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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왕하 15:1-7
강설날짜 2018-03-14

2018년 열왕기하 공부

유다 왕 아사랴의 행적

말씀:열왕기하 15:1-7

 

지난 시간에 우리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 북 이스라엘의 왕 여로보암 2세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오늘 말씀은 남 유다 왕 아사랴의 행적에 관한 말씀입니다. 아사랴가 부친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오직 산당은 제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로인해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아사랴를 치심으로 그가 죽는 날까지 문둥병자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말씀을 통해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1절을 보면 북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이십 칠년에 유다 왕 아마샤의 아들 아사랴가 왕이 됩니다. 아사랴는 웃시야로 불리기도 합니다. 우리에게는 아사랴보다는 웃시야가 더 잘 알려진 이름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름이 두 개인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도 어릴 때 부르는 이름과 호적의 이름이 다른 경우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왕이 어릴 때 이름과 왕으로 등극할 때 이름이 다른 경우가 있습니다. 아사랴의 아버지 아마샤는 우리가 이미 앞에서 보았습니다만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지만 산당을 제거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 웃시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절을 보면 웃시야가 왕이 될 때 나이가 16세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오십 이년간 다스립니다. 남 유다 왕 중에서는 두 번째 오랜 기간 동안 다스린 왕입니다(므낫세는 55년 통치. 왕하 21장). 오랜 기간 왕으로 다스렸다고 해서 좋은 왕으로 평가를 받는 것은 아닙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어떠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웃시야의 어머니는 예루살렘 사람 여골리야 입니다. 북 이스라엘 왕이 등극할 때 보면 어머니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그런데 남 유다 왕이 등극할 때에는 그의 어머니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출신이라는 것은 다윗 언약이 계속됨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남 유다의 수도입니다. 이런 예루살렘이 유지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신 그 언약의 신실함 때문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3-4절을 보면 웃시야가 그의 아버지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지만 오직 산당은 제거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의 아버지도 산당을 제거하지 못함으로 결국은 신하들의 손에 의해 살해 당하고 웃시야가 왕으로 추대 되었습니다. 이 때 웃시야의 나이가 16세였으므로 아버지가 무엇을 하였고 어떻게 죽었는지 잘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웃시야가 왕이 되었어도 산당을 제거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도대체 산당이 무엇이기에 제거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남 유다에는 예루살렘에 솔로몬 성전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곳곳에 산당들이 있었고 그 산당에서 백성들이 여전히 제사를 드리며 분향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여호와 하나님의 율법을 옆에 두고 그 율법으로 백성을 다스려야 합니다. 율법에 의하면 산당제사를 없애야 합니다. 그리고 이미 그들에게는 성전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산당을 제거하지 못한 것은 백성들의 민간신앙을 건드리지 못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분향을 하는 모든 것들은 이미 율법에 정해져 있습니다. 속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 정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율법에 규정되어 있는 대로 하면 자신들의 욕망을 구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유익을 위해서 산당에서 제사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에 정해 놓은 제사는 이방의 제사와는 전혀 다릅니다. 이방의 제사 곧 산당의 제사들은 자신들이 신에게 정성을 바침으로 신을 조정하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이 땅에 산당이 얼마나 많습니까? 오늘날 교회로 모여서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 그 내용을 보면 산당과 다를 바가 없음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영광을 부르지만 그와 함께 자신의 영광을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복 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교회를 보면 번영신학, 축복신학이 넘쳐납니다. 이런 산당을 제거하면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산당을 제거하지 못하고 그대로 두는 것입니다. 아니 목회자들이 이런 산당을 먼저 조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요구와 필요를 채워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영광을 노래하지만 산당이 되어 있는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산당이 된 교회를 치십니다.

