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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상범
성경본문 삿 1:1-36
성경본문내용 (1)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우리 중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사람과 싸우리이까(2)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유다가 올라갈지니라 보라 내가 이 땅을 그 손에 붙였노라 하시니라(3)유다가 그 형제 시므온에게 이르되 나의 제비 뽑아 얻은 땅에 나와 함께 올라가서 가나안 사람과 싸우자 그리하면 나도 너의 제비 뽑아 얻은 땅에 함께 가리라 이에 시므온이 그와 함께 가니라(4)유다가 올라가매 여호와께서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을 그들의 손에 붙이신지라 그들이 베섹에서 일만명을 죽이고(5)또 베섹에서 아도니 베섹을 만나서 그와 싸워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을 죽이니(6)아도니 베섹이 도망하는지라 그를 쫓아가서 잡아 그 수족의 엄지가락을 끊으매(7)아도니 베섹이 가로되 옛적에 칠십 왕이 그 수족의 엄지가락을 찍히고 내 상 아래서 먹을 것을 줍더니 하나님이 나의 행한 대로 내게 갚으심이로다 하니라 무리가 그를 끌고 예루살렘에 이르렀더니 그가 거기서 죽었더라(8)유다 자손이 예루살렘을 쳐서 취하여 칼날로 치고 성을 불살랐으며(9)그 후에 유다 자손이 내려가서 산지와 남방과 평지에 거한 가나안 사람과 싸웠고(10)유다가 또 가서 헤브론에 거한 가나안 사람을 쳐서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죽였더라 헤브론의 본 이름은 기럇 아르바이었더라(11)거기서 나아가서 드빌의 거민들을 쳤으니 드빌의 본 이름은 기럇 세벨이라(12)갈렙이 말하기를 기럇 세벨을 쳐서 그것을 취하는 자에게는 내 딸 악사를 아내로 주리라 하였더니(13)갈렙의 아우요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이 그것을 취한 고로 갈렙이 그 딸 악사를 그에게 아내로 주었더라(14)악사가 출가할 때에 그에게 청하여 자기 아비에게 밭을 구하자 하고 나귀에서 내리매 갈렙이 묻되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15)가로되 내게 복을 주소서 아버지께서 나를 남방으로 보내시니 샘물도 내게 주소서 하매 갈렙이 윗샘과 아랫샘을 그에게 주었더라(16)모세의 장인은 겐 사람이라 그 자손이 유다 자손과 함께 종려나무 성읍에서 올라가서 아랏 남방의 유다 황무지에 이르러 그 백성 중에 거하니라(17)유다가 그 형제 시므온과 함께 가서 스밧에 거한 가나안 사람을 쳐서 그곳을 진멸하였으므로 그 성읍 이름을 호르마라 하니라(18)유다가 또 가사와 그 경내와 아스글론과 그 경내와 에그론과 그 경내를 취하였고(19)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하신 고로 그가 산지 거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거민들은 철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20)무리가 모세의 명한 대로 헤브론을 갈렙에게 주었더니 그가 거기서 아낙의 세 아들을 쫓아내었고(21)베냐민 자손은 예루살렘에 거한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사람이 베냐민 자손과 함께 오늘날까지 예루살렘에 거하더라(22)요셉 족속도 벧엘을 치러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니라(23)요셉 족속이 벧엘을 정탐케 하였는데 그 성읍의 본 이름은 루스라(24)탐정이 그 성읍에서 한 사람의 나오는 것을 보고 그에게 이르되 청하노니 이 성읍의 입구를 우리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너를 선대하리라 하매(25)그 사람이 성읍의 입구를 가르친지라 이에 칼날로 그 성읍을 쳤으되 오직 그 사람과 그 가족을 놓아 보내매(26)그 사람이 헷 사람의 땅에 가서 성읍을 건축하고 그 이름을 루스라 하였더니 오늘날까지 그곳의 이름이더라(27)므낫세가 벧스안과 그 향리의 거민과 다아낙과 그 향리의 거민과 돌과 그 향리의 거민과 이블르암과 그 향리의 거민과 므깃도와 그 향리의 거민들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사람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하였더니(28)이스라엘이 강성한 후에야 가나안 사람에게 사역을 시켰고 다 쫓아내지 아니하였더라(29)에브라임이 게셀에 거한 가나안 사람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사람이 게셀에서 그들 중에 거하였더라(30)스불론은 기드론 거민과 나할롤 거민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나 가나안 사람이 그들 중에 거하여 사역을 하였더라(31)아셀이 악고 거민과 시돈 거민과 알랍과 악십과 헬바와 아빅과 르홉 거민을 쫓아내지 못하고(32)그 땅 거민 가나안 사람 가운데 거하였으니 이는 쫓아내지 못함이었더라(33)납달리가 벧세메스 거민과 벧아낫 거민을 쫓아내지 못하고 그 땅 거민 가나안 사람 가운데 거하였으나 벧세메스와 벧아낫 거민들이 그들에게 사역을 하였더라(34)아모리 사람이 단 자손을 산지로 쫓아들이고 골짜기에 내려오기를 용납지 아니하고(35)결심하고 헤레스산과 아얄론과 사알빔에 거하였더니 요셉 족속이 강성하매 아모리 사람이 필경은 사역을 하였으며(36)아모리 사람의 지계는 아그랍빔 비탈의 바위부터 그 위였더라
강설날짜 2012-06-13

