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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상범
성경본문 삿 13:1-25
성경본문내용 (1)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사십년 동안 블레셋 사람의 손에 붙이시니라(2)소라 땅에 단 지파의 가족중 마노아라 이름하는 자가 있더라 그 아내가 잉태하지 못하므로 생산치 못하더니(3)여호와의 사자가 그 여인에게 나타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가 본래 잉태하지 못하므로 생산치 못하였으나 이제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4)그러므로 너는 삼가서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지며 무릇 부정한 것을 먹지 말지니라(5)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치운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6)이에 그 여인이 가서 그 남편에게 고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사람이 내게 임하였는데 그 용모가 하나님의 사자의 용모 같아서 심히 두려우므로 어디서부터 온 것을 내가 묻지 못하였고 그도 자기 이름을 내게 이르지 아니하였으며(7)그가 내게 이르기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무릇 부정한 것을 먹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죽을 날까지 하나님께 바치운 나실인이 됨이라 하더이다(8)마노아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주여 구하옵나니 주의 보내셨던 하나님의 사람을 우리에게 다시 임하게 하사 그로 우리가 그 낳을 아이에게 어떻게 행할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게 하소서(9)하나님이 마노아의 목소리를 들으시니라 여인이 밭에 앉았을 때에 하나님의 사자가 다시 그에게 임하셨으나 그 남편 마노아는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10)여인이 급히 달려가서 그 남편에게 고하여 가로되 보소서 전일에 내게 임하였던 사람이 또 내게 나타났나이다(11)마노아가 일어나 아내를 따라가서 그 사람에게 이르러 그에게 묻되 당신이 이 여인에게 말씀하신 사람이니이까 가라사대 그로라(12)마노아가 가로되 당신의 말씀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오며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행하오리이까(13)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여인에게 말한 것들을 그가 다 삼가서(14)포도나무의 소산을 먹지 말며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무릇 부정한 것을 먹지 말아서 내가 그에게 명한 것은 다 지킬 것이니라(15)마노아가 여호와의 사자에게 말씀하되 구하옵나니 당신은 우리에게 머물러서 우리가 당신을 위하여 염소 새끼 하나를 준비하게 하소서(16)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에게 이르시되 네가 비록 나를 머물리나 내가 너의 식물을 먹지 아니하리라 번제를 준비하려거든 마땅히 여호와께 드릴지니라 하니 이는 마노아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 알지 못함을 인함이었더라(17)마노아가 또 여호와의 사자에게 말씀하되 당신의 이름이 무엇이니이까 당신의 말씀이 이룰 때에 우리가 당신을 존숭하리이다(18)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를 묻느냐 내 이름은 기묘니라(19)이에 마노아가 염소새끼 하나와 소제물을 취하여 반석 위에서 여호와께 드리매 사자가 이적을 행한지라 마노아와 그 아내가 본즉(20)불꽃이 단에서부터 하늘로 올라가는 동시에 여호와의 사자가 단 불꽃 가운데로 좇아 올라간지라 마노아와 그 아내가 이것을 보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니라(21)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와 그 아내에게 다시 나타나지 아니하니 마노아가 이에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 알고(22)그 아내에게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으니 반드시 죽으리로다(23)그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우리를 죽이려 하셨더면 우리 손에서 번제와 소제를 받지 아니하셨을 것이요 이 모든 일을 보이지 아니하셨을 것이며 이제 이런 말씀도 우리에게 이르지 아니하셨으리이다 하였더라(24)여인이 아들을 낳으매 이름을 삼손이라 하니라 아이가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더니(25)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마하네단에서 여호와의 신이 비로소 그에게 감동하시니라
강설날짜 2012-11-21

2012년 11월 21일 한결교회 수요강설
사사기 제23강

 

삼손의 출생

 

말씀 : 삿 13:1-25

 