 

오늘 본문 5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왕을 치셨으므로 그가 죽는 날까지 문둥이가 되어 별궁에 거하고 왕자 요담이 왕궁을 다스리며 그 땅의 백성을 치리하였다고 합니다. 왕이 산당을 제거하지 않음으로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고 분향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 백성들로 인하여 여호와께서 왕을 치심으로 왕이 문둥병에 들었습니다. 왕이 산당을 제거하지 못한 이유도 있지만 백성들의 범죄로 인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왕을 치신 것은 곧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치신 것입니다. 다윗 언약에 의하여 왕 한 사람이 잘하면 백성들이 복을 받고, 왕 한 사람이 잘 못하면 백성들이 저주를 받습니다. 이는 왕과 백성이 하나로 묶여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6-7절을 보면 “아사랴의 남은 사적과 모든 행한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 되지 아니하였느냐. 아사랴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다윗성에 그 열조와 함께 장사되고 그 아들 요담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고 했습니다. 아사랴 왕이 하나님의 치심으로 문둥병이 들었기 때문에 별궁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요담이 실제로 유다를 다스렸습니다. 아사랴 왕은 섭정을 하였겠지만 백성들 앞에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아사랴가 문둥병이 든 채로 살다가 죽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요담이 아사랴를 대신하여 왕이 됩니다. 이러한 이사랴 왕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평가는 어떠합니까? 6절을 다시 보면 “아사랴의 남은 사적과 모든 행한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 되지 아니하였느냐”고 했습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이미 본 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그의 아버지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정직하게 행했지만 산당을 제거하지 못했습니다. 그로인해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하고 분향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런 그를 치심으로 문둥병이 들어 평생을 그렇게 살다가 죽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여호와께서 보시는 시각을 가져야 함을 지난 시간에 북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2세를 통해서 보았습니다. 특히 우리는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서 자세히 보았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웃시야를 통해서도 이러한 여호와의 시각을 볼 수가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웃시야를 보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시각을 선지자들에게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이사야 6:1-5절을 보면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이 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고 했습니다. 웃시야가 문둥병자로 별궁에 거하다가 죽던 해에 이사야 선지자가 여호와의 영광을 성전에게 보게 됩니다. 그 영광 앞에서 자신이 화로다 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자신은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며,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문둥병이 들면 윗입술을 가리고 자신이 부정하다고 외쳐야 합니다(레 13:45).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자신은 입술이 부정한 자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다 부정한 문둥병자와 같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자신이 문둥병자처럼 부정한 자임을 아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에게 제단 숯불로 그 입술을 지짐으로 정하다 함을 받는 시간이 바로 예배이며, 말씀을 듣고 보는 시간인 것입니다.

 

