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2장] 돌이켜 북으로 나아가라

by 손재호 posted Oct 3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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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신 2:1-23
강설날짜 2018-10-31

2018년 신명기 공부

돌이켜 북으로 나아가라

말씀:신명기 2:1-23

 

신명기 2-3장 말씀은 민수기 21장의 이야기를 지금 모압평지에서 다시 하고 있는 것입니다. 민수기 21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 동편을 점령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때의 일을 다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오늘부터 살펴볼 신명기 2-3장의 구조를 보면 2:1-23절에서는 에돔과 모압과 암몬과는 평화적으로 통과하라는 말씀이고, 2:24-37절에서는 헤스본 왕 시혼을 치고 통과하라는 말씀이고, 3:1-11절은 바산 왕 옥을 치고 통과 하라는 말씀입니다. 3:12-22절은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가 요단 동편을 기업으로 받는 사건을 다루고, 3:23-29절은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할 것을 말씀하시는 사건을 다루고 있습다. 오늘 우리는 2:1-23절 말씀을 살펴보자 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을 눈앞에 두고서도 곧바로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곧바로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불신앙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것을 지금까지 신실하게 이루어 오셨다는 사실을 그들은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만 나타나셔서 말씀하시고 일을 이루어내신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이 다 보고 경험하도록 애굽에 10가지 재앙을 내리시고, 홍해를 마른 땅 같이 건너게 하시고,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 그들은 이처럼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언약을 이루심을 체험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보다 그들 눈앞에 보이는 적들이 더 강해보였던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런 그들을 약속의 땅에 그대로 들여놓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을 다시 회정시키시는 것입니다. 곧 약속의 땅을 눈앞에 두고 돌이켜 다시 광야로 나아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3절을 보면 “우리가 회정하여 여호와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홍해 길로 광야에 들어가서 여러 날 동안 세일산을 두루 행하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고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산을 두루 행한 지 오래니 돌이켜 북으로 나아가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홍해 길에서 가나안으로 왔었는데 이제 다시 홍해 길로 회정하여야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홍해 길로 광야에 들어가서 여러 날 동안 세일산을 두루 행하였습니다. 사실 여러 날 정도가 아니라 무려 38년을 광야에서 돌아다녀야 했습니다. 왜 이들이 38년 동안이나 광야에서 보내야 한 것입니까? 그들의 불신앙 때문입니다. 민수기 13장과 14장에 보면 모세가 열두 두령들에게 가나안 정탐을 보냅니다. 그런데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열 두령들이 “그 땅 거민들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클 뿐 아니라 아낙 자손을 보았다”고 하면서 “우리가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다”고 하면서 그 땅에 대해서 악평을 하였습니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애굽으로 돌아가고자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원망하는 이들을 정탐한 40일의 하루를 1년으로 환산하여 40년을 광야에서 돌아다니게 하신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출애굽 1세대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광야 40년의 기간은 여호와의 언약을 믿지 못한 자들이 다 죽기까지의 기간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 14-15절을 보면 “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 세렛 시내를 건너기까지 삼십 팔년 동안이라. 이 때에는 그 시대의 모든 군인들이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진 중에서 다 멸절되었나니 여호와께서 손으로 그들을 치사 진 중에서 멸하신 고로 필경은 다 멸절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회정하여 38년간을 광야에서 보내는 동안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겠다고 한 군인들이 여호와께서 맹세하신 대로 진중에서 다 멸절되었습니다. 광야에서 38년을 보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한 일은 장사지내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광야 40년은 불신앙의 세대가 다 죽어 땅에 묻히는 기간입니다.

 