삼손은 사사기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이고, 또 그의 생애가 아주 드라마틱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삼손은 이름 그 자체가 의미하는 것처럼 강한자입니다. 강한 자로 태어나서 한번 싸울 때에는 나귀 턱뼈를 가지고도 일천 명을 죽일 수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출생할 때부터 남달랐습니다. 하나님 앞에 특별한 축복과 예언 속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그의 생애는 ‘들릴라’라는 한 기생에 의해서 파멸되고 말았고, 그 이후 두 눈이 뽑히고 감옥에 갇혀서, 결국에는 적의 신전을 무너뜨리면서 적군과 함께 장렬하게 죽어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삼손의 생애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실패했다고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생애가 놀랍게 묘사되고 있고, 성공했다고 말하기에는 뭔가 미진한 것 같은 인물입니다. 사사기의 기록된 내용들이 어떤 사람의 영웅성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생각한다면, 우리는 삼손의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의 경고와 꾸짖음의 음성을 들어야 하고, 또 삼손과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또한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이 삼손의 이야기를 생각하기에 앞서서 먼저 생각해야 할 것 3가지가 있습니다.

 

1) 하락세의 절정


사사기에서 이 삼손 이야기는 모든 면에서 가장 어두운 시대에 속합니다. 이스라엘이 또 다시 우상숭배의 죄악에 빠지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블레셋의 손에 파셨습니다. 40년 동안 그 혹독한 시련과 고통을 겪으면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찾아 부르짖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사사기 처음에 그렇게 용맹하던 지파인 유다지파가 이 삼손 이야기에서는 완전히 굴욕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더욱이 사사만 놓고 따져보아도 삼손은 사사들 중에서 가장 형편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전에는 사사를 중심으로 백성들이 뭉쳐서 대적에 항거하여 전쟁했는데, 이제는 유일하게 한 사람 삼손만이 블레셋을 대적합니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면에서 가장 암울한 시대가 바로 삼손시대입니다. 사사기에서 계속되었던 하락세는 바로 삼손에서 절정에 이른 것입니다.

 

2) 삼손이 나실인이라는 사실


우리는 삼손 이야기를 살펴보면서, 삼손이 나실인이라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삼손 이야기는 한 마디로 말해서 그가 어떻게 이 나실인의 서원을 깨트려가는지, 그리고 결국에는 다시 그 서원을 지키게 되는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3)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


삼손은 모든 사사들 가운데 가장 특별하고 축복된 출생과 부르심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비멜렉을 제외한) 역사상 최악의 사사였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삼손까지 사용하셔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가 그렇기 때문에 더욱 찬란하게 빛이 납니다. 우리는 삼손 이야기를 통해서 이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는 오늘 본문 초반에서부터 나타납니다.

 

(1)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사십년 동안 블레셋 사람의 손에 붙이시니라(2)소라 땅에 단 지파의 가족중 마노아라 이름하는 자가 있더라 그 아내가 잉태하지 못하므로 생산치 못하더니

 

그전까지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방의 손에 파시면, 이스라엘이 환란가운데 고통하면서 하나님께 구원을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사사를 세워 그들을 구원하여주셨습니다. 그러나 삼손 이야기에서는 중간단계가 생략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블레셋의 손에 파셨는데도 그들이 하나님을 찾으며 구원을 부르짖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죄에 대하여 징계하셨는데도 그냥 맞기만 하고 얻어터지기만 할 뿐, “아~ 우리가 하나님께 범죄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징계하시는구나.” 이런 생각을 도무지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생각나지 않고 하나님을 찾을 수 없을 만큼 그들의 영적 상황이 악화되었음을 보여줍니다. 더 나아가서 그들은 이방의 압제를 받는 것에 길들여져서 구원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11)유다 사람 삼천명이 에담 바위 틈에 내려가서 삼손에게 이르되 너는 블레셋 사람이 우리를 관할하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같이 행하였느냐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들이 내게 행한 대로 나도 그들에게 행하였노라(삿 15:11)

 

삼손이 블레셋 사람들을 쳐서 파하였으면, 유다 사람들은 마땅히 삼손에게 감사를 표하고 따라야 하는데, “블레셋 사람들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데, 왜 쓸데없이 말썽을 일으키느냐” 하면서 도리어 삼손에게 따집니다. 이것이 노예근성입니다. 이방의 압제 하에서의 비참한 노예의 삶에 적응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이방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구원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 삼손을 보내십니다. 이스라엘은 언약에 신실치 못하여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잊어버려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잊어버리실 수도, 포기하실 수도 없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자기에게 구원을 부르짖지 않았어도, 하나님께서는 일방적이고 주권적인 섭리로 그들을 구원하시고 하셨습니다.

