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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신 15:1-11
강설날짜 2019-06-05

2019년 신명기 공부

매 칠년 끝에 면제하라

말씀:신명기 15:1-11

 

우리는 신명기 12장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배우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가서 살아야 할 땅 가나안은 온갖 우상숭배가 가득한 곳입니다. 그 대표적인 우상이 바알과 아세라입니다. 이들은 남신과 여신인데 그들의 결합으로 땅이 소출을 많이 낸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상을 섬기는 제사의식에 성적인 혼음까지 들어가는 것은 이 신들을 흥분시켜 소출을 많이 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곳의 삶의 목표는 오늘날 자본주의와 동일한 것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진 자가 모든 것을 다 가지려고 하는 그런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곳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가서 어떻게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율법을 통해서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13-14장에서 살펴본 대로 가나안 우상의 유혹을 받아 그런 이방 제사에 참여하자고 하는 자는 선지자나 꿈 꾸는 자든지, 아니면 가족이라도, 심지어 한 성읍이라도 다 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한 매년 십일조만이 아니라 매 삼년마다 십일조를 저축하여 땅이 없는 레위인과 우거하는 객과 고아와 과부를 돌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나안 종교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으로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매 칠년마다 부채를 면제 해 주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매 칠년 끝에 면제하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매 칠년 끝 즉 안식년에는 모든 부채를 면제 해 주라는 것입니다. 안식년과 희년의 규례에 대해서는 레위기 25장에 보면 상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레위기 25장에 보면 안식년에 빚을 면제 해 주라는 것과 매 칠년에 종을 자유하게 하라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부채를 면제 해 주라고 하시는 내용과 가난한 자에 대한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2-3절을 보면 “면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무릇 그 이웃에게 꾸어준 채주는 그것을 면제하고 그 이웃에게나 그 형제에게 독촉하지 말지니 이 해는 여호와의 면제년이라 칭함이니라. 이방인에게는 네가 독촉하려니와 네 형제에게 꾸인 것은 네 손에서 면제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부채를 면제 해 주는 규례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매 칠년 끝에는 곧 안식년에는 이웃에게 꾸어준 채주는 그것을 면제해 주고 그 이웃에게나 그 형제에게 독촉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이방인에게는 독촉하더라도 형제에게는 독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규례는 이방인들에게는 없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는 규례입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이런 규례는 채주에게 일방적으로 손해를 가져다주는 부당한 규례 같습니다.

 