2012년 6월 13일 한결교회 수요강설

사사기 제1강


가나안 정복 실패


말씀 : 삿 1:1-36


사사기는 여호수아가 죽은 후부터 해서 사무엘을 통해 사울 왕이 세워지기까지의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록한 책입니다. 이 사사시대는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에 대해 책임을 지는 시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는 그들을 애굽의 종 노릇한데서 해방하여 자유케 하셨고, 또 율법의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를 통해서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여 선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와 땅의 축복의 선물을 받아 누렸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사시대는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늘 감사하면서 하나님 나라 백성답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사는 책임 있는 시대인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책임 있는 시대에 이 이스라엘을 이끌 지도자를 세우지 아니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옛적에 모세가 죽을 때쯤 되어서는 여호수아를 그 후계자로 세워 이스라엘을 이끌어가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는 그를 이을 후계자를 세워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의도적인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든 구원과 축복의 은혜를 주셨고, 이제는 하나님이 친히 왕이 되셔서 하나님께서 통치하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누구의 통제나 강제를 받을 필요 없이 하나님 앞에서 각자 각자가 동일한 하나님의 종의 신분으로서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옳은 대로 행해야 하는 책임 있는 자유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책임을 다했습니까? 못했습니다. 그들은 여호수아가 죽자마자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잊어버리고, 그 은혜에 대한 책임을 망각하고, 결국 하나님이 명하신 가나안 정복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2장에서는 아예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징계하시고자 그들을 이방의 압제 아래 팔아버리시는데,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부르짖고, 그러면 하나님이 사사를 세워서 그들을 구원하시고, 또 조금 있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만해지니깐 다시 우상숭배하면서 더 패역하게 되어지는 그러나 악순환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것이 이 사사기의 내용입니다. 이를 통해 사사기는 두 가지를 말합니다.

 

첫째는 인간의 완악함과 전적부패, 그리고 인간이 얼마나 구재불능인가 하는 것을 여과 없이 보여줍니다. 이것은 이스라엘만의 모습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인류의 모습을 대변하는 것이고, 또한 우리의 모습을 대변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축복들과 필요한 것들을 공급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은혜에 대한 책임 있는 삶을 살지 못하고, 또 어려움이 닥칠 때에는 하나님을 찾지만, 살만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이 세상을 추구하며 살아가기가 쉬운 것입니다. 우리는 사시기를 통해서 이런 우리 자신을 발견하고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사사기가 보여주는 것은 그렇게 인간은 구재불능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중간에 서서 이러한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질서를 따라 다스리고 12지파를 하나로 통합할 왕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 왕으로 모시지 않고서는 사사기와 같이 죄 짓기를 반복하는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사사기 말씀을 통해서 발견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러한 배경을 생각하면서 오늘 본문 1장을 배워보겠습니다. 사사기 1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정복을 실패하고 가나안 족속들을 그들 가운데 남겨두게 되는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장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1-21절 -> 유다, 시므온, 베냐민 지파들의 정복기

