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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상범
성경본문 삿 1:22-36
성경본문내용 (22)요셉 족속도 벧엘을 치러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니라(23)요셉 족속이 벧엘을 정탐케 하였는데 그 성읍의 본 이름은 루스라(24)탐정이 그 성읍에서 한 사람의 나오는 것을 보고 그에게 이르되 청하노니 이 성읍의 입구를 우리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너를 선대하리라 하매(25)그 사람이 성읍의 입구를 가르친지라 이에 칼날로 그 성읍을 쳤으되 오직 그 사람과 그 가족을 놓아 보내매(26)그 사람이 헷 사람의 땅에 가서 성읍을 건축하고 그 이름을 루스라 하였더니 오늘날까지 그곳의 이름이더라(27)므낫세가 벧스안과 그 향리의 거민과 다아낙과 그 향리의 거민과 돌과 그 향리의 거민과 이블르암과 그 향리의 거민과 므깃도와 그 향리의 거민들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사람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하였더니(28)이스라엘이 강성한 후에야 가나안 사람에게 사역을 시켰고 다 쫓아내지 아니하였더라(29)에브라임이 게셀에 거한 가나안 사람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사람이 게셀에서 그들 중에 거하였더라(30)스불론은 기드론 거민과 나할롤 거민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나 가나안 사람이 그들 중에 거하여 사역을 하였더라(31)아셀이 악고 거민과 시돈 거민과 알랍과 악십과 헬바와 아빅과 르홉 거민을 쫓아내지 못하고(32)그 땅 거민 가나안 사람 가운데 거하였으니 이는 쫓아내지 못함이었더라(33)납달리가 벧세메스 거민과 벧아낫 거민을 쫓아내지 못하고 그 땅 거민 가나안 사람 가운데 거하였으나 벧세메스와 벧아낫 거민들이 그들에게 사역을 하였더라(34)아모리 사람이 단 자손을 산지로 쫓아들이고 골짜기에 내려오기를 용납지 아니하고(35)결심하고 헤레스산과 아얄론과 사알빔에 거하였더니 요셉 족속이 강성하매 아모리 사람이 필경은 사역을 하였으며(36)아모리 사람의 지계는 아그랍빔 비탈의 바위부터 그 위였더라
강설날짜 2012-06-20

2012년 6월 20일 한결교회 수요강설(364, 355)

사사기 제2강


가나안 정복 실패(2)


말씀 : 삿 1:22-36


오늘 본문 22절에서 36절은 북이스라엘 지파들의 가나안 정복 이야기를 다루는 본문입니다. 그런데 이 오늘 본문이 요셉이라는 이름으로 inclusio 구조를 이룹니다.


22절 - 요셉 족속

35절 - 요셉 족속


즉 요셉 족속이 북이스라엘 지파의 대표로서 그 전체를 묶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요셉 족속은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는 두 분깃을 주셔서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각각 한 지파를 형성하게 됩니다. 그래서 요셉까지 12지파인데, 요셉에서 두 지파가 나왔으니, 이스라엘은 총 13지파가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레위지파를 자신에게 드리도록 함으로써, 따라서 레위지파는 기업이 없고 이스라엘의 지파의 수에 들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성전과 레위지파를 중심으로 하는 이스라엘 12지파를 구성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이 요셉 지파의 정복 이야기를 시작으로 북이스라엘 지파들의 가나안 정복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22절 이하를 보시면, 하나님께서는 유다지파와 함께 하셔서 그들로 승리하게 하셨듯이, 또한 요셉 족속과도 함께 하셔서 그들에게 승리를 주십니다.


