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서론(2) - 수신자, 저작연대, 특징, 바울의 율법관

by posted Jul 01,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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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상범
성경본문
강설날짜 2011-06-01

* 한글파일을 다운받으셔서 보실 것을 권장합니다. (각주가 생략됨)

 

2011년 6월 1일 한결교회 수요강설
갈라디아서 2강

 

갈라디아서 서론(2) - 수신자, 연대, 특징, 바울의 율법관

 

1. 수신자 및 연대

이 갈라디아서의 수신자들은 누구이며, 또 언제 썼느냐 하는 것은 최근 들어서 굉장히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이며 갈라디아서의 가장 난해한 부분이다. 사실 19세기까지는 갈라디아서의 수신자들과 기록 연대에 대해서는 크게 이견이 없었다. 전통적인 입장에 의하면 갈라디아서의 수신자는 소아시아의 북부지방(앤키러, 페시누스, 타비움과 비두니아에 위치한 줄리오폴리스)의 갈라디아 사람들이고, 바울이 제3차 선교 여행 중 마게도냐나 아가야에서 쓴 것으로 본다. 그렇게 되면 연대 상으로 볼 때 갈라디아서는 고린도전후서를 쓴 이후, 그리고 로마서를 쓰기 이전인 AD 57-59년경에 쓰여진 서신으로 여겨진다. 이것이 소위 ‘북갈라디아설’이라고 부르는 것으로서 20세기 전까지 가장 보편적인 견해이다. 그러나 1890년쯤에 람세이(Wm. M. Ramsay)가 등장하면서 고전적인 북갈라디아설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람세이는 전통적인 입장에 반대하면서 갈라디아서의 수신자들이 북갈라디아 지방의 사람들이 아니라, 바울이 제1차 전도여행 때에 선교하였던 ‘비시디아 안디옥’과 ‘이고니온’, ‘루스드라와 더베’ 지역과 같은 남부갈라디아 지역의 사람들이었다고 주장하였다. 우리는 이 견해를 ‘남갈라디아설’이라고 부르는데, 오늘날 많은 학자들이 지지하고 있는 견해이다.

1.jpg

<바울의 제1차 선교여행 : AD 47~4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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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제2차 선교여행 : AD 50-5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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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차 선교여행 : AD 53-5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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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남갈라디아설을 따르고, 저작연대는 예루살렘 공의회 직전인 AD 49년경에 안디옥 교회에서 썼다고 보는 것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갈라디아서와 사도행전과의 관계
갈라디아서는 1:11부터 2:14까지 바울 자신의 예루살렘 방문 사건을 순차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예루살렘 방문을 사도행전에서 묘사된 바울의 예루살렘 방문과 비교해 볼 때, 갈 2장의 예루살렘 방문은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공의회를 위한 방문이 아닌 11장의 기근방문과 일치된다.

 

[사도행전의 바울의 예루살렘 방문]
1차 : 행 9:26-30 - 바나바의 도움
2차 : 행 11:27-30 - 기근 방문
3차 : 행 15:1-30 - 예루살렘 공의회
4차 : 행 18:22 - 황급한 방문
5차 : 행 21:15-17 - 헌금 방문

 

[갈라디아서의 바울의 예루살렘 방문]
1차 : 갈 1:18 - 15일 유함
2차 : 갈 2:1-10 - 14년 후 방문

 

물론 전통적인 입장은 갈 2:1-10을 행 15장의 예루살렘 공의회와 동일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입장의 치명적인 약점은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쓰면서 의도적으로 기근 방문을 생략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1장 20절에서 “보라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로라”라고 장담하고 있는 것과 잘 조화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갈라디아서의 문맥에서 보았을 때 이 입장은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바울이 예루살렘 사도들과의 접촉을 언급하는 시점에서 기근방문을 생략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주장의 신뢰성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대적자들에게 의혹의 빌미를 제공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바울이 이것을 생략할 리가 없는 것이다. 또한 바울은 갈 2:1에서 “다시”라는 말을 씀으로써 갈라디아서 2장의 방문이 첫 번째에 이은 두 번째 방문이라는 것을 시사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갈라디아서가 언급하는 바울의 예루살렘 방문은 회심한지 3년 후에 방문하여 15일을 유한 1차 방문과 회심 후 14년 후에 기근 차 방문한 2차 방문이 전부이다. 만일 이 서신의 연대가 예루살렘 공의회 이후 제2차 선교여행 때나 제3차 선교여행 때 쓴 것이라면, 바울은 틀림없이 예루살렘 공의회인 제3차 방문을 언급했을 것이다. 그러나 3차 방문에 대해서 바울이 언급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이 서신의 연대가 예루살렘 공의회가 있기 전이라고 결론 내리게 한다. 또한 그렇게 되면 갈라디아 교회는 바울의 1차 선교 여행 기간 중에 세워진 교회이므로 북갈라디아 지역이 아닌 남갈라디아 지역의 교회가 되는 것이다.


물론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공의회 사건과 갈라디아서 2장의 예루살렘 방문 사건을 같은 사건으로 볼 수 있는 개연성 있는 시사점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양자 모두 이방 그리스도인과 관련된 복음 문제로 예루살렘에서 모인 회합에 대해 말하고 있고, 양자 모두 참석자는 바울과 바나바, 그리고 반대편에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였고, 양자 모두 율법에서 자유로운 이방인 선교를 지시하는 결정이 내려진다. 그래서 20세기까지는 이렇게 이해되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문제가 많다.


우선 갈 2:1에서 예루살렘을 방문하게 된 동기를 “계시를 인하여” 올라갔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사도행전 15장에서의 예루살렘 방문은 안디옥 교회의 파송으로 방문하게 된다. 또한 갈 2:2에서는 복음을 사사로이 제출하였으나,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공의회는 공식적인 모임이었다. 또한 갈 2:6에 “저 유명한 이들은 내게 더하여 준 것이 없고”라고 말하지만, 사도행전 15:19-20에서는 우상숭배와 음행,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 할 것을 부탁하고 있다. 오히려 갈라디아서 2:10에서 예루살렘 사도들이 바울에게 부탁한 한 가지는 기근 방문의 맥락과 보다 더 잘 어울린다.

 

(10)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 생각하는 것을 부탁하였으니 이것을 나도 본래 힘써 행하노라(갈 2:10)

 

가난한 자들은 일반적인 가난한 자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 가운데 있는 예루살렘 성도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것은 기근의 상황 가운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예루살렘 교회의 모습을 잘 반영해준다. 특별히 “생각하는” 단어의 동사의 시제는 현재 가정법이다. 현재 가정법은 현재 하고 있는 것을 계속해서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기근 방문 때처럼 자주 헌금을 모아달라는 요청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바울은 실제로 이후부터 이방인 선교를 할 때마다 예루살렘 교회로 들고 갈 헌금을 모금하였다. 이를 통해서 교회의 일치와 단결, 결속을 이루기 위해 힘을 썼다.