그러면 이 일을 통하여 출애굽 2세대들은 무엇을 보고 배웠겠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실함을 보고 배울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 사건을 신약에서는 이렇게 해석합니다. 히브리서 4:1-3절을 보면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었느니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3:7-19절까지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 40년 동안 유리하며 다 죽은 것은 그들의 마음이 강퍅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함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하여 광야에서 시험하던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년 동안에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를 노하여 가로되 저희가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니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할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하였으니 듣고 격노케 하던 자가 누구뇨. 모세를 좇아 애굽에서 나온 모든 이가 아니냐. 또 하나님이 사십년 동안에 누구에게 노하셨느뇨. 범죄하여 그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자에게가 아니냐.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뇨.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 이로 보건대 저희가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히 3:7-19). 그러므로 오늘날도 복음을 믿지 못하면 우리도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3절을 다시 보면 “너희가 이 산을 두루 행한지 오래니 돌이켜 북으로 나아가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다시 가나안을 향하여 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이미 38년 전에 주어진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때는 불신앙으로 인해서 들어가지 못하였기에 이제 다시 주어지는 말씀입니다. 믿지 않았던 세대가 다 죽고 난 후에 다시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그 말씀을 받은 사람이 죽어도 여전히 성취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아무리 거대한 꿈을 가지고 이루어낸다고 하여도 그 사람이 죽어버리면 그만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이 다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36장을 보면 예레미야 선지자가 구술하고 바룩이 받아쓴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이 듣고 놀랍니다. 왜냐하면 그 말씀이 심판과 재앙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백성의 관원들이 듣고 왕에게 보고를 합니다. 왕이 그 말씀을 듣고서는 그 기록된 말씀을 읽는 대로 칼로 잘라서 겨울 화로 불에 집어던져 불살라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없어집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그 같은 말씀을 다시 기록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40여 년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가지 못한다고 자기의 자녀들이 다 죽게 되었다고 원망하였지만 그 죽게 되었다는 자녀들이 성장하여 이제 가나안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지금 들어가는 사람들은 분명코 40년 전의 일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러나 물론 그들 중에는 40년 전의 그 일을 직접 목도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그 40년 전의 일을 상기시키며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정하여 광야에서 두루 행하면서 그 세대가 다 죽은 후에 다시 말씀이 주어지기를 “돌이켜 북으로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돌이켜 북으로 나아가라는 것’은 약속의 땅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4-7절을 보면 “너는 또 백성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세일에 거하는 너희 동족 에서의 자손의 지경으로 지날진대 그들이 너희를 두려워하리니 너희는 깊이 스스로 삼가고 그들과 다투지 말라. 그들의 땅은 한 발자국도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세일산을 에서에게 기업으로 주었음이로라. 너희는 돈으로 그들에게서 양식을 사서 먹으며 돈으로 그들에게서 물을 사서 마시라.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하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고 네가 이 큰 광야에 두루 행함을 알고 네 하나님 여호와가 이 사십년 동안을 너와 함께 하였으므로 네게 부족함이 없었느니라 하셨다 하라 하시기로”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세일산에 거하는 너희의 동족 에서의 자손의 지경으로 지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때 그들이 두려워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 곳을 지날 때에 너희는 스스로 깊이 삼가 하여 곧 스스로 조심하여 그들과 다투지 말고 양식과 물도 거저먹지 말고 돈을 주고 사 먹으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땅은 한 발자국도 너희에게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땅은 에서에게 준 것이기 때문에 너희는 그 땅은 넘보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모압과 암몬의 땅도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 8-9절을 보면 “우리가 세일산에 거하는 우리 동족 에서의 자손을 떠나서 아라바를 지나며 엘랏과 에시온 게벨 곁으로 지나 행하고 돌이켜 모압 광야 길로 진행할 때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모압을 괴롭게 말라. 그와 싸우지도 말라. 그 땅을 내가 네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롯 자손에게 아르를 기업으로 주었음이로라”고 했습니다. 모압과 암몬은 롯의 후손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모압 광야 길로 진행할 때 그들을 괴롭게 말라고 합니다. 그들과 싸우지도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땅을 롯의 후손들에게 준 땅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하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신명기 2:26-3:11절에 보면 헤스본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은 쳐서 취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에돔과 모압과 암몬 지경을 지날 때는 그들과 싸우지도 말고 양식과 물도 사 먹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라고 명하신 이유는 첫째는, 모든 민족의 경계를 하나님께서 정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7:26절을 보면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모든 민족의 년대와 경계를 제한하셨다고 합니다. 이 뿐 아니라 모든 나라의 흥망성쇠도 다 하나님의 손에 달린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주변의 여러 나라들과 강대국인 애굽과 앗수르와 바벨론과 메데 바사제국을 어떻게 하나님께서 도구로 사용하시는지를 우리가 이미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 10-12절을 보면 “(옛적에 엠 사람이 거기 거하여 강하고 많고 아낙 족속과 같이 키가 크므로 그들을 아낙 족속과 같이 르바임이라 칭하였으나 모압 사람은 그들을 에밈이라 칭하였으며 호리 사람도 세일에 거하였더니 에서의 자손이 그들을 멸하고 대신하여 그 땅에 거하였으니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주신 기업의 땅에서 행한 것과 일반이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옛적에 모압 사람들이 그 땅을 차지하기 전에 엠 사람이 살았는데 그들은 아낙자손들처럼 거인 족이었습니다. 또 호리 사람도 세일에 거하였는데 에서의 자손이 그들을 멸하고 대신하여 그 땅에 거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주신 기업을 차지하는 것과 일반이라고 합니다. 곧 같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 20-23절에도 보면 “(이곳도 르바임의 땅이라 하였었나니 전에 르바임이 거기 거하였었음이요 암몬 족속은 그들을 삼숨밈이라 일컬었었으며 그 백성은 강하고 많고 아낙 족속과 같이 키가 크나 여호와께서 암몬 족속 앞에서 그들을 멸하셨으므로 암몬 족속이 대신하여 그 땅에 거하였으니 마치 세일에 거한 에서 자손 앞에 호리 사람을 멸하심과 일반이라. 그들이 호리 사람을 쫓아내고 대신하여 오늘까지 거기 거하였으며 또 갑돌에서 나온 갑돌 사람이 가사까지 각 촌에 거하는 아위 사람을 멸하고 그들을 대신하여 거기 거하였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보게 됩니다. 이스라엘에게 약속의 땅만 주셨듯이 다른 민족들을 그곳에 살게 하시고 그리고 이미 살던 족속을 멸하시는 것은 여호와의 통치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말씀을 통해서 먼저 우리에게도 개인이나, 가족이나, 교회에 하나님이 정해 주신 영역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그 영역에서 힘껏 노력하고 차지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다른 사람, 다른 가족, 다른 교회에 주신 것을 탐내어서 차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어울려 살아가는 불신자들에게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필요를 공급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직분의 영역에 집중해야 합니다.

