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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말 2:17-3:6
성경본문내용 (17)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였나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모든 행악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선히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하며 또 말하기를 공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함이니라(1)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2)그의 임하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의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3)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케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케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4)그 때에 유다와 예루살렘의 헌물이 옛날과 고대와 같이 나 여호와께 기쁨이 되려니와(5)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술수하는 자에게와 간음하는 자에게와 거짓 맹세하는 자에게와 품군의 삯에 대하여 억울케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케 하며 나를 경외치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거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6)나 여호와는 변역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
강설날짜 2012-02-22

2012년 말라기 공부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말씀:말라기 2:17-3:6

 

말라기서에는 우리가 그 동안 보아온 대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많은 논쟁이 있습니다. 1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내가 너희를 사랑한다’고 하시자 이스라엘은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습니까?’하며 대들었습니다. 또 ‘너희가 나를 멸시하였다’고 하시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제 우리가 멸시하였나이까?’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2장에서도 ‘내가 너희의 헌물을 받지 않겠다’고 하시자 ‘어찌 된 일입니까?’ 하며 대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똑같은 반응을 보입니다. 2:17절을 보면 “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였나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모든 행악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선히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하며, 또 말하기를 공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너희가 나를 괴롭게 하였다’고 하시자 이스라엘은 ‘우리가 언제 그랬느냐’, ‘공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고 하며 도리어 반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공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는 반문은 정직한 선지자들도 많이 질문한 내용입니다. 예레미야나 하박국 선지자도 공의의 하나님이 계신다면 어떻게 악인이 형통하고 의인이 고난을 받느냐며 질문했습니다. 예레미야 12:1절에 보면 “여호와여! 내가 주와 쟁변할 때에 내가 주께 질문하옵나니.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패역한 자가 안락함은 무슨 연고니이까?”라고 합니다. 하박국 1:2-4절에 보면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를 인하여 외쳐도 주께서 구원치 아니하시나이다. 어찌하여 나로 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목도하게 하시나이까. 대저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공의가 아주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공의가 굽게 행함이니이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시편 37편과 73편에도 보면 동일한 질문을 합니다. 특히 시편 73:1-9절을 보면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나는 거의 실족할뻔 하였고 내 걸음이 미끄러질뻔 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하였음이로다. 저희는 죽는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건강하며 타인과 같은 고난이 없고 타인과 같은 재앙도 없나니. 그러므로 교만이 저희 목걸이요, 강포가 저희의 입는 옷이며 살찜으로 저희 눈이 솟아나며 저희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지나며 저희는 능욕하며 악하게 압제하여 말하며 거만히 말하며 저희 입은 하늘에 두고 저희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참된 선지자들의 질문과 말라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질문이 동일한 질문 같지만 그러나 그 저의가 서로 다릅니다. 같은 말이라도 불신앙의 말이 있고, 하나는 신앙의 말이 있는 것입니다. 참된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공의를 소망하며 그런 질문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나 하박국 선지자나 시편 기자의 질문에 괴롭게 한다고 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의 질문에 응답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이 아무리 형통해 보이지만 그러나 졸지에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거나 질투하지 말고 오직 믿음으로 살라고 하셨습니다. 하박국 2:4절에 보면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말라기서의 항의자들은 참된 선지자들이 한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질문 같지만 그러나 그들은 이미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고 사는 자들입니다. 1장에서 본 대로 그들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그 멸시가 구체적으로 무엇이었습니까? 율법에서 명하는 대로 그들은 하나님께 거룩한 제물을 드려야 하는데 도리어 그들은 하나님께 눈먼 것, 저는 것, 병든 것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 제사를 드리면서도 변폐스럽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들이 그런 하나님을 멸시하는 제사를 드리면서도 자기 자신들은 하나님을 멸시하고 있다는 것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 나름대로 율법에 순종해서 하나님께 제사를 잘 드리고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자신들은 제사를 잘 드리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복을 주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돌아보고 회개하기는 커녕 ‘우리가 무얼 잘못하였는가?’하는 하나님께 항의성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괴로우신 것입니다.