열왕기상하는 성경분류에 있어서 역사서에 속하지만 단순한 역사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기 계시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남북을 비교하면서 이스라엘 역사를 통하여 자신의 계시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에 얼마나 불충하였는지를 보여주면서 하나님은 자기 언약의 신실함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역사는 일반 세상의 역사에서 중요하게 다룰 내용들은 역대지략으로 돌려버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역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언약하신 바를 얼마나 신실하게 이루고 계시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역대상하에서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하는 내용을 다룹니다. 역대기상은 대부분 이스라엘의 족보를 다루면서 다윗 왕이 성전 건축을 위한 준비와 그 제도들을 기술하고 있고, 역대하는 다윗 왕 이후의 남 유다 왕들을 성전을 중심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역대하 26:1-5절을 보면 “유다 온 백성이 웃시야로 그 부친 아마샤를 대신하여 왕을 삼으니 때에 나이 십 륙세라. 왕이 그 열조와 함께 잔 후에 웃시야가 엘롯을 건축하여 유다에 돌렸더라. 웃시야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십 륙세라. 예루살렘에서 오십 이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여골리아라 예루살렘 사람이더라. 웃시야가 그 부친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며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의 사는 날에 하나님을 구하였고 저가 여호와를 구할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케 하셨더라”고 했습니다. 이 본문은 열왕기하에서 본 내용과 많은 부분이 일치합니다. 그런데 차이가 나는 것은 웃시야가 문둥병이 든 내용이 여기서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웃시야가 정직하게 행한 것은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가 사는 날 동안 하나님을 찾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정직하게 행하였다’는 것은 국어사전적 개념이 전혀 아닙니다. 웃시야가 정직히 행하였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찾는 것을 정직하게 행하였다고 합니다. 스가랴는 소선지서의 스가랴와는 다른 사람입니다. 소선지서의 스가랴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에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여호와의 묵시 곧 여호와의 계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가 왕에게 늘 조언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 스가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여호와를 찾았고 그렇게 여호와를 찾는 동안에는 형통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 형통함이 어떠하였는지를 보겠습니다. 계속해서 역대하 26:6-15절을 보면 “웃시야가 나가서 블레셋 사람과 싸우고 가드성과 야브네성과 아스돗성을 헐고 아스돗 땅과 블레셋 사람 가운데 성읍들을 건축하매 하나님이 도우사 블레셋 사람과 구르바알에 거한 아라비아 사람과 마온 사람을 치게 하신지라. 암몬 사람이 웃시야에게 조공을 바치매 웃시야가 심히 강성하여 이름이 애굽 변방까지 퍼졌더라. 웃시야가 예루살렘에서 성 모퉁이 문과 골짜기 문과 성굽이에 망대를 세워 견고하게 하고 또 거친 땅에 망대를 세우고 물웅덩이를 많이 팠으니 평야와 평지에 육축을 많이 기름이며 또 여러 산과 좋은 밭에 농부와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를 두었으니 농사를 좋아함이더라. 웃시야에게 또 싸우는 군사가 있으니 서기관 여이엘과 영장 마아세야의 조사한 수효대로 왕의 장관 하나냐의 수하에 속하여 떼를 지어 나가서 싸우는 자라. 족장의 총수가 이천 육백명이니 모두 큰 용사요, 그 수하의 군대가 삼십만 칠천 오백명이라. 건장하고 싸움에 능하여 왕을 도와 대적을 치는 자며 웃시야가 그 온 군대를 위하여 방패와 창과 투구와 갑옷과 활과 물매 돌을 예비하고 또 예루살렘에서 공교한 공장으로 기계를 창작하여 망대와 성곽 위에 두어 살과 큰 돌을 발하게 하였으니 그 이름이 원방에 퍼짐은 기이한 도우심을 얻어 강성하여짐이더라”고 했습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대단한 업적입니다. 웃시야가 이러한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여호와를 찾는 정직한 일로 인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정직한 일 곧 여호와를 찾는다는 것은 여호와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언제까지 그렇게 한 것입니까? 여호와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가 살아있을 동안에 그렇게 하였습니다. 여호와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가 죽어버리자 여호와의 묵시기 희미하여 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영토가 확장되고 농사를 잘 짓도록 하고 특별한 무기도 개발하여 망대와 성곽 위에서 화살과 큰 돌을 쏘는 투석기를 개발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웃시야의 이름이 멀리 퍼짐은 기이한 도우심을 얻어 강성하여 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형통하는 것이 과연 좋은 것일까요? 여호와를 찾고 의지함으로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어 형통하게 되었지만 여호와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의 죽음으로 인하여 자신의 그 형통함이 자신이 잘 나서 그렇게 된 줄로 착각하게 됩니다. 북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 때에 가장 번성한 나라가 되었지만 아모스 선지가가 여호와의 보시는 눈으로 보았을 때에는 북 이스라엘은 온갖 죄악으로 가득하였습니다. 아침마다 희생 제사를 드리고 삼일마다 십일조를 하였지만 말씀의 기근을 만난 것이 바로 그 번성의 때입니다. 이처럼 남 유다의 웃시야 왕도 참으로 대단한 영토를 회복하고 경제가 잘 돌아가고 국방도 든든하게 되었지만 여호와의 묵시를 밝히 하는 스가랴의 죽음으로 여호와의 계시에 어두워지게 되었습니다. 번영으로 인하여 교만해 진 것입니다. 역대하 26:16절을 보면 “저가 강성하여지매 그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기이한 도우심으로 강성하여졌는데 자신이 잘나서 그렇게 된 줄 알고 마음이 교만하여져서 악을 행하였습니다. 그 악이란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한 것입니다. 웃시야는 왕으로서 백성들의 칭찬과 존경을 받고 외국에서도 대단한 왕으로 소문이 났습니다. 그런데 하나 못 마땅한 것은 성전의 제사를 자신이 직접 주도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직접 분향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교만입니다.