뿐만 아니라 갈라디아서 2장에 보면 디도가 동행했다고 했는데, 바울과 같이 주도면밀한 사람이 할례 문제를 논하는 곳에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을 쓸데없이 데려와서 유대주의자들의 심기를 건드리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방인 할례 문제로 공의회가 소집되었는데, 갈 2:4에서처럼 거짓형제들이 디도에게 할례를 억지로 행하게 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을 가능성은 적다.


무엇보다도 가장 결정적인 것은 회의의 결과와 결정 내용이 생략되어 있다는 것이다. 만일 갈 2장이 예루살렘 공의회에 대한 묘사였다면, 그 논의된 내용, 곧 야고보와 베드로가 이방인들이 할례와 모세율법 순종 없이 구원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고 결정을 내렸던 사실을 언급하지 아니할 리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대적자들에게 가장 강력한 최후의 일격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갈라디아서 본문은 그러한 내용 없이 그저 서로의 사도권을 인정하고 악수하며 헤어진 것으로 묘사한다. 그러므로 갈라디아서 2장 본문은 오히려 행 11장의 기근방문 중에 자신이 가진 복음을 사적으로 제출하고 그 복음의 참됨을 인정받고, 서로 교제의 악수를 나눈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만일 갈 2:1-10이 예루살렘 공의회라고 한다면, 그 이후에 있게 되는 안디옥 사건, 베드로의 외식하는 사건과 바나바까지 외식했던 사건은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베드로는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바울의 입장을 열렬히 지지하며 결론을 내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랬던 베드로가 예루살렘 공의회 직후에 그러한 외식을 행한다는 것을 믿겨지기 어려운 것이다. 아마도 이 안디옥 사건은 분명 예루살렘 공의회가 있기 직전에 있었던 일일 것이고, 이것이 발판이 되어 예루살렘 공의회가 소집되었을 가능성이 더 많다.


그러므로 갈 2:10은 행 11장의 기근방문이며, 안디옥 사건은 예루살렘 공의회 있기 전의 사건이고, 갈라디아서신은 예루살렘 공의회(AD 49-50년) 직전에 쓰여진 것으로 보는 것이 가장 적절한 입장이라고 생각된다.

 

2) 인물 색인
두 번째로 인물들에 대한 언급에서 우리는 수신자와 연대를 추정해 볼 수 있다. 우선 바울은 디모데를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수신자와 연대를 정함에 있어서 필자의 입장에 힘을 실어준다. 디모데는 에베소서와 디도서를 예외로 하고 바울의 모든 서신에서 등장한다. 디모데는 바울의 제2차 선교여행 당시 갈라디아 지역에서부터 바울을 따랐는데, 그 이후에 갈라디아서신을 썼다면 디모데를 언급하지 않을 리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제2차 선교여행 전에 썼다고 보는 것이 보다 타당하다. 뿐만 아니라 바나바에 대한 언급이 많이 나타난다는 점도 이 입장에 힘을 실어준다. 바나바는 제1차 선교여행 때만 바울과 동행했을 뿐 2차 선교여행 때부터는 동행하지 않았다. 바나바를 갈라디아서에서 세 번씩이나 언급했다는 것은 갈라디아 성도들이 바나바를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그렇다고 한다면, 갈라디아 교회를 바울이 제2차 선교여행 때 개척한 북갈라디아 지역의 교회라는 북갈라디아설은 받아들여지기가 어렵다.

 

여러 가지 개연성 있는 시사점들을 살펴볼 때, 필자는 남갈라디아 지역의 교회에 예루살렘 공의회가 있기 직전인 AD 49년에 이 서신을 썼다고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한 입장이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이 견해에 대한 여러 가지 반대의견들과 이에 대한 학자들의 반론 또는 필자의 반론을 뒤에 부록으로 첨가하였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2. 갈라디아서의 특징

1) 대조를 통한 논증
갈라디아서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처음부터 끝까지 대조를 통한 논증을 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편지전체의 명제인 1:6-7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복음”과 “다른 복음”의 대조에서 비롯된다.

1) 1:1-5 : 하나님(또는 그리스도)과 사람 사이의 대조(1:1)
2) 1:6-7 : 그리스도의 복음(바울이 전한 복음)과 다른 복음 사이의 대조
3) 1:11-12 : 사람과 그리스도의 대조(11절-사람의 뜻 <->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4) 2:15-16 :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됨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됨(16절)
5) 2:19-21 : 율법과 하나님 사이의 대조(19절)
6) 3:1-5 : 율법의 행위와 믿음의 들음 사이의 대조(2절)
7) 3:6-14 : 율법의 저주와 아브라함의 복(9-10절)
8) 3:15-18 : 약속과 율법의 대조(18절)
9) 3:23-4:7 :율법 아래 노예 상태와 그리스도 안에서 아들됨(7절)
10) 4:21-31 : 계집종 하갈과 자유하는 여자 사라 사이의 대조 /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위에 있는 예루살렘 사이의 대조(25-26절)
11) 5:1-12 :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함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됨(4-5절)
12) 5:16-23 : 육체와 성령의 대조
13) 6:12-16 : 할례와 십자가의 대조

 

[다른 복음]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음
율법 아래 노예 상태
할례
육체

 

[그리스도의 복음]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음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 아들 됨
믿음
성령

 

이러한 극명한 대조를 통해서 바울은 바로 다른 복음과 그리스도의 복음이 어떻게 다른지를 나타내고,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택하도록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2) 직설법과 명령법의 관계
또한 갈라디아서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직설법(indicative)과 명령법(imperative)의 관계이다. 직설법과 명령법의 독특한 관계는 갈라디아서뿐 아니라 바울 서신 전체의 특징이기도 하다. 바울은 도덕적인 새로운 삶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미 주어진 은혜의 열매로 묘사하기도 하지만, 때때로 다른 곳에서는 의무요 명령으로 제시한다. 그래서 때때로 모순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골로새서 3:3,5이다.

 

(3)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 (5)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골 3:3,5)

 

이미 죽었다고 해놓고서는 뒤에 가서는 죽여라라고 명령하고 있다. 이미 죽은 것은 ‘직설법’이고,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는 것은 ‘명령법’인데, 이렇게 동일한 내용을 직설법과 명령법의 관계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이미 이루어진 직설법적인 은혜에 근거해서만 명령들을 순종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내가 안 죽었기 때문에 죽여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기초로 해서, 그 은혜에 근거해서 날마다 자기를 죽이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직설법과 명령법의 관계는 갈라디아서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1)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 5:1)
(13)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갈 5:13)
(24)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갈 5:24)
(16)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 5:16)
(25)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갈 5:25)

 

5:25a의 “성령으로 산다”는 말은 믿는 자가 성령을 영적 삶의 원천으로 소유하고 있음을 의미한다(indicative).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이라는 말은 실제로 “우리가 성령으로 살기 때문에”를 의미한다. ‘에이’가 직설법을 동반할 경우 ‘~ 때문에’라는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5:25b에서처럼 그들은 성령으로 행해야 하는 것이다(imperative). 이미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를 주관하시고 통치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성령을 따라 행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성령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시고, 우리가 성령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이미 우리 안에는 성령이 계시고 우리는 성령으로 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께 순복하라는 것이다.