(22)요셉 족속도 벧엘을 치러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니라(23)요셉 족속이 벧엘을 정탐케 하였는데 그 성읍의 본 이름은 루스라(24)탐정이 그 성읍에서 한 사람의 나오는 것을 보고 그에게 이르되 청하노니 이 성읍의 입구를 우리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너를 선대하리라 하매(25)그 사람이 성읍의 입구를 가르친지라 이에 칼날로 그 성읍을 쳤으되 오직 그 사람과 그 가족을 놓아 보내매(26)그 사람이 헷 사람의 땅에 가서 성읍을 건축하고 그 이름을 루스라 하였더니 오늘날까지 그곳의 이름이더라(삿 1:22-26)


그런데 벧엘을 공격하기 전에 정탐을 먼저 하는데, 전쟁을 하기 전에 정탐을 하는 것은 올바른 수순입니다.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라는 말도 있듯이,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그 전쟁을 반드시 승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쟁의 승패는 결국 정탐을 통한 정보전에 달려 있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도 전쟁할 때 정탐을 보내야 했다는 것이 사실 의미심장한 것입니다. 과거 모세도 가나안 땅을 정복하러 가기 전에 정탐을 보냈고(신 1:22; 민 13장 이하), 여호수아도 여리고를 점령하기 전에 먼저 정탐하였던 것입니다(수 2:1이하). 그리고 기록은 되어 있지 않지만, 다른 정복 전쟁들도 아마 대부분 정탐을 보내어서 적진을 살피는 과정이 반드시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가지는 자연스러운 의문은 “아니 하나님이 약속하셨고, 함께 하시고, 또 승리가 보장된 싸움인데, 그냥 믿음으로 나아가면 되지, 또 무슨 정탐을 보내고 전략을 세우고 그러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들의 행동이 어떻게 보면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인간적으로 방책을 세워보려는 불신앙의 모습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물론 만일 약속을 믿지 못해서 인간적인 지혜와 전략을 의지하여 정탐을 보내는 것이라면 그것은 분명 불신앙의 행위입니다. 그러나 약속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 때문에 그래서 그 하나님의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서 적절한 수단과 방법을 부지런히 사용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오히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요 신앙의 행위인 것입니다.

 

“에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데 뭐 할려고 정탐을 하고 전략을 세우고 그러느냐”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사실 칼도 방패도 필요 없고, 아무것도 이스라엘 백성들 편에서는 준비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물론 가나안 정복 전쟁이 칼과 방패로 이기고 지고 하는 문제는 아닙니다만, 여리고 전쟁을 제외한 모든 전쟁은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 본인들이 칼을 들고 직접 나아가서 그 칼을 휘둘러서 적을 무찔러야만 이길 수 있는 전쟁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싸우시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 본인들이 싸워야 하는 전쟁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전쟁이 승리가 확실한 전쟁인 이유는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장으로 뛰어들어가서 적을 칼로 찌르고 벨 때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역사하셔서 적을 무찌를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가나안 정복전쟁은 가만히 있어도 자동적으로 점령이 되게끔 하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약속을 믿음으로, 그리고 그 약속을 이루기 위해서 자기 스스로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서 칼도 준비하고 방패도 준비하고 군사훈련도 하고, 정탐도 하고 계획도 세워서 그렇게 결국 본인이 직접 나가서 칼을 휘둘러 쳐서 파하여 정복해야만 하는 그런 전쟁인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그들에게 약속하시고 가나안 족속을 그들에게 붙이셨다 하더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음으로 화합하여 도전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그 땅을 정복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고 그분을 내 마음에 영접해서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나라와 영생을 약속받았으면, 그것으로 이제 끝이 아니라, 열심히 실질적으로 우리의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그 허락하신 구원을 이루어가는 책임 있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예수님 믿고 구원 받았으니, 천국은 따 놓은 당상이다 그러고서 아무것도 안 해도 자동적으로 우리가 천국에 이르게 되는 그런 에스컬레이터에 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믿음으로 그 천성을 향해 끝까지 걸어가야 하는 순례의 여정인 것입니다. 그 길은 좁고 협착하고 많은 어려움과 고난이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뒷걸음질치고 머뭇거리고 심지어는 그 중도에 포기하지만, 하나님께서 택하신 참된 믿음의 신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끝까지 믿음으로 그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천성에 이르러서 하나님의 약속대로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셨더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음으로 도전하고 앞으로 나아가야만이 그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듯이, 우리도 마찬가지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믿음으로 순례의 길을 걸어가야지 만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 말을 처음 시작은 믿음으로 하고 나중에는 행위로 구원받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중생하는 것도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되는 것이고, 그 생명이 자라서 열매를 맺게 되는 것도(즉 순례의 길을 끝까지 가서 천성에 이르는 것도)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처음 시작은 하나님의 은혜요 믿음으로 되고, 순례의 길 가는 것은 내 힘과 의지와 내 행위와 노력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코 행위구원론이 아닙니다. 오직 은혜로 구원받습니다. 그러나 그 은혜는 예수님을 믿을 뿐만 아니라, 그 믿음 안에서 끝까지 순례의 길을 가는 것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오해에 대해서는 다음에 자세히 다룰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쨌든 우리는 믿음으로 이 순례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야만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고, 영생을 상속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으로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자 할 때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어려움과 고난이 기다리고 있습니까? 또 얼마나 많은 유혹들이 우리를 방해합니까? 내 자존심을 버려야 하고, 이 세상 행복과 즐거움도 포기해야 하고, 사람들의 조롱과 핍박 여러 가지 손해를 각오해야 합니다. 우리가 혹시 이 고난 앞에서 주저하고 있고 머뭇거리고 있고 뒷걸음질 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영원한 하늘나라의 소망하면서 믿음으로 이 세상에 도전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이 순례의 길을 향해 담대하게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어쨌든 정탐을 보내는 것은 불신앙의 행위가 아니라 정당한 신앙의 행위인 것입니다. 지금 본문의 요셉지파는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음으로 정탐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분명 처음 시작은 너무 좋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서서히 조금씩 삐걱거리기 시작합니다.

