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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신 14:1-21
강설날짜 2019-05-15

2019년 신명기 공부

너희는 여호와의 성민이라

말씀:신명기 14:1-21

 

신명기 1-4장은 역사적 서론이고, 5-11장은 언약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12-26장은 언약의 말씀의 구체적인 적용을 가르칩니다. 곧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에 반응하여 어떻게 감사를 표현할지를 가르칩니다. 12장에서 기쁨으로 먹으라고 가르쳤는데 오늘 본문 14장에서도 먹는 일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라고 합니다. 먹는 것뿐만 아니라 놀고 일하는 모든 것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세상과 구별된 거룩함을 나타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죽은 자에 대한 것과 먹는 것에 대한 문제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말씀을 통해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1-2절을 보면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자녀니 죽은 자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베지 말며 눈썹 사이 이마 위의 털을 밀지 말라.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택하여 자기의 기업의 백성을 삼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너희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택하여 자기의 기업의 백성을 삼으셨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왜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의 성민이라는 것입니다. 곧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자녀요, 여호와의 거룩한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자녀요, 성민이 된 것은 그들의 노력여하에 달린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택하여 그의 기업으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구별되어야 하는 것입니까? 먼저 죽은 자를 위하여 자신의 몸을 베거나 머리털을 미는 행위를 금하고 있습니다. 1절을 다시 보면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자녀니 죽은 자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베지 말며 눈썹 사이 이마 위의 털을 밀지 말라”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죽은 자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베고, 눈썹과 이마 사이의 털을 미는 이런 모습은 가나안에서 행하고 있는 종교의식과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이런 행위를 엄격하게 금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나안의 이런 풍속은 식물을 돌보는 신의 죽음을 애도하는 종교의식에서도 그런 행동을 하고, 특히 이마 위를 면도하는 것이 그런 의식과 관련된다는 증거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죽은 자를 위하여 몸을 상하게 하거나 머리털을 미는 행위가 우상숭배와 연결이 되기에 금한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서도 죽은 자를 위한 여러 가지 행위들이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제사 제도가 있습니다. 그리고 죽은 자들이 좋은데 가도록 비는 여러 가지 의식들이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의식들이 우상숭배와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의 성민들은 이런 미신적이고 우상숭배적인 행위에서 거룩함을 나타내야 하는 것입니다. 거룩함이란 하나님의 신성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거룩함을 아들 된 백성 중에 나타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도 그에 반응하여 거룩하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장례의식에서도 거룩함을 나타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민은 장례의식 뿐만 아니라 먹는 것을 통해서도 거룩함을 나타내야 합니다. 오늘 본문 3-8절을 보면 “너는 가증한 물건은 무엇이든지 먹지 말라. 너희의 먹을 만한 짐승은 이러하니 곧 소와 양과 염소와 사슴과 노루와 불그스럼한 사슴과 산 염소와 볼기 흰 노루와 뿔 긴 사슴과 산양들 무릇 짐승 중에 굽이 갈라져 쪽발도 되고 새김질도 하는 것은 너희가 먹을 것이니라. 다만 새김질을 하거나 굽이 갈라진 짐승 중에도 너희가 먹지 못할 것은 이것이니 곧 약대와 토끼와 사반 그것들은 새김질은 하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니 너희에게 부정하고 돼지는 굽은 갈라졌으나 새김질을 못하므로 너희에게 부정하니 너희는 이런 것의 고기를 먹지 말 것이며 그 사체도 만지지 말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하나님의 백성이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을 구별하고 있습니다. 짐승 가운데서 굽이 갈라지고 되새김질을 하는 동물은 식용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되새김질을 해도 굽이 갈라지지 아니한 것은 먹지 못하게 합니다.

 

9-10절을 보면 “물에 있는 어족 중에 이런 것은 너희가 먹을 것이니 무릇 지느러미와 비늘 있는 것은 너희가 먹을 것이요, 무릇 지느러미와 비늘이 없는 것은 너희가 먹지 말지니 이는 너희에게 부정하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물에 있는 어족 중에 비늘과 지느러미가 있는 것을 먹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느러미나 비늘이 없는 것은 부정하기 때문에 너희가 먹지 말라고 합니다.