한 거지와 왕을 생각해보자. 예를 들어 한 거지가 갑자기 어떻게 왕이 되었다고 한다면 이제 이 거지는 왕이 되었기 때문에 왕처럼 행동하고 왕답게 살아야 한다. 이것하고 한 거지가 왕처럼 행동하고 말하고, 그래서 아주 노력해서 왕이 되려고 하는 것 하고는 천지 차이이다. 똑같이 왕처럼 행동하지만, 이 둘 사이에는 하늘과 땅이라고 하는 차이가 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후자의 경우처럼 할 때가 많다. 우리는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왜 그렇게 하느냐 하면, 내가 아직 충분히 거룩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래서 거룩하게 되기 위해서 노력한다. 이것은 순서가 틀린 것이다. 이런 식의 성화는 로마가톨릭적인 성화이지, 우리가 말하는 성화가 아니다. 우리는 이미 거룩하다.

 

(30)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고전 1:30)
(12)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13)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14)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히 10:12-14)

 

우리는 그리스도의 공로로 영원히 온전하게 거룩하게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거룩하게 되기 위해서 우리의 행위를 추가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이미 완전히 거룩하다. 우리가 현재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하더라도 우리 스스로를 온전히 거룩한 자로 여기기 바란다. 그래서 그것을 은혜라고 하지 않는가? 경건치 않은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은혜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성도’이다.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는 아직 거룩하지 못하기 때문에, 또는 거룩하게 되기 위해서,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이미 거룩하기 때문에, 그 거룩한 자답게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직설법과 명령법의 관계 속에서 우리는 바울의 모든 도덕법적인 명령을 이해해야 한다.

 

3. 바울의 율법관의 핵심

유대주의자들의 할례 주장의 근본 문제는 옛 언약과 새 언약의 연속성과 불연속성 문제와 관련된다. 유대주의자들은 율법은 여전히 새 언약에도 유효한 법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사실 오해인데, 충분히 이해되는 오해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키시고 시내산 언약을 통해 율법을 주셨다. 율법은 언약법이요, 하나님의 나라로서 이스라엘을 통치하는 규범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율법을 준행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언약적인 저주를 당하여 멸망하게 된다. 유대주의자들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서 이것을 뼈저리게 통감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 율법을 준행함으로써 이스라엘은 이방인과 구별되는 거룩한 언약뱅성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했다. 만일 이방인이 이 유대인의 무리에 들어오고자 한다면 그들은 반드시 할례를 받고 모세율법을 지켜야만 했다. 반대로 이러한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들은 감히 유대인들과 함께 교제 나눌 수도 그들의 예배에 참여할 수도, 그들의 회집에 참여할 수도 없었다. 만일 유대인들이 이러한 금칙을 깨고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들과 교제하고 동거하게 된다면, 그것은 언약을 배반하는 것이 되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이제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메시아로 오셨다. 그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러 오셨고, 이방인을 위해여 오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집에 잃어버린 양들을 위하여 보내심을 받았다(마 15:24). 그분은 몇몇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거의 이스라엘 땅에서 사역하셨다. 그분은 구약의 말씀을 성취하러 오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 그분은 말씀하시기를 율법의 일점일획이라고 없어지지 아니하고, 지극히 작은 계명이라도 하찮게 여기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분은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주 십계명을 지키면 영생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눅 10:25이하). 비록 바리새인들과 율법의 해석의 측면에서 차이가 있었지만,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의미를 마음의 동기까지 확대하여 보다 강력하게 적용하셨다. 너희 의가 바리새인과 서기관보다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신 말씀을 제자들이 잊어버릴 리가 없다. 무엇보다도 성령이 임하여 형성된 예루살렘 교회 공동체는 유대인 공동체였다. 그들에게 유대교와 기독교는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였다. 베드로도 이렇게 생각했고, 이 생각이 깨어지기까지는 몇 가지 사건을 거쳐야 했다. 그리고 예루살렘 공의회가 있기 전까지 이 문제에 대한 어떤 일치된 규칙이 정해지지 않았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 교회 안에 보수파(강경파) 유대인 신자들, 곧 유대주의자들은 이방인들이 이 교회 안에 들어오려면 예수님을 믿어야 할 뿐만 아니라 할례를 행하고 모세 율법을 지켜서 유대교에 들어와야만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교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결국 이러한 생각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유대교라고 하는 옛 언약과 기독교라고 하는 새 언약 사이의 연속성과 불연속성 문제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율법이 있다. 율법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것이 바로 이 문제의 본질이다. 그래서 갈라디아서에서 이신칭의 논증의 핵심은 바로 3장 15절부터 나오는 율법의 구속사적 의의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그러면 바울의 율법관이 무엇인가? 바울에게 있어서 율법은 낯선 침입자이다. 그리고 갑자기 침입하여 우리를 얽어매고 종속시키고 노예로 만드는 악한 지배세력이다. 이것이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나타나는 바울의 율법관이다. 이것이 무슨 말인지 살펴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언약을 살펴보아야 한다.


율법을 언약의 측면에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언약이란 무엇인가? 언약을 자꾸 어렵게 생각하는데, 쉽게 설명하는 우리가 결혼할 때 하는 것이 언약이다. 혼인 언약하고 비슷하다. 서로를 뜨겁게 사랑하고, 그래서 평생을 함께하며 서로의 의무를 다하겠다고 약속하고 다짐하는 것이 언약이다. 이렇게 언약에는 서로와의 관계적인 측면이 있고, 서로에 대한 의무에 관한 측면이 있다. (언약은 계약하고는 조금 다르고, 약속하고도 조금 다른 개념이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시고 바로 사람과 언약을 맺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이 언약을 수단으로 이 세상을 통치하시고 섭리하시고 구속사를 진행시키시는 것이다. 그런데 언약에는 두 가지가 있다. 행위언약과 은혜언약이다. 행위언약은 행위에 따라 상벌을 주시는 언약을 의미한다. 선악과 금령은 행위언약이다. 행위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즉 순종하면 언약이 유지되고 축복을 지속하는가 하면, 불순종하면 언약이 깨어지고, 축복을 상실하며 저주와 형벌을 받게 된다. 결국 아담은 이 명령에 불순종하여 타락했고, 그 언약은 깨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인생들을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다시 그들과 언약을 맺으신다. 그것이 창 3:15의 여인후손언약이다. 그런데 이것은 이전의 언약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언약이다. 어떠한 의무나 조건이나 명령이 없고 하나님 편에서만 약속하시므로 언약을 맺으신다. 이것을 우리는 은혜언약이라고 한다. 은혜언약이란 관계를 맺지만, 조건부적인 의무나 명령이 없는 것을 말한다. 즉 우리의 행위와는 상관없이 오직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을 은혜언약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래서 아담이 타락한 이래로 하나님께서는 바로 은혜언약을 통해서만 당신의 택하신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것이다. 은혜언약이 행위와 상관이 없다고 해서 이제 마음대로 죄를 범하며 살아도 은혜언약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은혜언약은 그 극치인 새언약에서 보는 것처럼 인간을 죄책에서만 구원할 뿐 아니라, 성령으로 말미암아 죄의 부패에서도 우리를 구원하신다. 성령의 은혜로 말미암아 율법을 순종하는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은혜다. 그러나 여기서의 열매는 결코 구원의 조건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성령의 열매는 은혜언약의 결과요 열매이다. 이렇게 노아언약, 아브라함 언약이 다 이러한 은혜언약이다. 그러나 시내산 언약부터는 조금 달라진다.