22-36절 -> 북이스라엘 지파들의 정복기


재미있는 것은 사사기가 이스라엘의 정복역사를 일부러 두 단락으로 구분해서 기록한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단락의 유다와 베냐민은 남유다의 지파이고(시므온은 나중에 유다에 합쳐지거나 곳곳에 흩어졌습니다), 두 번째 단락에 언급되는 지파들은 모두 북이스라엘의 지파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벌써부터 이스라엘이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분열될 것에 대한 암시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첫 번째 단락에서는 승리가 많이 나타나는 반면, 북이스라엘 지파의 경우는 대부분 실패로 나타납니다. 그런 점에서 사사기는 유다 지파를 긍정적으로 그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왕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사사기의 목적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배경을 생각하면서 첫 번째 단락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1절과 2절을 보시면, “(1)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우리 중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사람과 싸우리이까(2)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유다가 올라갈지니라 보라 내가 이 땅을 그 손에 붙였노라 하시니라”(삿 1:1-2)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정복 전쟁에 앞서서 하나님의 뜻을 묻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묻는다는 것은 매우 신실한 모습입니다. 이러한 모습으로 쭉 가면 좋았을 텐데,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어쨌든 사사기의 시작은 이스라엘의 신실한 모습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이스라엘의 질문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유다가 먼저 갈 것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유다가 이스라엘의 주도권을 지고 가나안 정복의 선봉에 서는 것입니다. 유다지파에 대한 강조점이 역시 나타납니다. 그래서 유다는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정복전쟁에 나가는데, 혼자 가지 아니하고 시므온 지파와 함께 가자고 합니다.


(3)유다가 그 형제 시므온에게 이르되 나의 제비 뽑아 얻은 땅에 나와 함께 올라가서 가나안 사람과 싸우자 그리하면 나도 너의 제비 뽑아 얻은 땅에 함께 가리라 이에 시므온이 그와 함께 가니라


그래서 함께 가서 첫 번째 점령한 지역은 ‘베섹’이라는 땅입니다.


(4)유다가 올라가매 여호와께서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을 그들의 손에 붙이신지라 그들이 베섹에서 일만명을 죽이고(5)또 베섹에서 아도니 베섹을 만나서 그와 싸워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을 죽이니(6)아도니 베섹이 도망하는지라 그를 쫓아가서 잡아 그 수족의 엄지가락을 끊으매(7)아도니 베섹이 가로되 옛적에 칠십 왕이 그 수족의 엄지가락을 찍히고 내 상 아래서 먹을 것을 줍더니 하나님이 나의 행한 대로 내게 갚으심이로다 하니라 무리가 그를 끌고 예루살렘에 이르렀더니 그가 거기서 죽었더라(삿 1:4-7)


이 베섹이라는 땅은 ‘아도니 베섹’이라는 왕이 다스리는 곳인데, 예루살렘으로 가기 전에 반드시 점령해야 하는 곳입니다. 특히 이 아도니 베섹은 70명의 왕들의 수족의 엄지를 잘랐을 정도로 힘이 강력한 왕이었습니다. 유다 지파가 바로 믿음의 용기를 가지고 이 ‘베섹’에 진격하여 그 도시를 점령하고, 아도니 베섹의 수족의 엄지를 잘라서,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 그에게 임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8절을 보십시오. “(8)유다 자손이 예루살렘을 쳐서 취하여 칼날로 치고 성을 불살랐으며(9)그 후에 유다 자손이 내려가서 산지와 남방과 평지에 거한 가나안 사람과 싸웠고(10)유다가 또 가서 헤브론에 거한 가나안 사람을 쳐서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죽였더라 헤브론의 본 이름은 기럇 아르바이었더라”

 

