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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왕하 24:1-7
강설날짜 2018-07-25

2018년 열왕기하 공부

느부갓네살을 배반한 여호야김

말씀:열왕기하 24:1-7

 

우리는 지난 시간에 유다 왕 여호아하스와 여호야김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지난 시간에 본 열왕기하 23:31-37절 말씀을 보면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유다의 왕이 된지 삼 개월 만에 애굽 왕 바로느고에 의해서 폐위가 되고 요시야의 다른 아들인 엘리아김이 왕이 됩니다. 바로느고는 엘리아김의 이름을 여호야김으로 고쳤습니다. 이것은 여호야김이 바로느고 왕의 종이 되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여호아하스나 여호야김은 둘 다 요시야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어머니가 다른 배 다른 형제들이었습니다. 여호야김이 형이었는데 동생 여호아하스가 먼저 왕이 되었다가 폐위가 된 뒤에 유다 왕이 되었습니다. 여호야김이 왕이 될 때에 나이가 25세였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11년간을 다스렸습니다. 그에 대한 성경의 평가는 여호아하스와 마찬가지로 그의 조상들이 행한 모든 일을 따라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고 하였습니다(왕하 23:37).

 

오늘 본문 말씀은 여호야김이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배반하는 사건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말씀을 통해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1-4절을 보면 “여호야김 시대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올라오매 여호야김이 삼년을 섬기다가 돌이켜 저를 배반하였더니 여호와께서 그 종 선지자들로 하신 말씀과 같이 갈대아의 부대와 아람의 부대와 모압의 부대와 암몬 자손의 부대를 여호야김에게로 보내어 유다를 쳐 멸하려 하시니 이 일이 유다에 임함은 곧 여호와의 명하신 바로 저희를 자기 앞에서 물리치고자 하심이니 이는 므낫세의 지은 모든 죄로 인함이며 또 저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려 그 피로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였음이라. 여호와께서 사하시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여호야김 시대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쳐들어왔습니다. 여호야김은 삼 년을 바벨론 왕을 섬기다가 배반을 하였습니다. 여호야김은 애굽 왕 바로느고가 세운 왕입니다. 그러므로 친 애굽적인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벨론이 쳐들어와서 그들을 삼년 동안 섬기다가 반역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바벨론을 반역 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나 여호야김은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않고 반역을 함으로써 바벨론이 유다를 쳐서 멸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일이 유다에 임한 것은 2절에 보면 선지자들이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3절에도 보면 여호와의 말씀대로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3절에서는 므낫세가 지은 죄로 인하여 여호와께서 유다를 멸하시기로 작정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요시야 왕이 아무리 개혁을 해도 유다는 멸망하는 것입니다. 므낫세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려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사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심으로 유다가 멸망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제 곧 유다가 멸망할 것입니다.

 

그러면 므낫세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역대하 33:10-13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므낫세와 그 백성에게 이르셨으나 저희가 듣지 아니한 고로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의 군대 장관들로 와서 치게 하시매 저희가 므낫세를 사로잡고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어 간지라. 저가 환난을 당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께 간구하고 그 열조의 하나님 앞에 크게 겸비하여 기도한 고로 하나님이 그 기도를 받으시며 그 간구를 들으시사 저로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다시 왕위에 거하게 하시매 므낫세가 그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더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열왕기하에는 없는 내용입니다. 역대기는 남 유다와 성전을 중심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역대기에서는 역사의 내용보다는 성전을 중심으로 회개하는 내용들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유다가 멸망하게 하는 극악한 죄를 범한 므낫세가 앗수르에 사로 잡혀 갔습니다. 그는 그 환난을 통하여 하나님 여호와께 간구하고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 크게 겸손하여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받으시고 그를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오게 하시고 왕위에 앉게 하십니다. 므낫세가 그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다고 합니다. 우리는 열왕기하 21장에서 이 사실을 살펴봤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므낫세가 천국 갔겠습니까? 지옥 갔겠습니까? 유다가 멸망하는 죄를 지었지만 하나님이 그를 받아 주셨습니다. 이를 통하여 인간의 죄가 어떠한지 하나님의 언약의 신실함과 그 언약을 따른 용서와 사랑이 어떤지를 계시하고 있습니다.

 

여호야김 시대를 보겠습니다. 예레미야 2:13절을 보면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2장 앞부분을 보면 다른 나라 사람들은 우상인데도 자기들의 신들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버린 것이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이들의 악은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입니다. 이런 웅덩이는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입니다. 우리가 우리를 지키려고 이것저것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지만 그러나 그런 자구책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는 행위라는 말씀입니다.