 

정탐꾼이 성 입구를 가르쳐준 사람에게 선대하겠다고 언약을 맺습니다. 선대라는 말은 ‘헤세드’입니다. 생명과 사랑의 언약이죠. 그래서 나중에 이 성 입구를 가르쳐준 사람과 그 가족을 살려줍니다. 이것이 꼭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정탐할 때의 라합 사건과 매우 비슷한데, 그러나 분명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라합은 이스라엘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이스라엘 공동체에 합류했는데, 이 벧엘 사람은 이스라엘에 합류하지 아니하고 헷 사람의 땅에 가서 자기 성읍을 건축하고 자유롭게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기 성읍을 루스라 이름 했습니다. 이 루스는 벧엘의 옛날 이름입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이런 것입니다. 바퀴벌레 소굴이 있었는데, 거기를 약을 뿌리고 발로 밟고 해서 완전히 초토화시켰습니다. 그런데 이 바퀴벌레 소굴의 위치를 가르쳐준 바퀴벌레와 그 가족들을 살려줘서 옆방으로 이사 갈 수 있도록 해준 것입니다.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되십니까?

 

요셉 지파가 전쟁에서 승리하고 벧엘을 정복하기는 했지만, 그 정복은 뭔가 찜찜하고 문제가 있는 정복인 것입니다. 정탐 보내는 것은 잘한 것이지만, 그 이후의 어떤 잘못된 조치로 인해서 이러한 결과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 정탐꾼들이 입구를 가르쳐준 사람의 신앙고백을 듣고서 생명의 언약을 맺었어야 했는데, 그냥 가르쳐준 것만 가지고서 생명의 언약을 맺었던 것이 문제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라합의 경우는 자신이 숨겨준 정탐꾼에게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고 자기를 구원해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래서 살려주었지만, 이 경우는 정탐꾼이 먼저 나서서 성 입구를 가르쳐주면 내가 너를 살려 주겠다 그렇게 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절대로 가나안 족속들과 언약을 맺지 말하고 하신 그 명령을 어긴 것입니다. 비록 요셉 족속이 벧엘을 점령하여 승리했다 할지라도 그것은 온전한 승리도 아니요, 온전한 정복도 아닌 것이고, 결국은 따지자면 실패한 것입니다.