그러면 이런 규례를 주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 4-6절을 보면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유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정녕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신 대로 네게 복을 주시리니 네가 여러 나라에 꾸어 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하겠고 네가 여러 나라를 치리할지라도 너는 치리함을 받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안식년 면제 규례에 순종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정녕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그 약속의 땅에는 가난한 자가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신 대로 네게 복을 주시리니 네가 여러 나라에 꾸어 줄지라도 꾸지 아니할 것이며, 네가 여러 나라를 치리할지라도 너는 치리함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계속해서 7-10절을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강퍅히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 쥐지 말고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 요구하는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 삼가 너는 마음에 악념을 품지 말라. 곧 이르기를 제 칠년 면제년이 가까왔다 하고 네 궁핍한 형제에게 악한 눈을 들고 아무 것도 주지 아니하면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리니 네가 죄를 얻을 것이라. 너는 반드시 그에게 구제할 것이요, 구제할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범사와 네 손으로 하는바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4-6절 말씀과 같은 맥락입니다. 가난한 형제에 대하여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네 손을 움켜지지 말라고 합니다. 그가 요구하는 대로 넉넉히 꾸어주라는 것입니다. 제 칠년 면제년이 가까웠다고 해서 악한 마음으로 꾸어주지 않으면 여호와께 그들이 호소할 것이며, 그렇게 되면 네가 죄를 얻을 것이라고 합니다. 제 칠년 안식년마다 면제를 해 주어야 하는데 면제년이 많이 남아 있으면 그 동안 받아 낼 수가 있지만 면제년이 가까우면 받을 수가 없으니 그런 계산된 마음으로 꾸어주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죄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구제할 것이며, 구제할 때에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여호와께서 네게 범사와 네 손으로 하는바에 복을 주시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면 가난한 자가 없을 것이라고 5절에서 말씀하시는데 11절에서는 좀 다른 말씀이 있습니다. 11절을 보면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경내 네 형제의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땅에는 언제나 가난한 자들이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왜 가난한 자들이 그치지 않게 하시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입고 사는 자들임을 잊지 말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들이 가난한 자들에 대하여 악한 마음을 가지고 돕지 않고 면제년에 부채를 면제 해 주지 않으면 그들이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잊어버리고 강퍅한 마음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상태를 방지하기 위하여 가난한 자를 두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기초해서 보면 가난한 자들이 단지 자신들의 무능과 게으름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님을 볼 수 있습니다. 곧 하나님께서 그런 자들을 두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현실적으로 보면 가난하게 되는 것은 대부분 농사를 망친다든지, 아니면 갑자기 사업이 망한다든지, 아니면 집안에 큰 질병과 같은 우환이 생긴다든지 하는 문제로 인해서 집안이 기울고 가난해 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럴 경우에 이스라엘의 마음 상태가 어떠한지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런 가난한 자들의 빚을 면제 해 주고 가난한 자들을 잘 돌보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겠지만 그렇지 않고 이방나라들과 같이 우상숭배의 정신으로 자기들만 잘 살겠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말씀 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열왕기하 4:1절을 보면 “선지자의 생도의 아내 중에 한 여인이 엘리사에게 부르짖어 가로되 당신의 종 나의 남편이 이미 죽었는데 당신의 종이 여호와를 경외한 줄은 당신이 아시는 바니이다. 이제 채주가 이르러 나의 두 아이를 취하여 그 종을 삼고자 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당시 엘리사를 따라 다니던 생도들은 너무나 가난했습니다. 선지자들의 숙소도 없어서 산에서 나무를 베어 숙소를 지으려고 하는데 도끼조차 없어서 빌려온 것입니다. 그런데 한 선지자의 생도가 두 아들만 남겨두고 죽었습니다. 남편이 죽었으니 그의 아내는 빚을 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채주가 와서 두 아들을 종으로 삼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때 기름병의 기적으로 빚을 해결합니다만 이런 이스라엘은 결국 망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5:8-12절을 보면 “가옥에 가옥을 연하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 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서 홀로 거하려 하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 만군의 여호와께서 내 귀에 말씀하시되 정녕히 허다한 가옥이 황폐하리니 크고 아름다울지라도 거할 자가 없을 것이며, 열흘갈이 포도원에 겨우 포도주 한 바트가 나겠고 한 호멜지기에는 간신히 한 에바가 나리라 하시도다.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독주를 따라가며 밤이 깊도록 머물러 포도주에 취하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이 연회에는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저와 포도주를 갖추었어도 여호와의 행하심을 관심치 아니하며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생각지 아니하는도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부동산 투기를 하면 안 됩니다. 땅은 여호와의 것이기 때문에 사거나 팔수 없었습니다. 곧 지파별로 분배받은 땅을 사거나 팔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어려움이 있어서 팔려면 경작권만 팔고 형편이 되면 언제든지 고엘이 물릴 수 있었고, 그것도 안 되면 희년에는 자동으로 원주인에게 돌아오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규례는 단 한 번도 제대로 지켜진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나라에 양극화 현상이 드러난 것입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여호와의 행하심에 관심이 없고, 여호와께서 그 손으로 하신 일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신명기 15장의 이 말씀을 기억하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종 되었던 곳에서 인도하여 내신 것을 관심 가지고 기억하였다면 이럴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매 칠년에 빚을 면제하여 주고 가난한 자에게 후하게 꾸어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행하신 그 일을 기억하여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런 은혜를 다 잊어버렸습니다. 그리하여 부자들은 더욱 부하여지고 가난한 자는 더욱 가난해 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이렇게 되었다는 것은 이방나라와 같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잠언 21:13절을 보면 “귀를 막아 가난한 자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의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라”고 했습니다. 잠언 22:2절에서는 “빈부가 섞여 살거니와 무릇 그들을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니라”고 했습니다. 잠언 14:31절에서는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존경하는 자니라”고 했습니다. 이런 말씀을 통해서 볼 때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것은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궁핍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존경하는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이런 말씀을 받고서도 가난한 자들에 대하여 긍휼과 자비를 베풀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멸망했습니다.