 

예레미야 2:18-19절을 보면 “네가 시홀의 물을 마시려고 애굽 길에 있음은 어찜이며 또 그 하수를 마시려고 앗수르 길에 있음은 어찜이뇨.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패역이 너를 책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갈그미스 전쟁(대하 35장)에 대해 봤습니다만 그런 격동기에 작은 나라인 유다는 어느 나라에 줄을 서야 안전할지 이곳저곳을 기웃거린 것입니다. 여기서 ‘시홀’은 각주 5)번에 보면 ‘나일’이라고 했고, ‘그 하수’는 각주 6)번에 보면 ‘유브라데’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유다가 애굽에 줄을 서야 할지 바벨론에 줄을 서야할지 갈팡질팡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악이요, 고통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언약을 신뢰하지 못하고 세상을 의지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유다의 모습이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 아닙니까?

 

예레미야 25:1-14절을 보면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 사년 곧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원년에 유다 모든 백성에 관한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선지자 예레미야가 유다 모든 백성과 예루살렘 모든 거민에게 고하여 가로되 유다 왕 아몬의 아들 요시야의 십 삼년부터 오늘까지 이십 삼년 동안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기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되 부지런히 일렀으나 너희가 듣지 아니 하였으며 여호와께서 그 모든 종 선지자를 너희에게 보내시되 부지런히 보내셨으나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으며 귀를 기울여 들으려고도 아니하였도다. 이르시기를 너희는 각기 악한 길과 너희 악행에서 돌이키라. 그리하면 나 여호와가 너희와 너희 열조에게 옛적에 주어 영원히 있게 한 그 땅에 거하리니 너희는 다른 신을 좇아 섬기거나 숭배하지 말며 너희 손으로 만든 것을 인하여 나의 노를 격동치 말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해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나 너희가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너희 손으로 만든 것으로 나의 노를 격동하여 스스로 해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러므로 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내 말을 듣지 아니하였은즉 보라 내가 보내어 북방 모든 족속과 내 종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불러다가 이 땅과 그 거민과 사방 모든 나라를 쳐서 진멸하여 그들로 놀램과 치소거리가 되게 하며 땅으로 영영한 황무지가 되게 할 것이라. 내가 그들 중에서 기뻐하는 소리와 즐거워하는 소리와 신랑의 소리와 신부의 소리와 맷돌소리와 등불 빛이 끊쳐지게 하리니 이 온 땅이 황폐하여 놀램이 될 것이며 이 나라들은 칠십년 동안 바벨론 왕을 섬기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칠십년이 마치면 내가 바벨론 왕과 그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인하여 벌하여 영영히 황무케 하되 내가 그 땅에 대하여 선고한바 곧 예레미야가 열방에 대하여 예언하고 이 책에 기록한 나의 모든 말을 그 땅에 임하게 하리니 여러 나라와 큰 왕들이 그들로 자기 역군을 삼으리라. 내가 그들의 행위와 그들의 손의 행한 대로 보응하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여호야김 시대에 예레미야 선지자가 전한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요시야 왕 13년부터 여호야김 시대까지 23년을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였지만 그들은 듣지 않았다고 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바벨론에 의해 유다의 멸망까지 목격합니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더 선지자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만 여호야김 시대에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언한 말씀입니다. 므낫세의 악만이 아니라 유다 백성 전체가 멸망하는 것은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벨론에 멸망하는데 문제는 그런 멸망과 함께 70년 만에 포로에서 돌아올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이 지금 징계를 당하고 나라가 망하지만 다윗 언약이 계속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이란 반드시 심판을 통한 구원인 것입니다. 심판을 통하여 자신은 정말로 구원 받을 자격이 전혀 없음을 알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의 일방적인 언약에 따른 은혜로 구원하심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언약의 백성들입니다. 이런 내용들은 그림자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5-7절을 보면 “여호야김의 남은 사적과 모든 행한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여호야김이 그 열조와 함께 자매 그 아들 여호야긴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애굽 왕이 다시는 그 나라에서 나오지 못하였으니 이는 바벨론 왕이 애굽 하수에서부터 유브라데 하수까지 애굽 왕에게 속한 땅을 다 취하였음이더라”고 했습니다. 여호야김의 남은 사적과 행한 모든 일이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 되었습니다. 여호야김이 죽자 그의 아들 여호야긴이 왕이 됩니다. 그런데 7절을 다시 보면 애굽 왕이 다시는 그 나라에서 나오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바벨론 왕이 애굽 땅 까지 점령한 것입니다. 이것은 갈그미스 전투 이후에 바벨론이 세계를 제패하는 제국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바벨론도 하나님께서 유다를 다스리시는 몽둥이로 사용하십니다. 그러므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는 것도 다윗의 언약을 따른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입니다.