 

11-20절을 보면 “무릇 정한 새는 너희가 먹으려니와 이런 것은 먹지 못할지니 곧 독수리와 솔개와 어응과 매와 새매와 매의 종류와 까마귀 종류와 타조와 다호마스와 갈매기와 새매 종류와 올빼미와 부엉이와 따오기와 당아와 올응과 노자와 학과 황새 종류와 대승과 박쥐며 또 무릇 날기도 하고 기어다니기도 하는 것은 너희에게 부정하니 너희는 먹지 말 것이나 무릇 정한 새는 너희가 먹을지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새 중에서도 먹을 수 없는 새들의 종류와 먹지 못할 새들의 종류를 말하고 있습니다. 먹을 수 없는 새들의 특징은 먹이사슬의 제일 꼭대기에 있는 새들로 다른 짐승이나 새들을 잡아먹거나 동물의 사체를 먹는 새들입니다.

 

이상에서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룩한 하나님의 성민으로서 먹는 것을 통해서도 거룩함을 나타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먹는 것의 구별에 대해서 여러 가지 견해들이 있습니다. 곧 하나님께서 왜 이런 것들을 구별하셨는지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해석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위생상의 문제로 보기도 하고, 영적인 문제로 보기도 합니다. 위생상의 문제란 어느 의사가 검사를 해보았다는 근거를 들기도 합니다. 의학적으로 검사해 보니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들은 실제로 우리의 건강상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영적으로 보는 것인데 상당히 일리가 있습니다. 비늘과 지느러미가 있는 물고기는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기가 쉽다고 합니다. 그런데 비늘이나 지느러미가 없는 물고기들은 주로 땅에 들어붙어서 사는 것입니다. 레위기 11장에 보면 곤충들도 땅에 들어붙어 사는 것은 먹지 못하게 합니다. 이로 보건데 거룩함이란 땅에서 분리됨을 말하는 것입니다. 상당히 알레고리적인 면이 있습니다만 그럴듯하지 않습니까? 어떻든 간에 이러한 규례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세상의 다른 사람들과 구별하기 위한 조치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규범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대로 지켜오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정결규례를 가장 잘 지킨 때가 예수님이 오시기 전으로 봅니다. 사사시대에는 사람들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습니다. 왕들의 시대에는 악한 왕이 다스릴 때는 율법도 잊어버리고 거저 우상숭배가 만연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고, 남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고 나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신구약 중간기라는 기간에 바리새파 운동이 일어납니다. 이스라엘이 물려받은 율법과 선조들의 전통을 존중하고 일상생활의 사소한 데에 이르기까지 율법을 정확하게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렇게 한 것은 메시아에 대한 약속을 인간 편에서 확보하려는 열망이었습니다. 이들은 율법만이 아니라 장로들의 유전도 철저하게 지켜왔습니다. 그러나 이런 분리주의 운동을 통하여 구약에서 말하는 거룩한 백성의 의미를 간직하게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땅에서 떼어 놓고 세대를 거스르는 구별의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이 땅에 더 들어 붙고자 한 것이 바리새인 운동들입니다.

 