 

그러나 더욱 불행한 사실은 그래도 요셉 족속은 벧엘 땅이라도 점령했지, 그 이후의 북이스라엘 지파는 단 하나의 땅도 점령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요셉 이후부터는 전부다 실패로 장식됩니다. 그러면 북이스라엘 지파들은 왜 정복에 실패했습니까? 오늘 본문을 보면 그들은 가나안 족속들을 노예로 해서 사역을 시켰던 것입니다.


(27)므낫세가 벧스안과 그 향리의 거민과 다아낙과 그 향리의 거민과 돌과 그 향리의 거민과 이블르암과 그 향리의 거민과 므깃도와 그 향리의 거민들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사람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하였더니(28)이스라엘이 강성한 후에야 가나안 사람에게 사역을 시켰고 다 쫓아내지 아니하였더라

(30)스불론은 기드론 거민과 나할롤 거민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나 가나안 사람이 그들 중에 거하여 사역을 하였더라

(33)납달리가 벧세메스 거민과 벧아낫 거민을 쫓아내지 못하고 그 땅 거민 가나안 사람 가운데 거하였으나 벧세메스와 벧아낫 거민들이 그들에게 사역을 하였더라

(35)결심하고 헤레스산과 아얄론과 사알빔에 거하였더니 요셉 족속이 강성하매 아모리 사람이 필경은 사역을 하였으며


그들은 다 쫓아내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그 명령에 불순종한 것입니다. 힘이 없어서, 전쟁에서 져서 가나안 족속들이 남아 있게 된 것이 아니라, 다 진멸할 수 있는데도 일부러 살려둔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의 신앙의 두 가지 심각한 문제점을 보여줍니다.

 

1)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절대성 상실함 / 2)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 때문에 타협함


첫 번째로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절대성을 상실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분명 가나안 족속들을 하나도 살려두지 말고, 어른부터 갓난아이까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 진멸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가나안 족속들의 죄가 관영했기 때문에 그들을 심판하여 진멸하고자 하신 것이고, 또한 가나안 족속들이 진멸되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남아있게 되면, 틀림없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과 함께 지내면서 왕래하다가 그들의 문화와 우상에 젖어들 것이 뻔하기 때문에 다 진멸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신명기 7장에 보면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말고 다 진멸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해야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했습니다. 물론 그들이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닙니다. 여호수아가 죽기 직전에 보면 그들의 신앙은 결의에 차 있었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자 하는 열심이 대단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죽고 나서 사사기 1장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뜻도 묻기도 하였고, 또 유다지파는 믿음으로 도전하여 연승행진을 하였으며, 요셉지파도 처음에는 정탐도 보내고 믿음으로 벧엘을 정복하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처음 출발은 참으로 다 좋았는데, 문제는 점차로 하나님에 대한 충성이 식어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열심이 식어진 모습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가는 곳마다 가나안 사람들을 다 쫓아내지 아니하고 남겨두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는 모습은 결국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식어졌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없으니 하나님의 뜻과 명령에 무관심하게 되는 것이고, 도리어 자신의 행복과 이기적인 욕심이 하나님의 뜻보다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그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베푸신 출애굽의 은혜가 무엇인지를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없고,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 그들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이나, 하나님의 명령이나, 어찌하든지 그 뜻에 순종하여 가나안 족속들을 다 진멸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라든지 그런 것들이 아예 없었던 것입니다.