 

계속해서 역대하 26:17-20절을 보면 “제사장 아사랴가 여호와의 제사장 용맹한 자 팔십인을 데리고 그 뒤를 따라 들어가서 웃시야 왕을 막아 가로되 웃시야여 여호와께 분향하는 일이 왕의 할바가 아니요, 오직 분향하기 위하여 구별함을 받은 아론의 자손 제사장의 할 바니 성소에서 나가소서 왕이 범죄하였으니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얻지 못하리이다. 웃시야가 손으로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 하다가 노를 발하니 저가 제사장에게 노할 때에 여호와의 전 안 향단 곁 제사장 앞에서 그 이마에 문둥병이 발한지라. 대제사장 아사랴와 모든 제사장이 왕의 이마에 문둥병이 발하였음을 보고 전에서 급히 쫓아내고 여호와께서 치시므로 왕도 속히 나가니라”고 했습니다. 왕이 분향 하려고 하자 제사장 아사랴가 용맹한 제사장 팔십 명을 데리고 왕의 뒤를 따라가서 웃시야에게 말하기를 웃시야 왕이여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 웃시야여라고 부릅니다. 왕의 존칭도 떼 버렸습니다. 감히 성전에서 자신의 권세와 영광을 가지고 분향하려고 한 이것이 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론의 자손 제사장이 분향할 것이니 왕은 나가라고 하였습니다. 이때 왕이 화를 냅니다. 왜 화를 내었겠습니까? 모든 것이 형통한 때입니다. 백성들도 존경하는 왕입니다. 영토가 회복되고 경제는 잘 돌아가고 국방이 튼튼합니다. 이에 웃시야 왕이 교만하여져서 제사도 자신이 직접 드리고자 한 것입니다. 이런 왕을 말리는 제사장들에게 화를 내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의 이마에 문둥병이 발하였습니다. 제사장들이 이를 보고 급히 쫒아 냅니다. 감히 문둥병이 든 주제에 여호와의 성전에서 분향을 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문둥병은 성전에 나갈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모든 접촉하는 것이 다 부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웃시야 왕이 가장 형통한 때에 그의 속 모습은 문둥병자였습니다. 여호와께서도 그런 왕을 치시니 왕이 속히 물러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역대하 26:21-23절을 보면 “웃시야 왕이 죽는 날까지 문둥이가 되었고 문둥이가 되매 여호와의 전에서 끊어졌고 별궁에 홀로 거하였으므로 그 아들 요담이 왕궁을 관리하며 국민을 치리하였더라. 이 외에 웃시야의 시종 행적은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기록하였더라. 웃시야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저는 문둥이라 하여 열왕의 묘실에 접한 땅 곧 그 열조의 곁에 장사하니라. 그 아들 요담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고 했습니다. 웃시야 왕은 문둥병으로 별궁에 거하며 요담이 대신 치리하게 됩니다. 그 남은 행적은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기록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의 역사 기록은 남은 것이 없지만 우리가 앞에서 본 대로 이사야 선지자가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하나님의 영광을 성전에서 뵙게 됨으로 자신이 입술이 부정한 자이며 모든 백성이 입술이 부정한 자 곧 문둥병 자임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고 하는 것이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뵙는 자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형통하게 된 웃시야는 자신의 그 형통함이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고 성전에 당당히 나아갈 뿐만 아니라 제사장들이 행하는 분향까지 자신이 직접 하려다가 문둥병이 들어서 쫓겨난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모습을 보면서 주님 앞에 나아오는 우리 자신들의 모습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우리도 웃시야와 같이 교만한 마음으로, 자기 의로 나오지는 않습니까?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가 오늘 말씀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하시고 교만을 회개하며, 오직 우리 주님의 십자가 공로를 의지함으로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나아가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웃시야와 같이 하나님의 전에서 쫓겨나는 자들이 되지 않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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