물론 사두개파와 달리 내세도 믿고 천사도 믿고 하였지만 그러나 그들의 속은 여전히 돈을 사랑하고 세상에서 존경받기를 좋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율례와 규례를 지키며 정결예식을 행한다고 하여도 그들의 속은 하나도 거룩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히려 성경을 이용하여 자기들을 치장한 것입니다. 그들이 손을 씻고 그릇을 씻을 수는 있었지만 그들의 속은 씻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러한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거침없이 저주를 퍼 부으셨습니다. 입술로만 하나님을 존경하는 것이며,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먹고 아니 먹고 하는 것으로 구별하는 것은 이미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런 구별의 중심의 뜻은 외면한 채 겉모습만 구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눈으로 보면 부정한 자요, 거룩하지 못한 자로 여겨진 것입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이런 음식규례를 철저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돼지고기를 절대로 먹지 않습니다. 그리고 21절에 “염소새끼를 그 어미의 젖에 삶지 말라”는 말씀을 어떻게 실천하는가 하면 고기와 우유를 함께 요리하여 먹지 않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그 당시에 풍요와 다산을 위한 이방종교의식으로 보고 있기에 금한 것인데, 이것을 유대인들은 얼마나 철저하게 지키는지 고기 먹는 그릇과 포크를 따로 하고 우유나 유제품을 먹는 그릇과 포크를 따로 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고기를 먹었으면 우유가 들어간 아이스크림은 최소한 1시간에서 6시간 동안은 먹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정도로 그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킨다고 합니다. 그러나 구약에서도 거룩함이란 백성들이 정결규례를 잘 지켜서 거룩한 것이 아니라 어린 양의 피 뿌림으로 거룩함을 얻었습니다. 그 거룩함을 기억하고 유지하기 위하여 세상의 거룩하지 못한 자들과 구별됨을 보이기 위하여 속죄의 제도를 주셨고, 또한 정결규례를 주셨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정결규례를 지킨다는 그 행위를 가지고 거룩한 자로 여긴 것입니다. 따라서 지키지 못하는 자들은 부정하게 여겨 정죄한 것입니다. 이것이 정죄 받은 자기 의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서도 여전히 나타납니다. 사도행전 10:9-16절을 보면 “이튿날 저희가 행하여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시간은 제 육시더라.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이 준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색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는데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한 대. 또 두번째 소리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이런 일이 세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리워 가니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거룩하다고 하신 것을 베드로가 거부하는 것은 베드로가 어려서부터 정결규례를 지켜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율법에서 금하고 있는 부정한 고기를 먹으라고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다고 하시면 거룩한 것입니다. 그 근거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입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이 이제는 예수 안에서 거룩함입니다. 예수님의 피 안에 담겨있으면 모든 것이 다 거룩함을 얻는 것입니다. 세리도 창기도 이방인도 예수님 안에서 거룩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자 그들에게도 성령이 임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나중에 예루살렘 회의에서 증거합니다.

 

사도행전 15:6-11절을 보면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저희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거하시고 믿음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이 하사 저희나 우리나 분간치 아니하셨느니라.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우리가 저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고 했습니다. 이방인이나 유대인이 차별이 없이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이란 유대인의 조상들과 자신들도 능히 메지 못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제 거룩하고 깨끗하게 되는 것은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깨끗하고 거룩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의 능력입니다. 골로새서 2:16-17절을 보면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폄론하다’(krivnw, 크리노)는 말은 ‘심판하다’, ‘평하다’라는 말인데 그러므로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는 말은 ‘판단하지 못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은 다 그림자라는 것입니다. 참된 거룩함이란 속에서부터 나와야 되기에 인간이 아무리 음식을 가려서 먹는다고 해서 해결 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을 통하여 거룩함을 보이라고 하셨는데 그런 거룩함이란 외면에 있기보다 내면적이 것이었습니다. 세상의 것들이 물들지 말고 하나님의 영원한 약속을 바라보는 거룩함이여야 하는데 오히려 외면적인 거룩함을 유지한다고 하면서 그들의 속에서는 온갖 세상의 권력과 부와 존경과 명예를 원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거룩함과는 전혀 반대되는 길을 간 것입니다. 그래서 거룩하게 산다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하여 기도하고 구제하였습니다. 시장에서 문안 받기를 좋아하고 잔치의 상석에 앉기를 좋아하고 가난한 자들의 재산을 삼키고 돈을 사랑함이 그들의 속에 들어있었던 것입니다(마 23장).

 

인간이 스스로 거룩하고자 애를 쓴 결과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서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서는 거룩함이 나올 수가 없다는 것이 증명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백성 만들기란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거룩한 백성이라고 택하셔서 만들어 내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모습을 요한복음 17장에서 예수님의 기도를 통하여 보게 됩니다. 요한복음 17:14-19절을 보면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저희를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을 인함이니이다.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나이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기도를 하시고 십자가로 가십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맡기신 자기 백성도 세상에 속하지 않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십자가로 가시는 걸음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성민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기도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있어서 거룩함이란 부담감이 아니라 기쁨인 것입니다(13). 예수님이 주신 이 거룩함의 기쁨은 세상이 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기쁨인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성민에게만 주어지는 복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하나님의 성민으로서 이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거룩함을 잘 드러내는 삶을 살게 하시고, 이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히 증시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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