시내산 언약은 행위언약인가? 은혜언약인가? 이스라엘이 구원받은 것은 그들의 행위에 따른 것인가? 오직 주님의 선택하심과 사랑과 긍휼과 은혜로 된 것인가? 은혜로 되었다. 그러므로 시내산 언약은 은혜언약이다. 그러면 율법은 무엇인가? 율법은 그러한 구속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감사의 규범으로서 순종해야 할 하나님의 명령이다. 십계명 서문에서도 그것이 잘 나타난다. 그러므로 율법은 감사의 규범이다. 그러나 율법을 불순종하는 것은 그의 거룩한 명령을 배반하는 것으로서 율법의 저주를 초래한다. 그러므로 율법을 순종해야만 이 은혜와 축복을 유지할 수 있으며 언약 안에 머무를 수 있는 조건이다. 그러나 율법은 결코 구원받는 조건은 아니다. 그러니깐 유대교는 전혀 율법을 잘 행해서 구원받으려는 종교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을 “언약적 신율주의”라고 부른다. 이제까지 한 이야기는 다 틀린 이야기이다. 물론 율법이 구원받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감사의 규범으로서 행해야 할 의무라고 말하는 것은 전적으로 옳은 것이다. 그러나 율법을 가지고서 이것만 말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소위 성경신학자들, 언약신학 하시는 분들 대부분이 율법에 대해서 이것만 말한다. 중요한 것은 바울은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언약적 신율주의라는 견해에서 온갖 이상한 이야기들이 다 나온다. 전통적으로 우리는 유대주의자들이 행함으로 의롭게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바울이 바로 이런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받고자 하는 자들을 비판하면서 그것이 아니라 오직 은혜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고 하는 이신칭의 복음을 증거한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언약적 신율주의에 의하면 유대교는 은혜의 종교로서, 그들은 율법을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받고 구원받고자 하는 자들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유대교는 처음부터 은혜의 종교였고, 1세기 유대인들도 자신들의 종교를 그렇게 이해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바울이 그들을 향해서 반대했던 율법의 행함은 그렇다면 결국 무엇을 반대한 것인가? 우선 우리가 그들을 오해하듯이 바울도 유대인들을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으려고 하는 사람들로) 오해했다고 보는 하나의 견해가 있다. 또 다른 견해는 보다 오늘날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견해인데, 바울이 반대한 이 “율법의 행함”은 우리가 생각하는 도덕법으로서 율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을 구별하는 민족적 표지로서 할례나 음식법이나 절기와 같은 의식법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즉 바울이 볼 때 유대인들은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과 차별이 그 십자가로 말미암아 폐지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러한 구속사적인 변혁을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여전히 민족적인 우월감과 선민사상에 빠져서 그러한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별하는 몇몇 의식들에 집착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대그리스도인들이 이방신자들을 자신들의 공동체로 받아들여주지 않았고, 할례를 행해야 받아들여주겠다고 함으로써 그들에게 할례를 강요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울이 볼 때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십자가로 하나 되게 하신 새언약 안에서의 하나님의 경륜에 역행하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필사적으로 할례와 절기와 음식법들을 반대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바울이 반대한 것은 도덕법의 행함으로서 율법을 반대한 것이 아니라, 할례를 반대한 것이다.


이러한 주장이 바로 오늘날 신약신학에 있어서 가장 뜨거운 감자로서 논쟁되고 있는 “바울의 새관점”이라고 하는 것이다(E. P. Sanders, James Dunn, N. T. Wright 외 다수가 주장한다). 이 주장이 그럴듯하게 들리는 측면이 있는데, 여기에 미혹되어서는 결코 안 되는 이유는, 이 입장을 취하게 되면, 결국 바울이 반대한 것은 율법의 도덕법을 순종하는 것은 반대한 것이 아니므로, 우리가 우리의 구원을 유지하기 위해 율법의 도덕법을 순종해야 한다는 행위구원론으로 빠지기 때문이다. 새 언약이 옛 언약과 똑같이, 은혜로 믿음으로 구원받지만, 그 은혜언약에 머무르는 것은 도덕법을 행함으로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잘못된 주장들이 오늘날 너무 난무하는데, 어디서 비롯된 것이냐 하면 유대교에 대한 그릇된 인식에서 비롯된다. 유대교는 과연 언약적 신율주의인가? 구원받는 것은 은혜인데, 머무르는 것은 행함의 조건에 따르는 그런 종교인가?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보이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다. 예를 들어서 내가 어떤 사람에게 돈을 줄 때, 공짜로 그리고 무조건적인 은혜로 준다고 말해놓고서는 주고 나서는 말하기를 당신이 이런저런 조건을 이행하지 않으면 다시금 빼앗겠다 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처음 준 것을 은혜라고 생각하겠는가? 은혜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언약적 신율주의는 하나님의 은혜를 없애버리는 무시무시한 견해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시내산 언약은 은혜언약 + 행위언약 이 두 가지가 공존하는 언약이다. 그래서 이것이 막 혼합되어서 나타나니깐 사람들이 헷갈려 하는데, 이것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선 시내산 언약의 행위언약적인 측면을 살펴보자. 율법을 순종하면 살지만, 불순종하면 언약적 저주를 당한다. 선악과 금령과 마찬가지로 이것은 행위언약적인 측면이다. 그러므로 시내산 언약은 율법주의이고, 따라서, 유대교는 철저하게 율법을 순종함으로써 구원을 유지해야 하는 율법주의적인 종교이다. 행위에 따라 그 결과가 갈리는 것이다. (마치 선악과 금령의 경우처럼) 물론 그들이 처음 구원받은 것은 은혜로 된 것이다. 그러나 그 구원의 은혜에 머물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 그것 역시 사실은 구원받기 위한 노력, 곧 율법주의적인 노력이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정말 율법을 바르게 행해서 구원받는 사람을 기대하시면서 행위언약으로서 율법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한번 행해바라. 한번 행함으로 구원받으려고 해봐라 되는가...”하고 시험적으로 주시는 것이다. 그래야 은혜를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내산 언약은 행위언약의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은혜언약의 측면도 있다. 율법 자체에 제사 제도를 통한 죄사함의 길이 예시되고 있고, 장차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예표하고 있다. 율법 자체가 복음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순종할 때, 바로 심판하시는가? 행위언약만 있다면, 아담 때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무조건 곧바로 벌을 내리셔야 한다. 그러나 길이 참으시고, 선지자를 보내시고 회개를 요청하시고 하신다. 이것이 은혜다. 또한 심판하실 때도 다 멸하시는가? 남은 자를 두신다. 행위언약만 있다면 다 멸하셔야 한다. 그러나 남은 자를 두신다. 은혜이다.