 

(2)소라 땅에 단 지파의 가족중 마노아라 이름하는 자가 있더라 그 아내가 잉태하지 못하므로 생산치 못하더니(3)여호와의 사자가 그 여인에게 나타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가 본래 잉태하지 못하므로 생산치 못하였으나 이제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4)그러므로 너는 삼가서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지며 무릇 부정한 것을 먹지 말지니라(5)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치운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한 불임 여성인 마노아의 아내가 소개되는데, 그 어디에도 이 여성의 이름이 소개되지 않습니다. 이 불명의 여인에게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서 아들을 낳을 것이고 그는 나실인이 되어 이스라엘을 블레셋의 손에서 구원할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이것이 이를테면 이스라엘을 구원할 사사를 세우시는 장면입니다. 이것이 이전 사사들을 세우신 경우와는 완전히 다른 방법입니다. 이전까지는 이미 있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사사로 세워 권능을 주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게 하셨고, 또 입다 같은 경우는 사람들이 입다에게 찾아와서 사사가 되어달라고 간구함으로써 사사가 되었지만, 이번 경우는 인간의 어떠한 개입도 없고, 이미 있는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을 불러 쓰시지도 않으셨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 가운데 친히 한 아기를 보내셔서 그로 이스라엘을 구원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기는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께 택함 받은 사사요, 하나님께 바치운 나실인이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하는 말의 표현이 독특합니다. “그가 구원하기 시작하리라”라고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삼손을 인해서 이스라엘이 구원받지는 못할 것임을 시사합니다. 블레셋 족속은 지금으로부터 해서 다윗 때까지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최대의 적으로 부상하게 됩니다. 이 블레셋을 대적하는 일을 삼손이 시작할 것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 완성은 다윗 때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면 삼손이 태어날 때부터 나실인이라고 했는데, 우리가 이 의미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 나실인 규례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2)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남자나 여자가 특별한 서원 곧 나실인의 서원을 하고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거든(3)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하며 포도주의 초나 독주의 초를 마시지 말며 포도즙도 마시지 말며 생포도나 건포도도 먹지 말지니(4)자기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포도나무 소산은 씨나 껍질이라도 먹지 말지며(5)그 서원을 하고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은 삭도를 도무지 그 머리에 대지 말 것이라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날이 차기까지 그는 거룩한즉 그 머리털을 길게 자라게 할 것이며(6)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날 동안은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 것이요(7)그 부모 형제자매가 죽은 때에라도 그로 인하여 몸을 더럽히지 말 것이니 이는 자기 몸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표가 그 머리에 있음이라(8)자기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 그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니라(민 6:1-8)

 

하나님께서 나실인 제도를 두셔서 나실인을 뽑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대개 정통 유대인 랍비들의 주장은 당시 제사장의 인원이 많이 부족했기 때문에 그 인원을 보충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것이 일리가 있는 것은 나실인이 지켜야 할 금지조항이 머리에 삭도를 대는 것 빼고는 제사장하고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머리를 기르는 것은 제사장과 나실인을 구별해주는 척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제사장의 인원을 보충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이라고 볼 수 있고, 또한 그 외에도 비상시에 어떠한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온전히 헌신하도록 하기 위해 나실인이 필요했습니다.


나실인이 되는 데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자기 스스로 일정기간 또는 일평생을 나실인으로 서약해서 나실인이 되는 경우가 있고, 하나님께서 직접 나실인으로 택하셔서 부르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직접 부르실 때는 태에서부터 나옴으로 택하시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렇게 나실인이 되면, 그는 반드시 3가지 금지사항을 지켜야 합니다.

