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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신 11:18-32
강설날짜 2019-04-03

2019년 신명기 공부

하나님의 언약적 축복과 저주

말씀:신명기 11:18-32

 

지난 시간에 우리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행하신 일을 기억하게 하시는 것을 살펴봤습니다. 오늘 말씀은 지난 시간에 계속되는 말씀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적 축복과 저주에 관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말씀을 통해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18-20절을 보면 “이러므로 너희는 나의 이 말을 너희 마음과 뜻에 두고 또 그것으로 너희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너희 미간에 붙여 표를 삼으며 또 그것을 너희의 자녀에게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 하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하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가서 살아야 할 땅은 애굽 땅과 다릅니다. 애굽은 채소밭에 물을 발로 댈 수 있는 곳이지만 가나안 땅은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적절하게 내려야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능력이 증거 되는 땅이 아니라 하나님의 돌보심이 증거 되는 땅입니다. 그래서 세초부터 세말까지 여호와의 눈이 살피시는 땅이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돌보시고 계시기에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그 땅에서 복을 받고 살 것이지만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과 뜻에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행동이란 그 사람의 마음과 뜻에서 나오기에 그 사람의 마음과 뜻에 하나님의 말씀을 담아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과 뜻에 하나님의 말씀을 담아두기 위하여 말씀을 기록하여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이마에도 붙여서 표를 삼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녀에게 가르치되 언제 어디서나 가르치라고 합니다. 또한 문설주와 바깥문에도 기록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이렇게 하면 어떻게 하시겠다고 합니까? 21-25절을 보면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너희 열조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서 너희의 날과 너희 자녀의 날이 많아서 하늘이 땅을 덮는 날의 장구함 같으리라. 너희가 만일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이 모든 명령을 잘 지켜 행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도를 행하여 그에게 부종하면 여호와께서 그 모든 나라 백성을 너희 앞에서 다 쫓아내실 것이라. 너희가 너희보다 강대한 나라들을 얻을 것인즉 너희의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다 너희 소유가 되리니 너희의 경계는 곧 광야에서부터 레바논까지와 유브라데 하수라 하는 하수에서 서해까지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 밟는 모든 땅 사람들로 너희를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게 하시리니 너희를 능히 당할 사람이 없으리라”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너희 열조에게 주리라 맹세하신 땅에서 너희의 날과 너희 자녀들의 날이 많아서 하늘이 땅을 덮듯이 장구할 것이라고 합니다. 22절에 보면 앞의 말씀을 다시 강조하며 네 말을 잘 듣고 모든 명령을 순종하며 여호와를 사랑하며 그 말씀에 부종하면 그 강한 나라들을 쫒아내고 그곳을 너희의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다 차지할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부종한다’는 것은 히브리 원어로 ‘qb'D;’(다바크)인데 딱 들어붙어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다 차지한다’는 말은 그들이 밟는 땅을 다 차지한다는 말이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범위 안에서 다 차지할 것을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 26-32절을 보면 “내가 오늘날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좇으면 저주를 받으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얻을 땅으로 너를 인도하여 들이실 때에 너는 그리심산에서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라. 이 두 산은 요단강 저편 곧 해 지는 편으로 가는 길 뒤 길갈 맞은편 모레 상수리나무 곁의 아라바에 거하는 가나안 족속의 땅에 있지 아니하냐. 너희가 요단을 건너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서 얻으려 하나니 반드시 그것을 얻어 거기 거할지라. 내가 오늘날 너희 앞에 베푸는 모든 규례와 법도를 너희는 지켜 행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여호와께서는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둔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순종하면 복을 받을 것이지만 명령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배반하여 다른 신을 섬기게 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온 백성들에게 가나안에 들어가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을 다시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그리심 산에서 축복을 선언하고 에발 산에서 저주를 선언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심 산과 에발 산에서 축복과 저주를 선언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신명기 27장과 28장에 보면 그리심 산에 열두 지파중 절반이 서고 에발 산에 역시 열두 지파 중 절반이 서서 축복과 저주를 선언하게 하고 말씀마다 아멘하게 합니다. 이 말씀대로 여호수아서 8장에 보면 여호수아가 가나안에 들어가서 그리심 산과 에발 산에서 이 말씀 그대로 순종하여 축복과 저주를 선언합니다. 여호수아 8:30-35절을 보면 “때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에발산에 한 단을 쌓았으니 이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한 것과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철연장으로 다듬지 아니한 새 돌로 만든 단이라. 무리가 여호와께 번제와 화목제를 그 위에 드렸으며 여호수아가 거기서 모세의 기록한 율법을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그 돌에 기록하매 온 이스라엘과 그 장로들과 유사들과 재판장들과 본토인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 제사장들 앞에서 궤의 좌우에 서되 절반은 그리심산 앞에, 절반은 에발산 앞에 섰으니 이는 이왕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하라고 명한 대로 함이라. 그 후에 여호수아가 무릇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축복과 저주하는 율법의 모든 말씀을 낭독하였으니 모세의 명한 것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온 회중과 여인과 아이와 그들 중에 동거하는 객들 앞에 낭독하지 아니한 말이 하나도 없었더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이스라엘로 하여금 그리심 산과 에발 산에 절반씩 서게 하고서는 여호수아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축복과 저주의 모든 말씀을 낭독합니다. 그러므로 가나안 땅은 이제부터 이 축복과 저주의 말씀대로 움직여지는 땅이 된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른 비와 늦은 비가 때를 따라 내릴 것이며, 그로 말미암아 축복의 결실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나 불순종하면 하늘이 놋이 되어 가뭄과 기근이 닥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이후의 이스라엘 역사는 어떻게 흘러갔습니까? 그들이 복을 받은 것은 잠시 잠간이고 얼마나 많이 저주를 받았는지 결국 솔로몬 사후에 나라가 남북으로 나누어지고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고, 남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였습니다. 그러나 언약에 신실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이러한 배반에도 불구하고 자기 언약을 이루시기 위해 바벨론 포로에서 70년 만에 돌이키십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자들은 이제는 저주를 받지 말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자는 운동을 일으킵니다. 그것은 율법을 철두철미하게 지키자는 운동이었습니다. 이런 운동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이들 역시 율법이 마음과 뜻에 기록이 되는 것이 아니라 외식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마태복음 23:13-36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고 하는 자들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열심히 전도한다고 하고서는 배나 지옥 자식을 만들어버립니다. 맹세에 대해서도 금과 예물에 대한 맹세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탐심이며, 돈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그 안에는 온갖 탐욕과 방탕이 가득하며 회칠한 무덤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율법을 문자대로 지킨다고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인간도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복을 받을 수가 없다는 것이 율법을 통하여 증거가 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복과 저주를 앞에 두고 너희가 복을 받기 위하여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순종하라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랑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율법을 지킨다고 하면서도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율법을 지킨다는 대견스러운 자신들만 사랑한 것입니다. 그 속에는 온갖 탐심이 가득하였기에 율법을 아예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보다 더 역겨운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스스로 복을 받을 만한 수준이 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복을 받기 위하여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알지 못하는 신에게 정성을 바치는 자들이 나옵니다. 스스로 선과 악의 기준을 정해놓고서 악을 누르고 선을 행하여 복을 받으려고 합니다. 부흥사들이 복 받을 짓을 해야 복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어떤 노력으로도 인간의 힘으로는 복을 받을 수가 없고 저주만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 율법이 증거 하는 바이며, 율법을 받은 이스라엘의 증거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저주가 선포되는 에발 산에 하나님의 단이 쌓아지는 것입니다. 축복의 산인 그리심 산에 단이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저주의 산인 에발 산에 단이 쌓아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저주를 담당하는 제단이 되는 것입니다. 구약의 제단이란 백성들의 죄를 정결한 짐승의 피로 속함을 받는 단입니다. 이런 단이 저주가 선포되는 에발 산에 세워짐으로 장차 저주가 어떻게 해결될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제단이란 결국 예수 그리스도로 연결이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대신 저주를 받는 것입니다. 이런 약속이 새 언약으로 주어집니다. 새 언약의 내용은 옛 언약처럼 돌판에 기록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기록되는 방식입니다(렘 31:31-34). 이것은 힘으로도 능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신으로 되는 것입니다(슥 4:6). 구약의 예언자들이 이 날을 예언하고 기다린 것입니다.