예루살렘과 남방 지방, 산지와 평지를 차례차례 정복하였습니다. 그리고 헤브론까지 취합니다. 이 헤브론이라는 도시는 아낙 자손이 사는 곳입니다. 민 13:32-33에서 가나안 땅을 정탐한 사람들이 “거기 사는 사람은 신장이 장대하고,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들이 거하는 곳입니다. 그들 앞에서 우리는 메뚜기 같습니다.” 그렇게 말했던 지역이 바로 헤브론이라는 땅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아무도 이 땅을 점령하기 위해 나서지 않으니깐, 갈렙이 믿음으로 여호수아에게 나아와서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그러면서 자신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 땅을 정복하겠다고 나섭니다. 오늘 본문 10절에서 유다지파가 그 땅을 정복했다는 이야기는 바로 갈렙이 그 지역을 정복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11절... “(11)거기서 나아가서 드빌의 거민들을 쳤으니 드빌의 본 이름은 기럇 세벨이라”(삿 1:11) 유다지파는 더 나아가서 드빌의 거민도 쳤습니다. 12절부터는 이 기럇세벨을 어떻게 점령했는지 보다 자세하게 언급합니다.


(12)갈렙이 말하기를 기럇 세벨을 쳐서 그것을 취하는 자에게는 내 딸 악사를 아내로 주리라 하였더니(13)갈렙의 아우요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이 그것을 취한 고로 갈렙이 그 딸 악사를 그에게 아내로 주었더라(14)악사가 출가할 때에 그에게 청하여 자기 아비에게 밭을 구하자 하고 나귀에서 내리매 갈렙이 묻되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15)가로되 내게 복을 주소서 아버지께서 나를 남방으로 보내시니 샘물도 내게 주소서 하매 갈렙이 윗샘과 아랫샘을 그에게 주었더라(사 1:12-15)


여기 보면 갈렙이 기럇세벨을 취하는 자에게 자신의 딸을 주겠다고 말합니다. 딸이 시집갈 때가 되었는데, 이 딸을 돈 많은 사람에게 보내는 것도 아니고, 권력이 있는 사람에게 보이는 것도 아니고, 아주 도전적이고 믿음의 용기가 있는 사람에게 시집을 보내고자 한 것입니다. 여기서 갈렙의 믿음이 또한 나타납니다. 그런데 이 기럇세벨은 노른자 땅으로 아주 좋은 땅이었지만, 그에 반해 정복하기가 매우 어려운 땅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땅을 아무도 정복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는데, 갈렙의 제안을 듣고 갈렙의 아우요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이 용감하게 그곳을 공격해서 정복했던 것입니다. 이 옷니엘은 나중에 이스라엘의 최초의 사사가 되는데 여기서 미리 등장합니다. 그래서 갈렙이 이 옷니엘에게 자신의 딸 악사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으로 이야기가 끝이 아니라, 이 악사가 출가할 때 아비 갈렙에게 샘물을 구합니다. 그래서 갈렙이 윗 샘과 아랫 샘을 주었습니다. 이 악사에게 샘물을 주는 이야기가 갑자기 왜 나왔고 또 어떤 의미가 있으며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는지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이야기는 사실 여호수아서에서 그대로 베낀 것이라는 겁니다. “수 15:14-19” 거의 단어 하나 둘 정도만 틀리고 거의 똑같이 인용합니다. 그냥 사사기 저자가 여호수아서를 보고 베낀 것입니다. 왜 그럼 또 다시 반복합니까? 아마도 갈렙이 유다지파인데, 갈렙의 영웅사를 통해 유다지파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목적인 것 같습니다.