 

1) 독주, 포도주, 포도를 먹지 말라


포도는 이 세상에서의 풍요와 번영을 상징하고, 세상의 기쁨을 상징합니다. 나실인은 하나님께 바쳐진 자이므로 자신을 위해 이 세상 향락과 즐거움을 멀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포도주뿐만 아니라 독주를 마셔도 안 됩니다. 술 취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술은 지배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18)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 5:18)

 

술 취함과 성령충만이 서로 비교 대조하고 있는 것은 그 사이에 어떤 공통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둘 다 지배권이 있다는 것입니다. 술도 지배력이 있고 성령도 지배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술에 취해도 자기 마음대로 못하고, 성령에 취해도 자기마음대로 못하는 것입니다. 술에 취하면 평상시에 안하던 짓을 합니다. 결코 맨정신으로 할 수 없는 말이나 행동들을 하게 되는데, 그래서 자기가 몰래 짝사랑하던 여자한테 사랑 고백할 때는 주로 술 취해서 합니다. 그리고 술 취하면 말을 아주 막힘없이 하게 됩니다. 제가 마음이 여리고, 대인관계에 있어서 화통하지 못하고 별로 재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술 마시면 아주 화통해지고, 서로 재미있게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됩니다. 물론 더 나아가서 나쁜 술주정 버릇들이 나오기도 합니다. 상사한테 대든 다든지, 선배한테 막말을 한다든지... 평상시에는 못하는데 술을 먹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배짱이 좋아지는 것이 아니고, 자신에 대한 자제력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술이 그를 지배하기 때문에 평상시에 갖고 있던 판단력과 자제력을 뺏겨버리는 것입니다.


성령도 그런 역할을 하십니다. 주와 복음 위해 목숨 바쳐 충성하는 것은 맨 정신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하는 것만 생각해도, 그것이 보통 사람의 심성으로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 복음을 선포한다는 것이 도저히 사람의 맨 정신으로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에 의해서 감동되면,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성령이 그를 지배하셔서 그가 이전에 가지고 있던 판단력과 자제력을 통제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술은 성령님과 마찬가지로 지배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그런 점에서 나실인이 왜 독주를 마시면 안 되느냐 하면, 바로 다른 무엇에도 자신의 지배권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즉 나실인은 이 세상의 즐거움, 자기만족을 위한 존재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지배권 아래로 바쳐진 사람임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나실인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일이, 하나님의 신이 그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사무엘도 그렇고, 삼손도 그렇고, 세례요한도 그렇습니다.

 

2) 시체를 만지지 말라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시체는 곧 죄의 결과입니다. 시체는 곧 하나님을 떠난 죄인된 인간의 비참한 최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진 나실인은 이 시체와 가까이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모든 죄와 부정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3)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 수염도 자르지 말라


머리에 왜 삭도를 대지 말아야 하는지 그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단순히 어떤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서원한다는 것의 하나의 상징적인 표라고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아니면, 머리를 자르지 않고 수염을 자르지 않는다는 것은 자기를 치장하고 멋을 부리는데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고 보는 입장도 있습니다. 또는 긴 머리는 복종의 표라고 보는 입장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1장에 보면...

 

(3)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4)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5)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니라(6)만일 여자가 머리에 쓰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움이 되거든 쓸지니라(7)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에 마땅히 쓰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8)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9)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10)이러므로 여자는 천사들을 인하여 권세 아래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라(11)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12)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으나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13)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 여자가 쓰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냐(14)만일 남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욕되는 것을 본성이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느냐(15)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긴 머리는 쓰는 것을 대신하여 주신 연고니라(고전 11:3-15)

 

