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4장]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

by 손재호 posted Nov 2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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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신 4:1-14
강설날짜 2018-11-28

2018년 신명기 공부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

말씀:신명기 4:1-14

 

신명기 5장에 보면 모세가 여호와의 언약의 말씀 곧 십계명을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포하고 여호와 하나님과 언약을 새롭게 합니다. 신명기 1-4장 말씀은 그 말씀을 왜 지켜야 하는지 그 이유를 과거 여호와께서 신실하게 인도하셨다는 사실에서 찾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모세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건을 살펴봤습니다. 모세가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여호와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할 것을 명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말씀을 통해 계시하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1-2절을 보면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너희의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게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고 합니다.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라고 합니다. 너희의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시고자 하신 땅에 들어가 그것을 얻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시내산 언약을 지키지 못하여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은 자들의 모습을 본 출애굽 2세대들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땅을 앞에 두고 다시 언약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에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기 언약에 신실하신 모습을 보게 됩니다.

 

처음 언약을 받은 자들이 불순종하여 광야에 엎드려졌으면 그대로 언약을 파기해 버리시면 되실 텐데 또다시 출애굽 2세대들과 새롭게 언약을 갱신하시는 것은 여호와께서 자기 언약을 결코 포기 하지 아니하심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언약을 맺어주시고 그것을 신실하게 이루지 아니 하시면 우리 인생은 소망이 없습니다. 영원한 심판 외에 달리 다른 길이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이 세상에 오고 오는 모든 사람들이 다 이와 마찬가지 운명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시 규례와 법도를 주시는 것 자체가 얼마나 감격스러운 은혜인지를 모세는 이제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규례와 법도를 주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게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그들이 살 길이며, 약속의 땅을 얻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살 길과 약속의 땅을 기업으로 얻을 규례와 법도를 주셨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가감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2절에서 보는 것과 같이 “가감하지 말고 지키라”고 합니다. 2절을 다시 보면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한다’는 것은 자기들이 좋은 대로 더하거나 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을 지키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에 보면 바리새파와 사두개파가 두 개파가 있었습니다. 이 두 개파가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개파들이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에 자꾸만 더하여 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장로들의 유전을 여호와의 규례와 법도와 동일하게 여기거나 또는 더 우선적인 것으로 더하여 가는 것입니다. 또한 사두개인들은 그들의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사고방식을 굳히기 위하여 규례와 법도마저도 빼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부활도 천사도 없다고 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이런 모습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명하신 규례와 법도를 가감하는 모습인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서 성경을 가감합니다. 옛것과 새것을 구별도 하지 못하고 거저 교회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되면 마음대로 가감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 교회가 하나님의 심판과 세상의 멸망을 의도적으로 빼버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헛된 희망을 말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성경을 보고 설교를 들어도 자기 중심적으로 가감해 버리는 것입니다. 내게 유익되면 챙기고 부담이 되면 버리는 것입니다. 자기들의 편리를 위하여 마음대로 변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여호와의 규례와 법도를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면서 이것을 순종하라고 합니다. 순종하는 것이 살 길이며, 주시는 땅을 기업으로 얻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 가장 먼저 하시는 말씀이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고 한 것입니다(2).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지 말라는 말씀이 신약 성경 마지막 말씀인 요한계시록에도 보면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2:18-19절을 보면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고 했습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이 책은 요한계시록이지만 그러나 모든 성경이 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입니다(참조. 딤후 3:16-17). 이 요한계시록 말씀에 보면 이 책의 예언의 말씀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더하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신다고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임의로 더하거나 빼버리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 길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는 길인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 안에서 그 축복을 영원히 누리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그러면 여호와께서 명하신 규례와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바알브올의 사건을 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3-4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바알브올의 일을 인하여 행하신 바를 너희가 목도하였거니와 바알브올을 좇은 모든 사람을 너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중에서 진멸하셨으되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붙어 떠나지 않은 너희는 오늘까지 다 생존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바알브올의 사건은 민수기 25장에 나옵니다. 민수기 25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 여인들의 유혹에 넘어가 바알의 신당에 절하고 그들과 음행하여 바알브올에 복속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민수기 25:1-9절을 보면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그 여자들이 그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부속된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의 두령들을 잡아 태양을 향하여 여호와 앞에 목매어 달라 그리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사사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관할하는 자 중에 바알브올에게 부속한 사람들을 죽이라 하니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회막 문에서 울 때에 이스라엘 자손 한 사람이 모세와 온 회중의 목전에 미디안의 한 여인을 데리고 그 형제에게로 온지라.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보고 회중의 가운데서 일어나 손에 창을 들고 그 이스라엘 남자를 따라 그의 막에 들어가서 이스라엘 남자와 그 여인의 배를 꿰뚫어서 두 사람을 죽이니 염병이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그쳤더라. 그 염병으로 죽은 자가 이만 사천 명이었더라”고 했습니다. 죄를 짓는 자 마다 죄의 종이듯이 바알에게 절하므로 바알의 종이 된 것입니다. 이들의 범죄로 인하여 이만사천 명이 염병으로 죽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4절에 보면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붙어 떠나지 않은 너희는 오늘까지 다 생존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는 것은 바알에게 복속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 복속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규례와 법도를 받은 것 자체가 얼마나 영광이며, 큰 특권이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조상들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언약을 맺으셨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이지 그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거나 다른 민족보다 우수하여서 그렇게 된 것이 결코 아닌 것입니다.