 

둘째는, 다른 것에 기웃거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가야할 방향과 목표가 분명하게 정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그네와 외국인으로 그런 나라들을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곳에 무슨 좋은 곳이 있는지 기웃 거려 가면서 이곳에서 살고 싶다는 그런 식으로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중에 가나안 백성들이 요단강 이편에서 자리 잡고 살려고 한 족속들이 있었습니다. 요단강을 건너지 않고 요단 동편에 기업을 받은 지파가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지파의 반입니다. 이들이 그 땅이 좋아보며 그 땅을 기업으로 달라고 했을 때 그것을 허락은 합니다만 그러나 이스라엘 열두 지파 중에 이들이 가장 먼저 사라지는 족속이 되고 맙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것은 영원한 나라를 목표로 한 외국인과 나그네로 사는 것입니다(참조. 히 11장).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변에 마음을 너무 많이 빼앗기고 삽니다. 돌이켜 북으로 나아가라고 하시는 것처럼 우리에게는 돌이켜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3:12-13절을 보면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것은 외국인과 나그네로 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땅에 우리의 소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우리의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새 하늘과 새 땅에 소망을 두고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1:13-16절을 보면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땅에서 영원한 본향을 사모하면서 외국인과 나그네로 사는 것을 성경은 복 받았다고 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 소망을 두고 살지 않고 새 하늘과 새 땅에 소망을 두고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 7절을 다시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하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고 네가 이 큰 광야에 두루 행함을 알고 네 하나님 여호와가 이 사십년 동안을 너와 함께 하였으므로 네게 부족함이 없었느니라 하셨다 하라 하시기로”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사십 년을 사는 동안 여호와께서 너의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셨다고 합니다. 이 큰 광야를 두루 행하고 지나는 사십년 동안 부족한 것이 없도록 보살펴 주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말씀에 아멘이 됩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말씀에 아멘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사십년을 얼마나 원망하고 불평하였는지 모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로 하여금 날마다 만나만 먹게 하시고 옷은 사시사철 한 벌로 지내고 신발도 한 켤레로 지내게 하신다면 이것을 복 받은 것이라고 하시겠습니까? 사실 우리가 전세에 살든, 자기 집에 살든 예수님을 믿고서 영원한 본향을 사모하면서 간다면 그 사람은 복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부족함이 없도록 돌보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돌이켜 북으로 나아가라고 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오늘 이 본문 말씀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이 말씀 앞에서 지금 우리가 어디에서 돌이켜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이 땅에 소망을 두지 않게 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에 소망을 두고 그 땅을 향해서 돌이켜 나아가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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