이 고린도전서 말씀은 남자와 여자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남자는 공적인 자리에서 머리에 쓰지 말고, 여자는 머리에 쓰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남자는 숏 컷으로, 여자는 긴 머리를 길러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이 긴 머리는 여자에게 영광이 되는 것이고, 머리에 쓰는 것을 대신하여 주신 것입니다. 머리에 쓰는 머리수건은 권세 아래 있는 표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천주교는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순종하여 여자들은 공식석상에서는 항상 머리에 무언가를 씁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모든 시대에 걸쳐서 지켜야 할 지침으로 주신 것이 아니라, 그 당시 상황에서 주어진 말씀입니다. 1세기 로마시대 당시에 여자는 공식석상에서 머리에 무언가를 쓰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었던 같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상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대는 남녀가 평등하지 못한 시대였고, 남자 위에 여자가 올라타서 주도적으로 지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몇몇 여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를 말하며 이러한 상식조차 지키지 않고, 남자 위에 올라타려고 하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물론 그리스도 안에서는 남녀가 평등하나, 그러나 하나님이 정하신 창조의 질서는 여전히 유효한 것입니다. 남자가 머리입니다. 머리는 지배적이고 주도적인 기관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권세 있는 표인 머리 수건을 써서 그 당시 지켜지던 상식을 교회에서도 지켜라라고 말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그래서 이러한 관계를 다루면서, 여자는 긴 머리가 있고, 그 긴 머리에 무언가를 쓰는 것입니다. 긴 머리와 머리 수건은 권세 아래 있는 표입니다. 위에 누가 있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서양 사람들이 가지는 에티켓 중 하나가 여자가 들어오면 남자들은 모자를 벗어서 경의를 표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에티켓의 유래를 보면, 사실상 경의를 표하는 것이 아니라, “졸병이 오는구나, 대장 노릇을 해야겠구나..” 그래서 쓰고 있다가도 벗어서 내가 대장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대가 지나면서 그것이 미화되면서 그것이 서양 사람들의 에티켓이 되었습니다.


오늘날은 이러한 표가 더 이상 의미가 없습니다. 오늘날은 그 내용(남자가 머리)만 유효하고, 상징성인 표(머리에 쓰는 것)는 유효하지 않습니다. 여자들 중에서도 필요하면 숏 컷 할 수 있습니다. 예쁘게 하기 위해서 또는 머리로 인해 피부병이 생긴다든지, 아니면 항암치료 때문에 머리가 다 빠지기도 합니다. 또는 머리가 숯이 없어서 머리를 다 자르고 가발을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 괜찮습니다. 그러나 그런 이유 외에 단지 남자처럼 보이기 위해서 숏 컷 정도가 아니라 상고머리를 한다든지, 스포츠머리로 한다든지, 아니면 아예 대머리로 한다든지 하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창조질서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본성적으로도 거리껴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여자에게 긴 머리를 주셨고, 그것이 본인에게 아름다움이고 영광스러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재미있는 것은 남자만이 대머리가 있지 여자는 유전학적으로 대머리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원리의 일관된 상징성이 여기서 잘 나타나는 것입니다.


어쨌든 이 문제를 나실인에게 적용시켜본다면, 남자는 원래 머리를 깎게 되어있는데, 나실인에게는 기르라고 합니다. 그 위에 대장이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의 권세 하에 있는 사람이다 하는 것을 보여주는 표라는 것이죠. 이것이 하나의 해석입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본문에 보면, 여호와의 사자가 이러한 나실인의 명령을 삼손의 어머니에게도 명하십니다. 왜냐하면 그 아이는 뱃속에서부터 나실인이기 때문입니다. 임신해 있을 때는 엄마와 삼손은 한 몸입니다. 그래서 엄마가 먹는 것은 무엇이든 아기도 먹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삼손은 포도주를 뱃속에 있을 때부터 먹으면 안 되니깐, 엄마인 너도 임신하는 동안, 그리고 젖을 먹이는 동안에는 포도주를 먹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노아의 아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만나서 놀라운 약속의 말씀을 듣고서는 곧장 마노아에게 달려가서 다 고합니다.

 

(6)이에 그 여인이 가서 그 남편에게 고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사람이 내게 임하였는데 그 용모가 하나님의 사자의 용모 같아서 심히 두려우므로 어디서부터 온 것을 내가 묻지 못하였고 그도 자기 이름을 내게 이르지 아니하였으며(7)그가 내게 이르기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무릇 부정한 것을 먹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죽을 날까지 하나님께 바치운 나실인이 됨이라 하더이다

 

이에 마노아는 다시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주시기를 기도합니다.

