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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신 1:1-8
강설날짜 2018-10-10

2018년 신명기 공부

모세가 선포한 하나님의 말씀

말씀:신명기 1:1-8

 

오늘부터 우리는 신명기 말씀을 공부하고자 합니다. 신명기는 이스라엘 자손이 출애굽한지 제40년 11월 1일에 요단 동편 모압 땅에서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모세가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백성들에게 다시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 이미 율법을 주셨습니다. 이미 주신 율법을 가나안 땅 곧 약속의 땅 입성을 눈앞에 두고 모세가 지나온 40년을 돌이켜 보면서 다시 설명을 합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것으로 우리에게 교훈이 됩니다. 그러므로 신명기는 하나님의 율법인 동시에 교훈의 책입니다.

 

신명기는 우리말로 ‘다시 명령을 기록한다’라는 뜻입니다. 신명기 1:1절을 보면 “이는 모세가 요단 저편 숩 맞은편의 아라바 광야 곧 바란과 도벨과 라반과 하세롯과 디사합 사이에서 이스라엘 무리에게 선포한 말씀이니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어 성경 원문에 보면 ‘이스라엘 무리에게 선포한 말씀이니라’는 말씀이 복수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곧 ‘이것들은 말씀이다’가 아니라 ‘이것들은 말씀들이다’입니다. 신명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단순히 반복하는 말씀이 아니라 새롭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는 신명기를 언약의 갱신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면 언제 어디에서 이 말씀을 선포한 것입니까? 2-4절에 보면 “호렙산에서 세일산을 지나 가데스 바네아에까지 열 하룻길이었더라. 제 사십년 십일월 그 달 초일일에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자기에게 주신 명령을 다 고하였으니 때는 모세가 헤스본에 거하는 아모리 왕 시혼을 쳐 죽이고 에드레이에서 아스다롯에 거하는 바산 왕 옥을 쳐 죽인 후라”고 했습니다. 이때는 출애굽한지 약 40년이 지난 때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으로부터 약 3400년 전입니다. 장소는 요단강 건너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지 광야에서 40년을 지내고 나서 모세가 죽기 직전, 곧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가기 직전에 모압 땅에서 약속의 땅을 바라보면서 모세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오래된 시대의 말씀이 오늘날 우리에게 무슨 관계가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법은 사람들에게 귀찮은 짐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담고 있습니다. 물론 눈과 귀가 가려져서 하나님의 법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이 지켜내어야 할 세상의 법조문과 같이 생각하여 자기들이 힘으로 그 법을 지키려고 하다 보니 남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자기들이 열심히 지켜내었다는 자기 열심과 자기들의 의만 남았던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또한 율법의 한 기능이기도 합니다만 그러나 죄인들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은혜인지 먼저 알아야 합니다. 곧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멸망 받을 우리 인생들을 당신의 백성 삼아주시고 그들에게 계명의 말씀을 주신다는 것 자체가 큰 은혜요, 축복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에 아담과 하와를 살게 하실 때에 단 한 가지 금령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따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습니다(창 2:17). 그런데 하와가 뱀의 유혹을 받아서 선악과를 따먹고 남편에게도 주어서 함께 먹었습니다. 그 결과 정녕 죽게 되었습니다. 육신의 생명뿐 아니라 생명되신 하나님에게서 분리되어 영원히 멸망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런 우리 인생들을 아무 말씀하지 않으시고 내버려 두시면 그것이 곧 심판인 것입니다. 로마서 1장에 보면 하나님의 심판은 버려두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지만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그대로 내버려두셨습니다. 이것이 심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범죄 하여 숨어있는 아담을 찾아오셔서 아담을 부르시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아담을 부르시지 않으셨다면, 부르시고 새로운 말씀을 주시지 않으셨다면, 구원이란 없는 것입니다. 범죄 한 인간을 찾아오셔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대로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모세를 통하여 출애굽 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들이 시내산에서 놀랍고 두려운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가나안 입구까지 갔지만 불신앙으로 사십년을 광야에서 유리하며 소멸되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한 후 사십년 동안 어떻게 지냈습니까? 출애굽 하여 홍해를 건넌지 삼일 만에 그들은 물이 없다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한 그들이 처음 가나안 입구까지 왔을 때 까지도 원망과 불평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약속의 땅에 들어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여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던 그들이 사십년 동안 광야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광야에 유리하며 다 소멸되어야 하는 그 사십년 동안 그들이 어떻게 보냈습니까? 불신앙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살았습니까? 결코 그렇지 못합니다. 사도행전 13:17-19절을 보면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을 택하시고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된 그 백성을 높여 큰 권능으로 인도하여 내사 광야에서 약 사십 년간 저희 소행을 참으시고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사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고(약 사백 오십 년간)”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복음을 전하는 내용입니다. 이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광야 사십 년간 이스라엘 백성들의 소행을 참으셨다고 합니다. 그들의 소행을 참으실 뿐 아니라 가나안 일곱 족속을 멸하시고 그 땅을 기업으로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기업을 얻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이 사십년 동안 하나님께 순종하였기에 약속의 땅에 들어간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했습니다. 이런 그들을 하나님께서는 참으셨습니다. 곧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간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의 소행을 참으셨기 때문입니다.