그러므로 율법은 시내산 언약이 행위언약임과 동시에 은혜언약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내산 언약은 행위언약과 은혜언약이 동시에 공존한다. 유대교는 언약적 신율주의가 아니다. 철저하게 은혜언약이고 또한 행위언약이다. 그러면 왜 은혜언약만이 아니고, 행위언약이 공존하게 되었는가? 왜 율법이 행위언약으로 첨가되었는가? 그 점에 대해서 갈라디아서는 분명히 말한다.

 

(19)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갈 3:19)

 

갈라디아서 말씀을 보면 범법함 때문에 더하여졌다라고 하고 있다. 첫 번째로 율법은 더하여 진 것이다. 그것은 낯선 침입자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담 이레로 이제 은혜언약으로만 구원해 가시는데, 갑자기 시내산 언약에서부터는 율법을 추가하셨다. 이때 더하여진 것은 은혜를 밀어내고 그 은혜의 자리에 율법이 차지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17)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 삼십년 후에 생긴 율법이 없이 하지 못하여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갈 3:17)

 

율법이 약속, 곧 은혜를 없이하지 못했다. 그러니깐 공존한다는 것이다.


둘째로 그 이유가 무엇인가? 범법함 때문이다. 번역이 조금 매끄럽지 않다. 제대로 번역하면 “범법함을 위해서” 주어진 것이다.

 

(13)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롬 5:13)

 

범법이라고 하는 것은 법을 어긴 것을 말한다. 율법이 없으면 범법이 없는 것이다. 범법이 없으면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다. 죄를 죄로 모르면 은혜가 은혜인줄을 알지 못한다.

 

(20)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롬 5:20)

 

죄를 생산해내고, 범법을 만들고, 범죄를 더하게 하기 위함이다. 그 결과 은혜가 더욱 넘쳐나게 된다. 바로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 율법은 낯선 침입자로서 시내산 언약을 통해서 들어왔고, 그 율법은 우리를 범죄자로 정죄하고 낙인찍으며, 우리를 심판과 저주 아래 가두어버린다.

 

(22)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23)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24)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25)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갈 3:22-25)

 

바울의 율법관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첫 번째로 그것의 작용이 우리를 가두고 종속시키고 노예로 만든다는 것이다. 여기 23절에 ‘갇혔다’라는 말, 24절의 ‘몽학선생’, 4장 2절에 ‘후견인과 청지기’, 3절의 ‘세상의 초등학문’ 이런 것들이 다 지배하고 노예로 만드는 악한 세력으로서의 율법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에게 있어서 율법은 긍정적인 의미의 것이 아니라, 도리어 거기서 해방되어야 할, 아주 부정적인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율법은 죄와 사단과 사망과 동맹을 맺어서 함께 우리를 지배한다.

 

(56)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고전 15:56)

 

둘째로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만 한시적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율법의 목적과 잘 어울리는 것이다. 범죄를 드러내고, 우리를 정죄와 심판 아래 가두고, 그리하여 십자가의 은혜만을 바라보고 그것만을 의지하도록 우리를 인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오시고 구속사역을 완성하셨으면 이제 이러한 율법의 역할은 끝이 난 것이다. 신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함께 죽음으로써 율법에 대하여 죽었다.

 

(19)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20)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19-20)


(4)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5)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6)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롬 7:4-6)


(3)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4)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3-4)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율법에서 해방된 자들이다. 신자는 더 이상 율법 아래 있을 필요가 없다. 이러한 율법이해는 바로 유대 그리스도인들의 율법관과 정면으로 대치된다. 그들은 율법은 아브라함의 언약의 성취요 완성으로서 새 언약에서도 지속되어야 할 것으로 보았지만, 바울은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서 율법은 끝이 났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만 있을 한시적인 것이다. 불연속성을 아주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새 언약이 도래했으면, 더 이상 율법에 얽매이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할례를 받는다는 것은 다시 옛 언약으로 돌아감을 의미한다. 할례를 받는다는 것은 모든 율법을 지킬 의무 아래로 들어가는 자이다.

 

(3)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거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갈 5:3)

 

율법 아래서 종노릇하며 죄와 심판과 정죄 아래 갇혀 있는 그 상태로 다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자유케 하신 은혜를 무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할례를 받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유대인이 될 필요가 없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고 믿음으로 하나의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이다.


그러면 우리에게 질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이제 예수님을 믿고 율법에서 해방된 자에게는 더 이상 율법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가? 그렇지 않다. 이제 율법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삶의 감사의 규범으로서 작용한다. 지난주에 배운 것처럼 새 언약의 특징은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죄사함과 구원의 은혜를 누릴 뿐만 아니라, 성령을 우리 가운데 보내어주셔서 우리의 마음에 율법을 새겨주심으로써 율법을 행하는 삶을 살 수 있는 은혜까지 주신다. 그러므로 바울은 율법이 성령의 열매를 금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성령의 열매를 통해서 율법을 이루고 성취하고 완성하는 것이다. 과거 옛 언약에서 유대인들은 율법을 행해야 했지만, 새 언약의 성도들은 율법을 행하지 않는다. 성령 안에서 율법을 이루는 삶을 산다. 그것은 사랑을 실천하는 삶이다. 사랑 안에는 모든 율법이 다 들어가 있으며, 율법의 궁극적인 목적을 이루는 것이다.


율법에 대한 부정적이면서도, 성령 안에서의 긍정적인 측면을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 바울의 율법관이다. 율법에는 이렇게 다양한 의미가 함의되어 있고, 앞으로 본문을 살펴보면서 하나하나 살펴볼 것이다.

 

<부록 : 수신자와 저작 연대에 대한 반대 의견들, 그리고 그에 대한 학자들과 필자의 반박>

1. 사도행전 16:6; 18:23에 나오는 “갈라디아”가 로마성의 행정구역으로서 명칭이 아니라 인종적이고 지리적인 명칭으로서 북갈라디아의 고올인들의 땅을 가리킨다.
반박) 누가는 식자 계층의 헬라인으로서 보통 대중적, 지리적 그리고 구어적 어법을 사용했기 때문에, ‘갈라디아’라는 로마 성의 명칭보다는 ‘비시디아’, ‘브루기아’, ‘루가오니아’와 같이 지리적이고 인종적인 어법을 사용했다. 물론 한번씩 ‘갈라디아’를 언급하기도 한다(행 16:6, 18:23). 반면에 바울은 로마인과 그 제국의 시민으로서 그의 모든 서신에서 일관되게 로마의 성들의 명칭을 사용했다. 그러므로 갈라디아서의 수신자들을 북갈라디아 지방의 교회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또한 만약 그 수신자들이 제1차 선교여행시 설립한 더베, 루스드라, 이고니온, 안디옥의 교회들이라고 한다면 바울은 그 구성원들을 ‘갈라디아인들’이라는 것 이외의 어떤 단일한 용어로 잘 호칭할 수 없었을 것이다.

2. 사도행전 16:6; 18:23에서 갈라디아 땅이 브루기아 땅과 구별되어서 언급된다는 것은 그 지역이 서로 다른 지역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반박)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이라는 문구에는 관사가 앞의 단어에만 나오고 ‘카이(그리고)’라는 전치사로 연결되어 있다. 이 사실은 이 두 단어가 서로 다른 지역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한 지역, 곧 “브루기아-갈라디아 땅”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함을 말해준다.

