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12장] 여호와의 택하실 그곳에서

by 손재호 posted Apr 1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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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신 12:1-14
강설날짜 2019-04-10

2019년 신명기 공부

여호와의 택하실 그곳에서

말씀:신명기 12:1-14

 

우리는 이제까지 신명기 1-11장까지 말씀을 살펴봤습니다. 신명기 1장에서 11장까지 말씀은 언약의 서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은 그들이 다른 민족들보다 무슨 특별한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언약과 그들을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선택하신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에게 출애굽이 일어났고 시내산에서 언약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40년 동안 그 언약을 배반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약에 신실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언약을 이루시기 위해서 지금 다시 가나안 입구에서 출애굽 2세대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신명기 12-26장 말씀은 십계명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방법 곧 이스라엘이 들어가서 얻을 약속의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첫째가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예배입니다. 신명기 12장의 주제는 제2계명 곧 제사와 예배의 방법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하나님께 제사로 예배 할 때에 우상을 거부하고 올바른 제사를 드리고 고기를 먹으라고 합니다. 구약에서 예배란 제사가 그 중심입니다. 신약에서는 제사가 예배로 바뀝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제사와 예배란 인간이 신에게 어떤 조건을 충족시켜 드림으로 그 반대급부를 받고자 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먼저 주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10-12절을 보면 “너희가 요단을 건너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에 거하게 될 때 또는 여호와께서 너희로 너희 사방의 모든 대적을 이기게 하시고 너희에게 안식을 주사 너희로 평안히 거하게 하실 때에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한 곳을 택하실 그곳으로 나의 명하는 것을 모두 가지고 갈지니 곧 너희 번제와 너희 희생과 너희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가 여호와께 서원하는 모든 아름다운 서원물을 가져가고 너희와 너희 자녀와 노비와 함께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 것이요,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도 그리할지니 레위인은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음이니라”고 합니다. 이 말씀에 보면 언제 예배하라고 합니까? “너희가 요단을 건너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에 거하게 될 때 또는 여호와께서 너희로 너희 사방의 모든 대적을 이기게 하시고 너희에게 안식을 주사 너희로 평안히 거하게 하실 때에”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먼저 제사를 드림으로 그 약속의 땅을 받아내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받고나서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것이 예배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가서 살아야 할 가나안 땅은 이미 우상으로 가득한 땅이었습니다. 가나안 족속들의 종교란 자신들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 사람들의 마음에 들도록 고안된 것입니다. 사람의 욕망이 투사된 것이 신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욕망이 다양한 만큼 그들의 신도 다양한 것입니다. 가나안의 다양한 신들의 공통점이란 자신들의 풍요를 위한 신이라는 것입니다. 그 신이 나무이든지 돌이든지 아무런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저 자신들의 욕망을 채워주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그들은 그들 자신들의 신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나안 사람들이 섬기는 모든 신상과 그 장소들을 파멸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3절을 보면 “네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셔서 얻게 하신 땅에서 너희가 평생에 지켜 행할 규례와 법도는 이러하니라. 너희가 쫓아낼 민족들이 그 신들을 섬기는 곳은 높은 산이든지 작은 산이든지 푸른 나무 아래든지 무론하고 그 모든 곳을 너희가 마땅히 파멸하며 그 단을 헐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상을 불사르고 또 그 조각한 신상들을 찍어서 그 이름을 그곳에서 멸하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열조에게 약속하신 대로 주신 땅에서 평생에 지켜 행해야 할 규례와 법도를 주십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쫓아낸 가나안 족속들이 자기 신들을 섬기는 곳은 높은 산이든지 작은 산이든지 푸른 나무 아래든지 무론하고 파멸하라는 것입니다. 