 

계 2:4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에베소 교회에 “(4)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5)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에베소 교회를 향해서 예수님은 너희가 첫사랑을 버렸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에베소 교회가 처음에는 주님에 대한 사랑과 주님의 뜻에 대한 의무와 충성하고자 하는 열심이 대단했지만, 점차로 그 뜨거움이 식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그들을 향해서 예수님은 어디서부터 떨어진 것을 발견하고 찾아서 다시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처음 신앙을 가졌을 때는 얼마나 감사와 사랑이 충만했습니까? 옛날에 우리가 다 왕년에는 한 신앙생활 하지 않았습니까? 물론 그 가운데서 자기 의를 위해서 노력하는 부작용도 있었지만, 그러나 그때는 우리가 주와 복음을 위해서 많은 것들을 희생하며 충성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정말 주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형제 자매들을 사랑하고 섬기며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그 사명에 온전히 충성하는 모습이 우리 가운데 있습니까? 사실 그러한 주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열망이 많이 식어져 있는 것이 우리의 솔직한 모습이지 않습니까? 오히려 이러한 주님의 뜻에 무관심하면서 그저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만일 이러한 삶을 살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주님을 향한 첫사랑을 잃어버렸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디서부터 떨어졌는지 찾아 발견하여 회개하고 우리 주님을 향한 첫사랑을 회복해야합니다. 어디서부터 떨어진 것인지는 사실 찾을 필요도 없이 분명한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어떤 분이시고,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그 사랑을 다시금 깊이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그 마음에 구원의 은혜를 회복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향한 첫사랑을 회복하고 주님이 주신 사명에 온전히 충성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그렇지 않고, 계속해서 주님을 사랑하지 않고, 사명에 불순종하며 살아가게 되어질 때에는 결국 영원한 멸망에 처해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4:12에도 보면 “(12)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세속적으로 흘러가고 모든 사람들이 자기 욕심대로 찾아갈 그때에 예수 믿는 우리도 그들에게 전염이 되어져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식어지고 하나님에 대한 의무와 영적인 게으름에 빠질 수 있음을 예수님이 언급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 실패를 거듭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보면서 깨달아야 합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뜨거웠다가 불가불 식어지는 그 싸늘해지는 그 과정을 주의하여 보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이러한 사랑이 식어지지 아니하도록 삼가 주의를 기울여야 할 줄 믿습니다.


두 번째로 그들의 불순종은 그들이 자신들의 이기적인 욕심을 따라 타협한 것임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족속을 다 멸하지 않고 남겨두어 그들에게 사역을 시킨 것은 인간적으로 보면 대단히 성공적인 장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쫓아내라고 했는데, “에이~ 하나님! 쫓아내지 아니하고 일을 시키면 우리도 좋고 하나님도 좋은 것 아닙니까?” 그렇게 적당히 타협을 한 것입니다. 우리 눈에는 이것이 좋아 보이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눈에 보기에는 실패인 것입니다.


삼상 15장을 보시면 사울 왕이 나옵니다. 그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아말렉과의 전투를 나가게 되는데, 하나님께서는 명하시기를 “아말렉 사람을 다 죽여라, 심지어 양과 소를 다 죽여라” 그렇게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사울이 이 명령을 받들어 열심히 전투 했습니다. 그리고 승리하였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다 죽이지 아니하고 소와 양들을 따로 남겨둡니다. 그때 선지자 사무엘이 나타날 때, 사울은 “내가 하나님의 명령을 다 순종 했습니다” 그렇게 큰 소리를 떵떵 칩니다. 그러자 사무엘이 “아니 이 들리는 소와 양의 소리는 무슨 소리입니까? 순종은 무슨 순종입니까? 순종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사울이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자 이 좋은 것을 따로 남겨두었습니다.” 즉 사실은 자기 자신의 욕심이 있지만, 그 욕심을 감추고 하나님께는 순종하는 것처럼 하면서 적당히 타협을 해서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무엘이 그에게 한 말이 무엇입니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삼상 15:22-23) 그렇게 무서운 심판의 말씀을 하였습니다.

