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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신 14:22-29
강설날짜 2019-05-22

2019년 신명기 공부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워라

말씀:신명기 14:22-29

 

우리는 지난 시간에 죽은 자와 먹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의 거룩함을 나타내야 함을 배웠습니다. 오늘 말씀은 지난 시간에 계속되는 말씀으로 십일조 규례를 통해서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는 법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22-23절을 보면 “너는 마땅히 매년에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우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고 합니다. 이 말씀에 보면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우라고 합니다. 그러면 신명기 기자는 무엇을 통해서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라고 합니까? 십일조를 통해서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정착하여 살게 되면 매년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리라고 합니다. 토지 소산의 십일조뿐만 아니라 우양 곧 가축도 십일조로 드리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먹으라고 합니다. 여기서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란 성전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속의 땅에서 매년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리고 그것을 성전에서 곧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먹으라고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이방인이 먹는 것을 먹지 않음으로써 거룩한 백성됨을 나타내야 했습니다. 우리는 이것에 대해서 지난 시간에 살펴봤습니다(1-21). 오늘 본문에서는 우리가 먹을 때에 이방인이 하지 않는 것을 함으로써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거룩함을 나타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십일조입니다. 모든 수확물과 가축의 번성이 있을 때 십분지 일을 드려서 여호와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 곧 성전에 가서 여호와 앞에서 먹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서 항상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라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드리면서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운다는 것은 모든 수확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하고 전하는 것이기에 온 가족이 기뻐하는 잔치가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 여호와의 은혜를 기억하고 경외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전이 너무 멀면 어떻게 하라고 합니까? 돈으로 바꾸어 가서 다시 사먹게 합니다. 오늘 본문 24-27절을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 네게서 너무 멀고 가는 길이 어려워서 그 풍부히 주신 것을 가지고 갈 수 없거든 그것을 돈으로 바꾸어서 가지고 가라고 합니다. 돈으로 바꾸어 가서 그 곳에서 네가 좋아하는 것을 사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권속과 함께 먹고 즐거워하라고 합니다. 특히 24절에 보면 ‘그 풍부히 주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토지 소산이나 우양이 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풍부하게 주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돈으로 바꾸어 가서 모든 가족들과 함께 마음에 원하는 것 곧 소나 양이나 포도주와 독주 등을 사서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감사 제사를 드리고 먹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를 하나님 앞에서 먹을 때에 얼마나 감사와 기쁨이 넘쳤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것을 통해서 모든 수확물과 가축의 번성이 이스라엘 자신들의 노력과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 여호와께로부터 왔음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리고 가축의 십일조를 드려 그것을 하나님 앞에서 온 가족들이 더불어 먹으며 기뻐하게 하시므로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십일조를 드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게 하며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우게 하라고 하시면서 특별히 레위인을 저버리지 말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 27절을 다시 보면 “네 성읍에 거하는 레위인은 너의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자니 또한 저버리지 말지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레위인은 기업이 없습니다. 여호와가 그들의 기업입니다. 곧 기업을 받은 지파들이 여호와께 드리는 십일조가 그들의 응식 곧 그들의 몫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를 드려서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을 때에 레위인들을 저버리지 말고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곧 그들로 먹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리는 십일조가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제사장들의 응식 곧 오늘날로 하면 생활비로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7절에서 레위인을 ‘버린다’(,bz"[; 아자브)라는 표현은 신명기 28:20절의 ‘하나님을 잊다’ 곧 ‘하나님을 버린다’고 할 때에 사용한 단어와 같습니다. 신명기 28:20절을 보면 “네가 악을 행하여 그를 잊으므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여호와께서 저주와 공구와 견책을 내리사 망하며 속히 파멸케 하실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그를 잊으므로’라고 할 때 그가 바로 각주에 보면 여호와를 가리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잊다’라는 말이 히브리 원어로 보면 오늘 본문 27절에서 레위인을 저버린다고 할 때 쓰여진 ‘,bz"[;’(아자브)입니다. 그러므로 레위인을 저버린다는 것은 곧 하나님 여호와를 저버리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레위인을 백성의 순종과 예배의 상징으로 두셨습니다. 그들에 대한 생활을 보장하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훈련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28-29절을 보면 “매 삼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너의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매년 소산의 십일조뿐만 아니라 매 삼년마다 레위인과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고아와 과부들을 위해서 십일조를 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십일조는 각 성에 저축하여 두었다가 레위인과 성중에 거하는 외국인과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고 합니다. 이것은 단지 가난한 자들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것을 행함으로써 여호와께 복을 받게 하려 함입니다. 29b절을 다시 보면 “…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이것을 통해서도 모든 축복이 하나님 여호와께로 옴을 알게 하여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법을 배우게 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십일조 이야기를 보면 결국 모든 것이 누구로부터 주어지는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 여호와께서 풍부히 모든 것을 주신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주어지는 것은 이미 노아의 언약에서도 약속된 것입니다. 노아 홍수 이후에도 땅이 있을 동안에 계절의 변화와 심고 거둠이 계속 되게 하시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창 8:20-22). 또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도 주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지금 모세는 그렇게 되어 질 것을 눈앞에 보면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는 것을 항상 배우도록 하기 위하여 이런 율법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이 말씀을 제대로 순종하였습니까? 결코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여호수아가 앞장서서 가나안을 정복하고 사사시대가 되는데 사사시대 동안 제대로 십일조를 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레위인들이 먹고 살길이 없어서 뿔뿔이 흩어져서 심지어 개인 가정집에 우상을 세워놓고 복이나 빌어주는 그런 신세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사사기 17장에 보면 에브라임 산지에 미가라 이름 하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베들레헴에 우거하던 레위인 한 사람이 거할 곳을 찾아 에브라임 산지 미가의 집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미가가 “너는 어디로부터 오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레위인은 “유다 베들레헴 레위인으로 거할 곳을 찾으러 가노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미가는 “네가 나와 함께 거하여 나를 위하여 아비와 제사장이 되라”고 합니다. 그리하면 “해마다 은 열과 의복 한 벌과 식물을 주리라”고 합니다. 이에 레위인이 그 집에 들어가 그 집의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27절에서 레위인을 저버리지 말라고 했는데 그들을 저버렸기에 먹고 살길이 없어 떠돌다가 개인 가정의 복을 빌어주는 제사장으로 전락한 것입니다. 이것은 곧 이스라엘이 하나님 여호와를 버린 모습입니다.

