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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신 16:9-12
강설날짜 2019-07-03

2019년 신명기 공부

여호와 앞에서 칠칠절을 지키라

말씀:신명기 16:9-12

 

신명기 16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지켜야 할 삼대 절기에 관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유월절 예식을 행하라고 하시는 말씀을 살펴봤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의 삼대 절기 중에 하나인 칠칠절에 관한 말씀입니다. 칠칠절은 유월절로부터 칠 주가 지난 다음에 지켰기 때문에 칠칠절이라고 합니다. 또한 이 절기를 맥추절이라고도 하고(출 23:16), 칠칠절 다음이 오십일이기 때문에 그리스어로 ‘펜타코스테’라고 하여 오순절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칠칠절의 근원도 유월절에 기초하여서 나오는 절기입니다. 유월절을 통하여 출애굽이 일어났기 때문에 유월절이 없었다면 칠칠절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12절에 보면 칠칠절을 여호와 앞에서 지키라고 하면서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종살이 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 땅을 가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노예가 무슨 자기 땅을 소유할 수 있었겠습니까? 죽도록 노동하고서도 수확물은 주인이 다 가져가는 것입니다. 노예들은 겨우 먹고 살 만큼만 주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6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하여 신광야에 이르렀을 때 먹을 것이 떨어지자 모세와 아론을 향해서 원망을 했습니다. 그들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하며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였습니다(출 16:1-3). 그런데 사실 그들이 애굽에서 고기와 떡을 배불리 먹었을까요? 그들이 설사 고기와 떡을 배불리 먹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들을 노예로 부리기 위해서 먹인 것일 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언약대로 출애굽을 하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 자기의 땅을 가지고 농사를 지어 수확을 거두어들인다는 것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밖에는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노예로 살던 자들이 자기 땅에서 농사를 지어 수확을 거두어들이고서 칠칠절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복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칠칠절을 지키면서 종살이 하던 것을 잊지 말아야 하고, 또 그 수확물을 가지고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고 가난한 자들과 함께 나눔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9-11절을 보면 “칠 주를 계수할지니 곡식에 낫을 대는 첫날부터 칠 주를 계수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곡식에 낫을 대는 첫날부터 칠 주를 계수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칠칠절을 지키라고 합니다.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바쳐서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기 때문에 자원하여 예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여기서 ‘자원한다’는 것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 너무나 감사하여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예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 예물 드림과 함께 누구를 돌아보아야 하는가 하면 노비와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와 함께 여호와께서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라고 합니다.

 

노비와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가난하고 땅이 없는 자들입니다. 그러면 이들과 함께 즐거워하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너희가 전에 그런 자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절기든 간에 이것을 잊어버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종살이 하던 그들을 어린 양의 희생의 피로 구속하여 내시고 하나님의 백성 삼으시고 약속의 땅을 주셨고, 또 농사를 지어 거둘 수 있도록 모든 복을 주신 하나님께 당연히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감사하는데 잊지 말아야 할 자들이 바로 노비와 레위인과 고아와 과부들인 것입니다. 그를 통하여 자신들이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입고 산다는 것을 기억하고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약적인 칠칠절 절기를 지키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러면 칠칠절이 오늘날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우리는 구약의 절기들을 신약과 연결하여 곧 신약의 빛에서 살펴봐야 하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가 유월절 절기에 대해서 살펴봤는데 유월절이 무엇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까?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 어린 양으로 희생이 되심으로 그 피 아래 있는 자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진노를 받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유월절이란 예수님께서 유월절 어린 양으로 십자가를 지심으로 완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인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17절을 보면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신약에서 칠칠절은 어떻게 연결이 됩니까? 사도행전 1:3-5절을 보면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대로 10일 후에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사도행전 2:1-4절을 보면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약속대로 성령이 임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칠칠절이며, 오순절인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이 임하게 된 칠칠절에 무엇이 이루어지는 것입니까? 구약에서는 문자 그대로 수확을 하여 가난한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이 모습이 신약에서는 어떻게 성취가 되는 것입니까?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성령이 임한 자들이 각 지역에서 온 자들에게 하나님의 큰 일을 전하는 것입니다. 곧 오순절에 사도들이 복음을 증거 하는데 각 지역의 사람들이 자기 지방의 언어로 알아듣는 것입니다. 이들이 증거 한 하나님의 큰 일이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가 다시 살아나셨고 하늘에 등극하여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서 그날에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은 자가 무려 3천 명이나 되었다는 것입니다(행 2:41). 오순절 첫 곡식을 거두는 절기가 이제는 사람을 거두는 절기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종말의 현상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4:34-38절을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내가 너희로 노력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노력한 것에 참예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 때인데 벌써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참된 예배에 대해서 말씀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추수 때는 종말이며, 또한 제자들에게 선교를 명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 노력하신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 승천 하셔서 성령을 보내시기까지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도란 주인의 즐거운 추수에 참여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월절을 통하여 예수님이 희생의 제물이 되시고 부활 승천 하셔서 오순절 날에 성령을 보내심으로 사람을 추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를 부르실 때에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오순절 성령 강림과 추수란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의 증인이 되게 하시겠다는 예수님의 의지가 2천년이 지난 지금도 활동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건입니까?