 

에스겔서 20:10-26절에 보면 이들은 광야에서도 우상숭배를 했다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러한 말씀을 통하여 사사시대와 왕조시대를 말하면서 다윗에게 언약하신 메시아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 약속된 메시아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임을 증거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간 자들이 그들의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맹세를 이루시기 위하여 하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다시 보면 여러 지명들이 나옵니다만 한마디로 하면 요단강 건너편입니다. “이는 모세가 요단 저편 숩 맞은편의 아라바 광야 곧 바란과 도벨과 라반과 하세롯과 디사합 사이에서 이스라엘 무리에게 선포한 말씀이니라”(신 1:1). 모세는 요단강 건너편 곧 약속의 땅을 눈 앞에 두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후에 모세는 죽습니다. 모세가 죽고 나면 여호수아의 인도를 따라서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에 들어가야 하는 시점입니다. 모세는 지난 40년의 역사를 회고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설명하고 다시 언약을 맺습니다. 그 당시 시내산에서 언약의 말씀을 들었던 성인 남자들은 다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만 남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약속의 땅을 앞에 두고 새로운 세대에게 이 말씀을 다시 들려주면서 새롭게 언약을 맺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절을 다시 보면 호렙산에서 세일산을 지나 가데스 바네아까지 열 하룻길이라고 합니다. 즉 시내산에서 가데스 바네아까지 11일 걸린다면 애굽에서 가나안 까지 넉넉히 잡아도 보름이면 걸어갈 수 있는 거리입니다. 그런데 40년을 광야에서 유리하여야 한 이유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열두 정탐꾼을 보냈을 때 10명이 들어가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상대방은 거인이며, 성벽은 크고 튼튼하며, 강한 무기로 무장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우리를 보면 메뚜기 같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다시 장관을 뽑아서 대표를 삼고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한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심히 진노 하시고 정탐한 40일을 하루를 일년으로 환산하여 40년 동안 광야에서 유리하게 하신 것입니다. 물론 두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은 약속을 믿고서 들어갑니다만 이 기간이 40년 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3절을 다시 보면 모세는 제40년 11월 1일에 이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 전합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전하는 이 말씀은 모세 자신의 말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다 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은 자신의 말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목사들이 설교할 때 보면 자신의 사상이나 야망을 말씀에 보태어서 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결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그대로 다 전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만사가 다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4절을 다시 보면 “때는 모세가 헤스본에 거하는 아모리 왕 시혼을 쳐 죽이고 에드레이에서 아스다롯에 거하는 바산 왕 옥을 쳐 죽인 후라”고 했습니다.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정복한 내용은 신명기 2-3장에서 자세히 나옵니다. 우리가 그 내용은 그때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고 오늘은 바산 왕 옥에 대하여 잠시 보겠습니다. 바산 왕 옥은 얼마나 장대한 사람인지 철 침대의 길이가 약 4미터가 넘고 넓이가 약 2미터가 되는 엄청난 침대를 섰습니다. 그런데 그런 강한 자를 이긴 것도 하나님께서 붙여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말씀을 믿음으로 가나안에 들어가게 합니다.