 

(8)마노아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주여 구하옵나니 주의 보내셨던 하나님의 사람을 우리에게 다시 임하게 하사 그로 우리가 그 낳을 아이에게 어떻게 행할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게 하소서

 

아내가 혹시 중요한 내용을 빠트리지 않았는지 의심이 들었던 것일까요? 그는 부모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기 위하여 다시 볼 수 있기를 구하였습니다. 이런 마노아의 기도에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그들에게 다시 여호와의 사자를 보내주셨습니다. 물론 여호와의 사자는 어떻게 해야 될지를 묻는 마노아에게 처음 마노아의 아내에게 명했던 것을 반복할 뿐 거기에 더해서 추가적인 지침을 주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마노아의 반응입니다. 마노아는 그 사람이 선지자나 ‘하나님의 종’정도로 생각하고, 음식대접을 하려고 했습니다. 이것은 기드온의 이야기의 복사판입니다. 기드온도 하나님의 사자를 만나서 그가 하나님의 사자인줄 모르고 그를 시험하며, 또 음식대접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자가 기적을 일으켜 그 가져온 음식을 불태웠을 때 기드온은 그가 하나님의 사자인줄 알고 죽음을 두려워하였던 것입니다. 그러한 사건이 오늘 본문에서도 그대로 반복이 됩니다. 마노아 역시 하나님의 사자가 불꽃 가운데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기적을 보고 하나님인줄 깨닫고 죽음을 두려워하였습니다. 특히 기드온은 그냥 하나님의 사자인줄 깨달았다고 하지만, 마노아의 경우는 하나님을 보았다고 말합니다.

 

(22)그 아내에게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으니 반드시 죽으리로다

 

더욱이 그 앞에 마노아가 여호와의 사자에게 이름을 물었을 때, 그 여호와의 사자는 어찌 내 이름을 묻느냐 하면서 자기 이름을 기묘라고 답하였습니다(사 9:6 참조). 이런 이름이 천사에게 돌려질리 만무합니다. 기묘라 이름하신 이 여호와의 사자는 곧 장차 오실 메시아를 예표하는 것이며, 강하게 말하면 성육신하시기 전인 예수님, 곧 성자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바로 장차 오실 성자 하나님을 만나 뵈었던 것입니다. 더욱이 그분은 번제단의 불꽃 가운데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제사를 통해 그들은 하나님을 보았음에도 죽임 당하지 않고 안전하게 그 생명이 보존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우리가 죽음에서 구원받을 것을 미리 예표하는 것입니다.


어쨌든 이 사건이 있고나서 얼마안가 마노아의 아내는 여호와의 사자가 약속한 대로 아들을 낳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삼손이라고 지었습니다. 삼손은 “해, 태양”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성경에서 태양은 자유, 구원을 의미하고, 그 반대로 이방의 압제와 학대와 고통은 어두움으로 묘사됩니다. 그리고 태양은 그러한 어두움을 물러가게 하는 힘과 능력을 뜻하기도 합니다.

 

(5)해는 그 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6)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 온기에서 피하여 숨은 자 없도다(시 19:5-6)

 

이 블레셋 아래서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 어두움 가운데 있는 자신들을 구원하여 빛 가운데로 인도할 하나님의 보내심을 입은 용맹한 용사라는 뜻의 이름인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의 이 모든 사건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이전에 사사를 세우시던 방법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사사를 세우심을 통해, 장차 오실 구원자 예수님의 출생의 사건을 예표하게 하신 것입니다. 모든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 한 아기를 보내셔서 그로 구원하시는 모습은 절망 가운데 있는 인생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한 아기 예수님을 보내시는 사건을 연상시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사람들 가운데 어떤 유능한 사람을 세워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잉태된 한 아기를 보내주셔서 구원하셨던 것입니다. 처음부터 구원을 위하여 보냄을 받은 아기 예수님을 통해서 온 세상을 구원코자 하셨던 것입니다. 그분은 어떻게 보면 태에서부터 택함 받은 진정으로 참된 나실인이셨습니다. 삼손은 구원을 시작하기만 했을 뿐이지, 성공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구원을 시작하실 뿐만 아니라 구원을 완성하시는 분이십니다. 삼손은 이름만 태양이었지, 이스라엘을 어둠에서 건져내지 못했지만, 그러나 예수님은 참된 태양으로서 우리를 어둠의 나라에서 건져내셨습니다. 그래서 사가랴가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78)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을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79)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취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눅 1:78-79)