 

여호야김 시대를 지나서 예루살렘이 완전히 멸망하는 시드기야 시대를 보겠습니다. 예레미야 32:25-35절을 보면 “주 여호와여 주께서 내게 은으로 밭을 사며 증인을 세우라 하셨으나 이 성은 갈대아인의 손에 붙인바 되었나이다.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 내게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이 성을 갈대아인의 손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붙일 것인즉 그가 취할 것이라. 이 성을 치는 갈대아인이 와서 이 성읍에 불을 놓아 성과 집 곧 그 지붕에서 바알에게 분향하며 다른 신들에게 전제를 드려 나를 격노케 한 집들을 사르리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과 유다 자손이 예로부터 내 목전에 악만 행하였음이라. 이스라엘 자손은 그 손으로 만든 것을 가지고 나를 격노케 한 것 뿐이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성이 건설된 날부터 오늘까지 나의 노와 분을 격발하므로 내가 내 앞에서 그것을 옮기려 하노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과 유다 자손이 모든 악을 행하여 내 노를 격동하였음이라. 그들과 그들의 왕들과 그 방백들과 그 제사장들과 그 선지자들과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거민들이 다 그러하였느니라. 그들이 등을 내게로 향하고 얼굴을 내게로 향치 아니하며 내가 그들을 가르치되 부지런히 가르칠지라도 그들이 교훈을 듣지 아니하며 받지 아니하고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집에 자기들의 가증한 물건들을 세워서 그 집을 더럽게 하며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 바알의 산당을 건축하였으며 자기들의 자녀를 몰렉의 불에 지나가게 하였느니라. 그들이 이런 가증한 일을 행하여 유다로 범죄케 한 것은 나의 명한 것도 아니요, 내 마음에 둔 것도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여호야김 시대를 지나 시드기야 시대를 말하는 것입니다. 나라가 망하는 지경입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밭을 사라고 합니다. 망하는 나라 밭을 왜 사느냐고 물어 보았을 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내가 못할 일이 있겠느냐”고 하시면서 말씀하십니다. 유다의 왕과 방백들과 제사장들과 그의 선지자들과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거민들이 다 악을 행하였다고 합니다. 이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한 것이 아니라 온갖 우상을 섬긴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와 같지 않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부르지만 어떤 하나님을 부르고 있습니까? 나 잘되게 해 주는 하나님을 부르고 있다면 그것도 탐심으로 부른 것이기에 동일한 우상숭배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자들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망하게 해서라도 깨닫게 하십니다. 앞에서 보았던 므낫세처럼 포로로 잡혀가고 환난을 당한 후에 비로소 여호와가 하나님이심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다가 이렇게 멸망하는 것이 끝이 아닙니다. 이러한 심판을 통하여 새로운 약속을 주십니다.

 

이어지는 예레미야 32:36-44절을 보면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너희의 말하는바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인하여 바벨론 왕의 손에 붙인바 되었다 하는 이성에 대하여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노와 분과 큰 분노로 그들을 쫓아 보내었던 모든 지방에서 그들을 모아내어 이곳으로 다시 인도하여 안전히 거하게 할 것이라.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며,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과 한 도를 주어 자기들과 자기 후손의 복을 위하여 항상 나를 경외하게 하고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영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 내가 기쁨으로 그들에게 복을 주되 정녕히 나의 마음과 정신을 다하여 그들을 이 땅에 심으리라.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이 백성에게 이 큰 재앙을 내린 것같이 허락한 모든 복을 그들에게 내리리라. 너희가 말하기를 황폐하여 사람이나 짐승이 없으며 갈대아인의 손에 붙인바 되었다 하는 이 땅에서 사람들이 밭을 사되 베냐민 땅과 예루살렘 사방과 유다 성읍들과 산지의 성읍들과 평지의 성읍들과 남방의 성읍들에 있는 밭을 은으로 사고 증서를 기록하여 인봉하고 증인을 세우리니 이는 내가 그들의 포로로 돌아오게 함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행위대로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면 반드시 이렇게 멸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백성들을 다시 회복시키시고 돌이키시고 영원한 언약을 세우시는 일을 누가 하십니까? 철저하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루어내십니다.

 

하나님이 이루시는 그 일로 인하여 영원한 언약을 세우신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에서 자신의 살과 피를 말씀하시면서 자신의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라고 하셨습니다(눅 22:14-20).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구약의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한 그 죄악들이 바로 나의 죄악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 예수님의 공로만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인간으로는 불가능하기에 성령이 임하여야 합니다. 성령이 임하게 되면 자신의 죄가 어떠함을 알게 되기에 주님만 신뢰하는 것입니다. 세월 지나 갈수록 더욱 주님만 의지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자신은 죄인의 괴수임을 알아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성령이 임한 성도의 신앙생활이며, 신앙의 성장인 것입니다. 성령이 임한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야김 시대나 오늘날 이 시대나 간에 성경은 하나님의 자기 언약의 성취를 보여줍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언약을 신실하게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신실하지 못한 자이지만 이런 우리를 언약에 신실하셔서 당신의 백성 삼으시고 그리스도 외에 자랑할 것이 없는 자로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를 그 은혜 위에 굳게 서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오직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살며, 예수 그리스도만을 자랑하는 삶을 사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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