 

오늘 본문 6절을 보면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함은 열국 앞에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그들이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의 규례를 듣고 지키는 것이 열국 앞에 지혜이며, 너희의 지식이라는 것입니다. 어느 나라가 이런 규례를 받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규례가 없는 나라는 아무런 지혜와 지식도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들이 세상에서 큰 나라이고 돈이 많고 따라서 무기도 많고 힘이 있어서 세상 나라들을 호령하는 강대국이라고 할지라도 그런 나라는 하늘의 지혜와 지식이 없으므로 캄캄한 나라이며, 멸망할 나라인 것입니다.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할 나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나라들에게 이스라엘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백성임을 증거 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얼마나 큰 은혜요, 복입니까? 우리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우리에게 눈길 한번 주는 것만 해도 얼마나 감격스럽습니까? 그런데 눈길만 주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시켜주면 이것은 그야말로 감격과 기쁨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눈길만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들과 함께 하시고 그들에게 규례와 법도를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7-8절을 보면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의 가까이 함을 얻은 나라가 어디 있느냐. 오늘 내가 너희에게 선포하는 이 율법과 같이 그 규례와 법도가 공의로운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기도할 때마다 가까이 하신다고 합니다. 그런 신이 세상에 어디에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렇게 선포하는 율법과 같이 그 규례와 법도가 공의로운 큰 나라가 어디에 있느냐는 것입니다. 없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이 감격을 아시겠습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다가 오시는 이것이 얼마나 큰 기쁨이며, 얼마나 큰 감격이며, 얼마나 큰 은혜인지, 이런 나라가 세상에 어디에 있느냐는 것입니다. 너희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9절에 보면 “오직 너는 스스로 삼가며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 두렵건대 네가 그 목도한 일을 잊어버릴까 하노라. 두렵건대 네 생존하는 날 동안에 그 일들이 네 마음에서 떠날까 하노라. 너는 그 일들을 네 아들들과 네 손자들에게 알게 하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오직 너는 스스로 삼가며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고 합니다. “두렵건대 그 목도한 일을 잊어버릴까 하노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들이 무엇을 목도 하였습니까? 오늘 본문 10-14절을 보면 “네가 호렙산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섰던 날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나를 위하여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내 말을 들려서 그들로 세상에 사는 날 동안 나 경외함을 배우게 하며 그 자녀에게 가르치게 하려 하노라 하시매. 너희가 가까이 나아와서 산 아래 서니 그 산에 불이 붙어 화염이 충천하고 유암과 구름과 흑암이 덮였는데 여호와께서 화염 중에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되 음성뿐이므로 너희가 그 말소리만 듣고 형상은 보지 못하였느니라. 여호와께서 그 언약을 너희에게 반포하시고 너희로 지키라 명하셨으니 곧 십계명이며 두 돌판에 친히 쓰신 것이라. 그 때에 여호와께서 내게 명하사 너희에게 규례와 법도를 교훈하게 하셨나니 이는 너희로 건너가서 얻을 땅에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영광 중에 호렙산에서 십계명을 주신 사건을 목도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이 일을 잊어버리고 그 마음에서 떠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9절을 다시 보면 “오직 너는 스스로 삼가며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 두렵건대 네가 그 목도한 일을 잊어버릴까 하노라. 두렵건대 네 생존하는 날 동안에 그 일들이 네 마음에서 떠날까 하노라. 너는 그 일들을 네 아들들과 네 손자들에게 알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시내산에 강림하신 두려우신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스스로 삼가며 마음을 힘써 지키라고 합니다. 네 생존할 동안에 그 일들이 네 마음에서 떠날까 염려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 일들을 네 아들들과 네 손자들에게 알게 하라고 합니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규례와 법도를 주신 이유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규례와 법도를 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고 율법적으로 지키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삶을 은혜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법으로 세우려고 하였기에 실패하였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은 어떻게 됩니까? 폐하여 집니까? 아닙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모든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삼일 만에 부활 하시고 승천하셔서 성령 하나님을 보내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돌 판에 새겨진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 새겨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힘써 너희 마음을 지키라는 말씀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십자가의 공로를 의지하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갈 6:14). 옛날의 자랑 곧 율법을 지켰다는 자랑이 십자가의 사랑으로 대체된 것입니다. 이것은 감사와 감격이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이와 같은 은혜가 우리에게도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주신 기업 안에서 그 축복을 영원히 누릴 수 있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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