 

이사야 1장에도 보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이사야 1:10-17절에 보면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절기를 지키고 무수한 헌물을 가지고 오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절기지킴과 제물 드림과 분향이 오히려 자신을 괴롭게 하고 피곤하게 하고 무거운 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견디지 못하겠다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손에 피가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고 나가서는 악을 행하기에 바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사를 드리기 전에 먼저 악업을 버리고 공의를 구하며 고아와 과부를 신원하라고 하십니다. 지금 말라기 선지자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스라엘을 고발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공의의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냐?’며 힐문(詰問)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대답하셨습니까? 3:1절에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자신의 사자를 보내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내 사자’라는 말이 말라기라는 이름의 뜻과 같은 말입니다. 그러나 말라기가 하나님의 사자이지만 말라기가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을 받아서 예언한 본문의 ‘내 사자’란 세례 요한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1장에 보면 세례 요한이 옥에 갇힌 후에 자기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예수님이 정말 오실 메시아인지 물어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요한이 기대했던 메시아와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일 사이에 괴리감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요한에게 예수님께서는 4-6절에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마 11:4-6). 세례 요한의 이 문제가 바로 유대인들의 문제였습니다. 유대인들의 한계가 바로 이런 모습입니다. 그들은 메시아가 오시기를 고대하였지만 자기들 나름대로의 메시아관이 정립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메시아 상에 맞지 않았기 때문에 배척해 버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의 질문에 대답을 한 후에 무리들에게 요한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10절에 보면 “기록된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네 앞에 예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고 하셨습니다(마 11:10). 그런데 예수님의 이 말씀이 바로 말라기서 3:1절의 말씀입니다.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 바 주께서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말 3:1). 여기서 분명히 여호와께서 이르시는 말씀이신데 예수님은 이 여호와의 자리에 자신을 그대로 대입시키시는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언행을 유대인들이 견디지를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고자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예언한대로 하나님의 사자가 세례 요한으로 왔고, 그 세례 요한이 증거 한 언약의 사자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이 분이 바로 주가 되십니다. 주란 여호와 하나님께 호칭한 내용인데 예수님을 향하여 주라고 고백한 것이 성령이 임한 사도들의 한결같은 증거였습니다. 말라기 3:1b절을 보면 주께서 홀연히 전에 나타나신다고 합니다. “또 너희의 구하는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홀연히 나타난다’는 것은 예기치 않았는데 갑자기 나타나는 것을 말합니다. 즉 주께서 심판의 주로 임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대로 언약의 사자가 임하셨습니다.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면 주께서 전에 임한다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복음서에 보면 말라기서의 예언대로 예수님께서 성전에 나타나셨습니다. 누가복음 2:41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께서 12세 때 유월절을 당하여 그 부모님들과 함께 그 전례를 좇아 예루살렘에 올라갔습니다. 그들은 모든 유월절 행사를 마친 후 다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부모들은 예수도 당연히 일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룻 길을 간 후에 예수가 없어진 줄 알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찾으러 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선생들과 앉아 듣기도 하고 묻기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모들은 그 모습을 보고 놀랐습니다. 이에 모친 마리아가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고 했습니다(눅 2:48). 그 때 예수님께서 대답하시를 누가복음 2:49절에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라고 하셨습니다. 부모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여튼 말라기 선지자의 말씀과 같이 주님께서 성전에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공생애 기간에 또한 성전을 청결하게 하셨습니다(마 21:12-17). 주님께서는 성전을 청결하게 하실 뿐만 아니라 아예 헐어 버리고 삼일 만에 다시 세우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심으로 참된 성전을 세우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의 전에 임하신 주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이 예수님이 바로 그들의 사모하는 언약의 사자로 오신 것입니다.