3. 서신 연대를 예루살렘 공의회 직전인 AD 49년으로 보게 되면, 할례를 반대하는 이 서신을 쓴 직후 갈라디아 교회를 다시 방문했을 때,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했다는 믿지 못할 의견을 수반한다.
반박) 사실 바울의 일관성 없는 행동은 그 기저에 깔린 바울의 사랑과 희생의 원리에서 비롯된 것이다(고전 9:19-22). 바울은 한 사람이라도 구원하기 위해서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이 되기를 자처했다. 이런 식으로 따지면, 바울이 로마서(AD 57년경으로 봄)를 쓴 후 곧바로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을 얻기 위해서 할례를 행하고 유대교의 규례들을 지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될 것이다(AD 57년 경).

4. 사도행전과 갈라디아서를 순차적으로 끼어 맞추는 것은 옳지 않다.
이 점에 대해서 최갑종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나 갈라디아서 저자 바울이 다 같이 역사에 일어났던 사실들을 연대적 순서에 따라 정확하게 기록하였기 때문에, 바울과 누가의 기록은 다 같이 옳으며, 상호 보완적이며, 그래서 서로 모순되지 않고 상호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식의 논리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결정적인 열쇠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최갑종은 이에 대한 근거로 복음서 상의 차이들을 제시한다. 그는 오늘날의 신문 기사를 보듯이 과학적이고 수학적인 우리의 논리와 방식으로 초대교회 문서에 접근하면 안 된다고 말하면서, 누가와 바울의 기록이 반드시 일치해야 한다는 논리에 매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반박) 물론 복음서 내의 차이들을 생각할 때 최갑종의 주장은 타당한 것이다. 그러나 사도행전과 지금 갈라디아서의 차이에 이러한 잣대를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일단 복음서와 사도행전의 장르의 차이를 생각해야 한다. 사도행전은 분명히 역사서로서의 색깔이 강한 글이다. 람세이는 사도행전의 신빙성을 강조하면서 누가를 1급 역사가로 치켜세우는데, 1급 역사가가 본질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특징은 바로 진실성이다. 물론 누가는 사도행전을 저술하는 목적을 위해서 여러 가지 사건들을 취사선택하고 통찰력 가운데 해석하며 또한 재구성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정확한 역사적 기술 능력까지 포기한 것은 아니다. 람세이는 이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담대하게 사실을 직시해야만 한다. 만약 누가가 사도행전을 썼다면 그의 이야기는 사도 바울의 이야기와 납득이 갈 만큼 현저한 일치를 보여야 한다. 그들을 서로를 확증하고 설명하고 보완해야만 한다. 이 경우에는 평범하고, 충분히 교육을 받지 못했고, 관심을 별로 쏟지 않음으로써 어떤 사건들에 대해 상반되는 설명을 하는, 그다지 관찰력이 예민하지 않은 두 사람의 증인이 문제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서는 고등 교육을 받은 두 인물이 문제되고 있다. 한 사람은 공식적인 역사를 저술하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명예와 양심을 걸고 자신의 말에 책임을 져야 할 의무를 지닌 처지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주제는 양자 모두에게 있어서 압도적인 중요성을 갖는 최대 관심사였다. 또 그들의 관점은 반드시 매우 유사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절친한 친구였고, 한 사람은 스승이요 다른 사람은 제자였으므로 자연히 오랜 기간 동안의 교제를 통해 정신적으로 상당히 동화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 비평에 의해 두 종류의 문서간에 현저한 내용상의 일치가 있을 것이 요구되는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바울의 문서와 누가의 문서일 것이다. 특히 완전한 일치가 비평에 의해 요구되는 주제가 하나 있다. 한 사람은 역사를, 또 다른 한 사람은 서신 또는 연설문을 쓰고 있다는 두 저자 사이의 입장과 목적의 차이를 들먹거림으로써 양자가 세부 사항에 관한 자료를 취사선택한 데 있어서 다소 차이를 보이는 것을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미치는 영향에 관해서 그들은 반드시 서로 일치해야 한다. 양자 모두는 하나님께서 종종 자신의 뜻을 분명하게 계시함으로써 자신의 교회의 행동을 인도하신다는 것을 확신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 중 한 사람이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에 의해 명해진 것이라고 믿는 것을 다른 한 사람이 인간의 자발적인 의지에 귀속시키고 있다고 믿지 않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이 자신의 자서전적인 이야기를 하는 1:11에서 2:14까지의 부분은 ‘거짓말이 아니라’고 하는 진실성이 가장 중요한 문제로 제시되고 있는 부분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도행전과 갈라디아서의 성격을 무시하고 공관복음서 문제를 여기에 가져오는 것은 무리한 주장이다.