 

바로 이 예수님이 우리를 모든 어두움에서 구원하실 진정한 용사가 되신 것입니다. 더욱이 이러한 구원이 은혜로 주어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을 부르짖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기시고 주권적으로 삼손을 보내어 구원하셨던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고 회개하여서 예수님을 보내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일방적인 은혜로 보내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언제 하나님께 나를 죄와 심판에서 구원해달라고 부르짖은 적 있었습니까? 회개하면서, 우리의 행실을 고치고서 우리를 죄와 심판에서 구원할 구속자를 보내달라고 부르짖은 적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그러한 죄와 사단 마귀의 폭정아래서 그리고 사망 아래서 비참한 삶을 살면서도, 도저히 하나님을 찾을 생각도 하지 못했고, 더 나아가 그 죄와 사망 아래서의 삶에 적응해서, 죄를 사랑하고 즐기면서 살아감으로써, 구원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옛날 UBF 목자님이 와서 전도하면, 가기 싫다고 거절도 많이 했었고, 하도 부탁해서 억지로 수양회 끌려왔던 것이지, 자의로 오고 싶어서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듣다보니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서 나도 모르게 눈물 콧물 흘리며 회개하고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보여줍니까? 구원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하나님을 발견하고 내가 하나님을 찾아 나섰고, 내가 하나님을 믿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나 방황하던 우리를 일방적으로 찾아오시고, 불러주시고, 만나주시고, 우리로 믿게 하여 구원하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내가 열심히 신앙생활해서, 내가 종교성이 있어서 구원받고 이 자리에까지 오게 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택하심의 은혜로,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고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사실을 늘 잊지 말고 살아야하고, 항상 나의 나 된 것은 오로지 주의 은혜다 라고 고백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4)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을 나타내실 때에(5)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6)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사(7)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3:4-7)

 