16절을 보면, (16)모세의 장인은 겐 사람이라 그 자손이 유다 자손과 함께 종려나무 성읍에서 올라가서 아랏 남방의 유다 황무지에 이르러 그 백성 중에 거하니라


시므온 지파만 유다지파에 붙은 것이 아니라, 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후손 겐 사람도 유다 자손에 합류했습니다. 그래서 유다지파에게 허락된 하나님의 축복에 함께 동참합니다. 이런 것을 보면 줄을 참 잘 서야 함을 봅니다. 군대 다녀오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군대에서는 줄을 잘 서야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훈련병의 부모나 친척이 장성이거나 국회의원이거나 또는 높은 지위의 사람이면, 군에서 그 사람을 뽑아다가 편한 곳에 자대배치를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만 뽑으면 비리에 걸리기 때문에, 그 사람이 포함된 그 줄 전체를 다 뽑아다가 편한 곳으로 자대 배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군대에서는 줄을 잘 서야 합니다. 이 시므온과 겐 사람도 바로 줄을 잘 섰습니다. 유다 지파와 합류해서 유다지파에 주신 하나님의 축복을 그들도 누렸던 것입니다. 우리도 신앙생활하면서 줄을 잘 서야 합니다. 어디 줄 서야 합니까? 목회자인 저에게 줄을 잘 서야 합니까? 아니죠. 우리는 예수님 뒤에 줄을 서야 합니다. 우리가 줄 서야 할 사람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 뒤에 줄 서면 예수님이 누리신 모든 축복이 모두 우리 것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내 마음에 믿어 영접하고 예수님 옆에 딱 붙어 있어야 합니다. 줄을 잘 서서 주님의 축복을 누리시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다음 17,18절을 보시면, “(17)유다가 그 형제 시므온과 함께 가서 스밧에 거한 가나안 사람을 쳐서 그곳을 진멸하였으므로 그 성읍 이름을 호르마라 하니라(18)유다가 또 가사와 그 경내와 아스글론과 그 경내와 에그론과 그 경내를 취하였고”(삿 1:17-18) 유다지파는 스밧을 점경하고 이어서 블레셋 족속의 도시인 가사, 아스글론, 에그론을 차례로 점령합니다. 그런데 19절부터는 이러한 분위기가 갑자기 바뀝니다.


(19)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하신 고로 그가 산지 거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거민들은 철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삿 1:19)


유다지파가 19절 앞까지는 정말 주님의 뜻에 복종하며 믿음으로 잘 도전하고 승리했는데, 19절 끝에 가서는 결국 정복에 실패하고 만 것입니다. 가장 훌륭하고 강대한 유다지파도 마지막에 가서는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과 같으냐 하면, 마치 사법시험에서 떨어졌는데, 안타깝게도 커트라인에서 0.몇 점 차로 떨어진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렇게 떨어지면 얼마나 억울하고 안타깝겠습니까? 아예 택도 없이 떨어졌으면, 조금의 아쉬움도 없겠지만, 이렇게 아깝게 떨어지면, 정말 아쉬운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택도 없이 떨어지든 안타깝게 0.몇 점차로 떨어지든 떨어진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 사사기는 유다지파에 대해 아주 긍정적으로 기록했고, 다른 지파들은 실패만 거듭했지만, 유다지파는 그래도 가장 승리를 많이 거두었습니다. 갈렙과 옷니엘의 영웅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다지파만이 아주 돋보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이 유다지파도 다른 지파들과 동일하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못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결국 똑같은 것입니다. 인간의 근본적인 한계가 여기서 나타납니다.

 