5. 이 입장을 따르면, 연대를 계산할 때 오류가 생긴다. 즉 갈라디아서에서는 회심(다메섹 체험)후 3년 만에 예루살렘을 방문했으며, 그 후 14년 만에 기근방문을 한 것으로 나타나있다. 여기서 “그 후 14년 만에”에서 “그 후”를 “회심한 후”로 본다고 하여도, 다메섹 사건의 연대의 가장 이른 시기인 AD 32년을 기준으로 볼 때, 제2차 예루살렘 방문은 그 후 14년이므로 AD 46년 이전으로는 잡을 수 없다. 그러나 사도행전 11장과 12장의 기근 방문 사건은 AD 44년 아그립바 왕이 죽을 때를 전후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사도행전에 의하면 2차 방문은 AD 44년 전후가 된다. 그러므로 사도행전과 갈라디아서 사이에는 2년 이상의 연대 차이가 생긴다.
반박) 이 입장은 상당히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 부분에 있어서 우리는 람세이의 설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 큰 흉년은 팔레스타인에서는 아마도 AD 46년에 들었을 것이다. 주석가들은 으레 요세푸스(Josephus)를 곡해하거나 오로시우스(Orosius)의 권위에 의탁함으로써 흉년이 44년에 들었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애쓰기 마련이다. 심지어는 그것이 헤롯의 박해를 가져왔다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흉년의 시기를 44년으로 잡고자 하는 열망은 사도행전이 담고 있는 이야기의 의미와 순서에 관한 오류로부터 발생한다. 사도행전 11:30과 사도행전 12:25 사이에는 헤롯의 박해와 그의 가련한 죽음에 대한 설명이 삽입되어 있는데, 이 사건들은 44년에 일어난 일들이었다. 그리고 누가는 이러한 사건들이 바나바와 사울이 예루살렘에 있는 동안 일어난 것으로 생각했다고 가정되어 왔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누가는 아가보의 예언을 기록했고, 각 개인의 능력에 비례하여 전 회중에 대한 공동의 계획에 의해 할당액이 부과되었다고 기술했다. 그리고나서 그는 이 계획은 실행되었고 모금액 전부가 예루살렘으로 보내졌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기록된 과정은 즉석 기부 신청이 아니었다. 마아도 부조금은 매주일 헌금에 의해 걷혔을 것이다. ... 흉년이 아직 닥치지는 않았다는 점과 서둘러야 할 절실한 필요성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으로부터 종합적으로 판단해 볼 때 그 헌금을 모으는 데는 상당한 시일이 걸렸을 것이다. 모금 계획은 예언에 대한 완전한 신뢰 속에 미리 구상된 것이다. ... 그리고 이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기근이 실제로 기승을 부리기 전에 옥수수를 예루살렘으로 보냈으리라고 추측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교통이 매우 힘들었던 지역이었으므로, 그 일을 준비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누가는 처음에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일을 준비하는 과정을 일반적 개요를 기술하였다. 그에 따라서, 예루살렘에 부조금을 실제로 전하는 일을 기술하기에 앞서 저자가 취한 방법은 흉년이 시작되기 전까지 예루살렘과 유대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대강 설명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나서 마침내 그는 부조의 실행을 언급한다. 그러므로 그는 헤롯의 박해(그것은 아가보의 예언과 비슷한 시기에 일어났다) 및 헤롯의 죽음에 관해 이야기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안디옥 교회가 계획했던 바의 실행과 사절들의 귀향을 언급하였다. 그렇게 해석할 때 누가의 연대는 요세푸스의 연대와 훌륭하게 조화를 이룬다. 아가보는 43-44년 겨울에 안디옥으로 왔다. 그리고 44년 전반기에 헤롯의 박해가 시작되었으며, 뒤이어 가을에 그가 사망하였을 것이다. 45년에는 작황이 좋지 않았을 것이고, 국내의 비축 식량은 점점 동이 나고 있었다. 이어서 46년의 수확이 보잘것없게 되자 기근이 시작되었고, 부조가 절실히 필요해 졌으며, 그 일을 바나바와 사울이 실행했던 것이다. 헬레나 왕비(아디아베네의 왕, 이자테우스의 모친)도 자발적으로 예루살렘에 부조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치이다. 그는 애굽에서 옥수수를 구브로에서 돼지를 사서 그것을 예루살렘으로 가져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녀는 45년에 예루살렘에 왔고, 그녀의 방문은 흉년이든 기간 동안 계속되었다.”
최갑종은 갈라디아서와 사도행전에 묘사된 예루살렘 방문의 횟수와 순서에 있어서는 과학적이고 역사적이고 수학적인 논리로 볼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이 연대를 정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이 논리를 그대로 적용한다. 자기모순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역사와 성경의 증언을 따라 AD 46년경에 기근이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이제까지의 필자의 입장의 연대와 잘 들어맞는다.
물론 갈라디아서 2:1에서 “그 후”를 회심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1차 예루살렘 방문을 기준으로 하여 연대를 추정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갈라디아서 2:1-10의 방문은 예루살렘 공의회(AD 49년) 시기와 일치하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보는 것이 훨씬 더 타당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갈라디아서 2장과 사도행전 11장을 동일시하는 것도 전혀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 역시 인정되어야 한다. 롱에네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갈라디아서 1:18과 2:1의 삼 년과 십사 년의 간격들을 예수의 십자가 처형과 바울의 초기 고린도 사역의 연대들에 의해 부과되는 범위 내에 수용하면서도, 여전히 갈라디아서 2:1-10과 사도행전 11:27-30의 동일시를 고수하기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 가정 중 적어도 두 가지가 전제되어야 한다. 1. 삼년과 십사 년은 연속적이 아니라 동시적이다 - 즉 양자 모두가 바울의 회심을 기점으로 계산되어야 한다. 2. 갈라디아서 1:18과 2:1에서 바울은 일 년의 일부가 온전한 일 년으로 간주되는 계산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3. 예수의 십자가 처형은 AD 30년, 바울의 회심은 그보다 이삼 년 뒤에 발생했다.”
이러한 전제가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필자의 입장이 연대적으로 전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6. 사도행전 11장에는 갈라디아서 2장에서처럼 어떤 회합이 있었음을 암시하는 어떠한 언급도 찾아볼 수 없다.
반박) 이러한 반대를 펼치는 최갑종은 그러나 앞에서 이렇게 스스로가 말한 바 있다.
“오히려 우리는 갈라디아서의 저자가 사도행전의 저자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사도행전의 저자 역시 갈라디아서의 저자가 아니기 때문에 각 저자의 접근방식, 관점의 차이, 문학적 구성, 자료의 사용, 목적 등에 따라 동일한 사건이라도 얼마든지 다르게 기록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첫 번째 바울의 예루살렘 방문과 관련해서도 바울과 누가의 묘사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도 곧바로 드러난다.

사도행전
바울이 예루살렘의 제자들과 교제하고자 하나, 무서워 함. 바나바가 나서서 도와줌.
바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헬라파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함.
그들이 바울을 죽이려고 힘쓰므로 형제들이 미리 알고 그를 다소로 보냄.

갈라디아서
회심 후 3년 후에 게바를 심방하고 15일간 유함.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함.

그러므로 갈라디아서 2장의 이야기가 사도행전 11장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서, 이 둘을 연관시킬 수 없다는 것은 억지스러운 주장이다.

7. 갈 4:13에 나오는 두 차례의 방문에 대한 바울의 언급은 사도행전 16:6과 18:23에 암시된 상황과 잘 조화된다.
반박) 롱에네커는 이 부분의 해석과 관련하여 두 가지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1) 이 때를 나타내는 부사가 순수한 비교급(즉 두 차례의 방문의 전자)으로 사용되는가? 2) 아니면 단순히 일련의 방문의 첫 번째 것이라는 의미(즉 “이전에”)로 이해될 것인가? 이 두 가지 가능성 중 어느 것을 의미하는지는 연대기와 관련된 다른 문제들과 통합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이 비교급이 반드시 바울의 두 번의 방문을 암시하는 것은 아니다.

