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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신 10:1-11
강설날짜 2019-03-13

2019년 신명기 공부

모세가 십계명을 다시 받다

말씀:신명기 10:1-11

 

우리는 지난 시간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모세가 십계명 말씀을 받으러 시내산에 올라가 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스스로 부패하여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이로 인해서 하나님이 분노하시고 모세는 두 돌 판을 던져서 깨뜨려 버렸습니다. 언약의 두 돌판이 깨뜨려졌다는 것은 언약의 결렬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겠다고 하고서는 언약의 돌판을 받아 오는 그 40일 만에 정면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배신한 것입니다. 이제 언약의 저주만이 그들에게 남았습니다.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모세가 여호와 앞에 나아가 목숨을 걸고 중보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중보기도를 들으시고 용서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 말씀은 모세가 십계명의 돌판을 다시 받는 사건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다시 시내산 꼭대기에 부르셔서 십계명을 새로운 돌판에 새겨 주십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말씀을 통해서 오늘날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 1-5절을 보면 “그 때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너는 처음과 같은 두 돌판을 다듬어 가지고 산에 올라 내게로 나아오고 또 나무궤 하나를 만들라. 네가 깨뜨린 처음 판에 쓴 말을 내가 그 판에 쓰리니 너는 그것을 그 궤에 넣으라 하시기로 내가 싯딤나무로 궤를 만들고 처음 것과 같은 돌판 둘을 다듬어 손에 들고 산에 오르매 여호와께서 그 총회 날에 산 위 불 가운데서 너희에게 이르신 십계명을 처음과 같이 그 판에 쓰시고 그것을 내게 주시기로 내가 돌이켜 산에서 내려와서 여호와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그 판을 내가 만든 궤에 넣었더니 지금까지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출애굽기 34장에 기록된 40년 전의 일을 다시 기억하게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함으로 처음 받은 돌판이 깨어졌습니다. 처음 받은 이 돌판은 보통 돌판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만드시고 기록하신 언약의 돌판이었습니다. 그 안에는 열 가지 언약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에 십계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돌판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함으로 깨어집니다. 그리고 모세의 중보 기도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용서함을 받고 두 번째 돌판을 받게 됩니다. 그 사건이 바로 출애굽기 34장에 기술되어 있습니다.

 

모세는 40년 전의 이 사건을 다시 기억하게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너는 처음과 같은 두 돌판을 다듬어 가지고 산으로 올라오라”고 합니다. 또한 “나무궤 하나를 만들라”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나무궤는 언약궤를 말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처음 돌판에 쓴 말을 두 번째 돌판에 쓸 것이니 이것을 나무궤 안에 곧 언약궤 안에 넣으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모세가 순종하여 싯딤나무로 궤를 만들어 산 아래 두고 다듬은 두 돌판을 손에 들고 산에 올랐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불 가운데 임하시던 첫 번째 총회의 날과 같이 십계명을 두 번째 돌판에 새겨 주셨습니다. 사람이 만든 돌판에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기록하셨고, 다시 사람이 만든 법궤 안에 넣어 두셨습니다. 이 두 번째 돌판에는 첫 번째 돌판에 새겨진 열 가지 언약의 말씀이 그대로 새겨졌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우상으로 새겨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우상을 섬겨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백성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섬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새기고 만들 것은 하나님 당신이 직접 기록하실 돌판과 법궤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이므로 우상을 만드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모독입니다.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을 기록하신 권위를 모독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할 돌판과 그 돌판을 보관할 법궤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의 존엄성을 빼앗아 가는 것입니다. 법궤는 성전의 중심에 있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돌판과 법궤를 만든 것은 바로 성막과 성전을 짓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이 말씀하실 그 수단을 담을 그릇을 명령대로 준비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6-9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브에롯 브네야아간에서 발행하여 모세라에 이르러서는 아론이 거기서 죽고 거기 장사되었고 그 아들 엘르아살이 그를 이어 제사장의 직임을 행하였으며 또 거기서 발행하여 굿고다에 이르고 굿고다에서 발행하여 욧바다에 이른즉 그 땅에는 시내가 많았었으며 그 때에 여호와께서 레위 지파를 구별하여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이며 여호와 앞에 서서 그를 섬기며 또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하게 하셨고 그 일은 오늘날까지 이르느니라. 그러므로 레위는 그 형제 중에 분깃이 없으며 기업이 없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심 같이 여호와가 그의 기업이시니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냥 언약의 말씀과 법궤만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백성들에게 전달할 기관과 대행자로서 레위지파를 구별하셨습니다.

