로 보니 구약에서도 복음이 증거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1-5절을 보면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라고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성령으로 된 것입니다. 성령으로 된 것은 육체의 능력인 율법의 행함이 아닌 복음을 듣고 믿는 믿음으로 된 것입니다. 이러한 예를 아브라함을 통하여 말씀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복음을 들었다고 합니다.

 

계속해서 갈라디아서 3:6-14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지어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라 이를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구약의 내용을 이렇게 신약까지 연결하면 구약에서도 왜 인간이 은혜로만 의롭다 함을 받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여기서 인용한 모든 내용들이 다 구약의 성경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못하는 그 죄, 그 저주를 누가 대신 받으신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저주를 받으신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 믿음이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복이며, 오늘날 이방인인 우리도 받는 복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이 놀라운 복음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만 오롯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21절을 보면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의를 덧입은 것은 오직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우리의 죄를 뒤집어 쓰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이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의 의를 덧입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한량없는 은혜를 찬양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날 수 없음을 알게 하시고 겸손히 주님 앞에 나아가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저주를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믿음으로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멸망의 자식들이 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언약에 참예하는 복된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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