8.또한 예루살렘 공의회가 있기 전에 그리고 기근방문(11장)전에 초대교회 내에 어떤 할례문제가 크게 대두되었다는 시사가 없다.
최갑종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사도행전에서 11장의 부조 방문 사건이 놓여있는 전후의 문맥을 자세히 살펴보면, 부조 방문 때는 안디옥 교회에서 할례 문제가 전혀 제기되지도 않았을 때이며, 바울의 본격적인 이방선교 여행 전이었기 때문에, 갈라디아서 2장에 나타나 있는 그와 같은 문제가 안디옥 교회에 아직 제기될 상황이 아니었다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누가는 사도행전에서 바나바와 바울의 부조 방문을 언급하기 바로 직전 문단에서(11:19-26), 안디옥 교회의 설립 배경과, 예루살렘 교회가 바나바를 안디옥 교회에 파송한 것과 바나바가 바울을 찾으러 다소에 간 것을 말하고, 그런 다음 ‘만나매 안디옥으로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26절)는 말로서 그 문단을 마감한다. 그런 다음 27절 초두에서 ‘그때에’라는 말과 함께 부조 방문을 말하는 새 문단을 시작한다. 이와 같은 누가의 서술양식과 내용은 우리로 하여금 바울의 안디옥 교회 목회사역 시작과 예루살렘 부조 방문 사이의 기간이 결코 길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더구나 누가는 부조 방문 기간 중에 두 사람의 이름을 언급할 때는 항상 바나바를 바울 앞에 둠으로써(11:30; 12:25) 사실상 부조 방문 때는 바울보다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를 대변하여 주도권을 행사하는 중심적인 인물이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갈라디아서 2장에 따르면 그와 반대로 바나바보다 오히려 바울이 주도권을 행사하는 중심적인 인물임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사도행전 11장의 부조 방문의 전후 문맥은 안디옥 교회 안에 갈라디아서 2장에서 말하는 그와 같은 할례 문제가 이미 제기되었다는 그 어떤 암시가 없다.”
반박) 사도행전을 누가가 기술할 때는 중요한 사건을 중심으로 기술하고, 또 최대한도로 압축되고 간결한 문체로 기술한다. 그래서 자신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순수한 사실들만을 기술하며, 어떤 문제가 있으면, 그 문제가 있게 되기까지의 배경에 대해서는 독자의 상상에 맡긴다. 그러므로 누가가 밝히지 않는 배경을 상상력을 통하여 재구성하는 것은 독자의 임무이다.
사도행전 11장에서 초대 이방 교회(안디옥 교회)에서 할례 문제나 신분 문제가 있었다고 하는 어떠한 암시가 없다고 해서 그 문제가 전혀 없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사도행전 전체 문맥에서 보았을 때, 이 문제는 예루살렘 교회가 세워지고 시작되면서부터 초대교회 역사 내내 줄곧 있어왔던 문제였다. 사도행전 11장 앞에서 베드로의 환상 사건이나, 고넬료의 회심과 성령체험 사건, 베드로가 교회에 변명하는 말들을 통해서 우리가 보는 바는 유대 그리스도인들의 이방인들에 대한 고정관념과 선입관이 얼마나 강력했는지를 보게 된다. 물론 베드로가 그렇게 체험을 하고 또 본인이 변증함으로써 많은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에 대한 선입관과 고정관념을 수정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을 당연하다. 그러나 분명히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유대 그리스도인들도 또한 예루살렘 교회 내에 얼마든지 존재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아직 예루살렘 교회에서 이방인 문제가 중요한 문제로 대두될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보수적이고 강경한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곧바로 자신들의 색깔을 드러내고 활동하지는 않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디옥 교회가 세워짐에 따라서 예루살렘에 있는 강경파들은 기회를 엿보면서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려고 했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생각을 하는 할례당들은 예루살렘에만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너무 순진한 생각일 것이다. 바울이 선교하는 지역의 회당에 있는 유대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도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심지어는 이방인과 유대인이 공존하는 최초의 교회인 안디옥 교회에서도 이런 생각을 하는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배경을 생각해본다면 안디옥 교회는 사실상 이런 문제의 불씨를 처음부터 안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정당하다. 비록 바울과 바나바의 사역으로 그것이 분위기상 억제되고, 잠재되어 있었고, 또한 그것에 대한 누가의 기술처럼 예루살렘 공의회 직전에 예루살렘으로부터 온 거짓교사들에 의해서 그 문제가 갑자기 불거진 문제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우리는 그 전부터 있었던 배경을 충분히 고려해서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예루살렘 공의회 직전에 이 문제가 절정에 다다랐기 때문에 이 문제를 공회를 통해 공식적으로 다루어야 했던 것은 사실이나, 보수파 할례당들의 작당과 공격은 그전부터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 그것은 바울이 가서 교회를 세우는 모든 이방지역의 교회들마다, 그리고 안디옥 교회에서도, 심지어 바울과 바나바가 디도를 데리고 기근 방문을 했을 때도, 할례당들은 기회를 엿보면서 율법과 할례를 이방인들에게 강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는 기근을 위한 구제 사역을 하면서, 그 기회를 타서 예루살렘 사도들에게 자신들의 할례와 율법없는 복음을 제출하고 그것이 그리스도께서 명하신 복음임을 서로가 인정하며 교제의 악수를 나누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행전 11장과 갈라디아서 2장을 동일시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9. 그러면 사적인 회의와 공적인 회의라는 두 번의 회의가 있게 된다. 만일 갈라디아서 2장의 회의가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회의보다 선행되는 사건이라면, 이미 할례 문제가 그 전에(갈 2:1-10) 다 해결되었는데 후에 예루살렘 회의에서 다시 할례 문제가 뜨거운 논쟁으로 대두된다는 사실이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로 남는다(Dunn).
반박) 이점에 대해서는 다음의 이한수 교수의 글을 인용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바울과 예루살렘 기둥 사도들은 전번 회의에서 이방인에게 할례 베푸는 문제들을 포함하여 복음의 핵심 내용에 대해서 이미 상호 합의한 것으로 생각했지만, 안디옥 사건을 계기로 그들 간의 합의된 내용이 충분한 기초를 확보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나게 되었다.”
“갈라디아서 2장에서 바울과 기둥 사도들 사이에 맺어진 합의가 초대교회의 개별 구성원들 전체에 기계적인 구속력을 지닌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할례 문제가 갈라디아서 2장의 회의에서 합의에 도달한 것은 사실이지만, 유대 지역들에 있던 많은 유대주의적 기독교인들이 이러한 합의와 관계없이 (‘들은즉 우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이 우리의 시킨 것도 없이 나가서 말로 너희를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혹하게 한다 하기로’) 이방 기독교회들 내에 들어와 문제를 야기시켰을 것이다. 이 점에서 예루살렘 회의는 전에 바울과 바나바 그리고 예루살렘 기둥 사도들 사이에 맺어진 합의사항을 보다 공식화하기 위해 개최되었을 가능성이 많다.”

10. 19세기까지 이어온 전통적인 입장을 쉽게 무시할 수가 없다.
반박) 전통적인 입장은 북갈라디아설이고 저작 연대를 보다 훨씬 후대로 보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 쉽게 무시할 수 없다. 어떻게 보면 이 점이 필자의 의견에 있어서 가장 큰 난점이고 어려움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롱에네커의 글을 인용하고 마무리를 짓고자 한다.
“교부 시대와 중세, 그리고 종교 개혁기의 주석자들이 갈라디아서가 그들의 교회들이 소아시아 북부에 위치한 고올족 또는 켈트족 혈통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쓰여졌다고 생각한 것은 거의 놀랍지 않다. 주후 74년경 베스파시안은 갈라디아로부터 비시디아의 거의 전체를 분리시켰으며, 주후 137년경에는 루가오니아 갈라티카가 갈라디아로부터 떼어져서 길리기아와 이소리카에 합쳐져 보다 넓어진 길리기아를 이루게 되었다. 다음으로 주후 297년경 남부 갈라디아는 여러 인접 지역과 합쳐져 안디옥을 수도로, 이고니온을 제2의 도시로 하는 새로운 비시디아 성을 이루게 되었다. 따라서 원래의 인종상의 지역으로 축소된 갈라디아 성에 근거하여, 초기 주석자들은 보통 바울의 수신자가 거기에 위치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본도 아마세이아의 주교 아스테리우스(주후 340년 사망)만이 다르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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