 

6절을 다시 보면 아론은 죽고 그 아들 엘르아살이 아론을 이어서 제사장의 직임을 감당합니다. 아론이 금송아지 우상을 섬김으로 그 현장에서 죽어 마땅하였지만 모세의 중보로 살아났습니다. 그렇다면 모세가 대제사장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이 금송아지 사건 때에 하나님께 헌신한 지파가 나왔는데 그들이 바로 레위지파였습니다. 여호와께서 금송아지 우상을 섬기는 형제와 친구와 이웃을 죽일 때에 죽은 자가 삼천 명 가량 되었습니다. 이때 헌신한 레위지파에게 복을 내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출애굽기 32:25-29절을 보면 “모세가 본즉 백성이 방자하니 이는 아론이 그들로 방자하게 하여 원수에게 조롱거리가 되게 하였음이라. 이에 모세가 진 문에 서서 가로되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오는지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그 친구를, 각 사람이 그 이웃을 도륙하라 하셨느니라. 레위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행하매 이 날에 백성 중에 삼천 명 가량이 죽인바 된지라. 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그 아들과 그 형제를 쳤으니 오늘날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날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고 했습니다. 이 약속대로 레위지파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제사장지파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레위지파는 무엇을 하는 사람입니까? 오늘 본문 8절을 다시 보면 “그 때에 여호와께서 레위지파를 구별하여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이며 여호와 앞에 서서 그를 섬기며 또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하게 하셨고 그 일은 오늘날까지 이르느니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나님 편에 서서 헌신한 레위지파를 구별하여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게 하며, 여호와 앞에서 그를 섬기며,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오늘날까지 하게 하셨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레위지파의 일이며, 레위지파의 기업인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레위지파에게는 다른 형제 가운데 있는 것과 같은 분깃이 없는 것입니다. 이 레위지파가 언약궤를 메고 섬기며,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을 한다는 것은 날마다 하나님의 언약을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언약궤를 지성소에 두어야 하는 것은 모든 이스라엘 회중의 중심이 언약궤를 둔 성막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대로 지키지 못할 때에 속죄를 담당하고 속죄 한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축복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민수기 6:22-27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모세의 제사장적 축도라고도 합니다. 이것이 레위지파가 축복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이 제사장의 축복이 온전하지 못하였습니다. 제사장들도 죽어갔고, 그들이 드리는 짐승의 피가 온전히 죄를 속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보다 더 새로운 것이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깨어진 돌판을 새로 만들어 처음 것과 같이 만들었지만 그것은 여전히 처음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즉 전에 만든 돌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것은 다 그림자요, 모형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영원한 새로운 것입니까? 율법의 조문이나 짐승의 피가 아니라 모든 언약을 다 완성하고도 남은 새로운 언약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언약의 돌판을 언약궤 안에 넣고 어린 양의 피를 발라야 하듯이 모든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의 마침이 되시고 완성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살과 피로서 새 언약을 완성하시는 것이 참으로 새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9:17절을 보면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고 했습니다.