 

이제 복음이 땅 끝까지 이르게 되면 추수가 끝나는 시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추수의 즐거움을 맛보는 것은 누가 억지로 시켜서 될 일은 결코 아닙니다. 전도란 것이 자원 하여 기쁨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구속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 자신이 종의 자리 즉 죄와 사망의 종노릇 하던 곳에서 빠져나온 것에 대한 감사가 있는 사람이 그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전도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바울 사도는 빌립보서 4:18절에서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빌 4:18).

 

그러면 이런 수확의 기쁨을 구약의 칠칠절에서 누구와 함께 즐거워하라고 하였습니까? 노비와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와 함께 즐거워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들의 특징은 땅이 없기에 남의 도움을 입어야 살아가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자들과 함께 칠칠절을 기뻐하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는 이것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습니다. 빈익빈 부익부라는 양극화가 이스라엘에서도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것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자신들이 은혜를 받고 산다는 것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월절을 지키고 칠칠절을 지킨다고 하여도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일들이 아니라 율법적으로 외식으로 치우치고 말았던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구제를 하면서도 그것을 자랑하였습니다. 전도를 하면서도 그것이 그들의 업적이 되었습니다. 절기를 지키지만 그 안에는 기쁨이 없었습니다. 자원하는 심령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가난한 자들과 함께 기뻐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유월절을 자기 몸으로 이루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오순절에 성령을 보내시자 어떤 일들이 일어난 것입니까? 사도행전 2:43-47절을 보면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구약에서 말씀하신 오순절의 성취인 것입니다. 이들은 물건을 서로 통용합니다. 재산과 소유를 팔아서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줍니다.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였습니다. 그 결과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습니다. 주께서 날마다 구원 받는 사람을 더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부흥인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바로 오순절에 성령이 임한 모습인 것입니다. 이런 역사가 오늘날 우리 가운데도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오늘날 우리의 모임 가운데 이런 기쁨이 있습니까? 우러나오는 기쁨으로 감사하며 형제를 섬기고 있습니까? 아니면 조금만 부담이 되면 그저 손 빼려고 하며 눈치나 보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성령이 임하여 자원하는 심령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아직 의문에 속한 교훈을 따라 살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그런 사람들은 구약을 따라 사는 것이 오히려 편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였다면 곧 오순절 성령이 임하였다면 우리도 마음에서 우러나는 섬김이 반듯이 있을 것입니다. 신약의 교회란 예수님의 십자가 지심과 부활 승천과 성령을 보내심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오순절 성령이 임하여 나타난 이런 모습이 없다면 그것은 교회가 아니라 거저 세상의 수많은 종교단체일 뿐인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에 보면 에베소 교회가 처음사랑을 잊어버렸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런 사랑을 어디에서 잊어버렸습니까? 어디에서 떨어졌는지 돌이켜 보고 회개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촛대를 옮겨버릴 것입니다(계 2:5).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어디에서 구원 받았는지를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죄와 사망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죄와 사망의 종이었다는 것은 자신이 주인 된 자리였습니다. 이제 그 자리에서 어린 양의 피로 유월절을 경험하고 오순절을 경험하며 사는 것은 이제 우리가 주인이 아니라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성령의 임재를 맛보면서 주님과의 교제가 더욱 깊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누렸던 그 기쁨의 충만함과 성령의 능력을 맛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성령이 임함으로 어디에서나 주님과 동행하는 참된 절기를 맛보며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죄와 사망의 종 되었던 곳에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구속받아 나왔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12절에 보면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이 말씀이 신약에서는 성령으로 인하여 우리의 마음에 새겨진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함을 받은 것입니다. 죄와 사단 마귀의 종에서 구원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진리 되신 예수님을 통해서 참 자유 하는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아는 사람은 어디로 갈지도 아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칠칠절의 기쁨이 우리 가운데도 충만케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누리게 된 이 기쁨을 우리의 삶을 통해서 이 땅에 온전히 나타나게 하시고, 이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더욱 높이 드러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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