 

이렇듯 사울이 비록 전투에서 믿음으로 도전하여 99%는 순종하였다 하더라도 정확히 1%는 순종하지 아니하여서 결국은 순종하지 아니한 것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사람의 인간적인 생각,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에 하나님의 명령을 온전히 순종하지 아니하고 적당히 타협하였을 때, 그것이 얼마나 큰 죄이고, 어떠한 비참한 처지에 떨어지게 되는지를 우리는 사울의 예를 통해 분명하게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왕상 22:43 에 보면 여호사밧 왕이 나옵니다. 그 왕에 대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43)여호사밧이 그 부친 아사의 모든 길로 행하며 돌이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산당은 폐하지 아니 하였으므로 백성이 오히려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여호와 앞에 정직히 행하였다라고 시작합니다. 그런데 뒷부분에 사람들이 우상을 섬기는 산당을 제거하지 않았음을 말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구절에 대해서 어떻게 해석합니까? “아 하나님 앞에서 정직히 행하였으니깐 나중에 뒷부분은 좀 잘못해도 괜찮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으나 본문은 그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는 것을 그는 제거하지 아니하였고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것을 그가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99%를 순종했다 하더라도 1%를 타협하면 결국 순종하지 않은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에서는 실패작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24)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

 

두 주인을 섬기지 말라고 하십니다. 두 주인을 섬기게 될 때에는 반드시 적당히 타협하기 때문에 결국은 한쪽으로 치우치는데, 우리의 죄성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섬기기보다는 물질을 섬기게 되고, 하나님보다는 나 자신의 이기적인 것을 섬길 수 있기 때문에 두 주인을 섬기지 말라고 딱 잘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이 어떠합니까? 주님의 뜻에 온전히 복종하며 살아가십니까? 주와 복음을 위해서 온전히 헌신을 다하십니까? 아니면 혹시 우리가 이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살아가고 있으면서, 사울처럼 이런 저런 핑계되며 합리화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하여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여 하나님 앞에 우리 좋고 하나님 좋고 하는 식으로 타협하게 되면, 그 타협이 우리 눈에는 성공처럼 보여도, 하나님의 눈에는 실패로서, 결국 그 불순종이 우리에게 영적으로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다준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순종할 때 99%가 아니라 100% 순종해야 합니다. 이 말에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처럼 절대적으로 100% 완벽하게 순종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처럼 절대적으로 완벽하지는 않다 하더라도 예를 들어 사도바울처럼 하나님을 향해 온전한 일편단심의 마음을 가지고 뒤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오직 부름의 상을 바라보며 그것을 향해 온 힘을 다하여 달음질했던 것처럼, 우리가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온전히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를 위해 날마다 자기를 쳐 복종시킨다고 했습니다. 바로 사도 바울처럼 우리도 자기를 부정하고 이 세상의 유혹에 굴하지 않고, 타협하지 않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온전히 복종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계속해서 34절을 보십시오. 북이스라엘 지파들의 실패는 단 지파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34)아모리 사람이 단 자손을 산지로 쫓아들이고 골짜기에 내려오기를 용납지 아니하고


단 지파는 그들을 사역시키기는커녕 그들로부터 쫓기는 신세가 됩니다. 그래서 결국 단 지파는 어떻게 되느냐 하면 자신의 기업을 포기하고 북쪽으로 이주해버립니다. 그리고 사사기 1장의 마지막 결론이 무엇입니까?


(36)아모리 사람의 지계는 아그랍빔 비탈의 바위부터 그 위였더라


하나님이 기대하신 사사기 1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족속을 다 진멸하고 그들의 영토가 “하맛 어귀에서 애굽 하수까지였더라” 그렇게 이스라엘 영토의 경계를 언급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의 사사기 1장은 이스라엘의 영토 대신 아모리 족속들의 경내를 열거하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하나님이 기대하신 것과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난 것입니다. 아주 비참한 결말로 끝나게 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나안 정복 실패를 보면서, 처음에는 유다지파를 통해서 뭔가 이루어지는 듯 했지만, 결국은 불순종과 실패로 끝나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서, 결국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게 되었을 때 어떠한 비참한 말로를 맞을 수밖에 없는지를 반면 교훈으로 삼아야 할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패를 반면 교훈으로 삼아 우리의 영적인 가나안 정복 전쟁에 믿음으로 도전하고, 끝까지 천성을 향해 순례의 길을 걸어가서, 결국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게 하여주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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