그러면 그들이 왜 실패했습니까? 철병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철병거를 보니 싸워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고 아예 전쟁을 안 한 것입니다. 물론 철병거가 있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정말 무모할 정도로 무서운 존재인 것은 맞지만, 그러나 어차피 가나안 정복 전쟁이라고 하는 것은 힘이 세고 약하고의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친히 그들을 위해 싸우시는 하나님의 전쟁이기 때문에 도전해 나아가기만 하면 무조건 이길 수밖에 없는 전쟁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 유다지파는 눈앞에 어려움을 보고서 두려워하였고, 그만 믿음의 도전을 포기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영적 원리를 하나 보게 되는데, 결국 죽음을 각오한 불굴의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의 약속을 상속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난 주 수요일 날 천로역정 강의가 매우 은혜로웠는데, 천로역정에 보면 크리스챤이 해석자의 집에서 여러 가지를 보고서 교훈 받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하나가 한 웅장한 궁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궁전의 문 앞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서 있었는데, 다 들어가고 싶어 하지만, 감히 들어가는 자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문 앞에 무장한 병사들이 궁전을 지키기 위해서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문안에 들어가려는 자에게 치명상을 입힐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무장한 병사들을 무서워하여 다 뒤로 물러섰습니다. 그때 한 사람이 당당히 결심한 듯 자신의 이름을 서기관 앞에 적고 나와서는 자신의 칼을 빼들고, 죽을힘을 다해 싸워서 이기고 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했을 때 궁전 안의 사람들로부터 환영을 받고 영원히 영광을 받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군중들과 용감무쌍한 한 사람이 대조되고 있습니다. 군중들은 하나님 나라가 귀중하고 선하고 아름다운 것을 알고, 또 그것을 사모하며 들어가기를 원하지만, 그것을 얻기 위한 희생이나 손해를 꺼려하기 때문에 그저 문 앞에서 서성거리기만 하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된 제자로 묘사되는 한 용맹한 사나이는 하나님 나라의 영광과 아름다움을 맛보고서는 굳은 결의와 결심으로 어떠한 어려움과 희생이 있더라도 마다하지 않고 그것을 얻기 위해 담대하게 싸우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떠한 대가를 치러서라도, 심지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을 얻기 위해서 도전하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불굴의 믿음이요 구원의 은혜를 받은 자가 소유하는 믿음인 것입니다.

 

바로 우리가 이 믿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믿음으로 살아간다 라고 하는 것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복 전쟁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가나안 정복 전쟁은 엄연히 전쟁입니다. 전쟁은 상대방을 죽여야 내가 사는 그런 치열한 싸움입니다. 더군다나 상대가 나보다 신장이 장대하고 군사 수가 더 많고, 철병거가 있으면, 상식적으로 볼 때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전쟁일 경우, 오직 하나님의 약속만을 믿고 칼을 들고 그들을 향해 돌진한다라고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죽음을 각오하는 믿음이 없이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인 가나안인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우리의 순례의 길도 이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의 순례의 길은 가만히 서 있으면 자동적으로 하나님 나라로 옮겨주는 에스컬레이터가 아닙니다. 우리의 순례의 길은 치열한 영적전쟁의 길입니다. 세상의 유혹과 핍박이 몰려오고, 공중 권세 잡은 자 사단 마귀와 싸워야 하는 치열하고 어려운 영적 전쟁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살고자 할 때, 그리고 주와 복음을 위해 충성하고자 할 때 여러 가지 고난과 어려움, 희생, 손해를 당하고 심지어는 목숨까지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매우 어려움을 당하는 길입니다. 결코 쉽고 편안한 신앙생활이란 어느 시대에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다 거짓말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3)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14)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 7:13-14)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좁은 길로 가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기 부인과 자기희생과 자기 죽음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쾌락들, 욕심들, 세상의 좋은 것들 다 버리고, 주와 복음을 위해서 헌신해야 합니다. 그리고 고난과 조롱과 핍박과 죽음도 각오해야 합니다. 근본적으로 자기를 사랑하는 죄성에 매여 있는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이 길을 선택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기가 죽지 않고서는 이 길을 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라고 하셨고, 자기 목숨까지도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죽는 것은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 아래서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 길을 가는 것은 주님의 은혜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은혜를 받기 위해서 말씀과 기도에 집중해야 하고, 깨닫는 만큼 순종하기 위해서 애를 써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지금 어떤 길을 가고 있습니까? 불굴의 믿음을 가지고 좁은 길로 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넓고 편하고 손쉬운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유다처럼 믿음으로 살고자 할 때 당할 어려움 때문에 믿음으로 살기를 주저하거나 뒷걸음질 쳐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갈렙처럼 주님의 약속을 믿고, 영생의 소망을 바라보면서,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이 세상에서 주와 복음을 위해 충성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불굴의 믿음으로 순례의 길을 전진해 나아가서 하나님의 영생의 약속을 상속받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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