가나안의 우상숭배는 풍요와 다산을 원했기에 그들의 신을 자극하기 위해서 제사에 남녀들의 음행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성적인 관행이 그들의 제사의식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민수기 25:1-9절을 보면 미디안 여인들이 그들의 신들에게 제사하는 일에 이스라엘 남자들을 끌어들여서 음행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서 하나님의 진노가 일어나서 염병으로 그들을 치셨습니다. 염병으로 백성들이 죽어갈 때에 비느하스가 하나님의 질투로 질투하여 음행하는 두 남녀를 죽임으로 염병이 그치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 염병으로 죽은 자가 이만 사천 명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러한 가나안 족속들의 신상과 신전들을 다 파멸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너희 평생에 지켜 행할 약속의 땅에서의 규례와 법도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 들어가서 어떻게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 4-12절을 보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에게는 너희가 그처럼 행하지 말고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거하실 곳으로 찾아 나아가서 너희 번제와 너희 희생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 서원제와 낙헌 예물과 너희 우양의 처음 낳은 것들을 너희는 그리로 가져다가 드리고 거기 곧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 주심을 인하여 너희와 너희 가족이 즐거워할지니라. 우리가 오늘날 여기서는 각기 소견대로 하였거니와 너희가 거기서는 하지 말지니라.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주시는 안식과 기업에 아직은 이르지 못하였거니와 너희가 요단을 건너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에 거하게 될 때 또는 여호와께서 너희로 너희 사방의 모든 대적을 이기게 하시고 너희에게 안식을 주사 너희로 평안히 거하게 하실 때에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한 곳을 택하실 그곳으로 나의 명하는 것을 모두 가지고 갈지니 곧 너희 번제와 너희 희생과 너희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가 여호와께 서원하는 모든 아름다운 서원물을 가져가고 너희와 너희 자녀와 노비와 함께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 것이요,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도 그리할지니 레위인은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그 거하실 곳으로 나아가서 예배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곳에 나아갈 때에 번제와 희생과 십일조와 거제와 서원제와 낙헌 예물과 우양의 처음 낳은 것들을 가져다가 드리고 여호와 앞에서 먹고 마시며 너희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 주심을 인하여 즐거워하라고 합니다. 이 즐거움에 참예할 자는 자녀와 노비와 함께 즐거워하며 또한 레위인과 함께 나누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함께 나누며 누리는 즐거움인 것입니다. 이 본문의 내용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좀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고 오늘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정하시는 한 장소를 중심으로 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11절을 다시 보면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한 곳을 택하실 그곳으로 나의 명하는 것을 모두 가지고 갈지니 곧 너희 번제와 너희 희생과 너희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가 여호와께 서원하는 모든 아름다운 서원물을 가져가고”라고 했습니다. 5절에서와 마찬가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한 곳을 택하실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3-14절을 보면 “너는 삼가서 네게 보이는 아무 곳에서든지 번제를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의 한 지파 중에 여호와의 택하실 그곳에서 너는 번제를 드리고 또 내가 네게 명하는 모든 것을 거기서 행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여호와께서는 ‘너는 삼가라’고 합니다. ‘네게 보이는 아무 곳에서든지 번제를 드리지 말라’고 합니다. ‘오직 너희의 한 지파 중에 여호와의 택하실 그곳에서 너는 번제물을 드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 보면 아직까지 여호와께서 택하실 그곳이 구체적으로 어느 곳인지 곧 그 지명을 구체적으로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지명하실 때 까지는 언약궤를 중심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서 그들의 예배 장소는 언약궤가 있는 곳이 됩니다. 사사시대에는 언약궤가 실로에 있었습니다. 전쟁 시에는 언약궤를 메고 나갔다가 다시 실로에 둡니다. 사사시대를 지나 다윗시대 때는 예루살렘으로 옮겨졌고,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하고서는 성전의 지성소에 두게 됩니다. 그렇다면 여호와께서 한 장소를 말씀하셨다는 것은 다윗에게 말씀하신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물론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였지만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언약하신 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지금까지 움직이던 성막이 이제는 고정된 성전의 형태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전이 완공된 후에는 이제 다른 곳에 가서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언약궤가 있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하는 것입니다.