 

그러면 언약의 사자가 오셔서 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2절에 보면 “그의 임하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의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언약의 사자가 오셔서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언약의 사자가 심판의 주가 되심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께서 임하시는 날, 즉 여호와의 날을 기다렸지만 그러나 그날이 구원의 날이 아니라 심판의 날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예언은 다른 많은 선지자들도 예언한 것입니다. 주의 날이 구원과 기쁨의 날이 아니라 오히려 심판의 날이 되기에 두려운 날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께서 임하셔서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이루어내시는 것입니다. 심판과 구원이 함께 일어나는 것입니다. 2-4절을 보면 “그의 임하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의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케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케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 그 때에 유다와 예루살렘의 헌물이 옛날과 고대와 같이 나 여호와께 기쁨이 되려니와”라고 했습니다. 주께서 임하시는 날에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불이란 부정한 것을 소멸하는 동시에 정화시키는 일도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심판하실 자를 심판하시고 정결케 하신 자를 정결케 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세탁하는 사람들이 잿물로 옷감을 깨끗하게 하는 것처럼 언약의 사자가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 또한 주께서는 금과 은을 연단하는 것처럼 레위자손을 연단하여 의로운 제물을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고 합니다.

 

그동안 드린 제물이란 1장에서 본 것처럼 여호와를 멸시하는 제물이었지만 이제는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는 제물을 드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제물이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불 심판을 받으심으로 자기 백성을 정결케 하시는 일입니다. 불로 금과 은을 연단하시는 것처럼 연단하셔서 의로운 제물을 드리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때에 유다와 예루살렘의 헌물이 옛날과 같이, 고대와 같이 여호와께 기쁨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기쁨으로 드리고 하나님도 기뻐하신 제물 드림은 많지 않습니다. 온 백성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드린 것이 몇 번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구약의 제사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언약의 사자가 임하셔서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실 수 있도록 일을 이루어 내셔야 하시는 것입니다. 그 일을 이루시는 일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난 것입니다. 자기들이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자들은 예수님을 배척하였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힘과 능력으로 하나님께 온전한 제물을 드릴 수 있다고 여긴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는 무엇이 가득 들어 있었습니까? 마태복음 23:23-26절을 보면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소경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께서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 대한 책망의 말씀 가운데 아주 일부분입니다. 이런 말씀을 예수님께서 하신 것은 이미 구약의 말라기 시대 때에 그들은 하나님을 멸시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 속에 이런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외식이 다 들어있었던 것입니다.

 

말라기 3:5절을 보면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술수하는 자에게와 간음하는 자에게와 거짓 맹세하는 자에게와 품군의 삯에 대하여 억울케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케 하며 나를 경외치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거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주님께서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고 합니다. 곧 주님이 심판하신다고 하십니다. 술수하는 자, 간음하는 자, 거짓 맹세하는 자, 품꾼의 삯에 대하여 억울케 하는 자,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를 압제하며 억울하게 하는 자, 여호와를 경외치 아니하는 자들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말라기 시대의 고발이나 예수님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고발하는 내용이나 별 다를 바가 없습니다. 겉으로는 제사를 드리고 제사장 노릇하고 있지만 그 속은 더러움으로 가득하기에 예수님께서 소멸하는 불로 임하셔서 그들을 다 태워버리시는 것입니다.

 

그 심판과 동시에 자기의 남은 백성들은 정결하게 되어 드려지는 것입니다. 그 정결이란 주님의 피 뿌림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왜 남은 백성들이 정결케 되어 하나님께 드려지는 가하면 여호와는 변역지 아니하시기 때문입니다. 6절을 보면 “나 여호와는 변역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변역하지 않기 때문에 남은 백성들이 정결케 되고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입니다. 다 진멸당하고 심판받아 마땅하지만 하나님의 자기 언약을 위하여 남은 백성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이 일은 예수님이 이 땅에 초림 하셔서 부터 지금까지 계속되는 현상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는 심판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스라엘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로마서 15:16절을 보면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받은 은혜의 직분이란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입니다. 복음을 전함으로 이방인이 예수님을 믿고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하나님께서 받으시게 하는 일인 것입니다. 지금도 이 일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끝내실 때가 바로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자기 언약에 변역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약속하신 대로 언약의 사자 곧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주신 그 은혜를 알게 하시고, 그 주님의 은혜 위에 굳게 서서 오직 주님의 증인으로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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