 

오늘 본문 5-8절을 보면 “모세가 요단 저편 모압 땅에서 이 율법 설명하기를 시작하였더라. 일렀으되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호렙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여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산에 거한지 오래니 방향을 돌려 진행하여 아모리 족속의 산지로 가고 그 근지 곳곳으로 가고 아라바와 산지와 평지와 남방과 해변과 가나안 족속의 땅과 레바논과 큰 강 유브라데까지 가라 하셨나니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사 그들과 그 후손에게 주리라 하신 땅이 너희 앞에 있으니 들어가서 얻을지니라”고 했습니다. 모세가 율법을 설명합니다. 왜 모세가 율법을 다시 설명하는 것입니까? 법이라면 지키면 살고 지키지 못하면 죽는다고 하면 다 된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율법을 설명한다는 것은 율법의 뜻을 백성들에게 밝히 알아듣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 율법 설명 후에 여호와께서는 호렙산에서 가나안으로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지역이 어디까지 미치는가 하면 레바논과 큰 강 유브라데까지 입니다. 이 경계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입니다.

 

창세기 15:18절을 보면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워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애굽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신 후에 주신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은 아브라함에게 그 후손이 차지할 땅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 약속을 하신 것을 하나님께서 신실하게 이루어내심으로 말미암아 출애굽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의 열조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믿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한 결과가 어떠한지를 그들은 온 몸으로 체험하고 나서 모세는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믿지 못한 세대는 광야에서 다 소멸되었습니다. 아론도 출애굽 한 후 40년 오월에 죽었습니다(민 33:38). 모세도 이 말씀을 전하고 죽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한 내용은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기에 모세는 여호와의 말씀을 다시 전하는 것입니다. 율법을 주신 목적은 그들을 괴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은혜입니다.

 

신명기 8:1-3절을 보면 “내가 오늘날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으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임을 알게 하시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신명기 8:4-10절을 보면 “이 사십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느니라.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도를 행하며 그를 경외할지니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로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곳은 골짜기에든지 산지에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들의 나무와 꿀의 소산지라. 너의 먹는 식물의 결핍함이 없고 네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그 땅의 돌은 철이요 산에서는 동을 캘 것이라.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로 네게 주셨음을 인하여 그를 찬송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징계조차도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신명기 8:16절을 보면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마침내 복을 주시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계속해서 신명기 8:17-18절을 보면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여호와를 기억하라고 합니다. 어떤 여호와 하나님이십니까?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고 그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그 들어간 땅에서도 멸망할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 8절을 다시 보면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사 그들과 그 후손에게 주리라 하신 땅이 너희 앞에 있으니 들어가서 얻을지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얻을지라’는 말은 ‘정복하다’, ‘상속지로 차지하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을 하나님께서 그 후손들에게 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2세들에게 너희가 들어가서 얻으라고 합니다. 그 땅을 정복하고 상속지로 차지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이 말씀을 듣는 것은 무엇을 위함입니까? 로마서 15:4절을 보면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무슨 안위와 소망입니까? 로마서 15:5-6절을 보면 “이제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고 했습니다. 구약이나 신약이나 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자세히 설명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성경의 안위와 소망을 가지게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참된 안위와 소망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의 참된 안위와 소망입니다. 이 소망 외에 다른 소망은 다 거짓되고 헛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안위와 소망을 가진 자들은 한 마음과 한 입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참된 위로와 소망임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또한 우리가 우리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신실하게 가르쳐 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의 언약적 축복에 참여하게 하시며,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위로와 소망을 덧입어 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이와 같은 은혜가 우리 가운데 신명기 말씀을 공부 해 가운데 충만케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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