 

사무엘하 7:10-13절을 보면 “내가 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여 저희를 심고 저희로 자기 곳에 거하여 다시 옮기지 않게 하며 악한 유로 전과 같이 저희를 해하지 못하게 하여 전에 내가 사사를 명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않게 하고 너를 모든 대적에게서 벗어나 평안케 하리라.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이루고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기 이름을 두시기 위한 한 장소를 다윗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에서의 예배를 거부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솔로몬 사후에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나누어지고 북 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이 왕이 되었습니다. 북 이스라엘 백성들이 남쪽의 예루살렘 성전으로 예배하러 가면 마음이 남쪽의 르호보암 왕에게도 갈까 염려하여 벧엘과 단에 자의적으로 성소를 만들었습니다. 그곳에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놓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곳이라고 하였습니다.

 

북 이스라엘은 이런 죄에서 떠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곧 멸망을 의미합니다. 호세아 4:11-14절을 보면 “음행과 묵은 포도주와 새 포도주가 마음을 빼앗느니라. 내 백성이 나무를 향하여 묻고 그 막대기는 저희에게 고하나니 이는 저희가 음란한 마음에 미혹되어 그 하나님의 수하를 음란하듯 떠났음이니라. 저희가 산 꼭대기에서 제사를 드리며 작은 산 위에서 분향하되 참나무와 버드나무와 상수리나무 아래서 하니 이는 그 나무 그늘이 아름다움이라. 이러므로 너희 딸들이 행음하며 너희 며느리들이 간음을 행하는도다. 너희 딸들이 행음하며 너희 며느리들이 간음하여도 내가 벌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남자들도 창기와 함께 나가며 음부와 함께 희생을 드림이니라.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패망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처럼 북 이스라엘이 먼저 망합니다. 그러나 남쪽 예루살렘 성전도 우상으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에스겔서를 공부하며 봤습니다만 성전 안에 온갖 우상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므로 바벨론에 의해 파괴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자기 이름을 두시고자 하신 집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영영 하나님의 이름을 두시는 예배 장소가 없어지는 것입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영원하시기에 반드시 성취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벨론 포로에서 70년 만에 돌아와 성전이 재건됩니다.

 

그러나 이 성전의 영광보다 더 나은 영광이 나타날 것을 학개 선지자가 예언했습니다. 학개서 2:5-9절을 보면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신이 오히려 너희 중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또한 만국을 진동시킬 것이며 만국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영광으로 이 전에 충만케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약속하신 대로 참된 성전, 이전의 영광보다 더 나은 영광이 나타났습니다. 그 성전은 건물이나 장소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모세를 통하여 어디서 예배할지를 말씀하셨는데 그 장소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장소가 인격으로 증거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유대인들과 예수님의 충돌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건물로 된 성전을 헐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19-22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헐라고 하시고 삼일 만에 다시 일으키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는 고발제목이 됩니다만 예수님께서는 자기 몸이 성전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세가 말한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시는 그곳이란 바로 물리적인 장소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4:19-26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이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선지자로 고백하며 예배의 장소에 대해서 묻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북쪽 사마리아 사람들이 주장하는 그리심산도, 남쪽 유대인들이 말하는 예루살렘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오는데 그 때가 이 때라고 합니다. 여기서 신령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내면에서 나오는 신령한 그 무엇이 아니라 성령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하여 진리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 것이 바로 예배의 시작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성령과 진리로 예배하는 때라는 것은 시간과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메시아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메시아로 오심으로 말미암아 신약에서는 예배의 장소가 문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느냐, 있지 않으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마태복음 18:18-20절을 보면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두 세 사람이라도 주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주님이 함께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주의 이름으로 모인다는 것은 주님의 이름의 능력에 의하여 모이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모세를 통해서 주님의 이름을 두신다는 그 언약의 완성체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레위지파가 아닌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을 부르는 곳이 바로 참으로 예배하는 곳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곳에서는 더 이상 인간의 공로가 높여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만으로 기뻐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 안에 있는 것이 예배인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가 이런 예배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의 예배의 장소가 어떤 특정한 장소나 건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를 의지하여 삼위 하나님께 나아와 신령과 진정으로 곧 성령과 진리의 말씀으로 예배하게 하여 주시기 원합니다. 또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므로 우리의 모든 삶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산제사가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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