 

이런 사시시대를 지나고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성전이 완성되고 중앙 성소가 완성되면서 십일조가 시행되지만 그러나 왕들에 따라서 성전보다 우상숭배가 더 심하여 지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십일조가 제대로 시행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로인해 더구나 각 지역에 있는 레위인들은 더 어려운 처지에 있었습니다. 분명히 네 성읍에 있는 레위인들을 돌보고 또한 매 3년마다 십일조를 저축하여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를 돌보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그렇게 시행된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정말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는 왕들이 일어나면 잠간 성전을 수리하고 십일조가 제대로 시행되도록 정비 하지만 그런 왕이 죽고 나면 또다시 악한 왕들은 우상숭배에 열중하였습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객과 고아와 과부와 레위인들은 더 어려운 형편에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전에서 제사가 끊어지니 속죄의 길도 끊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됨으로 이스라엘은 범사에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언약적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망하여 포로로 잡혀가고, 남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망하여 포로로 잡혀 갔습니다. 그제서야 그들은 자신들의 죄악을 깨닫고 회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살면서 여호와의 전에 십일조를 드리며 가족과 가난한 이웃과 함께 지내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를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포로 생활 가운데서 나온 노래가 바로 시편 137편과 같은 노래인 것입니다. 시편 137:1-6절을 보면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케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우리가 이방에 있어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꼬.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 재주를 잊을지로다.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지 아니하거나 내가 너를 나의 제일 즐거워하는 것보다 지나치게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 천장에 붙을지로다”고 했습니다. 이 시편 기자의 노래의 심정이 느껴집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그들을 바벨론 포로에서 돌이켜 주십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70년 만에 포로에서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하고 새롭게 율법을 잘 지키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느헤미야서를 보면 성전을 재건하고 십일조 제도를 회복해 놓고 바벨론에 잠시 다녀온 동안에 또다시 십일조를 하지 않아서 레위인들이 흩어져 버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레위인들이 흩어진다는 것은 객과 고아와 과부는 더 말할 것도 없는 지경이 되어버린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입어 사는 것임을 잊어버린 우상숭배자의 모습인 것입니다. 모든 소득이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여호와 경외함을 잊어버리면 그들이 저주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율법을 잘 지키고자 일어난 운동이 바리새 운동입니다. 이들은 철저하게 십일조를 계산합니다. 텃밭에 가꾼 향신료까지 십일조를 다 계산합니다. 뿐만 아니라 구제도 열심히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범사에 복을 받는다는 모세의 율법대로 행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 속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입술로는 여호와를 공경하여도 그 마음은 여호와에게서 멀어졌습니다. 그런 모습이 또다시 나타나는 것이 십일조가 많아서 성전까지 가져오기 힘들면 돈으로 바꾸어 와서 성전 가까이에서 사면된다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이용하여 사욕을 채우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4-26절의 말씀을 이용하는 모습이 요한복음 2장에 나타납니다. 요한복음 2:13-17절을 보면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의 앉은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고 했습니다.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우라고 십일조의 규례와 매 삼년마다 십일조를 더 하여서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돌보라고 하였는데 오히려 그들은 이런 율법을 이용하여 자기들의 의를 쌓고 종교계급을 특권화 하여 자기들의 잇속이나 채웠던 것입니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오늘날도 십일조를 하여 복을 받으라고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은 복을 받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저주 아래 들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10절을 보면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십일조를 잘 해서 복을 받겠다고 하는 것은 율법 행위에 속한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율법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면 저주 아래 있게 된다는 말씀과 같이 저주 아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약시대의 복이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예수님 안에 있는 것이 복입니다. 예수님께 무릎을 꿇은 것이 하나님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 요한복음 2:18-22절을 보면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뇨.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 륙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로 참된 성전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성전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 복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전에 나와서 십일조를 해야 복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행위로는 결코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할 수가 없음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서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참 성전이 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참 성전이 되실 뿐만 아니라 온전한 제물이 되셨습니다. 이것만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전과 제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 외에는 다른 것으로는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사람이 행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오늘날도 특정 건물을 성전이라고 여기고 십일조를 율법을 따라서 드리면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저주 아래로 들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11-14절을 보면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라 이를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복을 이방인이 어떻게 받습니까? 믿음으로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의 저주를 다 받으셨기에 예수님을 믿는 것이 복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운다는 것은 이제 신약시대에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도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믿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기도하시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신약의 성도는 십일조를 해서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음으로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 복을 성경은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4:7-9절을 보면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모든 것이 주의 것이라는 고백이 나오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는 법을 항상 배우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주님 안에서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는 법을 잘 배워 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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