 

오늘날 이 세상도 이 원리에 따라 망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은 신자유주의 물결이 세계 경제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저항할 힘이 가난한 나라에는 없는 것입니다. 무역을 자유롭게 하자는 것은 서로 이익이 되는 부분도 있고 손해가 되는 부분도 있기에 한편 공평한 법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그러나 이런 법은 강한 자만 살아남는 법칙인 것입니다. 자유무역이란 금융시장의 개방도 함께 되는 것입니다. 아예 상대가 되지 않는 게임인 것입니다. 지금의 세계자유무역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이나 세계 강대국들은 자기들이 성장할 때에는 철저하게 보호관세를 하면서 자국의 기업을 키워왔습니다. 자기 덩치를 키워놓고서는 이제 개발도상국들에게 압력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지 아니한 이스라엘이 망했듯이 가난한 나라들을 돌보지 아니하는 이 세계도 망하고 말 것입니다. 지금 그런 조짐이 이미 보이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위기들을 잘 극복해 왔다고 하지만 요한계시록에 보면 바벨론이 무너졌다고 합니다. 세계의 경제와 정치의 중심인 바벨론이 무너지면 거기에 기대어 살던 자들도 함께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이 말씀이 이스라엘의 흥망성쇠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도 이처럼 자기 탐욕에 의하여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신명기 말씀을 보는 우리는 어떠해야 하는 것입니까? 고린도후서 9:1-15절을 보면 “성도를 섬기는 일에 대하여 내가 너희에게 쓸 필요가 없나니 이는 내가 너희의 원함을 앎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마게도냐인들에게 아가야에서는 일년 전부터 예비하였다 자랑하였는데 과연 너희 열심이 퍽 많은 사람들을 격동시켰느니라. 그런데 이 형제들을 보낸 것은 이 일에 너희를 위한 우리의 자랑이 헛되지 않고 내 말한 것같이 준비하게 하려 함이라. 혹 마게도냐인들이 나와 함께 가서 너희의 준비치 아니한 것을 보면 너희는 고사하고 우리가 이 믿던 것에 부끄러움을 당할까 두려워하노라. 이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케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한바 저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너희가 모든 일에 부요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저희로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 이 봉사의 직무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만 보충할 뿐 아니라 사람들의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를 인하여 넘쳤느니라. 이 직무로 증거를 삼아 너희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과 저희와 모든 사람을 섬기는 너희의 후한 연보를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또 저희가 너희를 위하여 간구하며 하나님의 너희에게 주신 지극한 은혜를 인하여 너희를 사모하느니라.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헌상이 무엇인가를 살펴볼 때 살펴본 말씀입니다만 신약의 연보의 정신이 구약의 정신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구약에서도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입은 자로서의 가난한 자에 대하여 긍휼과 자비를 말하고 있습니다. 신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연보란 성도를 섬기는 것인데 이것을 인색함이나 억지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시편 말씀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습니다. 9절을 다시 보면 시편 112:9절 말씀을 인용합니다. “저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고 합니다. 그리고 심는 자에게 더욱 풍성하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연보는 성도의 부족함만 보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연보는 하나님의 은혜요, 은사라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교회 안에서 맛보아야 합니다. 이것을 법으로 제정하여 공평한 공동체를 만들자는 것은 또다시 율법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교회사를 보면 그런 공동체를 만들고자 수도 없이 시도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법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만 됩니다.

 

고린도후서 8:9절을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시편 112:9절도 예수님의 이 말씀으로 성취를 보는 것입니다. 시편 112:9절을 보면 “저가 재물을 흩어 빈궁한 자에게 주었으니 그 의가 영원히 있고 그 뿔이 영화로이 들리리로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영원한 의를 우리가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서 받게 되었습니까? 주님의 가난하게 되심으로 우리가 부요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예수님께서 죄인을 대신하셔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를 의롭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의문에 쓴 증서 즉 빚 문서를 도말하여 버리신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부요함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 부요함을 잊지 않고 사는 사람만이 형제의 빚을 면제하는 일에도 기쁨과 감사로 동참하게 될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손에 움켜지기만 하고 펴지지 않는 이런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빚을 면제받은 기쁨을 우리로 맛보아 누리게 하시며, 그 은혜를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내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하나님의 백성됨을 잘 나타내 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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