그러므로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으면, 우리가 그 은혜를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감사는 자신을 헌신하는 것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참 나실인이신 예수님 안에서 이제 우리가 새로운 나실인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삼손은 엄마 뱃속에서부터 나실인이었지만, 우리는 언제부터 나실인으로 택정함을 입었습니까? 우리가 존재하기도 전에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들로 택정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와 나실인은 오늘날 우리에게 다른 것이 아닙니다. 자녀라는 신분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대상이라는 측면을 말해주고, 나실인이라는 신분은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한다는 측면을 말해 줄뿐인 것입니다. 우리는 창세전부터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진 나실인으로 구별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이 값없는 은총을 받았다면,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해야 합니다. 특히 오늘 본문이 한 불임 여성에게 자식을 낳을 것에 대한 약속의 말씀이 주어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태에서부터 나실인으로 부르신 경우가 성경에서 삼손(마노아의 아내), 사무엘(한나), 세례요한(엘리사벳) 이렇게 세 경우가 있는데, 이 세 경우의 공통점이 모두 불임의 여성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불임 여성에게 하나님께서 그 태를 열어주시면서 자식을 약속하실 때, 공통적으로 그 부모는 이 아이가 하나님께서 주신 아이므로 하나님의 것이라는 인식을 갖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그 아이를 자신에게 바치라고 요구하시고, 또 그 부모는 기꺼이 바치고자 하는 것입니다. 사무엘을 낳은 한나의 경우는 “자신에게 자식을 주시면, 제가 그 아이를 하나님께 나실인으로 바치겠습니다” 하고 아예 자진해서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보십시오. 일반적으로는 임신이 가능한 여자가 자녀를 낳으면, 그 자식은 자기 자식이라는 생각이 강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 아이를 내게 바쳐라.”라고 하면, 괜히 손해의식이 들고, 바치긴 바쳐도, 막 눈물을 머금고 어쩔 수 없이 바치고... 그러지만, 불임의 여성이, 도저히 자식을 가질 수 없는 여자가 하나님의 은혜로 자식을 갖게 된다면, 이 아이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즐거이 바치지 않겠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모르면, 순종 못하는 것입니다. 내 인생이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순종하는 것을 부담스럽게 생각하고, 손해의식이 들고, 순종해도 형식적으로 억지로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 은혜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은혜인 것을 알면, 나를 주님께 헌신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노아의 아내처럼 불임 여성과 같지 않았습니까? 어떤 점에서 우리가 불임 여성과 같았습니까? 우리는 근본 죄와 사망에서 벗어날 수 없는 자였고, 근본 율법의 저주 아래서 멸망당할 수밖에 없는 자였고, 사단 마귀의 노예가 되어서 함께 지옥으로 떨어질 운명에 있었던 자였습니다. 우리는 거기서 결코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벗어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까? 예수님을 보내주시고, 우리 대신 십자가에 죽게 하셔서 우리를 죄와 사망과 율법과 사단 마귀의 폭정 아래서 구원하여 주신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었던 모든 얽매이는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하셨느냐 하면, 우리 모두를 예수님께 딱 붙여 연합시키셔서,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를테면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입니다. 율법의 저주 아래 있던 옛날의 나는 율법이 내린 형벌을 받다 거기서 죽어 모든 죄 값을 다 치렀습니다. 율법은 형벌 받아 죽은 자에게 더 이상 관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더 이상 정죄함이 없습니다. 이전에 내 마음대로 내 욕심을 따라 살던 옛사람, 그리고 죄를 사랑하고 죄의 지배를 받으며 살던 옛날의 나, 사단 마귀의 지배를 받으며 살았던 옛날의 나는 이제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못 박혀 죽었고 지금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 옛날의 나는 끝났습니다. 그러면 지금 살아있는 나는 무엇입니까?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의 심령에 피뿌려 새롭게 거듭나 태어나게 하신 새로운 생명이요 새로운 인생입니다. 이름 하여 “그리스도 안에서의 나”.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로서 나”, “하나님의 자녀인 나”라고 하는 새로운 정체성입니다. 이 모든 것이 불임의 여성과 같던 우리에게 은혜로 베풀어주신 새로운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이 새로운 인생이라는 것을 더 이상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내 마음대로 살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20)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19)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20)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
(7)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8)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롬 14:7-8)
(20)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21)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빌 1:20-21)

 

마노아 부부가 삼손을 하나님께 기쁨으로 나실인으로 바쳤듯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이 새 인생을 이제는 주님께 나실인으로 바쳐야 하는 것입니다. 나실인이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했던 것처럼 우리는 세상의 향락을 멀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즐거움 다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실인이 시체와 모든 부정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해야 했듯이 우리는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모든 죄의 더러움에서 깨끗이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15)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16)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17)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5-17)
(27)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약 1:27)

 

우리는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면 안 됩니다. 우리 자신을 주와 복음 위해 온전히 헌신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습니까? 나를 온전히 주님께 헌신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두 경우밖에 없습니다. 근본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거듭남의 체험이 없는 사람이든지, 아니면 그런 체험을 했지만, 은혜를 잊어버려서 죄 가운데 살아가고 있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는 이 둘 중의 어디에 속합니까? 우리는 우리 자신을 깊이 돌아보아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죄와 심판에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놀라운 은혜를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은혜에 빚진 자이기 때문에 육신에 져서 육신대로 살 자들이 아닌 것입니다.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베푸신 그 큰 은혜를 망각하며 살아서는 안 됩니다. 오늘 본문 앞에서 정말 애통하며 회개하면서 주님의 은혜를 다시 우리 마음속에 선명하게 깨닫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잘못된 삶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십자가의 은혜를 깨닫는 길 외에는 없습니다. 우리가 다 주의 십자가의 은혜를 깊이 깨달아서 새 삶을 주신 주님께 온전히 헌신하는 주의 축복된 백성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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