 

드디어 때가 이르렀습니다. 갈라디아서 4:4-7절을 보면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고 했습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기 위함입니다. 갈라디아서 3:10-14절을 보면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라 이를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이 왜 저주 아래 있는 것입니까?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율법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한다고, 그래서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고 하는 자들, 예를 들면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인 바울과 같은 경우 왜 저주 아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율법을 지켜내었다는 자기 의 때문입니다. 이것이 선악과를 따 먹은 인간의 선악개념에 사로잡힌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새 언약의 방식대로 그들의 마음에 새롭게 기록이 되지 않는 한 다른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 언약을 이루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대신 죽는 길 외에는 달리 의롭다 함을 받을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신 저주를 받으신 것이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저주가 선포되는 에발 산에 세워진 제단처럼 저주를 대신 받아내심으로 자기의 백성들을 의롭게 하시는 것이 새 언약의 복인 것입니다. 이런 복을 예수님께서 주시기 위하여 언약의 피를 흘리시고 부활승천하신 후에 성령을 보내신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게 되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됩니다. 하나님이 아버지면 아버지의 나라를 상속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보이는 것들은 다 변동될 것들이며, 영원하지 아니합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입니다.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나라입니다. 이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것이 참된 복인 것입니다.

 

로마서 8:18-25절을 보면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고 했습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입니다. 모든 피조물이 탄식합니다.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자들도 탄식하며 기다립니다. 그렇습니다. 썩어짐의 종노릇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이것이 참된 복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영광도 다 썩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썩어질 세상의 영광에 소망을 둘 것이 아니라 다시 오실 주님께 소망을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연약하기에 성령 하나님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성도 안에서 기도하고 계십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기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정죄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다시 오시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기다리며 사는 자가 참으로 복된 사람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오직 주님의 영광에 참여할 소망 가운데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의 말씀을 따라 사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극치에 이를 하나님 나라에 참예하는 복된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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