 

또한 고린도후서 5:17-21절을 보면 이렇게 증거 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5:17-21). 이 말씀에 보면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합니다. 이전 것을 지나갔으니 새것이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셔서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셨다고 합니다.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 하시고 죄를 알지도 못하시는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셨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심으로 저의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다만 깨어진 돌판을 처음 것으로 만드는 정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천지 만물이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새롭게 된 사람은 주님이 친히 다스리시고 그 얼굴을 직접 보게 될 새 하늘과 새 땅을 간절히 사모하게 됩니다. 이런 은혜가 우리에게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오늘 본문 10-11절을 보면 “내가 처음과 같이 사십 주야를 산에 유하였고 그 때에도 여호와께서 내 말을 들으사 너를 참아 멸하지 아니하시고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일어나서 백성 앞서 진행하라. 내가 그들에게 주리라고 그 열조에게 맹세한 땅에 그들이 들어가서 그것을 얻으리라 하셨느니라”고 합니다. 모세는 처음 십계명을 받을 때와 같이 40일 동안 시내산에 유하였습니다. 그러면 그때 모세는 무엇을 하였을까요? 하나님과 교제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기도하였을 것입니다. 십계명과 또 구체적인 율법들은 이미 금송아지 우상 이전에 다 말씀하셨습니다(출 32-34장). 오늘 본문 10절을 다시 보면 “그 때에도 여호와께서 내 말을 들으사 너를 참아 멸하지 아니하셨다”고 합니다. 이 말씀을 볼 때 모세는 40일 동안 하나님 앞에 있으면서 주로 백성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는 기도를 드린 듯합니다. 모세는 백성을 대신하여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내 말을 들으사 참아 멸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참아 멸하지 않으셨다’는 말을 직역하면 ‘멸하기를 기뻐하지 않으셨다’는 뜻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가 너무나 커서 40일 동안이나 회개하며 기도해야 했던 것 같습니다. 금송아지 우상숭배 전에는 주로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모세가 배운 듯합니다. 그런데 두 번째 돌판을 받을 그 40일 동안은 주로 모세가 회개와 용서의 기도를 하였던 것 같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회개와 용서의 기도를 들으시고 참아 멸하시지 못하시고 용서 하여 주신 것입니다. 모세가 중보자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11절을 다시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회개와 기도를 들으신 후 용서하시고 모세로 하여금 일어나서 백성을 인도하라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리라고 열조에게 약속하신 땅으로 백성들이 들어가서 얻게 하라고 합니다. 모세가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었던 것은 위대한 신학사상을 만들어 낸 것 때문이 아닙니다. 모세가 위대한 것은 마치 돌판과 법궤처럼 하나님 당신의 계시의 말씀을 전달할 은혜의 도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은혜의 도구인 레위인과 제사장을 준비했기 때문입니다. 곧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였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리라고 약속하신 땅으로 행진하여 마침내 그 땅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에 교회와 목사 그리고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기 감정과 이성을 따라 생각을 새롭게 만들어 내어서는 안됩니다. 오직 말씀과 성례와 기도 곧 은혜의 수단을 은혜를 전달하는 하나님의 성전인 교회에서 은혜의 대행자인 직분 자와 목사가 그 말씀을 그대로 전해야 합니다. 곧 하나님의 말씀의 본의를 증거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성령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그 말씀을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오늘날 이 시대 교회를 바라볼 때 안타까운 것이 많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말씀의 본의가 증거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증거한 복음이 증거 되기보다 온갖 이단사상과 인간적인 이성에서 나오는 사상들이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교회의 외적성장에 함몰되어 사람을 끌어 모을 수 있다면 온갖 인간적인 사상과 가르침을 다 도입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마치 하나님의 말씀인냥, 복음인냥 선포합니다. 우리가 이런 이 시대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오직 말씀의 본의가 증거 되도록, 이신칭의의 복음이 증거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해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의 본의를 배우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일에 힘쓰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교회가 오직 말씀 위에 굳게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교회가 하나님의 축복에 참예하는 복된 교회가 되게 하시고,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감당하는 교회가 되게 하시길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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